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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내가 말이다. 해동띠기 그 챔빗째이한테서 옷을 다 얻어 입었다 아이가.”
“아니. 해동아지매가 어머니한테 옷을 해 줬어요?”
“내가 그 집 사돈네 대가 끈킬라 카는걸 보고 아들 녹케 해 줬거등.”


어머니가 남의 집 대를 이어줬다니 이게 무슨 말인가 싶어 섬뜩한 생각이 스쳤다. 한 순간이지만 내가 긴장한 것은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다. 어머니는 언젠가부터 전혀 다듬지 않고 옛일들은 생각나는 대로 말씀하시기 시작했다. 아버지와의 성생활마저 적나라하게 털어놓으셨다. 표현도 노골적이었다. ‘올라탔다, 쑤셔댔다’ 등등.

 

이뿐만이 아니다. 동네 바람둥이가 누구였는지, 누가 의심스런 아이를 낳았었는지 믿을 수도 없고 안 믿을 수도 없는 이야기를 눈치 안 보고 하시곤 했기 때문에 어머니가 남의 집 대를 이어주셨다고 하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내가 만든 책 '요즘 할머니들의 유행'을 읽다말고 해 주신 어머니의 이야기는 환상소설에나 나옴 직한 것이었다. 내가 만들어 드린 노화(老話)는 천연옷감이 소재가 된 것으로 무심코 고향마을 해동 댁을 등장인물로 삼은 것인데 이것이 우연찮게도 어머님에게는 50여년을 뛰어넘어 옷과 해동 댁에 얽힌 흥미로웠던 옛 기억을 불어오는 촉매제가 된 것이다.

 

이야기 요지는 이렇다. 해동 댁 셋째 딸이 시집갔는데 내리 딸만 둘 낳았다가 세 번째 임신을 했다고 한다. 시댁에서는 “이번에도 딸이면 후차 내삔다”고 해서 친정집에 온 딸이 밥도 안 먹고 사흘 밤낮을 울다 보니 눈이 퉁퉁 부었더라는 것이다.

 

자초지종을 전해들은 어머니가 해동 댁 셋째 딸 배를 한번 만져보고는 “아들이네. 그것도 둘이네. 쪽끼 날 걱정 업승께 맘 놔”라고 해 줬더니 진짜 아들 쌍둥이를 낳았다는 것이다. 어머니 표현을 빌리자면 이렇다.

“퉁퉁한 아들을 항 개 놓고 사흘 있다가 또 항 개 더 농기라. 그랑께 내 말마따나 둘 농기지.”

 

해동 댁이 아들만 낳게 해 주면 옷 한 벌 해 주겠다고 했었는데 아들을 둘이나 한꺼번에 낳으니까 옷도 두벌을 해 주셨다는 것이다. 그 다음 이야기가 재밌다.


“이번에는 해동띠기 막내아들이 장가를 갔는데 며느리가 아를 뱅기라. 나한테 와서 묻대. 이번에는 뭐냐고.”


어머니 이야기 속에 홀랑 빠져든 나는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물었다.

 

“머락 켔는데요?”
“머락카긴 머락캐. 아들 아니면 딸이고 딸 아니면 아들일 끼라고 캤지. 그란데 이번에도 딱 마충기라. 내 말대로 딱 마증기라.”
“뭔데요?”
“아들!”

 

나는 배꼽을 잡고 웃었다. 어머니는 시치미를 떼고는 “이번에는 해동띠기가 속케 논 풍덩한 우아기 하나를 해 주대”라고 하셨다.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디까지가 지어 낸 이야기인지 구분 할 수가 없었다. 내가 하도 웃어 대니까 신이 난 어머니가 이야기를 더 이어 가셨다.

“처음에는 딸을 나았는데 몇 년 키우다 봉께 이기 아들로 변했능기라. 우아기는 그때 가서 얻어 입응기지.”


“키우다 보니까 딸이 아들로 변했어요? 하하하”

덧붙이는 글 | 챔빗째이 : 참빗장이. 참빗으로 훑듯이 깍쟁이라는 말.


태그:#치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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