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엊그제 오랜만에 대중목욕탕엘 갔다. 새해도 되었으니 때 빼고 광도 좀 낼 겸…. 춥다고 겨울에 몸을 꼭꼭 싸두었다가 목욕을 하니, 아따 국수틀에서 국수가 나오는 것처럼 때가 나오는 것이 아닌가.

 

나중에는 팔이 아파서 때 밀기를 중단 하고 머리를 감으려고 샤워기가 있는 쪽으로 이동했다. 머리와 몸에 비누를 칠하고 있는데, 40대로 보이는 젊은이가 온탕으로 들어가더니 사람들에게 명함을 건네는 것이었다. 별꼴이었다.

 

나는 처음에 생각하길, 무슨 운동기구나 안마기를 팔려고 온 세일즈맨으로 생각했다. 비누칠을 다하고 이제 샤워기에서 쏟아지는 물로 머리를 막 감고 있는 중이었다. 바로 그 때 누군가 내 어깨를 툭치는 것이 아닌가.

 

비누칠하다가, 머리감다가, 말리다가... 연신 주어지는 명함

 

비눗물 때문에 눈을 제대로 뜰 수가 없어 가느다랗게 실눈을 뜨고 보았더니 좀 전에 탕 안의 그 사람이 내게도 명함을 주면서 뭐라고 말을 건네는데  물소리와 사람들 떠드는 소리로 소란스러워 무슨 소린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지금 머리감고 있잖아요. 나중에 봅시다."

 

조금 큰소리로 말했다. 그랬더니 자리를 비켜 다른 곳으로 가는 것이었다. 머리를 다 감고 마른 수건으로 물기를 닦으면서 궁금했다. 방금 내게 명함을 주려다 퇴짜를 맞았던 사람의 정체가. '도대체 무엇 하는 사람일까?'

 

목욕을 마치고 탈의실로 나와서 드라이기로 머리를 말리고 있는데, 또 어떤 사람이 아는 체를 한다. 좀 전의 그 사람이었다. 나는 나체였지만 그 사람은 이미 옷을 입고 있었다. 검정 양복차림에 빨간 넥타이를 매고 있었고 외관이 멀쑥한 게 품위가 있어 뵌다.

 

"저 윤아무개입니다. 잘 부탁합니다."

 

90도로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면서 명함을 건네는 것이었다. 얼떨결에 나는 "아, 예" 하며 명함을 받았다. 명함에는 각종 이력과 이름, 그리고 이름 밑에 '○○○당 국회의원 예비후보자 윤○○'라고 적혀 있었다. 학력을 보니 우리나라 최고의 대학까지 나온 사람이었다.

 

요즘 ○○○당에서 올 총선을 앞두고 공천을 '대통령 취임식 전에 하느냐, 후에 하느냐?'는 문제로 설왕설래 말이 많은가 보다. 아직 공천을 시작도 하지 않았는데, 국회의원 예비후보자라는 명함까지 만들어서 뿌리고 다니는 이 사람은 도대체 어떤 사람일까? 얼마나 국회의원이 되고 싶었으면 목욕탕까지 벌거벗고 들어와서 머리를 감고 있는 사람에게 무례하게 명함을 내미는 것일까?

 

도무지 내 머리로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리고 기분이 더러웠다.

 

잘 부탁한다는데, 기분 더럽네

 

대통령 선거가 끝나고 이제 좀 잠잠해지나 싶었더니, 이번에는 또 국회의원 선거로 한바탕 소란이 벌어질 듯싶다. 내 나이 50이 넘어 수많은 선거를 경험했다. 선거 때마다 지도자가 되겠다는 사람들의 선거유세전을 보면 참으로 가관이다.

 

얼마나 겸손한지 90도로 인사를 한다. 어느 때는 세배 절을 하기도 한다. 안 찾아가는 데가 없다. 시장 아주머니와 악수를 하면서도, 태안에서 기름으로 범벅이 된 바윗돌을 닦으면서도 밝게 웃는다. 계란 세례를 받고도 인상을 찌푸리지 않고 헤헤 웃는다. 그걸 보면 대인(大人)답다. 어느 후보자는 얼마나 반가웠으면 이산가족 상봉하는 것처럼 달려가 와락 포옹을 한다. 얼마나 인사성이 좋고 친절한지 모른다. 그리고 그들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나만큼 이 나라를 사랑하는 사람이 없다고 강변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해할 수 없는 일은 선거가 끝나면 이들의 태도가 싹 달라진다는 것이다. 당선만 되면 기고만장해진다. 어깨에 힘이 들어간다. 사람들 하고 악수를 할 때도 뻣뻣하게 손만 내민다. 유세 때 그렇게 열심히 찾아갔던 곳엔 발길을 끊는다. 국민들을 섬기겠다고 맹세했던 사람이 고관대작들과 샴페인 잔을 부딪치며 승리를 자축한다.

 

이런 이야기가 있다. 개구리 나라에서 개구리들이 그들의 지도자를 뽑기 위해 모였다. 여러 의견들이 나왔다. 그들은 우아하고 힘센 황새를 자신들의 지도자로 뽑기로 의견을 모았다. 그것은 황새의 우아함에 매료되어 만족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도자가 된 황새가 제일 먼저 한 일이 있었다. 그것은 개구리를 잡아먹는 일이었다.

 

옷을 다 입고 밖으로 나오는데 좀 전에 그 사람이 또 명함을 건네준다.


"방금 받았어요."


나도 모르게 불편한 감정이 섞여 나온다. 속으로 생각해본다. '아니, 멀쩡하게 생긴 사람이, 그냥 열심히 살 것이지, 이게 뭐하는 짓이야!'


태그:#국회의원예배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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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철 기자는 부산 샘터교회 원로목사. 부산 예수살기 대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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