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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경 유니온 신학대학교 교수가 이번 협박 사건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 현경 교수 현경 유니온 신학대학교 교수가 이번 협박 사건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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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적인 신학을 펼친다는 뉴욕 맨하튼 유니온 신학대학교. 이 학교 최초의 동양인 종신교수인 현경 교수는 지난 2006년 크리스마스 연휴 뒤 끔찍한 전화 메시지를 받았다.

"제 수업을 들은 학생이라면서, 네가 존경하는 체게바라 남미 혁명가와 북에 가서 둘 다 목을 자르라는 아주 무서운 말을 남겼더라고요. 그리고는 여성에게는 그야말로 치욕적인 '멍청한 XX'(You stupid cunt)라고 했어요."

지난 4일, 뉴욕 맨하튼 유니온 신학대학교 교수연구실에서 기자와 만난 현경 교수는 당시 상황을 떠올리며 몸서리쳤다.

그는 지난 11년간 이 학교에서 여성신학과 평화, 종교간 대화 등 진보적인 주제로 강의를 해왔다. 특히 2006년에 학기 중 부시 행정부의 대북, 대 이슬람 정책의 잘못된 점에 대해 강의를 한 바 있다. 현경 교수는 당시 수업을 들은 학생 정도로만 생각하고 그냥 넘어 갔다.

이런 가운데 지난해 크리스마스엔 현경 교수 사무실 앞에 걸린 쿠바 혁명가 체게바라의 포스터에 엑스표시와 함께 체게바라 이마에 나치의 상징 문양이 그려진 것을 발견했다.

2005년 크리스마스 전후 두 차례나 자신의 집에 있는 조각상의 머리가 잘려 나간 경험까지 더하면 3년 연속으로 크리스마스 때마다 생명의 위협을 느낄만한 협박을 받은 것.

현경 교수, 크리스마스 때마다 협박 받아

재미 현경 교수가 재직 중인 유니온 신학대학교
▲ 뉴욕 맨하튼 유니온 신학대학교 재미 현경 교수가 재직 중인 유니온 신학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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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각상은 멕시코의 혁명 예술가로 유명한 디에고 리베라의 대표작 모조품이었다.

결국 다른 방식이긴 했지만 현경 교수가 진보적이고, 체게베라를 존경하고 있다는 등 그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의 행동이었을 가능성이 커졌다. 더 이상 우연이 아님을 느낀 현경 교수는 지난 4일 경찰에 신고했다. 물론 학교측에도 이 사실을 알렸다.

현경 교수는 사실 이번 역시 그냥 넘어가려 했지만 마음을 바꿨다. 가장 큰 이유는 길 건너에 위치한 컬럼비아대학에서도 비슷한 일이 계속 일어났기 때문.

"우리 학교 역사상 이런 일이 없었대요. 그런데 지난해 컬럼비아 대학에서도 흑인 여자 교수의 사무실 앞에 '누즈'(Noose)라고 흑인들을 교수형 시켰던 끈을 달아놨던 일이 있었어요. 또 유태인 교수의 사무실 앞에다가는 '나치' 표시를 해놓는 일도 벌어졌었어요."

현경 교수는 "미국 사회가 보수화되면서 이슬람 등 다른 문화나 인종에 대한 인종차별적 분위기가 진보적인 학풍의 컬럼비아나 유니온 신학대학의 젊은이들까지 망가뜨리고 있다"며 "이번 사건을 공식화해서 다시 재발하지 않도록 학생들에게도 알려야 할 것 같았다"고 심경 변화 이유를 밝혔다.

그는 이어 "내 안전도 걱정됐지만 더 슬펐던 것은 어떻게 우리 학교(유니온 신학대학교) 같이 진보적인 학교에서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었을까 가슴이 아팠다"고 안타까워했다.
이와 관련, 유니온 신학대학교 측은 재발을 막기 위해 범인이 밝혀지면 법적인 절차를 밟을 계획.

4일 만난 매리 맥나마라 유니온 신학대학교 부총장은 "우선 총장 명의로 전체 학생들에게 이번 사건에 대한 전체 공고가 나갔다"며 "더 많은 절차가 필요하지만 앞으로 현경 교수의 사무실과 집 앞에 CCTV를 설치하고, 경찰이 매 8시간마다 그의 안전을 위해 순찰을 돌 예정"이라고 밝혔다.

학교 측은 개강 뒤인 2월 이후 더 구체적인 대책을 마련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현경 교수는 동일인이든 아니든 만약 자수를 한다면 인도적인 차원에서 법적 책임까지 묻게 하고 싶지 않다는 입장이다.

진보 학풍 대학, 교수 상대 '증오 범죄' 잇따라
현경 교수가 자신의 연구실 옆에 붙어 있던 체게바라 사진에 낙서된 X 표시와 나치 상징 문양을 보며 설명하고 있다.
▲ 체게바라 사진을 보는 현경 교수 현경 교수가 자신의 연구실 옆에 붙어 있던 체게바라 사진에 낙서된 X 표시와 나치 상징 문양을 보며 설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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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0월, 컬럼비아 대학 티처스 칼리지 흑인 교수인 마돈나 콘스탄틴 교수의 연구실 앞에 '누즈'(흑인들을 교수형 시켰던 끈)가 발견돼 논란이 일었다.

이후 학생들은 흑인에 대한 명백한 인종차별적 '증오 범죄'라며 시위를 벌이는 등 한동안 학교 안팎을 시끄럽게 만들었다. 뉴욕타임즈, CNN 등 주류 언론에서도 이 사건에 대해 관심을 보인 바 있다. 비슷한 기간 한 유태인 교수의 연구실 앞에 '나치' 상징 문양(卍)이 그려져 있어 역시 논란을 일으켰다.

유니온 신학대학 측은 이번 현경 교수의 경우도 '증오 범죄'형 협박에 가깝다는 입장이다.

매리 맥나마라 유니온 신학대학교 부총장은 "학생들끼리 장난으로 상대방 물건 등에 낙서를 하는 경우는 많이 봐 왔다"며 "하지만 교수를 상대로 나치 상징을 그린다든지 엑스표시를 한다든지 하는 일은 심각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증오범죄'(Hate Crime)는 소수 인종이나 소수민족, 동성애자, 특정종교인 등 자신과 다른 사람 또는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층에게 이유 없는 증오심을 갖고 불특정한 상대에게 테러를 가하는 범죄행위를 일컫는 말. 나치주의자, 쿠클럭스클랜(KKK)등 백인우월주의자들의 유색인종에 대한 범죄 등이 실례.



태그:#현경 교수, #유니온 신학대학교, #증오 범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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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년 동안 한국과 미국서 기자생활을 한 뒤 지금은 제주에서 새 삶을 펼치고 있습니다. 어두움이 아닌 밝음이 세상을 살리는 유일한 길임을 실천하고 나누기 위해 하루 하루를 지내고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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