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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살 적에 은진미륵과 개태사의 솥, 그리고 미내다리를 보았느냐?"

논산에는 다른 지역에서는 보기 힘든 유난히도 큰 3개의 문화재가 있다. 하나는 관촉사에 있는 은진미륵이요, 또 다른 하나는 개태사에 있는 커다란 철확, 즉 철솥이다. 그리고 또 하나는 강경에 있는 미내다리이다.

논산의 전설에 의하면, 사람이 죽어 저승에 가면, 저승의 염라대왕이 이렇게 묻는단다. “네가 살 적에 은진미륵과 개태사의 솥, 그리고 미내다리를 보았느냐?”라고 말이다. 그만큼 논산사람들이 자부할 만한 문화재로서, 그 가치는 높다 하겠다.

어느 하늘이 유난히 높은 가을날 이 미내다리를 찾아 홀로이 강경으로 왔다. 강경은 젓갈로 유명한 포구지만, 지금은 그 예전의 자취를 찾기는 쉽지 않다. 다만 강경 읍내에 널려 있는 여러 젓갈판매장을 보면서 백 년 전에 이곳을 들락날락거리던 상인들의 모습을 상상할 뿐이다.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가 강경천과 잘 어울린다.
▲ 강경천.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가 강경천과 잘 어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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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내다리는 강경에서 논산으로 가는 길목에서 옆으로 샌 길을 쭉 들어가면 만날 수 있다. 금강의 지류인 강경천을 따라 천천히 발걸음을 옮겨 걸어 나가는데, 수줍게 핀 코스모스와 싱그러운 바람에 살짝 흔들리는 갈대가 길손을 반겨준다. 내가 이곳을 찾은 땐, 아직 가을이 대지를 살짝 적시고 있었다. 유난히도 좋은 날씨 덕분에 따사로운 햇볕을 받으며 걸어간다는 것이 이토록 기분 좋은 일인지는 그동안은 미처 모르고 있었다.

자연에 취해 힘들다는 생각도 안하고 걸어가다보니 멀리서 무엇인가가 보인다. 가까이 가서 보니 돌다리 하나인데, 물을 사이에 두고 건널 수 있게 되어 있는 게 아닌, 지금은 다리로서의 역할을 할 수 없도록 그냥 강 옆에 자리 잡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 그 옆에는 무너진 폐교(廢橋) 하나가 약간 스산한 분위기로 다리만 슬쩍 보이고 있다.

미내다리를 보러 한걸음 다가섰을 때, 순간 발아래에서 무엇인가 이상한 느낌이 들어 그대로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뱀 한 마리가 흐물흐물 기어가기에 살짝 깜짝 놀라며, 그 모습을 카메라로 잡으려고 했지만, 그 잽싼 모습에 결국 실패하게 되었다. 갑자기 웬 뱀이 여기에서 나오는 거야라며 혼자 중얼거리면서 미내다리와 관련된 전설이 쓰인 안내판을 바라 보았다.

미내다리에 얽힌 전설 한토막

예전엔 강경천이 아래에 흐르고 그 사이를 연결하는 서민들의 요긴한 다리였지만, 지금은 다리가 다리로서의 역할을 다하지 못한다.(충청남도유형문화재 제 11호)
▲ 미내다리. 예전엔 강경천이 아래에 흐르고 그 사이를 연결하는 서민들의 요긴한 다리였지만, 지금은 다리가 다리로서의 역할을 다하지 못한다.(충청남도유형문화재 제 1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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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미내다리 부근의 개울에 다리가 없어 늘 아쉬움을 느끼던 이곳의 마을 사람들이 돈을 걷어 두 마을 청년에게 다리를 놓게 시켰다고 한다. 다리를 다 놓고 보니 경비로 쓰고 남은 엽전이 약간 남아, 이를 어떻게 처리할까 고심하던 두 청년은 나중에 다리를 보수할 때 쓰기로 하고 남은 엽전을 모두 다리 밑에 묻어두었다고 한다.

얼마 후 다리를 놓았던 두 청년 중 한 사람이 우연히 병을 얻어 자리에 눕게 되었다. 좋다는 약을 다 써보았지만 병은 나을 기미를 보이지 않고 점점 심해졌다. 그러자 그의 다른 친구가 전에 묻어 두었던 엽전이 있음을 생각하고는 이것을 파내 친구의 병 치료에 쓰려고 다리 밑을 파 보았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아무리 땅을 파도 엽전이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그 사이에 병든 친구는 병세가 더욱 위중해져만 갔고,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구렁이로 변했다. 그리고 집을 나온 구렁이는 미내다리 밑으로 스스로 들어가 흔적을 감추고 말았다.

이로부터 이상하게 이 다리는 점점 토사에 묻히게 되고 통행하는 사람들도 적어졌다. 그러고서 다시 상당한 세월이 지나게 되면서 미내다리는 거의 폐교 지경에 이르게 되었고, 이에 일부 주민들은 다리돌을 마음대로 빼다가 집으로 가져가려고까지 했다. 그러자 그 순간 갑자기 하늘에서 검은 구름이 몰려들고 천둥이 치고, 이에 겁에 질린 주민들이 다시 돌을 갖다놓으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천둥이 그치는 것이었다.

이로부터 미내다리 돌은 구렁이돌이라 하여 누구든 함부로 손을 대거나 훼손하지 않는다고 한다. 또한 정월 보름날 이 다리를 자기 나이만큼 왕래하면 그 해의 액운이 소멸된다고 하고, 추석날 이 다리를 일곱 번 왕래하면 행운이 온다고 믿는다.

미내다리 전설을 생각해보니 내가 만났던 뱀이 바로 그 구렁이가 아닌가 싶다. 몇백년 구렁이라고 하기엔 작디 작았지만 간만에 온 길손이 반가워서 잠깐 얼굴을 내비치다가 이내 부끄러워 풀속으로 사르르 사라진 게 아닐까?

미내다리는 그 모습이 흡사 무지개 3개가 이어진 것과 같다. 이렇게 곡선으로 아름답게 건축한 다리를 홍예교(虹霓橋)라고 부른다. 대표적인 홍예교는 불국사의 청운교, 백운교와 선암사 앞의 승선교, 그리고 수원화성의 화홍문이 있다고 한다. 이러한 홍예교는 구조적으로도 안정되고, 또한 그 모습도 아름답기 때문에 예로부터 널리 이용되었다고 한다.

이러한 홍예교는 주로 조선시대의 중반이라고 할 수 있는 15~18세기에 지어졌다고 한다. 비교적 짧은 시기이기에 형태상으로 분류하기엔 어렵지만, 그 목적은 크게 궁전, 사찰, 성곽, 일반교량으로 나뉘어진다. 이 중에서 미내다리는 일반교량의 대표적인 것으로서, 일반인들의 자신들의 편의를 위해 만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강경 사람들에게 오랜 사랑을 받았던 것이고, 그 늠름한 자태가 아직도 남을 수 있었던 것이다.

논산의 3대 명물이라고 할 수 있는 은진미륵, 개태사 철확 등과 비교해서 이러한 점에서 미내다리는 더 서민적이라고 하겠다. 하지만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그 투박한 서민의 이미지보단 섬세하고 세심한, 그리고 부드러운 서민들의 마음을 그대로 표현한 것과 같은 느낌으로 다가온다.

다리이지만 더는 다리가 아니도다

다만 아쉬운 점은 이러한 미내다리는 더는 다리 역할을 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강경천이 홍수로 불어난다고 하더라도 굳이 미내다리를 건널 필요도 없을 뿐더러 강경천과 약간 떨어져 있어 육지 내에서 육지와 육지를 연결하고 있으니, 꼭 외로운 섬 모양이다.

문화재를 안전하게 보존하는 것도 좋다. 하지만, 문화재의 보존은, 그 문화재의 역할을 그대로 할 수 있게 해주고, 그게 안전에 이상에 없는 한은 더 그러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튼튼함에도 불구하고 그냥 문화재이기 때문에 박제되어 한쪽에 쓸쓸이 서 있으니, 그러한 점에서 위험하니 미내다리 위로 건너가지 말라는 친절한 안내판은 약간 얄밉게 느껴진다.

다리가 다리로서의 역할을 할 수 없는 것은 비단 미내다리 뿐만은 아니다. 미내다리 옆의 한 다리도 이젠 아무런 역할을 할 수 없는 흉물일 뿐이다. 그런다고 미내다리처럼 박제되는 영광도 못 받을...
▲ 미내다리 옆 폐교. 다리가 다리로서의 역할을 할 수 없는 것은 비단 미내다리 뿐만은 아니다. 미내다리 옆의 한 다리도 이젠 아무런 역할을 할 수 없는 흉물일 뿐이다. 그런다고 미내다리처럼 박제되는 영광도 못 받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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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내다리는 무엇을 잇기 위해 이렇게 우두커니 서 있는 것일까? 이젠 미내다리도 세월을 생각하고 바라보면서 쓸쓸히 서 있는 것만 같다. 미내다리의 역할을 대신하던 한 다리도 그 역할을 다해 흉물로 자리잡고 있다. 그 콘크리트로 만든 다리는 후세에 이르러 미내다리처럼 그에 따른 대우를 받을까? 아니면 필요 없는 쓰레기이자 흉물로서 폐기되어 버릴까? 답이 정해진 질문을 외쳐보며 쓸쓸히 다리를 떠난다.

다리는 무엇인가를 서로 이어주는 역할을 한다. 그 무엇인가는 주로 땅과 땅이겠지만, 평소 왕래가 쉽지 않던 마을과 마을 사이를 연결해 주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즉 마음과 마음을 연결해 준다고 하겠는데, 한번 모두들 마음 속에 다리 하나를 놓아보는 게 어떨까? 그리고 그 놓은 다리를 단순히 박제시켜놓지 말고 다른 이의 다리와 서로 연결해보자. 다리는 연결하지 않으면 생명이 끊기지만, 땅과 땅을, 그리고 마음과 마음을 연결한 순간 그 무엇보다도 견줄 수 없는 의미로서 다가오기 때문이다.

덧붙이는 글 | 2007년 10월 6일 강경 미내다리를 갔다와서 쓴 글입니다.



태그:#미내다리, #홍예교, #논산, #강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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