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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원한 환자를 치료하는 모습
 입원한 환자를 치료하는 모습
ⓒ 오마이뉴스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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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나 어릴 때, 그 때 우리 엄마가 해준 말들 중에 '과타, 과타'라는 말이 있다. '과타'란 '과(過)하다, 즉 심하다 그러니 그만 해라'라는 말이다.

그 때는 왜 그리도 추웠던가. 겨울이면 문고리에 손이 쩍쩍 달라붙곤 했다. 날은 춥고 입은 옷은 부실했다. 그래서 애들은 아랫목을 파고 들면서 방에서 뭉그적거리기만 했다. '동물의 세계'를 보면 어린 새끼들은 장난을 치면서 사냥 기술을 배워 나간다. 우리도 똑같았다. 뒹굴고 서로 치고 받으면서 사는 법을 배워 나갔는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웃고 웃고 또 웃으면서 장난을 쳤다. 그럴 때 엄마가 하는 말이 있었다. '과타, 과타, 고만 해라. 방귀가 잦으면 똥을 싸게 되고 웃음이 과하면 울음이 나온다. 고마 해라.' 엄마 말마따나 얼마 안 가서 꼭 누가 울었다. 재미있는 장난도 끝에 가면 꼭 누구 하나가 우는 거로 끝내는 거였다. 웃음이 지나쳐서 울음이 된 거였다.  

살면서 가끔 그 말을 떠올린다. 넘치면 모자란 것만 못하다며, 조금 모자란 듯이 먹고 아쉽다 싶은 마음이 들 때 자리에서 일어나라는 말을 해주던 엄마가 생각난다.

'과타, 과타, 넘치면 모자란 것만 못하다'

교통사고를 당했을 때, 나는 규정 속도가 시속 80㎞인 길을 80㎞ 정도의 속도로 달리고 있었다. 그런데 반대 차선에서 어떤 차가 좌회전을 하느라 차머리를 돌리는 거였다. 순식간에 일어난 사태에 미처 반응을 하지 못했다. 그래서 감속할 사이도 없이 달리던 속도 그대로 그 차와 충돌했다. 

충돌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다. 내 뒤를 따라오던 차가 내 차 옆구리를 한 번 더 박았다. 그래서 내 차는 많이 파손되었고 폐차 처리되었다. 그리고 나는 정신이 혼미한 가운데 병원으로 실려갔다.

그런데, 교통사고로 입원한 지 약 3주가 다 되어갈 때였다. 그 때 남편은 그랬다.

"내가 당신한테 퇴원해라 말아라 하긴 좀 그러니 당신이 잘 생각해서 판단하기 바래. 진짜로 중요한 게 뭔지 잘 생각해 봐."

나는 그 때 추가 진단을 더 받아서 계속 치료를 받을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 당시는 몸이 아직 쾌차하지도 않았지만 다른 속셈도 있었다. 그건 바로 보상금이었다.

사람들은 그냥 입원해 있으면 보상금이 높아진다며 더 있다가 퇴원하라고 그랬다. 집에서 쉬면서 통원치료 받으면 될 것 같지만 막상 퇴원하면 눈에 훤히 보이는 집안일을 안 할 수 없게 된단다. 그러면 몸이 힘들어진다며 그냥 눈 꾹 감고 이왕 입원한 김에 쉰다 생각하고 계속 있으라고 그러는 거였다. 그런데 남편이 그러는 거였다.

"여보, 뭐가 더 중요한지 생각해 봐. 아이들과 함께 크리스마스랑 연말연시를 보내는 게 더 중한 건지도 몰라. 당신이 판단할 일이지만 잘 생각해 봐."

그래서 고민에 빠졌다. 대학생인 딸은 집을 떠나 혼자 서울에서 살고 있고 조만간 아들 역시 대학에 입학하게 되면 집을 떠나게 된다. 우리에게 이번 겨울방학은 추억을 쌓을 수 있는 귀한 시간인데, 엄마인 내가 보상금을 얼마 더 받기 위해서 자리를 비우는 게 과연 좋은 일인지 생각해 보라는 남편의 말이었다.

하지만 나는 남편의 말을 듣지 않았다. 당시 내 몸의 상태가 그다지 좋지 않아서 퇴원이 망설여졌기도 했지만 같이 입원해 있는 사람들의 말에 더 귀를 기울였던 것이다. 만약 퇴원한 뒤에 더 아프면 어떻게 하나 라는 두려움도 있었고 또 입원일수가 길어질수록 보상금이 더 많아지는 이치를 내가 깨달았던 것이다.

보상금을 더 받기 위해서 계속 입원을 해야 하나...

교통사고 피해에 대한 보상금은 대개 세 가지 경우로 분류해서 지급이 된다. 첫째는 사고로 인한 장애 발생에 대한 위자료가 있다. 그 다음 일을 못해서 생기는 손해를 보상해주는 일실보상이 있다. 마지막으로 치료비가 있다.

장애 등급에는 1급에서 14급까지 있다. 각 등급에 해당하는 위자료가 일률적으로 책정이 되어 있는 모양이었다. 경미한 장애의 경우에는 위자료에 대해서 보험사와 피해자간의 실랑이가 그다지 존재하지 않는 것 같았다.

사고로 인해 일을 못해서 입는 손해를 보상해 주는 '일실손해' 부분은 가장 실랑이가 큰 부분일 것 같았다. 보험사에서는 제시 자료가 있는 부분에 대해서만 소득을 일정 부분 인정을 해주는 것 같았다. 만약 돈을 번다 하더라도 제시 자료가 없는 경우에는 보상을 못 받기 때문에 피해자는 손해를 보게 되는 것이다.

나는 전업주부여서 정부 노임 단가의 80%를 보험사에서 보상을 해준다고 했다. 정부 노임 단가는 한 달에 120여만 원쯤 되는데 80%로 보면 하루에 대충 3만5000원 정도의 일실손해를 보상해 주는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치료비에 대한 보상이 있다.

병원에 입원해 있는 동안의 치료비뿐만 아니라 퇴원 후 통원 치료에 대한 부분을 보상해 줘야 하는데 이 부분에서 보험사와 피해자 간의 의견 차이가 많이 난다. 보험사에서는 가급적 돈을 적게 주려고 하고 피해자는 더 많은 통원 치료비를 요구하는 것이다. 그래서 교통사고 합의는 쉽게 이루어지지 않게 되고 환자는 퇴원을 하지않고 버티게 되는 것이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보험사에서 제시하는 합의금은 내 생각엔 아주 약소했다. 내가 입은 피해에 견줘봤을 때 보상금은 미약하다고 생각이 되었다. 그리고 뭔지 모를 억울함이 마음 저 밑에 깔려 있었다.

'나이롱 환자'들을 보면 괜히 손해보는 기분이 들었다

내가 당한 교통사고이 경우 자동차가 만약 서있는 구조물, 예컨대 전봇대나 건물을 그 속도로 박았다면 더 큰 피해를 입었을 것이다. 하지만 충돌시 충격을 완화해주도록 잘 설계된 차끼리 박았기 때문에 사고 내용에 비해서는 크게 다치지는 않았다. 

그래서 겉으로 드러난 부상은 없었지만, 속으로는 많이 다친 것 같다. 허리와 목은 말할 것도 없고 가슴과 옆구리도 많이 아팠다. 숨을 좀 크게 들이쉬거나 기침을 하면 가슴이 결리고 아파서 기침이 나오면 가슴을 부여잡고 어쩔 줄을 몰라 했다. 또 팔이 저려서 잠을 이룰 수 없을 때도 있었다. 

그런데 같은 교통사고 환자라고 해도 급이 다른 환자들이 있었다. 사소한 충돌, 예컨대 주차장에서 후진하는 차에 부딪쳐서 범퍼가 조금 깨졌거나 아니면 기타 사소한 접촉사고로 입원한 사람들이 여럿 있었다. 그 사람들은 대부분 2주 진단을 받고 입원하고 있었다.

교통사고는 일단 났다 하면 기본적으로 2주 진단은 나온다고 한다. 3주 미만이면 경상에 속하고 3주 이상은 중상에 속한다. 즉 2주까지는 경상이고 3주부터는 중상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도 교통사고 보상금은 경상이나 중상이나 그다지 차이가 나는 것 같지 않았다.

내가 보기에 그들은 멀쩡해 보였다. 2주 진단을 받고도 3주 이상 계속 눌러앉아 있는 사람도 여럿 있었다. 그들을 보면 왠지 모르게 억울했다. 그들보다 일찍 퇴원한다면 내가 마치 바보가 되는 것처럼 여겨졌다. 그래서 오기로 그냥 계속 병원에서 버티게 되었던 것이다.

병원에서 하루 하루를 무의미하게 보냈다. 보는 것도 듣는 것도 다 그저 그런, 배울 거라고는 별로 없는 병원 생활이었다. 그들도 나도 알고 있었다. 우리는 스스로 자신을 속이고 남을 속이고 있었던 것이다. 서로 옹색한 말들을 주고받으면서 시간을 때우고 있었다.

그런데 남편이 그러는 거였다.

"여보, 복잡한 곳에서는 빠져 나오는 게 상수야. 그 곳은 탁해. 좋은 기운이 모여 있는 곳이 아냐. 안 좋은 기운이 모여 있는 곳에 있는 게 뭐가 좋아? 이제 그만 나와. 진짜로 소중한 게 뭔지 생각해 봐. 어찌 보면 돈은 아주 작은 것일 뿐이야. 더 큰 게 있는데, 그걸 생각해 봐."

사고로 인해서 얻은 것, 복 짓는 삶을 살고 싶다

나 역시 그리 생각하고 있었지만 빠져 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남편이 그리 말하니 진짜로 그렇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억울하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었다.

"여보, 그건 그렇지만 난 억울해. 내 보기에 아무렇지도 않은 사람들이 오래 입원해서 돈 챙기고 있는데…. 난 진짜로 아팠단 말야."

남편의 말을 듣고 나는 마음을 먹었다. 그리고 보험사 직원에게 전화를 했다. 

뜻하지 않은 교통사고를 당하여서 잃은 것이 많다. 하지만 얻은 것도 많다. 큰 사고였음에도 많이 다치지 않았던 것을 고마워하는 마음을 얻었다. 내가 지은 복보다는 조상님들께서 지으신 복 덕분에 내가 크게 다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도 내 자손들을 위해서 복을 짓는 삶을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복잡한 곳에서는 빠져나오는 게 좋다는 남편의 말을 듣고 생각했다. 내 능력에 비해 과하게 욕심을 부리며 여러 갈래로 발을 뻗치고 살았던 내 나날들을 돌아 보았다. 능력에 넘쳐나게 일을 하니 힘이 소진되었고 그래서 짜증도 부리게 되었다. 그리고 감동을 느끼며 사는 날들이 줄어 들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고로 인해서 모든 일에서 손을 놓게 되자 비로소 그 곳에서 빠져나올 수 있게 되었다. 욕심을 버릴 수 있게 된 것이다. 조금은 단순하게 그리고 감동을 주고받을 수 있는 삶을 살아야겠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앞으로의 내 삶은 단순해질 것 같다. 하지만 복을 짓고 감동을 주고받는 삶을 살 것이다.


태그:#과유불급, #교통사고 보상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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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일을 '놀이'처럼 합니다. 신명나게 살다보면 내 삶의 키도 따라서 클 것이라는 생각을 하며 오늘도 뭐 재미있는 일이 없나 살핍니다. 이웃과 함께 재미있게 사는 게 목표입니다. 아침이 반갑고 저녁은 평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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