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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빙을 한다고 하면 사람들의 첫 번째 질문은 대개 "몇 미터나 들어가시나요?" 혹은 "들어갈 수 있나요?"이다. 그 질문의 시점이 겨울이면 그 다음의 질문은 "겨울에도 들어가나요?"가 어김없이 나온다.

 

겨울에도 물속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은 다이빙마니아들에게는 그야말로 축복이다. 물은 육지 기온과 비교하면 온도 차가 그리 크지 않다. 사하라나 시베리아와 같은 온도의 차가 발생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물속에서 생활하는 생물들에게 수온은 가장 민감한 삶의 조건이다. 단지 영점 몇 도의 차이도 그들에겐 큰 영향을 준다.

 

다이버들도 마찬가지다. 물에 떨어져 하강을 하다 보면 물이 층을 형성하고 있고 또 그 층마다 수온이 조금씩 차이가 나는 지역을 발견하는 수 있다. 그러니까 수면에서 수심 5m를 내려갈 때까지는 황토가 섞인 누런 물이었다가 그 아래에서 12m까지는 맑은 물, 그리고 다시 바닥까지는 부유물 때문에 앞이 안 보이고…. 이런 식으로 그 층이 있고 그 층마다 조금씩 수온의 차이가 난다. 그 수온의 차이를 다이빙게이지가 알아차리기 전에 다이버들이 먼저 안다. 둔한 나도 영점 몇 도의 차이도 대번에 알 수 있을 정도였다. 또 그렇게 층을 지어 있는 물들이 서로 다른 방향으로 흐르는 일도 있을 수 있는 것이다.

 

차가운 바닷물에 언 몸, 차가운 민물로 녹이다

 

겨울다이빙의 묘미는 춥다는 데 있다. 칼바람이 치는 바닷가에서 하얗게 부서지는 파도를 가르며 포인트에 도착해 날세운 것 같은 시퍼런 바다로 뛰어들면 목덜미를 선뜩하게 하는 차가운 바닷물이 슈트 속으로 파고든다. 그때 그 몸서리쳐지는 신선함은 중독성까지 가지고 있다.

 

내가 처음으로 겨울바다에 들어가던 시절만 해도 드라이 슈트는 아예 찾아 볼 수 없었다. 모진 바닷바람을 맞으며 겨울바다 속으로 뛰어들어 두 탕을 하고 육지로 돌아오면 온몸은 얼어서 감각이 없었다. 물속에서는 차라리 따뜻하다. 물위에 올라와서 겨울을 실감하는 것이다. 젖은 몸 위로 스치는 겨울바다 바람은 온몸을 서서히 얼려버린다. 그러나 아무리 추워도 육지에 상륙하고 나면 다시 민물로 몸을 헹궈야한다.

 

그 언 몸 위로 다이빙 선배들이 퍼부어주던 차가운 민물. 그러면 신기하게도 온몸이 따습게 녹아가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선배들은 말했다.


"이것이야말로 물의 본성을 거스르지 않은 본질적인 신선함이지…. 푸하하."


그 때는 우리도 잔뜩 긴장해서, 본질이고 나발이고 하며 투덜거렸지만 그것은 온수가 줄 수 없는 효과적인 몸 풀기를 가져왔다. 물론 지금은 거의 모든 리조트가 온수시설을 설치해 다이빙 후 항상 따뜻한 물을 쓸 수 있다. 그러나 그 시절을 겪은 우리는 아직도 찬물의 따스함을 피부깊이 기억하고 있다.

 

그래서 처음부터 겨울에도 웻 슈트(습식잠수복, 물이 옷과 몸 사이로 들락거리는 잠수복)에 길들여진 사람들은 그 신선한 맛을 잊지 못해 드라이슈트(건식잠수복, 물과 몸이 직접 맞닿지 않는 잠수복)로 바꾸고 난 뒤에도 한 번씩 습식잠수복을 입고 싶어지는 것이다.

 

또 습식의 복장이 간편하기 때문에 물속에서 행동도 훨씬 자유롭다. 더불어 물과의 직접적인 스킨십으로 인해 자신이 겨울 다이빙을 한다는 것을 그야말로 온 몸으로 체험 할 수 있다. 차가운 물을 뒤집어쓴다는 것은 겨울다이빙을 한다는 기쁨을 온몸으로 맞아들이는 것이다. 그리고 또 겨울다이빙의 백미 아이스다이빙이 있다.

 

여름과는 비교할 수 없이 여유로운 겨울다이빙

 

물속의 계절은 육지의 계절보다 한 템포씩 늦다. 바깥이 여름이라면 물속은 아직 봄이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겨울은 아직 가을이라는 말이다.

 

아무리 겨울에 다이빙을 할 수 있다고는 해도 우리 겨울바다는 여름에 비해 한적하기 이를 데 없다. 그래서 겨울다이빙이 더욱 새로운 것이다. 처음 겨울다이빙에 들어갈 때는 약간의 두려움도 있었지만 우리는 곧 겨울 다이빙에 빠져들었다. 확 트인 시야 속 겨울바다는 마치 살얼음을 뚫고 들어가는 듯한 묘한 기분을 들게 한다.

 

한적한 겨울바닷가는 여름의 번잡한 바다에 비해 사람값을 한껏 올려놓아서 다이빙 숍으로부터도 여름보다는 한결 묵직한 서비스를 받을 수 있으며 가는 곳마다 여유 있게 모든 일을 진행할 수 있다. 배를 타기도 여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여유로웠다. 바깥이 여유로우니 바다 속도 여유로울 수밖에 없는 것이다.

 

물론 겨울바다는 거칠고 황량하다. 기상의 변화가 심한 것이다. 서귀포 문섬 겨울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찾는 사람이 없는 겨울바다는 조용하고 그런 바다에 몇 명이 모여 있으면 바다 전체를 전세 낸 것 같은 특별한 감정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야, 학생들,  물결을 타라 물결을, 리듬을 타라 말이다"

 

한 번은 서귀포의 한 숍에서 서울 K대 스쿠버 동아리에서 동계훈련을 온 대학생들과 같이 다이빙을 하게 되었다. 마침 우리 일행 4명 외에는 다른 손님이 없던 터라 학생들의 출현은 우리의 다이빙에도 생기를 불어넣었다.

 

그날의 다이빙 포인트는 새 섬 앞이었다. 새섬은 서귀포 항을 살짝 둘러싸서 천혜의 방파제 역할을 하는 바위섬이다. 아침부터 날씨가 흐리더니 우리가 섬에 도착해서 다이빙을 시작할 때 쯤 엔 바람이 불고 눈발이 실실 날리기 시작했다. 

 

첫 번째 탕을 마치고 떠올랐을 때, 바다는 더욱 거칠어져 있었다. 학생들은 훈련을 한다고 스킨 복장으로 바다에 뛰어들어 파도에 이리저리 휩쓸리고 있었다. 여학생도 몇 명이 보였다. 아무래도 날씨가 심상치 않아 보여 우리가 걱정이 되어 말했다.


"야, 학생들, 그만하고 빨리 올라가라, 잉."


학생들이 새섬의 절벽 쪽으로 붙었지만 파도가 장난이 아니었다. 바가지에 든 물을 이리저리 흔들어대는 것처럼 파도는 절벽을 2~3m씩 할퀴며 오르락, 내리락 거렸다.

 

학생들이 물결을 타지 못하고 허둥대고 있었다. 파도가 최고조로 올라갔을 때 학생들이 절벽을 붙잡았으나 파도가 바로 빠지면서 자신의 체중을 감당하지 못한 학생들이 바위를 붙잡고 미끄러지며 비명을 질렀다.

 

우리 역시 올라갈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학생들은 맨몸이었지만 우리는 장비를 지고 있었다. 그러나 우리가 문제가 아니었다. 한 여학생이 급한 마음에 절벽을 잡았으나 금방 미끄러지며 바위에 다닥다닥 붙어 있는 날카로운 따개비와 거북손의 껍질, 바위 날에 긁혀 심한 상처를 입었다. 학생들 사이에 공포감이 번졌다. 행동은 더욱 급해졌다. 새섬의 바위위에서 손이 닿지 않아 학생들을 끌어올리지도 못하고 말로 지시를 내리던 팀의 리더도 당황하기 시작했다.

 

"야, 학생들,  물결을 타라 물결을, 리듬을 타라 말이다, 리듬을, 깝치지 말고 슬슬해라."
우리는 고함을 질렀다. 우리가 겪었던 일들이기 때문이었다.


"앉을 자리부터 봐 놓아 놨다가 물이 최고로, 이빠이(이 말도 썼다), 올라갔을 때 물결을 타고 올라가서 궁딩이를 퍼떡 돌아 안자뿌라, 알겠제?"

 

 

서울 학생들이라, 될 수 있으면 서울말로 하려고 노력했지만…. 우리는 고함을 지르면서 한 사람 한 사람 올라갈 때마다 다음에 할 행동을 후렴처럼 부쳐줬다. 파도소리와 고함소리에 새섬 앞이 떠들썩했다.

 

여학생들이 다 올라가고 남학생들이 올라가고 있을 때 우리를 바다에 던져 넣었던 배가 다시 우리를 건지러 왔다. 그러나 배에 올라가는 것도 쉽지 않았다. 배가 파도에 휩쓸리며 심하게 기우뚱거리는 바람에 배에 접근하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한 시간여의 사투 끝에 배로 올라 탄 우리들은 항구 안으로 들어와 눈발이 핑핑 날리고 있는 새섬으로 올라갔다. 다친 여학생은 리더가 병원으로 데려 갔고 이제 막 올라온 학생들이 임시로 피워놓은 모닥불 옆에 둘러서 있었다. 모닥불 위에는 주전자가 올려져 있었고 불속에는 소라 몇 마리가 찌직 거리며 익고 있었다. 나는 그처럼 맛있는 커피와 소라를 먹어 본 적이 없다.


태그:#겨울바다, #문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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