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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 대선이 막을 내렸습니다. 유권자들의 표심은 냉정했습니다. 2007년 내내 여론조사에서부터 투표까지 이명박 후보를 부동의 1위로 자리매김해주었습니다. 진보·개혁 진영과 그들을 지지했던 유권자들은 냉정한 현실을 인정하며 새로운 좌표를 찾아나서고 있습니다. 그러나 녹록치 않습니다. 패배의 원인과 대안에 대해서도 엇갈린 시각을 갖고 있습니다. 이에 <오마이뉴스>는 대선 평가에 대한 여러 시각의 글을 통해 건강한 논쟁의 장을 열고자 합니다. 여러분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부탁드립니다. [편집자말]
이제 선거가 끝난 지 닷새가 되어간다.

조중동을 위시한 보수 언론부터 <한겨레>나 <오마이뉴스>의 진보언론까지 모두들 선거결과가 참여정부의 실정에 대한 국민들의 냉엄한 심판이라는 것에 대해서 관점의 일치를 보여주고 있다. 다만 차이점이 있다면, 보수언론은 잃어버린 10년에 대한 회복을 강조하였고, 진보언론은 지난 5년간의 실정에 초점을 맞추는 듯 하다.

중요한 것은 진보 언론에서 나오는 비판 가운데 앞으로의 과제에 대하여 '무엇을 어떻게'가 빠졌다는 것이다. 보수언론은 분배중심의 경제 정책을 성장 쪽으로 이동하고, 대학입시와 부동산 정책에서 시장주의를 확대하자는 확실한 프레임을 갖고 있다. 그러나 진보에서 나오는 비판을 보고 있노라면 무엇을 어쩌자는 이야기인지 도통 알 수가 없다.

당위적으로 진보세력, 즉 민주화 세력이 변해야 한다고 이야기는 하고 있지만, 앞으로 어떻게 변해야 하는 지에 대한 내용을 전혀 언급하고 있지 않고 있다. 혹자는 '노무현 프레임'을 극복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정작 묻고 싶은 것은 '무엇을' 극복해야 하는 가이다.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가 19일 밤 서울 청계광장에서 열린 지지자들과의 행사에서 부인 김윤옥씨의 손을 들어주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가 19일 밤 서울 청계광장에서 열린 지지자들과의 행사에서 부인 김윤옥씨의 손을 들어주고 있다.
ⓒ 최윤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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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 결과를 진단하기에 앞서

선관위 최종 발표에 의하면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의 최종 득표율은 48.67%로 전체 유효투표수 2361만2880표 중 1149만2389표를 획득하였으며, 정동영 후보 26.14%(617만4681표), 이회창 후보 15.07%(355만9963표), 문국현 후보 5.82%(137만5498표), 권영길 후보 3.01%(71만2121표), 이인제 후보 0.68%(16만708표) 순이다.

단순 수치로 비교하면 17대 대선 이전에 민주화 세력이 패배한 대통령 선거로서 가장 최근인 1992년 14대 대선과 비교할 수 있다. 당시 재야세력으로부터 범민주단일후보로 추대되어 명실상부한 민주 진영 대표주자로 출마했던 김대중 후보는 약 800만 표를 획득하였다. 득표율로 따지면 33.37%, 이번 대선에서 범여권후보로 분류된 정동영, 문국현, 이인제 후보의 득표율의 총 합계인 32.65%와 비슷한 수치를 기록하고 있다.

14대 대선에서도 정주영 후보가 출마하여 15%의 득표율을 기록하며 보수표를 분할시켰고, 이는 이번 이회창 후보의 15% 득표율과 유사하다. 다만 당시에는 세력 분류가 어려운 박찬종 후보가 나와서 150만 표를 획득한 것이 특기할만한 사항이다.

그렇다면 역사상 최초의 정권교체이자 조중동이 이야기하는 소위 잃어버린 10년의 시점이자 민주화시대의 개막을 알린 15대 대선에서는 이 지형도가 어떻게 바뀌었을까? 15대 대선에서 김대중 당선자는 직전 대선보다 200만 표를 더 획득하여 약 1000만 표를 얻었고, 득표율은 39.65%였다.

DJP단일화에 외환위기라는 단군 이래 최악의 역사 위기 앞에서 기록한 김대중 후보의 지지율은 직전 선거보다 불과 6.3% 가량의 증가만 있었던 셈이다. 여기서 JP라는 변수를 통해 얻게 된 충청도 표를 떼어놓고 생각하면, 집권진보세력은 정권 교체기에도 극히 미미한 지지율의 상승만을 기록했을 뿐이다. 그것도 IMF 위기라는 천재일우의 기회를 가진 상태에서 이루어진 대통령 선거에서 말이다.

불과 39만 표 차이를 기록한 15대 대선은 김대중 승인의 모든 원인이 결정적인 작용이었다고 할 수 있다. DJP 단일화도 IMF도 결정적 원인이고, 무엇보다 이인제 후보가 영남표를 분할해 준 것도 결정적 원인의 하나였던 셈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2002년 대선에서 약 1200만 표를 획득하여 48.47%의 득표율을 보였다. 97년보다 200만 표가 더 올라갔으니 명실상부한 진보개혁세력의 최고 전성시대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 때 권영길 후보는 100만 표에 육박하는 95만7000표를 얻었다. 노무현의 등장으로 비판적 지지의 악몽을 느꼈다고 하는 민주노동당이 오히려 전무후무한 득표율을 기록한 것이다. 그러나 일찌감치 승부가 결정되어 비판적 지지의 악몽으로부터 벗어난 이번 선거에서 민주노동당은 오히려 득표수가 줄었다. 71만 표를 얻는데 그쳤고, 지지율 역시 3%를 가까스로 넘긴 참담한 결과였다.

지난 2002년 대통령 선거일이었던 12월 19일 밤 당시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와 부인 권양숙씨, 유시민 개혁국민정당 대표, 김원웅 의원 등이 개혁당 당사에서 만세를 부르고 있다.
 지난 2002년 대통령 선거일이었던 12월 19일 밤 당시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와 부인 권양숙씨, 유시민 개혁국민정당 대표, 김원웅 의원 등이 개혁당 당사에서 만세를 부르고 있다.
ⓒ 오마이뉴스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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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권 10년간 민주세력의 파이가 커졌을까

그렇다면, 지난 10년 간 민주세력의 파이가 우리가 느낀 것처럼 국민들 사이에 점차 커졌다고 파악할 수 있을까? 섣부른 판단을 유보하기 위하여 대선 이외에 중간 중간에 있었던 전국 단위 선거를 한 번 살펴보자.

진보세력이 기록적인 득표율을 기록한 2002년 대선 직전인 그해 6월에 실시되었던 지방선거를 한번 살펴보자. 정당 지지율을 그대로 반영하는 비례대표 광역의원 득표율을 살펴보면 제일 정확할 것이다. 아직 분열되지 않았던 국민의 정부 시절 민주당의 득표율은 29%였다. 직전 전국단위 선거에서 채 30%도 얻지 못한 민주당의 대통령 후보가 그해 16대 대선에서는 과반에 육박하는 가장 높은 지지율로 대통령에 당선이 된 것이다.

당시 지방선거는 노무현 후보가 확정되었던 시절이라 엉뚱한 탓을 할 수도 있으니, 그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국민의 정부 집권 중반기이자 역사적인 6.15 공동선언으로 진보세력이 전성기를 구가하던 2000년에 치러진 16대 총선을 살펴보자. 여당인 새천년민주당은 35.86%의 득표율을 기록했고, 한나라당은 38.96%를 기록했다. 당시 영남권 신당이었던 민국당이 출현하였음에도 한나라당은 정당득표율로는 1위를 차지한 것이다.

2002년 대선과 같이 예외적으로 진보세력이 1위를 점한 전국단위 선거는 이른바 탄핵돌풍으로 치러진 17대 총선이었다. 탄핵이라는 한나라당의 자살골로 이루어진 17대 총선은 유일하게 진보세력이 단독으로 과반을 획득하는 기염을 토하였다. 이렇듯 진보세력이 유일하게 단독으로 1위를 한 두 차례의 선거는 모두 노무현의 영향력이 직접 작용하였다.

대표적으로 논리적 파탄에 이른 곳은 민주노동당을 위시한 좌파 세력이다. 그들은 지난 2002년 대선에서 노무현의 선전으로 인하여 사표방지 심리가 생겨 권영길 후보의 지지율이 떨어졌다고 이야기해 왔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믿어왔다. 집권 민주세력이 몰락하면 자신들에게 표가 올 것이라고 내심 기대했을 것이다. 그러나 결과는 참담하였다. 이번 대선에서 권영길 후보의 득표율은 불과 3%, 조직력도 미약했던 문국현 후보의 5.8%에도 한참 못 미쳤다.

다음은 <오마이뉴스> 최경준 기자가 참여정부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유시민 의원과 인터뷰를 기사화한 내용의 일부이다. 이번 대선 패배를 둘러싸고 진보세력 내의 친노와 비노 내지 반노의 미묘한 시각차를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유 의원은 특히 "5년 전 김대중 정부의 국정수행 지지도가 16%밖에 안됐지만 노무현 후보가 승리했다, 여당이 선거에 지면 모든 것이 대통령의 책임이냐"며 "참여정부에 대한 낮은 국정 수행 지지도를 상쇄하고 남을만한 다른 강점을 확보하지 못했던 것도 하나의 패배 원인"이라고 강조했다.(그러나 김영삼 전 대통령의 경우 임기말 IMF 외환위기로 8.4%의 최저 지지율을 기록했고 그것이 정권교체로 이어졌다는 분석이 일반적이다-편집자주.)

유시민은 이번 대선 패배가 전적으로 참여정부의 책임이 아니라는 입장이고, 괄호 안에 병기된 편집자 주는 정부의 실정이 대선 패배로 이어졌다는 세간의 인식을 대표하고 있다. 아마도 편집자는 대통령의 실정이 결정적 원인이라는 주장을 하고 싶어, 인터뷰 기사에 잘 넣지 않는 '편집자주'까지 넣어 자신의 입장을 피력한 것 같다.

그러나 1997년 대선이 진보개혁세력의 일방적 승리였다고 말하기에는 부족한 부분이 너무 많다는 것을 편집자는 애써 외면하고 있다. 또한 사회현상의 원인은 일원론적인 설명보다는 다원론적인 설명이 훨씬 더 설득력이 있다. 97년 진보개혁세력의 승리에는 DJP연합과 이인제 후보의 출현이라는 정치공학적인 요인이 더욱 크게 작용했음을 감안해야 한다. 이를 무시한다면 올바른 분석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선거 패인의 가장 큰 원인은 '지역주의'

선거 결과만을 놓고 분석한다면, 보수 언론이 '잃어버린 10년'이라고 하는 민주화 세력의 집권 기간 동안 진보세력의 파이가 일직선상의 추세를 보이며 성장했다기보다는, 진보세력의 단독 승리가 예외적인 현상이었다고 보는 것이 더 정확하다. 1997년과 2002년의 연속적인 대선 승리가 이러한 착시현상을 가져올 수는 있지만, 적어도 과학적 분석이라고 주장하려면 우리의 착시현상을 뚫고 밑바닥에 존재하는 구조적인 요인을 볼 줄 알아야 할 것이다.

나는 구조적인 요인의 가장 큰 문제를 지역주의라고 생각한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지만, 이번 대선에는 아직도 강고한 지역주의가 작용하고 있었다. 애써 부인하고 있지만, 지역주의는 대통령을 만드는 가장 큰 요인이었다. 정동영 후보는 영남지역에서 10%를 약간 넘는 미미한 득표율을 기록하였다.

호남에서 이명박 후보가 두 자릿수에 육박하는 득표율을 올렸다고 지역주의 퇴색의 의미를 억지로 내세우고 있지만, 차라리 그렇게 따진다면 이전에 영남에서 얻었던 열린우리당 지지율이 더 큰 의미가 있을 것이다. 호남에서 10%에 가까운 이명박 지지율은 강북사람보다 강남사람의 계급의식이 투철하다는 한국적 현실이 조금씩 반영되고 있는 결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진정 지역주의가 퇴색하려면 영남지역에서 정동영 후보나 권영길 후보의 득표율에 유의미한 변화가 나타나야 한다. 정동영 후보의 득표율만 놓고 보자면, 지역주의 퇴조보다는 영남지역의 공단지역에서 호남 출신 노동자들이 차지하는 비율과의 상관관계가 더 정확할 것이다. 지역구도가 사라지는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유의미한 정책 지향적 표로 전환이 되지 않는 한, 국민들의 투표성향으로 선거 결과의 정책적 의미를 끄집어내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지역주의가 살아서 존재한다면 영호남의 인구구도가 근본적으로 바뀌지 않는 한, 진보개혁세력의 집권은 항상 어려운 일이 될 수밖에 없다. 지역주의는 이념적 스펙트럼이 넓은 한나라당이 두 번의 대선패배로도 분열되지 않은 근원이고, 지난 민주세력 집권 10년 동안 한나라당 후보의 대세론이 계속된 근본적 이유이다.

선거 결과 분석은 이쯤 하고 다음 순서인 내용적인 부분으로 들어가자. 참여정부의 실정에 대해서는 좌우가 공히 일치된 견해를 보이고 있다. 파탄이 난 민생경제가 그것이다. 노무현 대통령도 스스로 양극화에 대해서만은 뾰족한 대책을 세우지 못했다고 했으니, 이는 비판을 하는 측이나 받는 측이나 공히 인정하고 있는 분야이다.

노무현이 파탄낸 민생경제? 진보의 대안은?

구체적인 정책으로 들어가면 교육과 부동산이 쌍으로 나온다. 계속된 사교육비 팽창과 폭등한 아파트 값은 참여정부의 대표적인 실정이다. 참여정부의 교육정책은 3불 정책이고 부동산 정책의 핵심은 종합부동산세와 양도소득세 중과이다. 이 정책에 대하여 국민들은 심판을 한 것이다.

당장 이명박 당선자는 크게 든 작게 든 이 정책들을 손보려 할 것이다. 평준화의 틀은 깨어지고, 세금폭탄에 대하여 아우성치는 국민들을 위하여 감세를 추진할 것이다. 언론에서도 가장 많이 바뀔 분야로 교육과 부동산을 꼽고 있다.

실제로야 어떻든 투표 결과로 나온 국민들의 심판은 그러했다. 국민들은 대학평준화와 무상교육, 그리고 토지공개념을 들고 나온 권영길 후보에게 국민들은 전혀 눈길을 돌리지 않았다. 3%의 지지율은 기존에 가지고 있던 조직 표에서 단 한 발자국의 지지세 확장도 이루지 못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만약 이를 두고 민주노동당 지지자가 국민들이 조중동에 속아서 그런다고 강변한다면, 남에게는 지지율 저하가 국민의 심판이라고 비난하고, 자기에게는 다른 잣대를 들이대는 아전인수의 논리적 파탄에 이르게 된다.

나 역시 참여정부의 실정이 이번 대선패배의 한 가지 원인이라는 것에는 전적으로 동의한다. 그러나 극복해야 할 대상을 설정했다고 해서 자연적으로 내용이 채워지는 것은 아니다. 참여정부의 정책이 아니었다면, 그리고 앞으로도 아니라면, 아닌 그 무엇을 진보개혁세력은 국민들에게 말해 주어야 한다. 또한 그것을 국민들에게 설명하고, 설득하고, 지지를 부탁해야 한다.

참여정부를 비판한 다음 자리에서 진보세력은 양극화에 대한 어떤 대안을 가지고 있는가? 구체적인 정책대안이 있기는 한 것인가? 노무현 프레임을 뛰어넘어 국민의 지지를 얻고 다신 정권을 획득할 수 있는 어떤 프레임을 제시할 것인가?

만약에 이러한 질문에 구체적으로 접근한다고, 참여정부보다 정책의 무게중심을 더욱 좌측으로 이동한다면 민주노동당의 프레임에 가까워질 것이다. 그렇게 되면 가시적인 정책과 프레임을 제시할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을 가지고 국민을 설득하고 지지를 끌어낼 자신이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더 자세히 들어가서, 집권세력으로서의 책임이 사라진 것을 발판으로 한미 FTA를 부결시키고 이라크 파병안에 반대하는 모습을 확실히 보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 것이다. 문제는 방향의 옳고 그름을 떠나서 이런 정책으로 국민의 지지를 다시 불러 모을 수 있느냐이다.

희망 섞인 관측이 아니라면 정책의 균형추를 좌로 옮긴다고 해서 국민의 지지가 되살아나지는 않을 것이 분명하다. 국민은 좌파와 신자유주의의 갈림길에서 신자유주의를 선택했음이 이명박 후보의 압도적 당선으로 확실해졌기 때문이다.

양극화의 해법도 마찬가지다. 국민들은 '경제를 살려야 한다'는 이명박 당선자의 주장에 공감을 표시했다. 참여정부가 성장보다는 분배에 중심을 두었다는 조중동의 견해에 국민들은 고개를 끄덕이고 있다. 경제를 살린다는 말에 바닥 경기에 민감한 자영업자들이 이명박 지지의 큰 버팀목이 되었고, 수도권의 아파트 소유자들이 묻지마 지지를 보냈다.

이를 두고 수도권의 신지역주의가 이번 대선의 새로운 특징으로 이야기되고 있다. 지방을 우대하는 지역균형 정책과 급속히 상승한 아파트 값이 어떤 원인을 제공했다고 추측할 수 있지만, 정확한 것은 더욱 세밀한 분석이 필요할 것이다.

참고로 서울지역에서 이명박 후보가 최고의 득표율을 기록한 곳은 압구정동으로 득표율 79%였다. 정동영이 호남에서 얻은 득표율과 엇비슷한 기록이다. 타워팰리스가 속해 있는 도곡2동 제4투표소의 이명박 득표율은 무려 86.4%였고, 정동영은 단 3.3%를 얻는데 그쳤다. 강남의 계급적 투표 성향이 고스란히 드러났다는 분석 이외의 이야기가 끼어들 자리가 없는 사례이다.

이런 상황은 국민들은 '분배'보다는 '성장'쪽에 아낌없이 지지를 보냈다는 것을 잘 알게 해 준다. 양극화의 해법은 사회복지정책의 확충에 있다는 의견은 파묻히고, 과거 박정희 시대의 고도성장에 대한 향수만이 국민들 사이에 남아 있었던 것이다. 이번 대선으로 드러난 국민의 뜻을 그대로 받든다면, 분배보다는 경제성장에 더욱 박차를 가하고 종부세와 양도소득세는 완화해야 할 것이며 고교 평준화는 대폭 손질을 해야 할 것이다.

국민의 선택은 현명하지 않았다

대선이 끝나고 나온 오연호 리포트에서는 이번 대선결과를 국민들의 현명한 선택이었다고 이야기했다. 미안하지만 나는 정치인들이 흔히 이야기하는 위대한 국민의 선택을 믿지 않는다. 국민은 사자이고 호랑이며, 민주화 시대에는 모든 권력을 손아귀에 쥔 서슬 퍼런 임금님이다. 국민의 명령에는 무조건 따라야 한다. 그렇지만 소크라테스가 투표에 의해 죽는 것을 보고 민주정 자체를 부정하게 된 플라톤만큼은 아닐지라도, 언제나 국민의 선택이 옳다는 전제 하에 쓰인 분석기사에 무조건적인 동조를 보내기는 어렵다.

하늘의 노여움보다 무섭다는 민심에 대해 아부할 요량이 아니라면, 국민의 잘못된 선택에 대해서도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한다. 국민들의 선택을 겸허히 받아들여야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우리의 주장을 국민들에게 지속적으로 설득해 나가는 작업을 해나가야 할 것이다.

나는 "노대통령이 (진보세력을 향해서) '성장과 분배의 선순환만 강조하지 말고 구체적인 정책을 나에게 달라'고 했을 때 나는 자괴감을 느꼈다"고 토로한 조희연 교수의 말이 좌파진영의 솔직한 자기고백이라고 생각한다.

노무현의 직설적 화법이 국민적 분노를 일으켰다고 하면, 그래서 그것 때문에 대통령 선거에서 졌다고 하면 마음이 편할 것 같다. 진보세력이 점잖은 말투의 대통령 후보를 내세우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당분간은 노무현식 어법 이상으로 말실수를 할 정치인은 이명박 당선자 이외에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근본적 원인이 아니다.

참여정부의 정책이, 노무현 프레임이 문제였다면 그 이상의 정책적 대안이 무엇인지를 알고 싶다. 이미 권력의 수명이 다한 노무현 대통령을 설득할 필요는 없다. 보수와 진보 사이에서 보수 쪽으로 넘어간 중도에 위치한 국민들을 설득할 수 있는 정책적 대안을 제시하면 될 일이다. 만일 집권이 목표가 아니고 사회의 건전한 비판 세력으로만 남아도 된다면 그럴 필요조차 없다.

노무현의 프레임이 문제였다면

답이 없고 길이 없다. 이번 대선을 통해서만 나온 이야기가 아니라 지난 몇 년 동안 계속해서 나온 말이다. 이렇게 고민하는 진보진영을 향해서 보수 이데올로그들은 이미 끝난 이념을 가지고 국가를 운영하려고 한다는 힐난을 해대는 것이다. 정답은 국민을 설득하는 길 밖에 없다.

학자들은 우리 국민의 이념적 분포를 10으로 놓고 보았을 때 보수가 3, 중도가 4, 진보가 3 정도를 차지하고 있다는 견해에 대체적으로 동의하고 있다. 이 견해에 의하면 나는 가장 왼쪽에 위치한 3 중에서 가장 오른쪽에 속해 있을 것이다. 아마도 내 수명이 다하는 날 때까지 이 위치는 변하지 않을 것이다.

대선패배의 냉혹한 현실 앞에서 나는 진보세력의 재집권을 다시 꿈꾸고 있다. 그 방법은 정책의 균형추를 좌측으로 옮기는 식의 단순한 방법으론 될 수 없다고 본다. 나는 4정도를 차지하는 중도에 위치한 국민들을 설득하려고 한다. 국민을 가르치려 한다는 오만이라고 비난을 받을지언정, 이번 선택이 잘못되었으니 다음 선택은 바뀌어야 한다고 호소를 할 생각이다. 그리고 진보세력은 그들이 선택할 수 있는 매력적인 정책 대안을 만들고 세밀하게 다듬어 나가야 한다. 

진보개혁세력은 유시민이 자신의 저서를 통해 이야기했던 것처럼 주상인 국민 앞에서 눈물로써 직언을 하고 상소를 올려야 한다. 집권경험이 있는 민주세력이 모두 국민 앞에 엎드리는 것이다. 그리고 눈물로써 호소를 하는 것이다.

국민 전하! 통촉하시옵소서.
지역주의에서 벗어나셔야만 하옵니다.
조중동이라는 간신들의 의견을 물리치셔야 합니다.
극단적인 신자유주의는 아니 되옵니다.
종부세를 폐지하고, 평준화를 흔들게 되면 나라의 근본이 흔들리옵니다.


국민에게 내년 총선에서 사약(낙선)을 받을지언정, 개혁세력이 마지막까지 직언하는 자세를 보고 싶다. 진정 필요로 한다면, 죽어서라도 어디선가 꽃으로 피어날 날이 있을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오독이 있을 것 같아 부연하자면, 지나간 과거에 대한 평가가 아니라 다가올 미래에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을 담은 글입니다.



태그:#대선, #노무현, #진보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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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에서 사회를 가르치고 있다. 저서로는 <고등어 사전(메디치미디어)>, <나의 권리를 말한다(뜨인돌)>, <세상을 보는 경제(인포더북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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