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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에 다문화(국제결혼, 외국인근로자, 새터민) 가정이 증가하고 있다. 하지만 사회에서 바라보는 따가운 시선 때문에 그들은 속앓이를 하고 있다. 제주특별자치도교육청에 따르면 현재 제주에 취학 중인 다문화 가정 자녀수는 145명.

 

그러나 새터민을 비롯한 다문화 가정들이 사실 상 신분을 밝히기를 꺼려해 교육청 관계자는 이보다 더 많을 수 있다고 밝혔다. 다문화 가정의 자녀들은 학교에 적응을 못하고 '자폐아'가 되거나 '왕따'를 당하는 등 고통을 겪는 경우도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따라서 새해를 맞아 다문화 가정이 겪고 있는 어려움을 들어 봤다. <기자 주>

"다실디아스맘입니다. 그럼 오늘 오후 3시에 뵙기로 해요."

 

다실이 엄마 오경애(52)씨가 고상한 목소리로 인터뷰를 흔쾌히 승낙했다. 제주도교육청의 협조로 다문화 가족(국제결혼, 외국인근로자, 새터민 가족)을 수소문 한 끝에 제주북초등학교 김태희 교사가 쓴 다문화 가족 사례 글에 소개된 다실이네 가족을 만날 수 있었다.

 

다실이네 가족은 흔히 말하는 국제결혼으로 탄생된 가족이다. 제주북초등학교 4학년인 다실디아스(11)양은 스페인 남자 호세디아스(64)씨와 한국 여자 오경애씨 사이에 태어난 혼혈아다. 하지만 다실이는 맑은 갈색 눈망울과 검은 머리의 영락없는 한국인이었다.

 

 

5일 오후 3시를 조금 넘어서 다실이네 가족을 만난 곳은 한라체육관. 국민생활체육 제주특별자치도 태권도연합회가 주최하는 전국 도장 대항 태권도 대회가 한창인 곳이었다. 다실이가 이 대회에서 겨루기 결승전까지 올라간 상태여서 다실이 엄마 오경애씨는 다소 놀라있었다.

 

"우리 딸이 이렇게 잘 할 줄 몰랐어요. 우선 저기 관중석에 앉아서 얘기하는 게 어떨까요?"

 

오경애씨와 호세디아스씨 그리고 딸 다실디아스 세 명과 함께 제주에서 사는 얘기를 들어 봤다.

 

태권도 7단 호세디아스씨 "제주에서 살다 제주에서 죽고 싶어요"
 
다실이가 이렇게 태권도를 잘 하는 것은 호세디아스씨 또한 태권도 7단인 고수이기 때문이다. 그는 기자와의 첫 대화에서 "제주가 너무 좋다. 제주에서 살고, 제주에서 죽고 싶다"고 말했다.

 

현재 국민생활체육 제주특별자치도 태권도연합회 홍보위원장을 맡고 있는 호세디아스씨는 스페인에서 군 생활을 할 때 복싱선수를 했었고, 한국 무술에 푹 빠져 택견, 궁중무술, 합기도 등 못하는 무술이 없단다. 그러나 호세디아스씨는 아직 한국말을 잘 못해 오경애씨의 통역으로 대화를 했다.

 

그가 태권도와 인연을 맺은 것은 스페인에서 신문기자로 일하던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는 한 신문사에서 정치문화부 기자를 겸했는데 스포츠에 관심이 많아 스포츠 취재를 하다가 30대 때 한국의 태권도 사범들이 스페인으로 대거 오면서 연을 맺게 됐다.

 

태권도의 매력에 빠진 그는 41세 때도 직접 태권도 대회에 뛰어 들 만큼 열정적이었다. 그러던 그는 1990년에 스페인에 기독교 선교사 일로 온 오경애씨를 만나게 됐고, 선교 활동을 도와주다 1991년 7월 스페인에서 결혼을 하게 됐다.

 

"외국남자와 한국여자가 결혼하면 한국에서 못 살았다"

 

결혼 후 1991년 말, 그들 부부는 한국 땅을 밟는다. 그러나 당시 우리나라 국제결혼법은 이상한 법을 적용하고 있었다. 호세디아스씨는 "당시 한국남자가 외국여자와 결혼하면 받아 줬지만 한국여자가 외국남자와 결혼하면 이민을 받아주지 않았다"며 힘들었던 당시를 회상하며 말했다.

 

"그때 우리는 너무 힘들었어요. 한국에서 살 수 있는 이민 비자를 주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는 3개월에 한 번 씩 가까운 일본이나 필리핀에 다녀왔어야 했죠. 우리는 돈도 많이 없었고, 모아둔 돈은 3개월에 한 번씩 외국으로 가면서 다 썼죠."

 

호세디아스씨와 오경애씨 사이에는 한국에서 낳은 아들 제주바울디아스(15)가 있다. 호세디아스씨는 "아들을 한국에서 낳았는데 여기서 살라는 서류 하나 주지 않았다"며 "예를 들어서 길거리에서 윤락녀들이 외국인 남성과의 관계로 아이를 낳았을 때 시청에 신청만 하면 살 수 있던데 우리는 그만큼 취급도 받지 못한 것"이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그래서 그는 "이것이 유교에서 나온 법 같아서 맞서 싸웠는데 국제인권위원회에 고발하고, 당시 한국의 김영삼 대통령하고 싸웠지만 결국 받아 주지 않아 1993년 네덜란드로 갈 수밖에 없었다"고 털어 놓았다.
 

당시 신문사 정치부 기자였던 호세디아스씨는 "전 세계의 사례를 조사하고 이같은 한국의 실태는 국제범죄행위라고 글을 쓰며 싸웠다"며 "결국 1995년에 김영삼 대통령 쪽에서 편지가 와서 허가한다고 하며 그때부터 외국인이 한국 여자와 결혼해도 한국에서 살 수 있게 됐다"고 밝혔다. 그래서 그들은 2005년 네덜란드에서 부산으로 오게 됐다.

 

"친구들 많고 좋은데 놀 데가 없어요"

 

오경애씨가 외항선원들을 상대로 선교 활동을 하던 터라 당시 제주에 인력이 부족하다는 얘기를 듣고 2005년 말 그들 가족은 제주로 향해 정착하게 된다. 1997년 네덜란드에서 태어나고 자란 다실이는 당시 8살로 제주북교 1학년으로 들어가게 됐다. 그러나 한국어를 거의 못했던 다실이는 학교 수업을 따라 갈 수 없었다.

 

한글 받아쓰기는 물론, 수업 자체가 전혀 이해가 되지 않아 집중을 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성적 또한 좋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다행히 다실이는 초등학교 1학년이라 아직 시간이 많아 한글을 공부할 수 있었고, 이제는 한국말도 잘하고 3학년 때는 부반장을 맡는 등 활발해졌다.

 

다실이는 "처음 제주에 왔을 때는 낯설었는데 계속 지내다 보니깐 제가 외국인이라는 것을 알고 저한테 궁금한 것도 물어보고 하면서 점점 친해졌다"며 "지금은 많이 익숙해져서 생활이 네덜란드 보다 훨씬 편하고, 학원도 좋고, 시설도 좋고 또 학생들도 많으니까 친구도 많고 좋다"고 말했다. 하지만 다실이는 친구들은 많지만 놀 데가 없다고 한다.

 

"네덜란드 하고 비교해서 여기는 학교가 너무 썰렁해요. 열심히 공부는 시키는데 공부를 너무 조용히 하고, 주변에 놀 데가 별로 없어요."

 

그래도 이만큼 한국에 적응할 수 있었던 것은 다실이의 뛰어난 적응력 덕분이다. 다실이는 서울의 모 방송국에서 모델과 연기자 수업도 받을 정도로 한국 생활에 아주 잘 적응했다고 한다. 그러나 제주에 온 대부분의 외국인 자녀들은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자폐아'가 되거나 '왕따'를 당하기 일쑤라고 한다.

     

"한국말 못해서 바보되고 왕따 되면 되나요"

 

제주도가 제주국제자유도시, 제주특별자치도라고 홍보하지만 정작 외국인과 그 아이들을 위한 한국어 교육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지난 4일 제주영어교육도시 건설과 관련해 정부와 제주특별자치도, 제주특별자치도교육청이 업무협약을 체결했지만 이는 한국인의 영어교육에 중점은 둔 것이지 외국인의 한국어 교육에 중점을 둔 것은 아니다. 다문화 가정의 부모와 자녀들에 대한 체계적인 관리와 한국어 교육이 이뤄지지 않아 결국 인재를 내쫓고 있다.

 

오경애씨의 아들 제주바울디아스(15)군의 경우가 그렇다. 오경애씨와 호세디아스씨는 제주를 좋아해서 아들 이름도 제주바울디아스라고 짓고, 평소 호세디아스씨는 아들을 '제주'라고 부른다고 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제주바울디아스군은 가족과 떨어져 경상남도의 한 대안학교에서 공부하고 있다. 제주바울디아스군은 네덜란드어, 스페인어, 한국어, 영어 4개 국어를 할 정도로 아주 총명한 아이지만 제주시 한 중학교를 다니다가 학업을 따라갈 수가 없어 적응하지 못해 결국 대안학교로 갔다.

 

다행히 그 대안학교는 외국에서 살다 온 아이들과 한국학교에서 적응 못하는 아이들을 가르치는 곳으로 거기는 아침에만 공부하고 오후에는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살려서 가르친다고 한다.

 

오경애씨는 아들을 멀리 보내 아쉽지만 그 곳에서 잘 생활하고 있어 만족하고 있다. 그러나 제주에서의 교육 문제에 대해서는 강하게 비판했다. 오씨는 "외국에서 온 아이들이 말을 못하니까 바보처럼 되고 있다"며 "말을 못해서 진도를 못 따라가게 되는데 그렇다고 다 바보로 여기고 그 아이들이 왕따를 당하게 되면 문제가 있는 게 아니냐"며 제주의 현실을 꼬집었다.

 

"제주도에 외국인들이 오며 그 부모의 아이들도 온단 말이에요. 그런데 다 한국 교육 시스템 적응에 실패하고 인터넷으로 '홈 스터디' 하다가 인터넷에 빠져서 친구도 못 사귀고 자폐아가 되는 일이 아주 많아요. 몰라서 그렇지."

 

외국인 아이들에게 제주의 교육환경은 그만큼 열악하다. 그래서 오씨는 국제자유도시라고 외치는 제주에도 외국인을 위한 그리고 한국학교에 적응하지 못하는 아이들을 위한 대안학교가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오씨는 "한 학교 안에 대안학교 식으로 반을 만들었으면 좋겠다"며 "외국인뿐만 아니라 학교 공부에 시달리는 제주의 아이들도 대안학교에서 하고 싶은 공부도 하고, 정말 그런 아이들을 돕고 싶다"고 간절한 소망을 밝혔다.

 

그러면서 "제주의 학교에서 전부 이런 것 못하더라도 기껏해야 제주도 끝에서 끝으로 가는 거 한 시간 밖에 안 걸릴 테니까 멀리라도 만들어졌으면 좋겠다"며 제주 교육에 당장 시급한 것이 무엇인지를 지적했다.

 

그는 또 "일하느라 공부 제대로 못하는 외국 엄마들 한국어 마음 놓고 공부할 수 있도록 했으면 좋겠다"며 "하지만 사실 한국 분들이 한국 방식으로 한글을 가르치는 데 그러면 안 되고, 외국인들에게 맞는 눈높이에 맞는 공부 방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어 가르치는 것을 봤었는데 한국인인 저도 어려워서 못할 정도로 가르치더라"며 "영어도 너무 어렵게 시작하면 중간에 그만두는 데 이를 한국어를 공부하러 온 대학생들에게 가르치듯 하면 안 된다"고 주장했다.

 

오씨는 "외국에서 온 사람들을 한국어를 가르치는 모임이 여기저기 있다고는 들었는데 활성화가 잘 되고 소문이 잘 났으면 좋겠다"며 "말을 할 수 있어야 사회 돌아가는 것 알 수 있는 데 그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말했다.

 

오씨는 또"우리 남편 같은 경우에 나이가 많아서 공부를 좀 힘들어 하는 데 한국어 공부가 활성화 됐으면 좋겠다"며 "외국인들이 한국에 와서 적응을 하지 못하는 것은 한국어를 가르쳐 주는 시스템이 없다는 것"이라고 외국인을 위한 한국어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제주는 세상에서 가장 완벽한 섬이에요. 파라다이스를 지켜주세요"

 

"나는 여기서 나지 않았지만 나는 한국 사람입니다. 나의 마음은 항상 한국에 있기 때문이예요."

 

한국 그리고 제주를 사랑하는 호세디아스씨, 제주의 교육여건에는 문제가 있고 아직 국제자유도시로서 갖추어야 할 것은 많지만 자연환경은 세계 최고라고 자랑한다.

 

호세디아스씨는 "치안이 잘 되고 길거리도 깨끗하고 공기도 너무 좋고, 사람들 정이 많다"며 제주를 완벽한 섬이라고 홍보하는 제주홍보대사다.

 

"여기는 세상에서 완벽한 섬이라고 생각해요. 어떤 나라에 가든지 부족한 게 있잖아요. 여기는 물, 바다, 산, 사람, 병원 등 사람들이 살기에는 파라다이스예요."

 

호세디아스씨가 친구들과 통화하는 것을 가끔 듣는다는 오정애씨는 "자기 친구들한테 전화하면서 아직도 문을 열어 놓고 다니는 이런 나라 봤니. 너무 멋진 곳이다. 특히 우리가 살고 있는 조천읍 선흘리에는 산이 앞에 있는데 노루가 많다고 친구들에게 자랑한다"고 말했다.

 

특히 그는 "한국문화가 계속 지켜졌으면 좋겠고 미국과 같은 외국 문화와 섞이지 않았으면 한다"며 "한국은 지금까지는 가족을 아주 소중히 여기고 있는 데 미국이나 유럽은 돈 밖에 몰라 자기라는 정체성을 잃어버렸다"고 말했다.

 

스페인의 카나리아 섬에서 자란 호세디아스씨는 "카나리아 섬도 제주와 똑같았다"며 "그러나 1996년부터 외국인들이 많이 오기 시작했고 그들은 돈과 범죄까지 가져 왔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제 카나리아 섬의 정치도 범죄조직이 장악했다"며 "외국인들이 돈과 호텔, 공장을 갖고 있어서 본토 사람들 보다 더 힘이 세다"고 말했다.

 

호세디아스씨는 "좋은 외국인은 놓치지 말고 잘 잡고, 나쁜 외국인은 멀리해야 한다"며 "내가 이 얘기를 하는 이유는 제주도가 자치도가 됐다고 외국인들이 투자유치를 하는데 정말 조심하라는 얘기를 하고 싶다"고 밝히고, "현재 카나리아 섬에서는 외국인들은 좋은 직업을 갖고 본토인에게 힘든 일을 시키고 있다"고 얘기했다.

 

이는 자신의 고향에서 겪은 일을 제2의 고향 '제주'에서는 겪지 않았으면 하는 호세디이스씨의 솔직한 바람이다.

 

오경애씨에게 새해 소망을 물으니 "자식들이 잘 되는 게 엄마의 소망이죠. 우리 아들이 검정고시를 잘 치러서 제주외국어고등학교 스페인어 쪽으로 왔으면 하는 게 큰 소망"이라며 "다실이도 앞으로 계속 잘 됐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말했다.

 

한편 이날 다실디아스양은 결승전에서 2:1로 우승해 결국 금메달을 거머줬다. 같은 눈, 같은 머리, 같은 피부색을 갖고 있지 않다하더라도 그들은 우리와 똑같은 제주도민이며 한국인이다.

 

다실이가 금메달을 따듯 그들은 우리 사회에서 힘겨우면서도 조금씩 목표를 향해 달리고 있다. 어쩌면 우리보다 더 제주를 사랑하고 있을 그들과 우리 제주사회가 어떻게 손을 맞잡고 함께 한 걸음씩 나아갈 지 구체적인 고민이 필요할 때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미디어제주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다문화 가정, #국제결혼, #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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