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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하필, 당신들의 두 표를 보태셔야 했나요?

 

부모님이 나를 어떻게 키우셨는지 모르겠으나 나는 비교적 '말 잘 듣는 딸'이었다.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는 말이 무색하게 나는 '부모님에게 지는 자식'이었고, 24년의 세월 동안 기억에 남는 싸움은 없었다. 심지어는 '미운 네살' 적에, 지나가다 맘에 드는 게 있으면 드러누워서 조르는 게 아니라 "저거 내일 사줄 거지?" 하고 그냥 지나갔다고 한다. 그랬던가? 기억은 안 나지만 아무튼.

 

그런 내가 몇 주에 걸쳐 부모님과 '대판' 싸웠다. 이유는 부제에 밝혔다시피 '이명박 당선인' 때문. 온갖 '위장'들에 대해 설명하며 싸웠던 건 왜일까. '두 표'를 빼앗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이명박 후보가 싫어서도 아니었다. 다른 사람들에겐 '익명의 두 표'겠지만, 나에겐 '내가 닮은 분들의 표'였고, '그분들의 지문이 찍혀서 두 번 고이 접혀 있을 두 표'였기 때문이다. 내가 '존경하는 분들의 표'이기 때문이다. 유난히 많고 많았던 후보들 중에 하필 '2번에 도장이 찍힌 두 표'였기 대문이다.

 

'부모님에 대한 존경'이 위태로움을 느낄 때

 

2년 전, 동생 친구가 강아지를 맡겼다가 찾아가지 않아 우리 가족 팔자에 '딸'이 하나 더 생겼다. 엄마가 강아지를 가장 예뻐하고 강아지도 엄마를 가장 따른다. 어느 날, 엄마가 강아지를 아기 안듯이 꼬옥 껴안고 너무 예뻐서 어쩔줄 모르며 부들부들 떨고 계시는 모습을 보고 "나도 그렇게 안 안아줬지?" 하고 마음에 스친 한마디를 내뱉고 말았다. 엄마는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뭔 말을 그렇게 하냐!"며 머쓱해 하셨다. 우리 엄마 아빠는 원래 애정이 넘치는 사람은 아니었다. 

 

내 나이 때 엄마가 나를 낳았으니, 내가 어릴적엔 엄마 아빠도 '새내기 엄마 아빠'였을 것이고, 미흡한 점이 많았을 것이다. 엄마는 '종아리를 때리는 사람'이거나 '바가지를 긁는 사람'으로 기억에 남아 있고, 아빠는 '가끔 까칠한 수염을 부벼 나를 괴롭히는 사람' '일찍 나가서 늦게 들어오는 사람'으로 기억에 남아 있다.

 

그런데, 시간의 힘인지, 종교의 영향인지, 엄마 아빠가 변하셨다. 지금은 애정이 철철 넘치신다. 부모님의 마음 속에 세상에 대한 애정이 자라나기 시작하면서 내 마음에도 부모님에 대한 '존경'이 싹텄다.

 

두 아이가 서로 '이 바보야!' '넌 멍청이다!' '그럼 넌 똥개야!' 하며 싸우고 있었다. 엄마는 "어머, 너가 바보니?" 하고 스스럼 없이 둘 사이에 끼어드셨다. "왜 제가 바보예요?" 하는 아이들에게 엄마는, "그거('바보'란 말), 네 입에서 나왔잖아" 라고 한마디를 던지셨고 아이들은 동화의 한 장면처럼 즉시 말을 바꿔 서로에게 "이 천재야!"라고 외치며 놀기 시작했다.

 

아파트 담장에 숨어 담배를 피우던 고등학생 무리에게 거리낌 없이 다가가 "너희, 이렇게 잘 생긴 애들이 왜 숨어서 담배를 피우니?"하며 말을 거시고, 떡볶이를 사먹으라며 4000원을 쥐어주시는 분이 우리 엄마다.

 

"아빠, 군대를 뭐라고 생각해?"란 질문에, "군대는 뭐… 사람 죽이는 거 배우는 곳이지. 뻥쟁이 만드는 곳이야~ 거, 순… "라며 "군대 다녀온 후에 남자가 됐어요"라는 뭇 남자 연예인들의 '트랜스젠더 커밍아웃'과는 다른 말로 나의 존경을 얻었던 아빠. 선거 때가 되면 우편으로 배송된 공약집을 챙기시며 유심히 살펴보시던 아빠. 저랑 꽤 말도 통했잖아요, 네?

 

"시대에 필요한 사람이다"

 

부모님의 대답인 즉, "그 사람이 나쁜 사람이건 좋은 사람이건 이 시대에 필요한 사람"이라는 것이었다. 아…  '이 시대의 세종대왕'으로 박정희가 뽑히는(KBS가 '대왕 세종' 방영을 앞두고 실시한 온라인 투표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이 1위) 시대 말이죠? '집단 이기심'을 '시대의 요구'로 포장하는 시대 말이죠?

 

지금 대한민국이 경제적으로 그렇게 어려운 상황인가? 내가 알기론 대한민국은, 불과 백년 전에 그렇게 원하던 '부국강병'의 위치에 이미 와 있다. 강대국에게서 자연자원, 인적자원을 약탈당했듯 세계 곳곳의 자연자원과 인적자원을 가장 많이 소비하는 나라 중의 하나다. 인도네시아의 산림을 가장 많이 잘라오는 나라 중의 하나이고, 인구 10억 인도와 맞먹는 기름을 소비하는 나라이다.

 

'국익'이라는 명분하에 '이라크 파병'을 찬성한 우리들의 엄마, 아빠. '경제만 살리면 그만이지'란 농담이 판치는 시대. 그러면서도 일본의 독도발언과 중국의 고구려 역사발언에 대해서는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는 이중적 모습에 눈물이 난다. 일본과 중국도 '국익'을 위해 그러는 것이거늘, 말 그대로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인 걸까. 나의 위장전입과 탈세는 되고, 남의 범법과 탈세는 안 된다는 '당선인 어록'에 동질감과 친근함을 느끼는 걸까.

 

입을 다물까 말까

 

앞서 말한 "그거('바보'란 말), 네 입에서 나왔잖아"라는 엄마의 명대사를 나는 꽤 좋아했었지만, 그것 때문에 발목이 묶여 엄마랑 특히 더 싸웠다. 내가 하는 이명박 당선인 비판을 엄마는 '틀리다'고 하셨던 것. 내가 비판하고 욕할수록 내 입이 더러워진다는 말씀이셨다.(;;) '그럼 난 항상 입으로 꽃향기만 풍겨야 하나요' '국민들 입에서 악취나게 하는 대통령이 나쁜 거잖아요, 그러니까 아니라는 거잖아요'라고 항변하고 싶었지만 아직 하지 못했다. 맘 편하게 입을 그냥 다물고 싶지만, 다물어선 안된다는 걸 알기에 아직도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덧붙이는 글 | 올해로 25세, 철없는 기자의 경험담을 있는 그대로 썼습니다. '사는 이야기'이다보니 개인적인 사견이 듬뿍 담겨 있습니다. 여러분의 이유있는 찬성, 반대의견 귀담아 듣겠습니다. 


#이명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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