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2006년 5월 31일에 실시된 지방선거 방송사 출구조사 결과가 열린우리당의 참패로 나타나자, 정동영 당시 의장과 김한길 당시 원내대표가 상황실을 빠져나가고 있다.
 2006년 5월 31일에 실시된 지방선거 방송사 출구조사 결과가 열린우리당의 참패로 나타나자, 정동영 당시 의장과 김한길 당시 원내대표가 상황실을 빠져나가고 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관련사진보기


"2004년 총선 이후 민주개혁연합이 분해되기 시작해"

- 지난 대선 직후 <경향신문> 등에 기고한 칼럼에서 이명박 후보의 당선을 '집권파에 대한 유권자의 복수'라고 표현했던데 어떤 의미에서 그런가?
"대의민주주의에서 통치자와 피통치자 간의 관계는 직접 민주주의와 다르게 작동한다. '인민에 의한 통치'라는 직접민주주의와는 달리 대의민주주의는 '인민에 의한 통치자의 선출'을 체제적 특성으로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전에 어떤 통치자가 되겠다고 약속을 바탕으로 주권의 위임이 이루어지고 평가와 책임추궁은 사후에 이루어진다.

통치기간 중 사전의 약속에 대한 기대가 유지되지 않으면 피통치자는 불만과 항의를 표시하게 되는데, 이를 무시하게 되면 재집권 여부를 결정짓는 마지막 선거에서 유권자는 투표용지를 종이 돌로 만들어 복수하게 된다. 이게 대의제 민주주의의 기본 작동 방식이다. 그걸 말한 것이다.

1987년 민주화 이후 한국정치는 오랜 권위주의 통치의 수혜자가 중심이 된 현상유지파와 이에 대한 강력한 변화와 개혁을 바라는 현상변화파 사이의 동태적 균형을 특징으로 해왔다. 선거결과로 표출된 유권자의 분포도 대체로 같은 특징을 보였다. 그 위에서 정당체제가 안정적으로 제도화되지 못한 채, 선거 때마다 요동치듯 변화해왔다.

양 진영 중 어느 한쪽도 상대를 완전히 제압할 수 없는 역동적 균형체제, 그런데 그 양 진영이 정당으로서 스스로의 정체성을 공고히 하는 데 실패한 불안정한 균형체제, 이것이 이른 바 '87년 체제'의 구조적 특징이다. 5년 전 노무현 정부는 이 중 변화를 바라는 유권자를 최대로 결집해서 집권했다. '최대 민주개혁연합'이 실현된 것이다.

2004년 탄핵 정국과 총선은 이들 최대 민주개혁연합이 한국정치를 지배했던 중대 시기였다. 이들은 필요하다고 판단할 경우 거리에서의 운동을 통해서라도 자신들이 지지한 통치자를 구원해주었다. 하지만 이후 기대했던 것이 이루어지지 못한 데 대한 실망이 누적되기 시작했다.

2004년은 민주개혁연합은 정점에 다다랐다가 그 이후 급속하게 분해되는 양상을 보였다. 유권자들은 그것에 대해 여러 번 (경고) 신호를 보냈다. 30차례 가까운 재, 보궐선거에서 집권파는 완패했다. 2006년 지방선거는 이번 선거결과를 정확히 예고해준 지표였다.

그런데 집권파는 그때마다 이를 무시했다. 지지자의 불만과 항의에 대해 한나라당과의 대연정으로 답했다. 대통령은 선거에 나타난 피통치자의 의사보다 '역사'를 보고 있다고 답했다. 민주주의의 문법으로부터 분명한 이탈이었다. 2006년 지방선거 결과에 대해서도 같은 태도를 보였다.

오히려 더 심한 측면도 있었다. '지방의 일꾼을 뽑는데 왜 중간평가식 투표를 하느냐'고 오히려 선거에 나타난 '인민의 평결'을 야단치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잦은 선거 때문에 대통령직 수행이 어렵다면서 선거를 줄이고 대통령의 안정적 통치를 보장하게 하자며 '원포인트 개헌론'을 선언했다.

이때부터는 민주적 정치과정을 회피한 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유권자를 가르치고 계도하겠다는 접근이 지배했다. 유권자의 평가로부터 자유로워지고자 하는 욕구가 압도하게 되면, 그때부터 통치자는 '선출된 독재자'가 된다. 민주주의의 절차적 규범과 가치를 훼손하는 것, 과거 노무현 정부를 지지하지 않았던 유권자뿐 아니라 지지했던 유권자 중에서도 상당수가 용납 못하겠다고 생각했던 것이 바로 이 부분이다.

"이명박 후보 등 보수파는 유권자와의 대화에서 성공했다"

민주주의는 기본적으로 대화다. 현대 대의제민주주의에서 '통치자와 피통치자의 분리'를 정치체제의 특성으로 한다. 통치자와 피통치자가 순환적으로 교체되는 직접민주주의와는 달리 대의제민주주의의 대화는 통치자의 응답을 중심 내용으로 한다. 이것을 정치이론에서는 '반응'과 '책임'이라고 부른다. 한마디로 유권자의 요구 내지 항의에 대해 '상대해서 설명한다'는 의미다.

책임(성)은 영어로 '어카운터빌리티'(accountability)인데 이는 '설명하다'는 뜻을 담고 있다. 즉, 책임이란 설명하는 것이다. 응답성, 대응성, 책임성 등이 민주주의의 대화원리인데 (집권파 등은) 이걸 안 지켰다. 유권자의 요구에 진지하게 반응했다면 (대선에서) 이렇게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2007년 프랑스의 사르코지는 대통령에 압도적으로 선출된 직후 총선에서도 승리했지만 야당인 사회당이 예상보다 덜 패배하자 그 결과에 반응했다. 사회당 출신을 내각에 기용한 것이다. 다른 예로 2005년 독일 선거를 들 수 있다. 예상과 달리 기민당과 사민당의 득표나 의석 차는 크지 않았다.

대연정을 둘러싼 협상이 시작되었는데 그 방향을 결정한 것은 그 과정에서 치러진 한 지역(드레스덴)에서의 선거였다. 선거 결과 기민당이 이겼다. 그 직후 사민당의 슈뢰더는 이를 유권자의 평결로 받아들여 물러섰고 기민당 중심의 정부를 구성하였다. 이렇게 반응하는 것이 대의제하에서의 민주주의의 작동 방식이다.

 '최장집 사단'의 박상훈 후마니타스 대표는 "이명박 후보 등 보수파는 유권자와의 대화에서 성공했다"며 "패배한 이유를 반성적으로 살펴야지 유권자를 탓하는 태도는 곤란하다"고 강조했다.
 '최장집 사단'의 박상훈 후마니타스 대표는 "이명박 후보 등 보수파는 유권자와의 대화에서 성공했다"며 "패배한 이유를 반성적으로 살펴야지 유권자를 탓하는 태도는 곤란하다"고 강조했다.
ⓒ 오마이뉴스 구영식

관련사진보기


진보파들 중에는 노무현 정부가 신자유주의 정책을 추진했기 때문에 이번 선거에서 졌다고 말한다. 정확한 해석이 아니라고 본다. 더 중요한 것은 신자유주의가 되었든 무엇이 되었든 정책을 민주적으로 결정하고 추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미 FTA가 전형적인 사례다. 반대를 억압하고 의회조차도 배제된 채 오로지 대통령과 기술관료들에 의해 일방적으로 독단적으로 밀어붙여다. 그러면서 국민 일반을 상대로 일방적으로 홍보하려 한 것은 민주적 대화방식이 아니다. 민주주의의 절차나 규범을 지키지 않는 것에 대해 문제제기하고 비판해야 한다.

결국 수동적 대상으로 밀쳐진 유권자는 이번 선거에서 자신들의 투표권력을 복수의 방법으로 사용했다. 최선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시민으로서 유권자의 힘을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민주주의의 기본을 작동한 선거라고 본다. 그 내용이 어찌되었든 이명박 후보가 인민의 다수 의사로 선출되었다면 그 결과 역시 존중해야 한다고 본다.

패배한 이유를 반성적으로 살펴야지, 어떻게 이명박 후보를 지지할 수 있느냐며 유권자를 탓하는 태도는 좋지 않다. 어쨌든 그들은 유권자와의 대화에서 성공했다. 이를 인정하고 대화에서 실패한 원인을 찾는 접근이 민주주의의 원리에 맞다고 본다."

"유권자가 보수화됐다는 분석은 잘못된 것"

- 유권자들이 그런 결정을 내렸을 정도로 민주주의를 진지하고 섬세하게 받아들였다는 얘기인가?
"정치현상을 개인의 선호 차원으로 환원해서 볼 수는 없다. 정치학은, 정치적 현상이란 개개인의 의식이나 선호로 환원할 수 없는 독자적인 논리가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정당이론에 따르면) 유권자의 의식과 선호는 그들이 어떤 대안을 두고 선택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 즉 앤소니 기든스식으로 말하면 '구조화'된 대안이 뭐냐에 따라 결정된다. 유권자가 선거결과를 결정한다고 보는 것은 인과적으로 틀렸다.

대표적인 정당이론가인 립셋-로칸의 테제 중 중요한 하나는 '유권자에 앞서 정당대안이 먼저 있다'는 것이다. 유럽과 한국의 선거 결과가 다른 것은 유권자가 더 낫고 못함 때문이 아니라, 기본적으로 유권자가 선택할 수 있는 대안의 구조가 다르기 때문이다. 정동영, 이명박, 문국현, 권영길? 이들 후보 대안을 찍으면 각각 어떤 정치의 미래가 올 것인지 일류 정치학자도 정확히 예측하기 어려운데 유권자의 정교함이나 현명함 여부를 말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정치는 선거로 끝나는 게 아니다. 선거 결과를 해석하는 문제도 아주 중요하다. 이번 선거 결과를 유권자의 보수화에서 찾는다면 아마 정당들은 모두 오른쪽으로 옮겨야 할 것이다. 나는 절대 그런 상황이 아니라고 본다. 한국의 유권자자 불행한 것은 자신이 원하는 걸 표현할 수 있는 좋은 정당대안이 없다는 것이다. 유권자의 의사를 합리적으로 대리할 만한 정치적 조건을 가지지 못했다는 것이 가장 큰 불행이다.

유권자가 좋은 정당 대안을 만나지 못하면 좋은 역할을 하기 어렵다. 그들이 오직 할 수 있는 것은 저항하는 것뿐이다. 투표를 안 하거나 다시 체제 밖으로 나가 운동을 하거나, 이번처럼 표를 엉뚱한 후보에게 던지는 것이다. 지난 2002년 때 노무현 후보를 찍은 사람 중 30% 안팎의 유권자가 이명박 후보에게 투표했다는 것은 기본적으로 항의의 표현으로 생각해야지 보수화로 생각하면, 정말 대안이 없게 된다.

기본적으로 유권자의 투표성향은 잘 바뀌지 않는다. 대부분 유권자의 경우 투표행태는 죽을 때까지 잘 안 변한다. 5년 전엔 진보적이었다 이번에 보수적이 되고 하는 식으로 바뀌지 않는다. 변화된 것이 아니라 항의하고 싶었다고 본다. 대안의 구조가 바뀌면, 투표성향은 복원할 수 있다고 믿는다."

"한국 정치체제는 중산층적 의식 위에 서 있다"

- 양극화의 최대 피해자인 유권자의 다수가 이명박 후보를 지지한 현상을 '집권파에 대한 복수'로만 설명할 수 있나? 하층일수록 이명박 후보 지지가 많은데….
"현대 한국정치의 문제 중 하나는 '하층 동원에 의한 정치 변화'가 없었다는 점이다. 이것은 중요한 현상이다. 87년 민주화의 중심 세력은 지식인과 학생운동이 중심이 된 교육받은 도시중산층이었다. 그런데 이들의 민주화운동은 그 직후 터져 나온 7~9월 노동자대투쟁하고 결합이 안 됐다. 두 계기가 결합됐더라면 그 후 한국정치는 지금과는 아주 다른 양상이 되었을 것이다.

식민지, 분단, 토지개혁, 전쟁을 거치면서 한국의 전통계급은 몰락했는데, 그 때문에 급속도로 빠른 산업화가 가능했고, 또 그 때문에 짧은 시기에 중산층과 노동자라는 두 집단이 등장했다. 그런데 20년 전 민주화는 중산층 중심의 정치변화만 있었지, 노동운동의 충격은 정치체제 밖으로 제한되었다. 민주화 이후 체제가 산업화가 낳은 대규모 하층 집단의 요구와 열망으로부터 분리되어 형성되었다는 것, 이것이 다른 민주주의 국가들과 아주 다른 점이다.

달리 말하면 한국 사회 하층의 정치의식은 아직 집단적으로 조직되지 않았고, 이들은 여전히 권위주의 산업화 시기 강력한 국가의 이데올로기적 영향력 안에 통합되어 있는 상태로 있다. 사회경제적 요구에서는 강력하지만 정치적으로는 낡은 정치의식의 틀을 그대로 갖는 것이 한국의 사회하층의 유권자의 특징이다.

 민주화운동은 그 직후 터져 나온 7~9월 노동자대투쟁하고 결합이 안 됐다. 두 계기가 결합됐더라면 그 후 한국정치는 지금과는 아주 다른 양상이 되었을 것이다. 사진은 87년 노동자대투쟁
 민주화운동은 그 직후 터져 나온 7~9월 노동자대투쟁하고 결합이 안 됐다. 두 계기가 결합됐더라면 그 후 한국정치는 지금과는 아주 다른 양상이 되었을 것이다. 사진은 87년 노동자대투쟁
ⓒ 성공회대 NGO사이버자료관

관련사진보기


한국에서 정치체제는 중산층적 헤게모니와 의식 위에 서 있다. 하층은 정치적으로 시민권을 아직 못 획득했다고 할 수 있다. 이것이 한국의 민주주의를 '노동 없는 민주주의'라고 부르는 이유다. 사람들은 빈곤과 노동을 얘기하지만, 한국정치에서 그것은 기껏 온정주의적 문법 이상이 아니다. 노동을 민주주의의 언어로 말할 수 있는 이념적 조건이 아직 안 되어 있다.

우리 사회 하층은 자기를 표현할 수 있는 정치의 언어를 가져본 경험이 없기 때문에, 과거 권위주의 산업화 시기 형성된 투표패턴의 큰 변화 없이 여전히 보수파 정부를 찍는 경향이 유지되고 있다. 한국정치에서 하층과 노동자의 계층투표 성향과 관련된 주제를 확정적으로 말하기는 어렵다. 아직 한국의 정당체제는 이를 표출할 만한 충분한 조건을 갖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민주노동당의 등장은 최근이고, 여전히 기존 정당체제에 붙어 있는 미약한 존재일 뿐이다. 민주노동당이 들어왔다고 해서 기존 정당체제가 바뀐 게 아니라는 것이다.

이처럼 계층적, 이념적 차이가 정당체제로 조직되지 않으면 선거를 통해 해석해낼 수 있는 유권자의 요구는 표층적인 것일 수밖에 없다. 한국의 경우 투표행태를 통해 유권자의 사회경제적 정치의식을 고정화해서 말하는 것은 위험하다. 지금 같은 정당체제에서는 그러한 의식이 분화되어 나타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 그렇기 때문에 한국의 정치체제와 한국의 유권자는 역동적이다. 한국 정치의 역동성은 곧 한국 정치의 보수성의 다른 면이다. 자본주의 체제에서 가장 중요한 생산자 집단인 노동이 정치의 세계에 들어올 때까지 한국 유권자의 투표행태는 계속해서 높은 유동성을 보일 것이다. 이번엔 그 혜택을 이명박 후보가 보았을 뿐이지, 결코 이명박 지지의 공고화로 이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유권자들, 이명박 정부에도 종이 돌 던질 수 있어"

- 많은 분석가들이 이번 대선을 계기로 역사블록이 '민주연합'에서 '성장연합'으로 전환됐다고 보는데, 이런 분석을 어떻게 보나?
"적절한 분석은 아닌 것 같다. 한국사회에서 성장주의는 이명박의 독점물이 아니다. 민주노동당도 성장론을 얘기할 만큼, 한국은 성장주의에서 한 번도 벗어난 적이 없다. (성장주의는) 이명박의 특별한 브랜드가 아니다.

성장주의와 관련된 지금의 담론 구도는 5년 전과 똑같다. 달라진 게 없다. 당시 성장론을 주도했던 것은 노무현 후보였다. 그런데 지금 이명박 후보의 당선을 두고 그렇게 말하는 것은 옳지 않다. 정치구도가 민주적이었다가 성장적이고, 이런 식으로 움직인다고 볼 수 없다. 유권자의 정치의식이든 정치의 구도든 이를 주식시장의 변화처럼 보는 것은 현실이 아니다.

기본적으로 투표결과를 놓고, 유권자가 보수블록으로 넘어갔다, 성장론을 택했다 등 표피적으로 설명하는 것은 지식인들의 도덕적 훈계의식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다. 현존 체제에 대해 비판적인 자세를 갖는 정치학자나 엘리트들이 해야 할 일은 주권자의 보이지 않는 열망, 요구를 넓고 깊게 해석하는 일이다. 유권자와 한국정치를 개탄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 이명박 후보의 당선은 한국 민주주의에 긍정적인가, 부정적인가?
"민주주의도 파당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것이기에, 적어도 내 입장에서는 부정적으로 본다. 한국사회는 계층적으로나 이념적으로 여전히 배제된 요구가 크다. 약자에 대해 가혹한 체제이다. 따라서 한국 민주주의가 더욱 더 진보적 방향으로 발전하기를 희망한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의 출범을 곧 민주주의의 위협이나 역전으로 이해하는 것은 곤란하다. 이쪽이 제대로 못한 것이 문제이지, 이를 체제의 문제로 과장하는 것은 아무런 도움이 안된다.

여전히 민주주의는 작동하고 있고, 유권자들은 자기를 무시할 때 종이 돌로 책임을 물을 수 있다는 걸 보여줬다. 이것은 이명박 정부에게도 해당된다. 이번 선거가 유권자의 힘을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부정적이지 않다. 지금 필요한 것은 이런 유권자의 에너지를 진보적으로 재조직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데 있지, 다른 것으로 치환해서는 안된다.

우리나라 진보파, 개혁파의 문제는 이명박 정부의 등장을 사람들에게 두렵고 부정적으로 얘기해서 민주주의와 정치의 힘을 약화시키고 사람들을 이곳으로부터 멀어지게 한다는 점이다. 이건 곤란하다. 의미를 진보적으로 조직하는 일에 늘 게으르다.

정치에서 중요한 진전은 사태를 어떻게 정의하느냐로부터 시작한다. 이명박 당선자에 대한 두려움을 동원하려는 심리구조를 갖고 자신들의 잘못을 은폐하려 하거나 이를 통해 정치적 이득을 보려는 것은 곤란하다. 자기가 잘못 해놓고 말이다. 대안도 없는 냉소적, 패배주의적, 청산주의적인 정치해석을 늘어놓는 태도는 비판받아야 한다."

노무현 정부 중심세력은 '신자유주의 민주파'

- 진보진영은 이번 대선에서 어떤 교훈을 얻어야 하는가?
"한국의 민주화는 냉전반공체제와 권위주의 산업화의 토대 위에서 이루어졌다. 이러한 규정이 함축하는 내용은 많지만, 그 핵심은 민주주의로의 첫 단계 전환이 노동운동과 분리되어 이루어졌다는 것, 따라서 한국의 민주화는 필연적으로 여러 단계를 가질 수밖에 없었다는 데 있다.

87년 6월 항쟁과 7~9월 노동자대투쟁이 사실상 동시대였음에도 정치적으로나 이념적으로 분리되었다는 사실은 매우 중요하다. 두 계기가 하나의 전선에서 결합되었다면 한국의 민주화를 특징짓는 ‘중산층 중심의 보수적 민주화’, ‘노동(의 시민권) 없는 민주화’의 경로를 벗어날 수 있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6·29로 대표되는 6월항쟁의 조기 종결이 상징하듯 한국 민주화의 1단계는 중산층의 헤게모니로 종결되었다. ‘노학연대’, ‘민중론’ 등 노동통합적 민주주의 개념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불행하게도 6·29를 전후해 급격하게 탈권위주의 경로로 들어서자마자 민주화운동의 지도부와 헤게모니는 중산층적 정향의 체제 내 개혁 지향 세력에 의해 압도되었다.

물론 이들의 역사적 역할을 부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이들의 이념적 정향은 민주주의를 반독재, 반권위주의로 한정하는 것일 뿐, 노동운동의 정치적 시민권으로 확장하려는 문제에 대해서는 매우 비판적이었다. 87년 대선에서 민주화 운동권이 실제로 했던 정치적 선택은 이를 잘 보여주었다. 결국 한국의 민주화는 단계적으로 분리될 수밖에 없는 구조를 갖고 전개되었다고 하겠는데, 이제 그 분리를 실천할 때가 왔다고 본다.

 노무현 정부 중심세력을 정의하라면 ‘신자유주의 민주파’의 등장이라고 정의할 수도 있고 더 정확하게는 민주주의의 이름으로 형성된 ‘새로운 보수세력’의 등장이라고도 할 수 있다. 사진은 지난해 12월 28일 저녁 청와대에서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를 만나 악수를 하는 노무현 대통령(왼쪽).
 노무현 정부 중심세력을 정의하라면 ‘신자유주의 민주파’의 등장이라고 정의할 수도 있고 더 정확하게는 민주주의의 이름으로 형성된 ‘새로운 보수세력’의 등장이라고도 할 수 있다. 사진은 지난해 12월 28일 저녁 청와대에서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를 만나 악수를 하는 노무현 대통령(왼쪽).
ⓒ 청와대 제공

관련사진보기


‘비판적 지지론’이나 ‘민주대연합론’은 반독재 민주화와 노동 있는 민주주의가 연속선상에서 진화할 수 있다는 가정 하에서 정당화될 수 있다. 그런데 노무현 정부의 경험에서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은 한국 민주화의 단계적 전환은 연속보다는 단절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노무현 정부 중심세력을 정의하라면 ‘신자유주의 민주파’의 등장이라고 정의할 수도 있고 더 정확하게는 민주주의의 이름으로 형성된 ‘새로운 보수세력’의 등장이라고도 할 수 있다. ‘남북화해’와 ‘과거사 청산’, ‘언론개혁’ 등의 의제에서 개혁적 혹은 진보적 정조를 동원하면서 실제 사회경제적 정책의 영역에서는 한국사회에서 신자유주의가 헤게모니가 될 수 있도록 정당화해준 정부였다.

체제 안에서 안정적 개혁을 지향하는 세력(개혁파)과 체제에 통합되지 못한 약자를 대표하는 세력(진보파)으로 분화해야 한다. 특히 신자유주의 개혁파와 다른, 노동의 이해와 열정에 기초를 둔 진보파의 정체성을 구체화 해야 한다. 이것이 지금 한국 민주주의의 중심 과제라고 생각한다. 노무현 정부의 경험과 이번 대선은 이를 잘 보여준 사례였다.”

- 현 정당구도로 보면 대통합신당과 창조한국당은 개혁파, 민주노동당은 진보파라는 점에서 이미 개혁파와 진보파가 분화돼 있는 것 아닌가?
"분화의 경향성과 필연성을 보여주는 양상이었을 뿐 분화는 아직 실현되지 않았다. 진보든 개혁이든 자신의 뚜렷한 정체성을 말하기보다 모호한 선거를 치렀다. 집권 개혁파는 그간 확실히 보수화되었는데 담론은 여전히 진보이고 좌파라고 말한다. 진보파는 이들을 레토릭으로만 비판하지 뭐가 어떻게 다른지 보여주지 못했다.

개혁파들은 담론에서도 오른쪽으로 가는 게 좋다고 본다. 진보는 그 왼쪽에서 재구축되면 좋겠다. 신자유주의 개혁파와 한나라당이 별 차이가 없는데도 말로는 왼쪽으로 기우니까 실제 이 영역의 유권자는 모두 보수파들이 가져가게 된 형국이다. 이번 선거는 가장 나쁜 구도에서 치러졌다."

"개혁파는 진보적인 것에 대한 콤플렉스를 버려야"

- 진보진영은 이명박 시대에 대응하기 위해 어떻게 새로워져야 하는가?
"각자 위치에서 항의를 조직화하고 그 접촉면을 넓혀서 정치적 대안을 형성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본다. 거시적으로 진보파와 개혁파는 자기 입장과 정체성, 비전을 구체화, 선명화해서 상호 경쟁체제를 만드는 게 중요하다. 더 이상 차이를 모호하게 하는 것은 서로에게 도움이 안 된다. 그러면서 진보와 개혁 세력 사이의 정체성을 선명히 해야 한다. 진보파와 개혁파가 논쟁해야 서로 힘이 강해진다.

개혁파는 노동과 같이 갈 생각이 없다. 그들의 심리구조 안에 노동이 들어갈 자리가 없다. 개혁파는 온건개혁의 전망을 구체화해야 한다. 그 왼쪽의 영역은 진보파가 조직될 수 있게 해야 한다. 이미 현실로는 오른쪽으로 갔는데 자꾸 자신들을 진보로 포장하거나 도덕주의적으로 포장해서는 안된다. 그렇지 않고도 온건개혁파는 한국사회에 긍정적 역할을 할 수 있다. 진보적인 것에 대해 콤플렉스를 버리는 것이 필요하다.

진보파 역시 좀 더 넓은 지지시장을 개척하려 노력해야 한다. 반신자유주의만 습관처럼 외치지만 말고 실제로 왜 노동에 기반한 민주주의가 중요한지 설득력 있는 논리를 조직해야 한다. 우리 사회에서 실현되지 못한 하층의 목소리를 조직하는 데 실력을 보여야 한다.”

- 스승인 최장집 교수는 민주파 정부의 무능력을 자주 언급해왔는데, 이명박 정부 기간 동안 이런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전략이 있다면?
"민주정부의 무능력에는 여러 가지 차원이 있다. 지지자들이 원하는 여망을 조직화하는 데 무감했다. 이것도 무능력이다. 그래서 표를 잃었다. 신자유주의적 정책을 안 할 수 없었고 그래서 지지자들의 여망을 실현할 수 없었다면 설명했어야 했다. 그러나 자신의 행동과 정책과는 달리 정서적으로 진보적이라고 표현하고 싶어 하는 이상한 콤플렉스가 있었다. 그러다보니 지지자를 두 번 기만하는 일이 발생했다. 이것도 무능한 단면이다.

한국은 국가가 강하다. 권위주의 하에서 형성된 대규모 관료집단이 있다. 이들 국가 하부기반을 재조직화해서 정책의 성과를 잘 낼 수 있어야 했는데, 이 역시 이루어내지 못했다. 국가관료제를 제대로 관장해서 성과를 내지 못한 것도 무능의 문제다.

물론 구조적으로 무능할 수밖에 없었던 점도 있다. 강한 국가를 운영하려면 강한 정당이 있어야 하는데, 그런 강한 정당을 만들 만한 역사적 경험이 너무 짧았다. 정당이 약하니 시민사회 안에서 자기 지지기반을 효과적으로 관리하기도 어려웠다. 좋은 정당을 갖기에는 역사적 경험이 짧았고, 유능한 정책 엘리트를 형성하기에도 어느 정도 시간이 필요했다. 확실히 이런 문제들은 어느 정부도 쉽게 해결하기 어려운 구조적인 문제라고 볼 수 있다. 정치개혁을 통해 이런 문제들을 개선해 갔어야 했는데, 이에 대한 문제의식이 약했다.

국가에 대한 현대 민주주의의 이상은 정당정부다. 적어도 노무현 정부, 이명박 정부 등 이런 명칭이 아니라 노동당 정부, 기민당 정부, 사민당 정부, 보수당 정부, 민주당 정부, 공화당 정부, 사회당 정부 등 명실상부하게 이렇게 불릴 수 있어야 한다. 강한 정당이 강한 정부를 만드는 게 민주주의 국가의 정치적 이상이다. 지난 10년의 국가 운영의 경험과 그 실패 원인을 잘 분석해, 개선하려 노력해야 한다.”

"뉴라이트는 정치적 창투세력에 불과"

- 뉴라이트가 보수진영에 '내부혁신'이라는 화두를 던진 반면, 진보진영은 자기혁신에 실패했다는 평가가 적지 않다.
"뉴라이트는 보수적 운동세력이자 민주주의에 대한 도전세력이다. 운동권에서 전향해 한나라당에 대한 건전 비판세력이라는 스스로의 규정을 신뢰하지 않는다. 그들만이 할 수 있는 이론과 논리를 발전시킨 것도 없다. 그런 점에서 이들은 정치적 창투세력(창업이나 창당에 투자한 세력), 내지 정치적 투자집단 이상은 아니다.

내가 한국정치에서 문제삼는 건 사람들이 모호하게 얘기하는 것이다. 자기성찰이니 자기혁신이니 하는 말은 태도나 정서만 이야기하지 문제를 구체적으로 말하지 못하는 효과를 가져왔다. 개혁파와 진보파는 각각 어떻게 한국정치를 이해하고 과제는 무엇인지 차별화된 해석을 내리는 데서 시작해야 한다. 문제가 뭔지가 구체화되어야 반성도 하고 혁신도 할 텐데, 늘 정서적으로 문제를 말하고 실체는 사라지는 식이다.

지지를 얻고자 하는 정당은 의견을 조직화하는 데서 시작해야 한다. 의견이 조직화되지 않고 모호하고 애매한 담론이 지배하는 것은 늘 진보개혁세력의 약점이었다. 선명해야 한다."


태그:#박상훈, #이명박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1970년 전남 강진 출생. 조대부고-고려대 국문과. 월간 <사회평론 길>과 <말>거쳐 현재 <오마이뉴스> 기자. 한국인터넷기자상과 한국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2회) 수상. 저서 : <검사와 스폰서><시민을 고소하는 나라><한 조각의 진실><표창원, 보수의 품격><대한민국 진보 어디로 가는가><국세청은 정의로운가><나의 MB 재산 답사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