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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양 석수시장 보충대리공간 '스톤앤워터'에서 지난 21일부터 <쥬쥬의 크리스마스>라는 제목으로 전시회를 열고 있는 장준영(여·48)씨. 그는 직접 써놨던 글에 일러스트를 입힌 더미북(그림책의 가제본)을 통해 스물다섯 혹은 여섯 살의 '쥬쥬'를 탄생시켰다. 임시로 선보인 더미북은 차후에 손볼 계획이다. 쥬쥬에 대해 몇 가지 물어보았다.

 

- 쥬쥬는 몇 살인가?
"스물다섯 살에서 여섯 살 정도의 직장여성이다."

 

- 어떤 스타일인가?
"소외감과 외로움을 많이 타는 소심한 여성이다. 집단문화와 의사소통을 하는데 어려움을 겪는 개인주의 성향을 가진 여성으로 크리스마스처럼 화려한 날이 되면 상대적인 외로움을 더 탄다. 여럿이 있어도 느끼는 소외감과 외로움을 앓는 현대인의 병을 쥬쥬도 앓고 있다."

 

- 쥬쥬는 왜 크리스마스를 쓸쓸하게 보내는가?
"친구와 동료들은 모임과 약속 때문에 뿔뿔이 흩어졌다. 쥬쥬는 소심한 모범생처럼 집과 직장만 오갈 뿐 어떤 모임에도 속하지 못한 채 자기 세계에 빠져 산다. 이런 때가 되면 고립과 고독의 세계에서 벗어나고 싶지만 그렇게 하지 못하는 한계에 부딪친다."

 

- 쥬쥬의 꿈은 무엇인가?
"아직은 이루어지지 않은 어떤 것이다. 꿈을 이루고 싶지만 이루지 못한 것에 대한 열등감 때문에 꿈은 점점 희미해져 간다. 현실에 안주하는 삶과 이루지 못한 꿈을 꾸는 상상의 삶 사이에서 갈등을 느낀다. 꿈을 펼치지 못한 아픔이 쥬쥬의 꿈을 발목 잡고 있는 것이다."

 

- 쥬쥬가 기다리는 것은 무엇인가?
"싹이 나오길 기다린다. 쓸쓸하고 외롭지만 한 가닥 희망을 갖고 싶은 것이다. 물론 실현되지 못한 어떤 것은 정작 이루어보면 별 것이 아닌데도 포장돼서 다가온다. 그러기에 남이 가진 것을 갖고 싶고, 남이 이룬 것을 이루고 싶어서 안달한다. 여하튼 희망은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든 간에 어디선가 싹을 틔우며 꽃 피울 준비를 하고 있다."

 

마흔 여덟 아저씨가 스물다섯 혹은 여섯 쥬쥬에게 주책떨기

 

1.

 

하이 쥬쥬!
아저씨도 퇴근해요. 왜, 퇴근해야 출근하니까, ㅋㅋ!

 

가리봉의 으슥한 길과 첫 번째 신호등 횡단보도를 지나 정돈되지 않은 거리에 이르면 연말 분위기에 편승한 인파들로 북적이고, 불야성(不夜城)의 밤거리는 정욕이 차고 넘치죠. 화장품 가게와 제과점, 옷가게와 안경점에서 캐롤이 울리는 게 아니라 뒤섞인다고 해야 정확한 표현이죠.

 

이 거리를 지나칠 때마다 스무 살이 채 되지 않았을 핸드폰 가두 판매원들이 공짜 핸드폰을 거저 가져가라고 외치곤 하는데, 오늘은 크리스마스 선물로 거저 가져가라고 하네요. 가리봉과 대림동 일대 도로는 주차장이네요. 크리스마스 유혹에 불려나온 차량들이 오도 가도  못하고 있어요.

 

예쁘게 포장된 선물을 든 여성이 남자 친구의 팔짱을 끼고 환하게 웃네요. 그런데 과일 파는 노점상과 붕어빵 파는 노점상, 순대와 만두 파는 노점상은 웃질 않습니다. 건너편 나이트클럽 네온이 요란스럽고 입구는 일찍부터 술렁입니다.

 

쥬쥬!
'크리스마스 베이비'라는 말을 아세요?

이 때면 여관이나 모텔이 동이 난다는데, 그렇지만 그 누구도 구유에서 해산하지 않는다네요. 덕분에 산부인과도 먹고 산다고 한다는데, 그래서 소파수술로 생명을 죽인 덕분에 잘살게 된 이들은 천국에 갈까요? 지옥에 갈까요? 안 가봐서 모른다고요!

 

두 개의 주유소와 세 개의 신호등 횡단보도를 지나면 구로디지털단지역이 나타나죠. 예전엔 구로공단역이었어요. 혼잡의 거리입니다. 신호와 사람이 뒤섞이고, 빨간 불에도 횡단하고, 직진하는 일이 다반사예요. 이 복잡한 세상(전철을 포함해)을 쥬쥬는 '양말 서랍 속 같다'고 했고, 어떤 카수는 '순대 속' 같다고 했는데, 저는 뒤죽박죽인 이곳을 진창 속 같다고 칭하렵니다.

 

2.

 

1년 동안 창고에 처박아 놓았던(상스런 표현으로 비춰지지만 사실은 적나라한 표현이다) 초록색 루돌프사슴 츄리를 꺼냈어요. 깜빡이는 전구불빛과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캐롤에도 집안 분위기는 가라앉았습니다. 수시는 떨어지고 수능 성적은 시원찮아서 대학진학에 갈팡질팡 하는 아들놈 때문입니다.

 

쥬쥬는 공부 잘했어요 어땠어요!

뭐,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라고요! 대학이 인생의 전부는 아니라고요! 그건 그런데, 막상 닥쳐 보면 그건 또 아니더라고요! 일 년 동안 수능생 돌보느라 얼마나 애썼는데 고작 점수가… 자식 투자처럼 비효율적인 투자는 없다는 속상한 생각, 신자유주의는 부자지간을 이렇게 갈라놓은 거예요. 누군가 '아들 어느 대학에 갔어요?' 하고 물어보면 '아, 네…' 얼버무릴 것을  생각하면….

 

쥬쥬! 하긴 그래요. 명문대학을 나오건 3류 대학을 나오건 인간은 외로운 거죠. 부모는 자식을 앞줄 세우느라 애쓰고, 자식은 앞줄에서 밀려나지 않으려고 애쓴 끝에 사회에 진출하면 결국 연봉에 울고 웃는 소모품일 뿐이죠. 일회용 소모품보다는 수명 긴 소모품이 되기 위해 온갖 수모를 견디는 것이죠. 그래요, 이렇게 사는 것은 인간의 꿈이 아닌 건 확실해요! 우리를 외롭게 하는 실체는 인간을 비인간화 시키는 먹이사슬이에요. 먹히지 않기 위해서는 먹어야 한다는 비정함이 쥬쥬와 우리를 외롭게 하는 것 같아요!

 

3.

 

쥬쥬도 그랬군요!
아저씨도 그랬어요!

일 년에 한 번 예배당에 갔는데, 그 때가 성탄절 때였거든요. 그 땐 교회라고 하지 않고 예배당이라고 했거든요. 신발 벗고 들어가면 예배당은 마루바닥이었는데, 나올 때면 신발을 잃어버렸다고 우는 아이들이 생기곤 했죠. 그래서 예배당에 가면 신발 잃어버린다는 내용이 구전노래가 떠돌곤 했죠.

 

여하튼 예수가 누군지는 중요하지 않았고, 크리스마스가 뭐하는 날인지 알 필요도 없었어요. 그저, 끼니가 고달픈 가난한 아해들에게 사탕과 공책 등 선물을 나눠주는 예배당이 달콤했던 거죠. 그래서 코 질질 흘리는 동네 조무래기들과 함께 예배당으로 몰려갔던 것이죠.

 

4.

 

홀로인 그대
슬픈 사람인 그대
누군가 그리운 그대
성탄의 거리에 휩쓸리지 마시오!
홀로인 채로 쓸쓸함이 더해진 그대
슬픔에다 더 큰 슬픔의 외투를 입은 그대
더 큰 허전함에 구멍 뚫린 그리움의 그대
인파에 떼밀리다가 짓밟히다 귀가한 그대

 

5.

 

크리스마스는 헬륨 가스입니다. 숨을 불어 넣은 풍선은 둥둥 뜨지 않는데, 헬륨 가스를 채워 넣은 풍선은 둥둥 떠서 솟구쳐 날아가다가 하늘 높은 어디선가 터지는 것처럼 괜한 설렘을 주다가 기분만 우울해지게 하는 크리스마스는 헬륨 가스입니다. 그렇게 인파에 떼밀려 우왕좌왕하다 귀가해 텔레비전을 켜니 또 크리스마스! 메리 크리스마스입니다.

 

6.

 

쥬쥬!

대개는 크리스마스가 되면 화이트 크리스마스 혹은 연인과의 황홀한 데이트, 인생을 폼 나게 할 선물꾸러미와 화려한 파티를 기대하죠. 그러나 부질없음을 곧 깨닫게 됩니다. 그런 사건은 일어나지 않고 그저 과로에 지쳐 쓰러져 잠들거나 텔레비전에 눈을 파묻고 하루를 보내죠. 크리스마스는 천민자본주의가 현대인의 주머니를 털기 위해 장치해 놓은 환상일 뿐이죠. 그런데, 크리스마스의 주인공인 예수가 자본주의의 호객꾼이 되기 위해 말구유에서 태어났을라고요?

 

7.

 

방송과 영화만이 아니죠.
작년에 했던 말, 올해도 또 하니
아이들은 산타를 믿지 않아요.
간밤에 선물을 놓고 간 사람은 산타가 아니라
아빠 혹은 엄마라는 것은 알죠!
그런데 쥬쥬!
그 아이들은 어떻게 하죠!
산타도 믿지 않고
자기를 버린 부모도 믿지 않고
자기를 동정하는 세상도 믿지 않는
그 아이들은 어떻게 하죠!
기쁘다 구주는 언제쯤 오시는 거죠!

 

8.

 

그래요, 쥬쥬!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휴대전화에 벨이 울리기를 바라고
바람만 채워질 것을 알면서도 양말을 걸어놓고
누군가 문을 열어 선물더미를 내려놓는 상상을 하죠.

 

9.

 

메리 크리스마스 쥬쥬!
거긴 화이트 크리스마스였군요.
여긴 봄날 같은 크리스마스였어요.
바람 불지 않고, 눈 내리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바람 불고 눈 내리더라도 훈훈했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이 세상을 구원하러 오신 예수가
냉정한 세상에 쫓기다 동사하지 않기를….
언 밥 먹으며 울다 동사하는 노숙자가 없기를….
고양이에게 유산상속 하는 고독한 부자가 없기를….

부자와 목사들도 천국에 갈 수 있기를….

바라고 간구하면서 해바라기 씨를 뿌려요!
씨앗이 냉정한 세상에 얼지 않도록 가슴 따듯하게 해요!

 

10.

 

그리움의 씨를 뿌리는 쥬쥬!
스물다섯 혹은 스물여섯 그땐 그랬어요.
외로웠으므로 꽃은 소박하게 피고
기다림으로 노래는 슬프고 달콤하고
절망으로 인생은 부서지고 단련되고
그럴지라도 삶의 항해는 계속되겠지요.
그대가 닿는 항구
우리가 닿는 항구
외롭고 쓸쓸하고 아플지라도
노래를 부르며 항해를 계속해요.
봄의 항구에는 따스한 해풍이 불거예요.
봄의 해변에는 금빛 모래들이 꽃처럼 반짝일 거예요.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뉴스앤조이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크리스마스, #더미북, #기다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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