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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천들은 자신의 바람을 기도를 통해 응답받길 원한다. 기도하면 모든 게 응답받는 성경의 말씀을 강박적으로 믿고 있는 까닭이다. 더 나아가 구하지 않는 것도 응답받는다고 자랑하는 이들도 많다. 이는 맞는 말이기도 하지만, 한 편으로 틀린 말이다.

 

그것이 맞는다는 것은 절대자이신 하나님의 뜻을 좇아 기도하면 당사자의 바람과 다를지라도 얼마든지 응답해 주기 때문이요, 반대로 당사자가 원한다고 해서 아무 것이나 무턱대고 응답해 주는 하나님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구하지 않아도 때로는 응답해 주지만 그에게 필요하지 않는 것은 아무리 구해도 주지 않는다.

 

정용석의 <구하지 않은 것까지 응답받는 기도>(홍성사)는 그러한 기도에 대한 깊이와 성찰을 하게 한다. 이른바 한국 개신교 신자들을 위한 기도 지침서라 해도 손색이 없을 것이다. 기도하면 모든 병과 문제가 만사형통한다고 맹신적으로 믿는 어리석음을 바로 잡고 있다.

 

“기도를 알라딘의 요술램프나 전래동화에 나오는 도깨비방망이처럼, 소원하는 바를 빌기면 하면 언제든지 이루어주는 자동기계로 여기는 오해를 지적하기 위해서입니다. 기도에 대한 오해를 가진 채 기도를 하게 되면, 아무리 기도를 많이 해도 신앙은 자라지 않습니다.”(20쪽)

 

사실 한국 개신교 신자들만큼 뜨겁고 열렬하게 기도하는 사람들도 드물 것이다. 주일낮밤 예배 시간과 수요일 예배 시간, 금요심야기도회 시간, 구역예배시간, 그리고 매일 하는 새벽기도회 시간 등을 좇아 기도한다. 그야말로 열심 있는 신자들은 틈만 나면 기도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으로 만족하지 않는 신자들도 많다. 교회 내에서 아무리 기도해도 응답이 없다며 산이나 기도원을 좇아가는 게 그것이다. 이를테면 특정한 산의 기도원 원장이 기도를 해 주거나, 능력을 받은 기도자에게 기도를 받으면 자신의 문제나 병이 즉각적으로 응답받는다는 것이다.

 

지성이면 감천이라며 죽기 살기로 매달리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 강청기도라는 게 유행처럼 번진 이유가 그것이다. 아무리 어려운 문제와 질병도 하나님께 때를 쓰고 매달리면 기어코 응답을 받는다는 것이다. 그 까닭에 심한 경우엔 밥을 굶어가면서까지 생떼를 쓰지 않던가. 그로 인해 가정적인 불화가 겹치는 일들을 볼 수 있다.

 

그러나 그런 기도는 결코 바람직하지 않는 일이다. 얼핏 보면 누구보다도 열심히 있는 것 같고, 하나님의 은총을 사모하는 것 같다. 하지만 그것은 하나님의 뜻이나 관계보다는 오로지 자기 욕망에만 초점을 맞추는 행위다. 기도를 통해 자기를 비우거나 자기의 방향을 개선하려는 의지가 전혀 없는 것이다. 그런 기도는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기도가 아니기 때문이다.
 
기도는 자신의 자리에 하나님을 모시는 시간이다. 기도는 자기 욕망의 통보나 강화가 아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는 시간이다. 기도는 문제 해결이나 응답이라는 외적인 것에 치중하는 게 아니다. 언제나 하나님의 본질에 다가서는 시간이다.

 

진정으로 하나님께 기도하는 크리스천이라면 자신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믿음으로 받아들일 줄 알아야 한다. 절대자이신 하나님을 신실하게 신뢰하는 신앙인이라면 때로 닥쳐오는 실패와 고통과 질병까지도 다 하나님의 섭리하에 있는 일임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그런 수용의 자세를 지닌 기도자야말로 진정으로 깨어있는 기도자일 것이다.

 

“기도는 평소의 흐름과 다른 흐름에 들어가는 일입니다. 자신의 상태를 계속 유지하려는 관성의 법칙을 깨고, 다른 흐름으로 역행하는 것입니다. 인간적인 감정과 생각을 버리고, 신의 말씀과 신의 성품으로 자기를 조명하고 그에 맞추어 살기 위해 자신에게 압력을 가하는 일입니다.”(161쪽)

 

오늘날 한국 개신교인들은 세계 어느 나라 어떤 크리스천들보다 더 뜨겁고 열정적으로 기도한다. 하지만 진정으로 깨어 있는 자의 기도, 진정으로 열려 있는 자의 기도란 바로 위와 같은 사람의 기도일 것이다.

 

물고기가 아무리 조그맣다 할지라도 생명이 있다면 물의 흐름을 역행해 나아간다. 그렇듯 한국 개신교인들도 세상 사람들이 추구하는 온갖 자기 탐욕과 욕망의 흐름과는 달리 진정으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근원적인 뜻을 묻고, 수용하고, 나아가는 기도를 했으면 한다.

 

그때 비로소 인생의 근원되시는 하나님께서 그가 구하지 않는 것까지도 미리 아시고 응답해 주지 않으시겠는가?


구하지 않은 것까지 응답받는 기도

정요석 지음, 홍성사(2004)


태그:#기도응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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