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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등급제 폐지·대입 자율화 등 굵직굵직한 교육정책을 놓고 인수위의 방침이 명확하지 않아 유관 기관과 혼선을 빚고 있다. 이명박 당선인의 교육공약에 맞춰 내놓은 이들 기관의 방침에 대해 인수위가 제동을 걸고 나선 것. 인수위는 관련 보도에 대해서도 반박에 나섰다.

 

한국대학교육협의회(이하 대교협) 등이 "대학별 시험을 자율적으로 치르겠다"고 천명하자, 이전까지 "대학입시 기획을 대학 협의체에 넘기겠다"던 인수위는 "우리와 견해가 다르다"며 입장을 선회했다. 또한, "수능 등급제를 폐지하고 점수제를 부활한다"는 보도가 나가자 정정보도를 요구했다.

 

인수위의 이같은 태도는 정책 추진에 대한 신중함으로 해석할 수 있지만, 이 당선인의 주요 공약과는 모순을 보이고 있어 교육현장의 혼란을 부채질하고 있다. 이 때문에 대학입시를 앞둔 학생과 학부모는 속이 타들어간다.

 

인수위, 교육정책 앞서가자 "견해 다르다" 반박

 

한국대학교육협의회와 전국 18개 대학 입학처장들은 지난 9일 서울에서 모임을 열고 "논술 등 대학별 시험을 자율적으로 치르겠다"며 2009학년도 입시 방안에 대한 구체적 입장을 내놓았다.

 

참석자들은 "내년 입시에서 기존의 큰 틀을 유지할 방침"이라면서도 "논술·구술·면접 등 현재의 대학별 고사를 각 대학 자율로 치르겠다"고 밝혔다. 또한 20일께 수능 등급제 등에 대한 공식 입장을 정해 인수위에 건의하기로 했다. 

 

이는 지난 2일 "대학의 입시 기획 기능을 대학들의 협의체로 넘긴다"고 천명한 인수위의 방침에 발을 맞추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인수위의 생각은 달랐다. 즉각 "우리의 견해와 다르다"며 반박했다. 인수위는 "대학입시 관련 업무를 대학협의체에 이양하기로 정책의 방향을 밝혔지만, 구체적 추진 일정과 세부 이양 방안에 대해서는 결론내리지 않았다"고 대교협과 선을 그었다.

 

인수위는 언론들에 대해서도 "보도가 앞서나가고 있다"며 제동을 걸었다. 이주호 사회교육문화분과 간사는 지난 9일 수능등급제 폐지, 초·중등생 조기유학 자율화 등에 대한 보도에 대해 직접 정정을 요구했다. 

 

<한겨레신문>은 이날 "인수위가 수능 등급제를 폐기하고 사실상 점수제로 되돌린다는 방침을 정하고, 구체적인 폐지 시점을 검토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고 보도했다. 또한 인수위 사회교육문화분과 위원의 말을 인용해 "위헌 여지가 있는 수능 등급제를 폐지하고 표준점수와 백분위·등급을 병기하는 '2007년 체제'로 되돌리는 쪽으로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 보도에 대해 이주호 간사는 "인수위는 수능 등급제를 포함해 대입 전형 전체에 대한 의견 수렴 과정에 있고, 지금까지 점수제로 되돌린다는 방침을 정한 바 없다"며 "'위헌 소지'를 언급한 관계자가 없고, '2007년 체제로 되돌린다'는 논의도 없었다"고 강하게 부인했다.

 

이 간사는 "언론이 정해지지도 않은 내용을 기정사실화해서 학부모와 학생에게 혼란을 주는 기사를 쓰지 않도록 요청한다"고 불쾌감을 표시하기도 했다.

 

또 초·중등생의 조기유학 자율화에 관한 보도에 대해서도 "검토한 적도 없고, 교육부와 논의한 적도 없다"고 부인했고, '수도권의 로스쿨 정권을 높인다'는 기사에도 "인수위는 로스쿨에 대한 논의를 한 바가 전혀 없다"고 정정을 요청했다.

 

인수위, 지금 와서 당선인과 말 바꾸기?

 

인수위의 이같은 노력에 대해 학생과 학부모 등 교육 당사자들의 '역풍'을 우려해 몸을 사리고 일관성없이 정책을 추진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일고 있다. 

 

이 당선인은 후보 시절부터 "대학 자율에 맡기겠다"고 강조해왔고, '공약 브레인'이었던 한나라당 '일류국가비전위원회'는 자료를 통해 "대입 관련 교육부 업무를 대학과 대교협, 전문대학교육협의회에 이양하겠다"고 이 당선인을 뒷받침했다.

 

지난 2일 교육부 업무보고를 받은 자리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인수위는 "대학의 입시 기획 기능을 대학들의 협의체인 대교협으로 넘긴다"고 밝혔다. 이 간사는 당시 "대입 업무 집행 기능은 물론이고 기획 기능도 교육부에서 대교협으로 이양된다"고 강조했다.
 
그런데 정작 대교협이 내년도 입시안에 대한 입장을 정하고 "사실상 본고사 부활"이라는 해석이 나오자 인수위가 난색을 표한 것이다. 내년도 입시안은 이명박 정부 입시 정책의 '첫 단추'가 되기 때문에 더욱 조심스러운 입장이다.

 

수능 등급제에 관해서도 마찬가지. 이 당선인은 후보 시절 "노무현 정권이 수능 등급제를 반대 속에서도 강행해 학생과 학부모·학교가 다 혼란에 빠졌다"(지난달 11일 대선후보 검증토론회)며 수능 등급제에 반대 입장을 보였다.

 

그런데, 당선 뒤 이에 대해 "시행 1년만에 폐지"라는 보도가 나가자 인수위가 급히 진화에 나섰다. 인수위는 현재 교육부에 수능 등급제에 대한 결론을 내달 초까지 전달해줄 것을 요청한 상태지만, '당장 폐지'보다는 등급 외에 표준점수 등의 자료를 대학에 제공하는 방안 등이 거론되고 있다. 

 

"교육정책을 경제학자들이 요리하니 갈지자 행보"

 

이를 바라보는 교육 당사자들은 혼란스럽다. 서울 목동에서 중학교 3년생 자녀를 둔 박아무개(40·여)씨는 "이 당선인의 입장이 대학 자율에 맡긴다는 것 아니었느냐"며 "수능 과목도 줄고 사실상 본고사를 다시 치른다는 것인 줄 알았는데, 왜 지금 와서 말이 다른 것이냐"고 따져 물었다.

 

김정명신 '함께하는 교육시민모임' 회장은 인수위의 교육 전문성 부재를 꼬집었다. 김정 회장은 "교육 정책을 현장 전문가가 아닌 경제학자들이 하다 보니 '갈 지(之)자' 행보를 할 수밖에 없다"며 "교육 현실과 동떨어져 있는 탓에 학생이나 학부모들의 심정으로 정책을 구체화하는 데 한계가 있다"고 주장했다.

 

김정 회장은 "새 정부가 '사교육비 절감', '공교육 정상화' 등을 내세우면서도 자율형 사립고를 확대하는 등 사실상 고교 입시를 부활시켜 학원가에 '이명박 특수'를 만들었다"며 "교육 전문성이 부족한 사람들이 정책을 만들다보니 '캐치프레이즈'와 구체적 정책간에 불균형을 보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태그:#수능 등급제 , #교육 정책 , #인수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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