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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재로 인해 비닐하우스가 뼈대만 남았다.
▲ 비닐하우스. 화재로 인해 비닐하우스가 뼈대만 남았다.
ⓒ 강기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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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입니다. 한 해를 열심히 살아온 사람들에겐 무엇보다 소중한 시간입니다. 모두들 최선을 다하며 살았지만 누구보다 2007년을 열심히 살아온 이들이 있습니다 . 그들의 하루 일당은 3만원, 빠짐없이 출근해야 한 달에 70만원 정도 받습니다.

흥청대는 도시, 절망에 빠진 기초생활수급인들

이들은 다름 아닌 강원도 정선의 자활후견기관에서 운영하는 양계축사의 일꾼들입니다. 10명으로 구성된 이들은 다들 한 집안을 책임지는 가장들입니다.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을 둔 아버지도 있고, 어머니도 있습니다.

이들에게 큰 일이 생겼습니다. 지난 24일(월)입니다. 크리스마스 이브라며 온 세상이 들 뜬 날이기도 합니다. 아침 8시경, 자활의 꿈을 만들어가던 양계축사가 불의의 화재를 당했습니다. 누전으로 난 화재는 4천여마리의 닭과 비닐하우스로 된 축사 2동을 뼈대만 남게 했습니다.

닭 4천여마리와 비닐하우스 2동은 이들에게 있어 희망이었습니다. 홀로 설 수 있다는 믿음 하나로 시작한 일이 양계농장이었습니다. 그랬던 양계축사가 잿더미로 남았습니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 농장 식구 모두는 눈물만 흘릴 뿐이었습니다.

비명을 지르며 죽어간 닭들이 축사 안에 가득했습니다. 농장 사람들은 검게 타 죽은 닭들을 보며 차마 말을 잊지 못했습니다. 희망이 절망으로 곤두박질 친 시간은 20분도 걸리지 않았습니다. 소방차가가 달려와도 경찰이 다녀가도 절망은 희망으로 바뀌지 않았습니다.

자활후견기관은 지난 2000년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이 시행되면서 생겨난 사회복지법인입니다. 생활보호가 필요한 이들에게 단순히 생계자금을 지원할 것이 아니라 일자리를 만들어 스스로 일어설 수 있게 하자는 취지에서 만들어진 단체입니다.

화재로 죽어간 닭들. 닭의 죽음으로 품고 살았던 재기의 희망도 검게 죽어갔다.
▲ 검게 탄 닭들. 화재로 죽어간 닭들. 닭의 죽음으로 품고 살았던 재기의 희망도 검게 죽어갔다.
ⓒ 강기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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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재의 공포를 잊지 못했음인지 움직임도 없다.
▲ 살아남은 닭. 화재의 공포를 잊지 못했음인지 움직임도 없다.
ⓒ 강기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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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정선군 정선읍 용탄1리 신론마을에 있는 양계농장도 그러한 취지를 살리고자 만들어진 '주민 일터'입니다. 지난 4년 동안 농장을 가꾸고 사람들을 모으고 했던 이는 자활후견기관 소속인 박영섭 사회복지사입니다. 이번 화재로 눈물을 가장 많이 흘린 이는 박영섭씨입니다.

지난 4년간의 노력, 한순간에 잿더미로 변해

화재를 당한 후 박영섭씨가 흘린 눈물이 다른 이들이 흘린 눈물보다 뜨겁고 서러웠던 이유가 거기에 있습니다. 열심히 일하면 자립할 수 있다는 신념이 하루아침 물거품이 되었으니 박영섭씨가 겪었을 절망이 얼마나 큰지는 짐작도 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야 할지 난감할 뿐입니다. 갈 곳도 없고, 오라는 곳은 더더욱 없고, 가장 큰 문제는 이 상황에선 오라는 곳이 있다 해도 갈 형편도 못 됩니다."

그렇게 말하는 박영섭씨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고였습니다. 취재를 하는 중에도 죽어간 닭들은 마대 자루에 담기고 있었습니다. 가까스로 살아난 닭 한 마리는 부리는 짧아졌고 벼슬은 보이지도 않았습니다.

박영섭씨의 한숨이 깊은 이유는 비닐하우스 2동을 임대 내어 운영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계약 기간은 이미 지난 해에 끝났고, 농장 주인에게 나가달라는 통보를 받은 지도 1년이 넘었습니다.

양계장을 밝히던 전등과 비닐하우스 뼈대.
▲ 검게 탄 전등 양계장을 밝히던 전등과 비닐하우스 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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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길을 견디지 못하고 비닐하우스 2동이 녹아 내렸다.
▲ 녹아 내린 비닐하우스. 불길을 견디지 못하고 비닐하우스 2동이 녹아 내렸다.
ⓒ 강기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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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이러저러한 곳을 찾아 다니며 옮겨보리라 마음 먹었지만 혐오시설인 양계축사를 받아주는 곳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러던 중 화재를 당했고, 이제는 엎친데 덮쳤다고 비닐하우스 값까지 물어주게 생겼습니다.

모든 것을 잃은 이들이 가야 할 곳은 어디에?

닭 4천여마리의 값은 4천만원 정도입니다. 돈 많은 이들에겐 그저 '떡값'에 지나지 않는 돈이지만 이들에겐  엄청난 돈입니다. 어디론가 이전을 하려면 비닐하우스 비용과 닭 구입 비용, 이전비용까지 합해 1억원은 있어야 한다니 지켜보는 마음도 답답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농장을 시작하고 거래처를 확보하는 시간만도 3년이 걸렸습니다. 이번 화재로 거래처가 다 끊길 생각을 하니 답답하기만 합니다."

박영섭의 말입니다. 거래처를 뚫기 위해 뛰어다닌 시간이 한숨과 눈물의 세월이 되고 말았습니다. 내후년 쯤이면 일하는 분들의 월급을 120만원 정도는 올려 줄 수 있겠다는 계산도 휴지 조각이 되었습니다.

한 달 월급 70만원을 받아도 행복하게 사는 농장의 일꾼들. 이들은 다들 기초생활수급자들입니다. 정도가 약하기는 하지만 장애를 가진 이들도 있습니다. 이들의 꿈이 잿더미로 남은 현장에선 오늘도 절망에 찬 사람들의 눈물만 가득합니다.

행복해야 할 연말이 이들에겐 얼음추위보다 더한 절망만이 덩그러니 남았습니다. 이들의 눈에서 흐르고 있는 눈물을 닦아 줄 천사는 이 땅에 없을까요. 이들에게 '희망'이라는 것이 있다는 사실을 확인시켜 줄 분들, 이 땅엔 없을까요.

잔해로 남은 닭 털을 태우는 농장 식구들.
▲ 소각. 잔해로 남은 닭 털을 태우는 농장 식구들.
ⓒ 강기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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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재로 인해 고장난 사료 배합기를 고치는 농장 식구들. 절망 속에서 찾는 희망의 끈.
▲ 화재복구. 화재로 인해 고장난 사료 배합기를 고치는 농장 식구들. 절망 속에서 찾는 희망의 끈.
ⓒ 강기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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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후원은 231-01-286614(농협) 예금주 : 정선자활후견기관, 문의는 박영섭 사회복지사(017-373-5429)입니다. 여러분의 관심이 '희망'을 만들어 냅니다.



태그:#자활후견인, #화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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