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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서른아홉 신부

 

동갑내기 노총각, 그 사람을 처음 만났던 날이 꿈결인 듯 떠오릅니다. 목사님의 소개를 받고 혼자만 가만히 숨어서 관찰(?)해보겠다고 그의 교회에 찾아갔던 날, 환하고 선한 얼굴로 교인들과 얘기를 나누는 그 사람의 웃는 모습을 보자마자 단번에 혼자 결정을 내렸습니다.

 

'저 남자는 하나님이 정해 준 내 배필이야.'

 

결혼하고 그 이듬해 시어머님께서 중풍으로 쓰러지시고 치매까지 왔습니다. 울산에 입원해 계신 시어머님을 아랫동서와 둘이 교대로 간병했습니다. 어머님 간병을 하고 서울로 올라오면 신랑이 늘 사골국을 끓여놓고 기다렸습니다.

 

"식기 전에 어서 먹어!"

 

사골이 우러나질 않아 멀건 국물에 기름만 둥둥 떠다녔지만 신랑이 사랑을 듬뿍 넣어 끓인 국이기에 둘이 이마를 맞대고 오순도순 맛나게 먹고 밤이 새도록 이야길 나누곤 했습니다.

 

아기의 잉태

 

그 다음 해 하나님의 은총으로 아기가 잉태되었습니다. 그리고 바로 다음 달 어머님께서 돌아가셨습니다. 늦은 나이에 결혼한 탓에 아기가 태어나면 늙은 부모로 인해 고생만 할 것만 같아서 애초에 아이에 대한 욕심은 버렸지만, 아기가 잉태하자 이루 말할 수 없는 기쁨이 용솟음 치듯 밀려왔습니다.

 

마흔 한 살. 아기엄마가 되기엔 너무도 늦은 나이였지만 참으로 행복했습니다. 다만, 사랑하는 어머님께 아기 소식을 알려드릴 수 없는 것이 못내 아쉬웠습니다.

 

예정일이 되어 병원에 입원하던 날. 무슨 일이었던지 우리 둘이는 그만 아침부터 크게 다투고 말았습니다. 둘이 삐쳐서 암말 없이 남편은 출근을 하고 저는 혼자서 병원엘 갔습니다.

 

'흥, 그까짓 거 나 혼자서 얼마든지 할 수 있어!'

 

호기를 부리며 혼자 병원엘 갔지만 의아한 눈길로 혼자 왔느냐고 묻는 간호사와 의사 선생님 앞에서 그만 눈물을 보이고 말았습니다. 그래도 오기를 부리면서 혼자 할 수 있다고 했더니 남편의 동의서가 없으면 수술을 못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동의서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동생을 오라고 해서 동의서에 서명을 시키려 했지만 반드시 남편이 서명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하는 수 없이 남편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남편은 숨이 턱에 차서 병원으로 달려왔습니다. 아침에 둘이 꽁해서 헤어졌던 일 따윈 까맣게 잊은 얼굴로. 친정 어머니께서 산후조리를 해주려고 아침에 집을 나서다 다리를 다쳐 운신을 못하고 누우셨다는 연락을 방금 받았다며 자기가 어머니 일을 대신하려고 회사에 휴가를 냈다고 했습니다.

 

남편을 보자 혼자 할 수 있다고 큰소리치던 자신감은 한순간에 사라지고 아기가 정상이 아니면 어쩌나, 마취에서 깨어나지 못하면 어쩌나 하는 온갖 두려움이 폭풍처럼 밀려와 견딜수가 없었습니다.

 

겁에 잔뜩 질려 수술실로 들어가면서 그때야 비로소 너무도 절실하게 깨달았습니다. 험하고 외로운 이 세상 서로 의지하고 도우며 살라고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나의 반쪽, 나의 남편. 그가 없다면 무엇인들 기뻤겠으며 그가 있다면 무엇인들 두렵겠는가 하고.

 

그 시절 우리는 너무도 가난해서 제왕절개 수술비가 가장 저렴한 시립병원으로 갔습니다. 병원에는 그날 아기 낳은 산모가 딱 한 명 있었는데 그나마도 내가 아기를 낳자 퇴원을 하는 바람에 산부인과 병동에 산모도 나 혼자, 아기도 우리 아기 혼자뿐이었습니다.

 

그리하여 저는 2인용 넓은 병실에서 왕비처럼 호사를 누리고, 우리 아기는 그 널찍한 아기방을 혼자 차지하고, 남편은 남편대로 비어 있는 침대에서 맘껏 쉬었습니다.

 

여느 병원이었더라면 산모 여럿이 있는 병실에서 남편이 간병하기가 여간 불편하지 않았을 터인데 가난했기에 누릴 수 있는 호사였던 것 같습니다.

 

1995년 그 아름다웠던 10월. 시립병원의 덕지덕지 낙서로 얼룩져 있던 낡은 벽지와 뿌옇게 먼지 낀 유리창 너머 곱게 물들어 가든 단풍잎과 창 밖에 구구구 날아와 앉아서 노닐던 비둘기들, 그리고 주특기인 사골국을 끓여 품에 안고 와 먹여주던 남편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보금자리로 돌아와서

 

강보에 싸안은 아기와 함께 우리의 보금자리로 돌아와서 그동안 병실에서 베풀어 준 남편의 정성이 얼마나 감사한지 남편을 임금님처럼 받들어 모셨습니다. 새벽에 일찍 일어나 혼자 밥상을 차리고 남편이 퇴근해 오면 피곤할까봐 혼자서 아기 목욕을 시키고 남편이 잠을 설칠까 봐 딴 방에서 뜬 눈으로 아기를 돌보고….

 

그렇게 지극정성으로 남편을 위한답시고 늙은 산모가 정신없이 무리를 하는 바람에 그만 발목이 아파 걸음도 제대로 못 걷고 손목이 아파 걸레질도 못하고 온몸의 뼈마디가 아파 돌아눕지도 못하는 심각한 지경에 이르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그 또한 얼마 지나지 않아 깨끗이 다 나았습니다. 정성들여 끓여 준 내 남편표 사골국 덕분으로.

 

우리 딸 유빈이를 볼 때마다, 철없는 아내를 탓하지 않고 묵묵히 산후조리를 해준 남편의 정성과 사랑이 아기의 몸과 마음 속에 알알이 보석처럼 박혀 있는 듯 느껴집니다.

덧붙이는 글 | <산후조리 제대로 하셨습니까?> 응모글


태그:#유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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