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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녹색당


- 글 : 나카이 타케시(仲井 斌)
- 펴낸곳 : 맥남글방(1987.9.10.)


 새로운 대통령으로 뽑힌 분은 ‘서울부터 부산까지’ 물길을 트겠다는 공약을 내놓았습니다. 이 공약이 나온 지 제법 됩니다. 적지 않은 분들은 이 공약이 우리 삶터를 얼마나 무너뜨리는가를 밝히고 있으나, 대통령 후보로 나설 때에나 대통령으로 뽑힌 뒤에나 자기 뜻을 굽히지 않습니다. 자연 삶터가 무너지고 우리 삶터를 더욱 살뜰히 가꾸는 데에 들어갈 돈이 엉뚱한 곳에 버려지는 대목을 헤아리는 분보다, 운하길을 오갈 배가 얼마나 안전한지밖에 못 보는 분이 많습니다.

 

 그렇지만 경부운하뿐일까요. ‘십 조를 투자하면 백 조를 벌 수 있으’니 훨씬 크게 이익이 아니냐고 하는 인천시장 정책이 인천이라는 곳을 온통 공사판과 철거지역으로 만들며 흔들고 있습니다. ‘자동차 굴릴 기름’이 바닥나기까지 얼마 안 남았다는 이야기에다가 하늘 높은 줄 모르는 기름값 이야기가 나와도 자동차 생산은 줄이지 않고, 자동차 씀씀이는 떨어지지 않습니다. 기름을 먹는 자동차가 아닌, 우리 두 다리로 걷거나 자전거를 몰자는 이야기조차 터져나오지 않습니다. 찻길을 새로 더 닦아야 한다는 이야기만 터져나올 뿐입니다.

 

 “환경을 지켜야 합니다”는 말을 안 하는 사람이 없지만, “환경을 어떻게 지켜야 하는가” 하는 이야기를 꺼내는 사람은 드물고, “어떤 환경을 지켜야 하는가” 생각하는 사람은 더욱 드물며, “환경을 지키는 우리들한테 무슨 좋은 일이 있는가” 짚을 수 있는 사람은 훨씬 드뭅니다.

 

 이 나라 아이들이 ‘연봉 많이 받을 일자리 못 얻을까’ 걱정하는 부모는 많아도, 이 나라 아이들이 맑고 싱그러운 햇볕과 바람과 물을 누릴 수 없는 우리 삶터를 근심하는 부모는 찾을 길이 없습니다. 유기농 곡식을 사먹거나 정수기를 집에 들여놓는다고 해서 ‘내 아이 몸’을 알뜰히 지킬 수 있을까요.

 

 우리 스스로, 그러니까 부모인 우리들, 교사인 우리들, 동네 어른인 우리들, 지식인인 우리들, 사회를 이끄는 기성세대인 우리들 스스로 우리 삶터를 뿌리깊이 살피지 못하기 때문에, 우리 삶터를 제대로 돌아보는 공약을 내놓는 정치꾼을 못 뽑는구나 싶습니다. 이리하여 ‘녹색당’도 없는 우리 나라이지만, ‘환경 공약’을 알뜰히 내놓는 정당이나 정치꾼도 없겠지요.

 

 

(24) 무용가에게 보내는 노베르의 편지


- 글 : 쟝 조르지 노베르
- 옮긴이 : 육완순
- 펴낸곳 : 금광(1987.8.5.)


 어니스트 톰슨 시튼이라는 사람을 안 지 얼마 안 되었습니다. 어릴 적 ‘시튼 동물기’니 ‘시튼 전기’니 만화로 보기는 했으나, 이런 이야기에는 시튼이 살아온 모습이 참다이 담기지 않았고 제대로 담아내지 못했음을 요 몇 해 사이에 비로소 알았습니다. 조각조각 쪼개진 ‘시튼 동물기’가 아니라, ‘시튼 스스로 자연과 사람 삶터를 몸소 부딪히고 겪어내면서 담아낸 이야기를 한 권씩 펴낸 흐름’을 좇아 처음으로 소개되는 책들을 보고, 처음으로 제대로 번역되는 자서전을 읽으면서, ‘보이스카웃’을 시튼이 왜 만들었고, 보이스카웃 뜻이 한국땅에서 어떻게 빛이 바래거나 바뀌면서 나뒹굴고 있는가를 새삼 느낍니다.


.. 음악가는 열정의 성격과 특징을 연구하고, 이것들을 작곡으로 표현한다. 한편, 발레 안무가는 이런 요소들을 모두 통합함으로써 무용예술의 전체적인 한계성을 탈피하여, 이와 동일한 정열을 가지고, 특색있는 동작과 몸짓을 추구한다 ..  (15쪽)


 사진을 찍는 최민식 님이나 김기찬 님을 마음속 깊은 데에서 우러나는 설레임으로 받아들인 지 얼마 안 되었습니다. 사진을 모르던 때에는 더더욱 알 수 없었고, 사진을 배우는 동안에도 그저 그러려니 지나칠 뿐이었습니다. 차츰차츰 사진에 눈이 뜨면서 사진 한 장에 어떤 마음과 몸짓과 생각과 이야기를 담았구나 하고 보이면서, 사진 한 장을 바라보는 데에 한 시간 두 시간을 들이게 되고 눈물도 쏟게 됩니다.


.. 안무가들은 위대한 화가들의 그림들을 참고해야 한다. 이러한 조사는 의심의 여지 없이 자연과의 접촉을 가져오게 된다. 그리고 가능한 한 동일한 캔바스에 유사한 그림을 그리고, 동일한 것이 반복되는 형태의 대칭을 피해야만 한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모든 대칭적인 형상을 반박하고, 이 형태를 전적으로 말살하려는 것처럼 생각한다면 나의 견해를 잘못 이해한 것이다. 최고의 것이라 해서 그것을 남용하면 항상 해가 된다 ..  (23쪽)


 사람 하나를 알아가면서 사람 둘을 알게 됩니다. 사람 둘을 알아가면서 사람 넷을 알게 됩니다. 책 하나를 알아가면서 책 둘을 알게 되고, 책 둘을 알아가면서 책 넷을 알게 됩니다.

 

 춤이니 발레니 안무니 터럭만큼도 모르는 형편입니다. 그렇지만, 1810년 10월 10일, 슬픔에 빠진 채 병든 몸으로 조용히 세상을 떠난 ‘노베르’라는 사람이 남긴 책 하나를 우연치 않게 만나고 펼치고 읽으면서, 세상 모든 일과 놀이는 떨어지거나 끊어져 있지 않음을 봅니다. 세상 모든 사람은 굵고가는 끈으로 이어져 있음을 깨닫습니다. “무용에 관해 완벽한 지식을 갖추지 못한 안무가는 오직 조잡한 방식으로 안무할 뿐이다. 춤을 춤으로써, 그리고 진정한 스타일이 발레의 진실된 기반이다.(57쪽)”는 말이 아니더라도, 얕거나 섣부른 지식과 눈길과 눈높이는 세상흐름이나 사람 삶을 엉뚱하게 비틀어 보거나 깎아내리거나 무너뜨립니다.

덧붙이는 글 | 인터넷방 <함께살기 http://hbooks.cyworld.com> 나들이를 하시면 여러 가지 책과 헌책방과 우리 말 이야기를 살펴보실 수 있습니다.


태그:#절판, #헌책방 책시렁에 숨은 책, #헌책방, #녹색당, #노베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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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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