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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주시청 로비에서 만난 동자암 스님들.
광주시청 로비에서 만난 동자암 스님들. ⓒ 오승준

 

낮에는 산 새를 벗 삼고, 밤에는 별과 달을 친구 삼아서 그들만의 삶을 꾸려가고 있는 금성산성 지킴이 동자암 스님들. 그들이 3년 만에 금성산성을 떠났다.

 

8일 오후 2시경 반가운 전화 한 통을 받았다. 금성산성의 보리스님이었다. 30분 후 1층 로비에서 동자암 네 스님을 만났다. 동자암 네 스님은 '다물후예'를 자처하는 청산스님(46)과 아내 보리스님(40), 큰 아들 황룡(14), 작은 아들 청룡(13), 막내딸 구봉(8)이다.

 

삭발머리에 온통 붉은 옷. 붉은 조끼 갑옷에 노란색 테두리, 붉은 허리띠에 붉은 토시. 마치 고대의 장수가 현대인의 삶 속으로 시간여행을 온 듯한 착각을 불러 일으키는 그들은 여전히 독특한 옷차림과 맑은 얼굴로 합장하며 반가운 인사를 건넨다. 그러나 청산스님과 보리스님의 얼굴에는 왠지 수심이 가득하다.

 

그러고 보니, 그들을 만난 지도 수개월 된 것 같다. 담양 금성 산성을 돌아보면서 우연히 동자암에 들려 그들의 삶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이 계기가 되어 가끔씩 그들과 아름다운 인연의 만남을 이어가고 있는 것. 사라져 가는 우리 민족정기를 되살리고, 전통 무예의 맥을 계승하며, 남도문화의 우수성을 알리는 일을 삶의 큰 기쁨으로 알고 사는 그들의 소식이 궁금하지 않을 수가 없다.

 

지금 그들은 영암 활성산에서 생활하고 있다. 전기도 수도도 없는 자연의 깊은 계곡 금성산에서 산성의 지킴이로 우리의 아름다운 강산과 사적지를 지키고, 문화해설사로 전국에서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우리네의 자랑스러운 문화를 알리며, 많은 사람들과 교류하는 삶을 수행으로 여기며 사는 그들이 왜 금성산성을 떠났을까?.

 

청산스님과의 대화와 인터뷰를 통해 스님 가족들이 금성산성을 떠난 이유와 그들의 현재 생활에 대해 이야기를 들어 보았다.   

 

- '민족정기 되살리는 <호국다물무예> 영암에 둥지'라는 영암신문 기사를 보았는데, 어찌된 영문인지?

"본의 아니게 3개월 전에 금성산성을 나와 이곳 영암 활성산으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영암의 기연구센터와 관련있는 몇 분과 인연이 닿아서 이곳 활성산에 터를 잡게 되었지요."

 

- 근본적인 문제가 따로 있는 것 같은데?

"한마디로 저희들이 방송과 신문 등 언론의 유명세를 타다보니, 그것을 못마땅하게 여기고, 산성을 자신들의 소유처럼 생각하는 일부 사람들이 군청 관계자들을 곤란하게 함으로써 거주에 대한 여러가지 사항들을 문제삼아 압박해 오고, 방송 촬영도 불허함에 따라 본의 아니게 동자암 움막을 일시 폐쇄하고, 이곳으로 옮기게 되었습니다."

 

- 거주 등에 대한 구체적인 문제란?

"무허가 움막으로 인한 화재의 위험성, 산성 보호 등의 이유이죠. 그러나 우리 가족들이 산성 주변을 수시로 순찰하고, 등산객들의 무분별한 행태를 감시하고, 계도하기 때문에 우리가 이곳으로 옮겨온 후로는 화재 사건이 단 한 건도 발생하지 않았고, 쓰레기 등을 함부로 버리는 일도 거의 없어졌습니다. 도리어 전국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저희 가족들을 만나기 위해 산성을 찾다보니, 담양 이미지 제고, 관광활성화, 산성 홍보 등에 큰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 금성산성에 오게 된 동기는?   

"제가 태어난 곳이 담양 금성산입니다. 제가 가정을 갖기 전에는 줄곧 우리의 전통무예와 다물사상을 알리기 위해 전국 도처를 돌아다녔습니다. 그러다가 제주도에서 보리스님을 만나 가정을 이루고 그곳에서 6년 정도 살았습니다. 고향사람들의 권유로 2004년 말 이곳 금성산성에 둥지를 틀게 되었습니다."

 

- 산성에서의 생활은?

"너무나 좋고 행복했습니다. 무엇보다도 공기와 주변 경관이 좋고, 옛 조상들의 발자취와 기상이 넘치는 산성 및 사적지 등이 있어 내가 추구하는 전통문화의 보급과 다물 무예 등을 교육시키기에 적격이었습니다. 무예를 통해 세상과 교류하는 소통의 장으로도 적합하였습니다."

 

- 다물무예란?

"고구려인들은 옛 땅을 되찾겠다는 '다물사상'을 바탕으로 상무정신을 배양하여 중국의 역대왕조들과 과감한 국토회복전쟁을 벌였습니다. 이 과정에서 환인, 환웅의 시대부터 시작되어 전승되어 온 우리민족 고유의 전통무예가 발전, 확립된 것이 다물무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 금성산성에 거주한 지는?

-2004년 말에 들어왔으니, 3년 정도 되었습니다. 저희들이 처음에는 금성산 보국사터(백양사 말사)에 거주하다가, 산성 주변의 동자암 움막으로 옮겼습니다. 그곳에서 충무학교를 열어 전국의 많은 기업인, 군인, 직장인, 학생 등 년 수만명에게 우리의 전통문화와 다물무예 사상 등을 교육시켜 큰 호응을 얻었습니다."

 

- 영암 활성산은 안정된 곳인지?

"그렇지는 않습니다. 임시 거처입니다. 개인 소유자의 동의를 받아 기존의 건물을 수리하여 사용하고 있습니다. 전기도 수도도 있어 생활하기에는 불편이 없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의 왕래가 적어 저희들이 원하는 바를 이루기에는 어려움이 많습니다."

 

- 앞으로의 계획이나 소망은?

"좋은 조건을 제시하며, 전국에서 저의 가족을 초청하는 곳이 많습니다. 그러나 저는 가급적 제 고향인 금성산에 무예전수관이나 공연장을 마련하여 우리의 전통문화와 호국다물무예를 보급하는 일에 전념하고 싶습니다. 가치관이 전도되고, 민족의식이 점차 흐려져 가고 있는 이 시대, 특히 청소년들이 호국다물무예를 배워서 몸과 마음을 튼튼히 하고 가치관을 새롭게 확립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청산일가는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이 전혀 남과 다르다. 청산은 내공이 깊은 무술의 고수일 뿐 아니라, 기공에도 조예가 뛰어나고, 천문·지리도 연구하고 있다. 그래서 세상은 그를 무사라도도 하고, 싸울 아비라고도 하며, 도사라고 부르기도 한다. 자녀들이 그의 모든 것을 전수받고 있다.

 

그들과의 만남과 교류를 원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대혼란을 겪고 있다. 금성산성에 그들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광주에서 1시간 40분이나 소요되는 영암 활성산에 그들이 임시로 거주하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들도 거의 없고, 설사 안다고 해도 직접 찾아갈 수도 없다. 언제까지 그들이 그곳에 있을 지 알수 없기 때문이다

 

삭발머리에 온통 붉은 옷. 산속 곳곳에서 '얍!' 기합소리. 언론에 수차례 조명 영화 섭외. 전통무예의 맥을 잇고 싶다는 청산가족들의 천사같은 얼굴. 언제나 금성산성에서 다시 그들을 볼 수 있을까.

 

 시청 민원실에서 차를 들고 있는 동자암 스님들.
시청 민원실에서 차를 들고 있는 동자암 스님들. ⓒ 오승준

#동자암 스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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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와 국민을 위한 봉사자인 공무원으로서, 또 문학을 사랑하는 시인과 불우한 이웃을 위해 봉사하는 것을 또 다른 삶의 즐거움으로 알고 사는 청소년선도위원으로서 지역발전과 이웃을 위한 사랑나눔과 아름다운 일들을 찾아 알리고 싶어 기자회원으로 가입했습니다. 우리 지역사회에서 일어나는 아기자기한 일, 시정소식, 미담사례, 자원봉사 활동, 체험사례 등 밝고 가치있는 기사들을 취재하여 올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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