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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화산 일출 봉화산은 우리 동네 뒷산이다. 봉화산에서 보면 순천만이 보인다. 아침 5시 30분에 산에 올라 두 시간 남짓 기다린 뒤에야 무자년 새해 첫 해를 볼 수 있었다.
▲ 봉화산 일출 봉화산은 우리 동네 뒷산이다. 봉화산에서 보면 순천만이 보인다. 아침 5시 30분에 산에 올라 두 시간 남짓 기다린 뒤에야 무자년 새해 첫 해를 볼 수 있었다.
ⓒ 안준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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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예쁘다
하느님이 참 예쁘시다

저런 고운 해를 주시니
저런 고운 해로 오시니

해가 예쁘다
빨간 립스틱을 바른 하느님이…

봉화산 일출 해가 예쁘다. 하나님이 참 예쁘시다.
▲ 봉화산 일출 해가 예쁘다. 하나님이 참 예쁘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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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컴컴한 새벽 밤길을 걸어 봉화산에 갔습니다. 너무 이른 나머지 두 시간도 넘게 해를 기다렸습니다. 해는 날이 환해진 뒤에도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날을 환히 밝힌 것은 해일 텐데도.

드디어 해가 떠올랐습니다. 너무 고운 해였습니다. 너무 고운 나머지 좀 불경스런 생각을 했습니다. 립스틱을 바른 하느님이 참 예쁘다는…

무자년 새해에는 우리 인간도 예쁜 모습이었으면 좋겠습니다.

봉화산에서 바라보면 멀리 순천만이 보입니다. 행글라이더라도 타고 날아가면 금세 발끝이 닿을 것 같습니다. 언젠가 서너 시간쯤 걸려 순천만까지 걸어간 적이 있습니다. 엊그제는 봉화산을 넘어 순천만까지 걸어서 가보았습니다.

순천만 갈대밭 순천만 갈대는 겨울이 되어야 제 빛깔을 낸다.
▲ 순천만 갈대밭 순천만 갈대는 겨울이 되어야 제 빛깔을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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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천만 순천만의 아름다움은 짱뚱어, 밤게, 청둥오리, 흑두루미, 저어새 등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을 품에 안는 넉넉함에 있다.
▲ 순천만 순천만의 아름다움은 짱뚱어, 밤게, 청둥오리, 흑두루미, 저어새 등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을 품에 안는 넉넉함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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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천만은 갈대숲으로 유명합니다. 그런데 갈대숲은 가을보다는 겨울이 제격입니다. 그것은 갈대가 겨울이 되어서야 제 빛깔을 내기 때문이지요. 제 뿌리를 박은 갯벌 진흙 색깔과 가장 가깝게 됩니다.   

돌아오는 길은 시내버스를 이용했습니다. 아침만 먹고 점심을 건너 뛴 터라 배가 몹시 고팠습니다. 사실은 집을 나설 때부터 이미 각오한 일이었지요. 요즘 너무 배가 불러 있었다는 생각을 했을까요?

다음날은 산 중턱에 있는 조계산 보리밥집에서 점심을 먹었습니다. 전날 한 끼 굶은 것을 만회라도 하려는 듯 게걸스럽게 먹다가 문득, 헛웃음이 나왔습니다. 아직 멀었다, 아직 멀었다, 그 생각뿐이었지요. 

조계산 설경 아름답다. 하지만 저 아름다움을 탐하지는 않으리라. 그런 마음으로 무자년 새해를 맞이하고 싶다.
▲ 조계산 설경 아름답다. 하지만 저 아름다움을 탐하지는 않으리라. 그런 마음으로 무자년 새해를 맞이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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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계산 계곡  내 안의 풍경도 저리 아름다웠으면...
▲ 조계산 계곡 내 안의 풍경도 저리 아름다웠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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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아름다운 풍경을 보면 어떤 경계심을 갖곤 합니다. 따지고 보면 그것도 다 마음이 어린 탓이겠지만 아름다움을 탐하지 않기 위한 방어책일 수도 있습니다. 사랑하는 것과 탐하는 것은 다르니까요. 

새해 첫 해돋이를 보기 위해 깜깜한 밤길을 오르다가 추위에 떨고 있는 어린 꽃나무들을 짓밟았을 지도 모를 일입니다. 그런 마음씀씀이가 소심함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해도 그런 조바심으로 새해를 맞이하고 싶습니다.

다만, 오랜 기다림 끝에 막 모습을 내보인 고운 해를 보면서 빨간 립스틱을 바른 하느님이라고 말해버리는 불경을 가끔씩 저지르면서 말입니다.


# 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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ㄹ교사이자 시인으로 제자들의 생일때마다 써준 시들을 모아 첫 시집 '너의 이름을 부르는 것 만으로'를 출간하면서 작품활동 시작. 이후 '다시 졸고 있는 아이들에게' '세상 조촐한 것들이' '별에 쏘이다'를 펴냈고 교육에세이 '넌 아름다워, 누가 뭐라 말하든', '오늘 교단을 밟을 당신에게' '아들과 함께 하는 인생' 등을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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