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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눈은 '자라서 꽃이 필 눈'이란다.
▲ 단풍나무의 꽃눈 꽃눈은 '자라서 꽃이 필 눈'이란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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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겨울이 깊다.
가을이 지난 후 겨울 숲은 나목들이 가득한 텅 빈 숲이었다.
겨울만큼 숲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계절은 없을 것이다. 그렇게 텅 빈 숲이기에 봄과 여름과 가을을 채우고 또 채워 충만함으로 나아갈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충만함에 머물지 않고 또 다시 비움, 그것이 텅 빈 충만의 묘미다.

올 겨울은 유난히도 봄이 그립다.
마음이 추워서 더더욱 그런지도 모르겠다.
헛헛하다.
경제제일주의 세상이 되어 백미러도 없는 불도저가 꽃눈을 막 피운 나뭇가지가 꽃을 피우기도 전에 마구 파헤치는 것만 같아 헛헛하다.

지난 해 이맘 때, 동해에서 기적처럼 한 겨울에 피어난 노란 복수초를 만났다.
봄이 다 온 것만 같았는데 그 해 봄은 유난히도 꽃샘추위가 많았던 것으로 기억이 된다. 꽃이 피었다해서 가보면 꽃샘추위에 얼어터지고, 고개를 숙인 것들을 더 많이 만났다. 그래도 기어이 봄은 왔다.

봄은 기다리는 사람에게만 오는 것이 아니다.
햇살이 선한 사람에게만 비추는 것이 아니듯 봄은 누구에게나 온다.

봄은 이렇게 작은 것으로부터 오는 것이다.
▲ 산수유의 꽃눈 봄은 이렇게 작은 것으로부터 오는 것이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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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눈을 보면서 사계의 묘미와 역사의 흐름을 본다.

'그래, 봄은 누구에게나 온다. 오는 봄을 되돌릴 겨울은 없다. 봄은 한 번 오면 거침없이 달려온다. 그 봄은 그러나 너무 작고 조용하게 시작된다.'

어릴 적 봄을 미리 맛보고 싶어 산에 올라가 꽃눈이 올라온 개나리나 진달래 가지를 꺾어 화병에 꽂아두곤 했다. 따뜻한 기운에 서둘러 피어난 노란 개나리와 연분홍 진달래를 보면서 봄을 미리 맛보았다. 아직도 비닐을 친 유리창에 성에가 뿌옇게 피어나는데도 꽃이 피어나다니 신기하기만 했다. 그렇게 미리 봄을 맛보며 봄을 기다렸다.

미리보는 사람을 예언자라고 한다.
예언자는 먼저 본 것을 그대로 말하거나 삶으로 보여주는 사람이다.
그 말이나 행동으로 인해 자신에게 어떤 위험이 닥쳐온다고 할지라도 말하지 않을 수 없어 말하는 사람이며, 행동하는 사람이다.

꽃눈을 보면서 '통일은 됐어'라고 말하며 예언자적인 삶을 살아갔던 문익한 목사를 떠올렸다. 그는 통일을 미리 맛보았고, 보았다. 통일은 오는 봄을 되돌릴 수 없는 것처럼 오게 되어있는 것이다. 그런데 봄을 시샘하는 꽃샘추위처럼 통일을 시샘하는 이들이 '통일아, 물렀거라, 경제가 간다!'소리를 치며 달려온다. 이게 무슨 코미디 같은 역사란 말인가!

지난 해의 흔적을 떨쳐버리지 못했어도 꽃눈은 피어오른다.
▲ 진달래의 꽃눈 지난 해의 흔적을 떨쳐버리지 못했어도 꽃눈은 피어오른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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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1월 18일, 늦봄은 하나님 품으로 돌아가셨다.
조금만 더 우리 곁에 함께 있어주었더라면 하는 미련을 툭툭 털 듯 그렇게 갑자기 우리의 곁을 떠났다. 마치 어느 날 겨울이 종말을 고하고 "봄이 왔어, 봄!"이라고 누구나 말할 수 있는 봄날이 오듯 그렇게 그는 갔다.

아직도 겨울이 깊은데, 그 깊은 겨울 속에서도 꽃눈은 쉬지 않고 봄을 꿈꾸며 그 꿈을 현실로 만들어가고 있다. 아마 그도 알고 있을 것이다. 이렇게 꿈을 꾸며 봄을 만들어갈 때 꽃샘추위가 닥쳐올 것이라는 것을. 그러나 또 알고 있을 것이다. 어떤 꽃샘추위라도 자신의 그 작고 여린 꽃눈을 얼어터지게 하지 못할 것이라는 것도.

희망, 그래서 희망이다.
작고 여린 꽃눈을 보면서 희망의 편린을 본다.


태그:#꽃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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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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