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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통영시의회(의장 김용우)가 시민단체와 친일혐의를 받고 있는 유치환(청마, 1908∼1967)과 관련된 학술토론회를 연 뒤 기념사업 예산을 처리하기로 약속해 놓고 지키지 않아 비난을 받고 있다.

 

통영시의회는 지난 18일 집행부가 제출한 2008년도 일반·특별회계 세입·세출예산(안)을 처리했다. 이날 통과된 예산에는 ‘유치환 탄생 100주년 기념사업’ 지원비도 포함되어 있다.

 

집행부는 지원비로 1억1000만원을 신청했으나 시의회는 1000만원만 삭감했다. 시 예산 1억원은 2008년 통영예총·통영문협에서 주최하는 ‘깃발축제’의 재정으로 충당될 예정이다.

 

통영시의회는 ‘깃발축제’ 예산을 처리하면서 시민단체와 했던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김용우 의장은 지난 11월 22일 3·1동지회 통영지회와 전교조 경남지부·통영지회, 열린사회희망연대, 천주교정의구현마산교구사제단 등으로 구성된 ‘유치환 기념사업 반대 시민연대’ 대표들을 만난 자리에서 예산 처리 전 학술토론회 개최를 약속했던 것.

 

시민연대는 이날 통영시청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시의회를 방문해, 김 의장을 만나 이같은 약속을 받아냈다. 그런데 통영시의회는 ‘선 토론회·후 예산심의’ 약속을 지키지 않고, 지난 12일 예산을 처리해 버린 것이다.

 

예산은 이미 처리 ... 학술토론회 29일 예정

 

학술토론회는 오는 29일 오후 2시 통영 소재 경상대 해양과학대 강당에서 열린다. 이날 토론회는 통영시와 통영시의회가 주최하고, <통영신문>과 <한산신문>이 공동주관한다.

 

통영예총·통영문협은 유치환의 친일 혐의를 인정하지 않고 있으며, 시민연대는 친일혐의가 있다고 보고 있다. 이날 토론회는 양측에서 내세운 각각 3명의 학자들이 나와 발제와 토론을 벌일 예정이다.

 

통영예총 측에서는 홍정선 인하대 교수와 김열규 서강대 명예교수, 소설가 복거일씨가 나오며, 시민연대 측에서는 박태일 경남대 교수와 김재용 원광대 교수, 박한용 민족문제연구소 연구실장이 나온다.

 

시민단체 "시의회 의장이 시민단체 농락"

 

통영시의회가 ‘선 토론회·후 예산심의’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시민연대 측이 반발하고 있다.

 

김영만 시민연대 대표는 “시의회 의장이 시민단체를 농락한 것이다. 우리는 완전 농락당했다. 토론회를 열 시간을 고의적으로 끌다가 예산안 처리 시한을 이유로 처리하고 말았다”면서 “당초 토론회에서 나온 이야기를 시의원들이 듣고 예산안을 처리하는 게 목적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시의회가 처음부터 시민단체의 의견을 들을 생각이 없었던 것이며, 결과적으로 장난을 친 것이다. 예산안을 처리한 마당에 토론회는 무의미하다. 토론회를 열 목적 자체가 없어진 셈이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그는 “토론회를 열었을 때 양측 주장만 하고 말 공산이 크다. 상대측 의견을 듣지 않으려고 할 것이다. 이런 식이라면 토론회는 필요 없다”면서 “토론회는 장소와 시기가 맞아야 하는데, 이번 토론회는 그것들이 맞지 않다”고 덧붙였다.

 

민족문제연구소 서부경남분회 회원인 장장천씨는 “어떻게 보면 테러며, 통영시민을 우롱한 것이다. 예산 처리에 반대하면서 기자회견을 열고 시의회와 토론회를 약속했던 것인데, 예산안을 먼저 처리해 버렸다는 것은 도리가 아니다”고 말했다.

 

장씨는 “하지만 현재로서는 토론회를 할 것 같다. 유치환과 관련된 일은 통영지역의 일이면서도 민족사적인 일이다. 시민들이 보는 데서 토론회를 열어 유치환의 친일성을 드러낸다는 의미도 있다”고 덧붙였다.

 

박한용 민족문제연구소 연구실장은 “유치환은 우리나라 현대시를 대표하는 시인이라는 사실에는 이견이 없지만, 유치환의 행적은 논란이 된다. 그런 논란에 대해 시시비비를 가리지 않고 섣부르게 사업을 추진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말했다.

 

박 연구실장은 “마산의 경우 몇해 전 친일 혐의를 받고 있는 조두남의 이름을 딴 ‘조두남 음악관’을 지으려다 시민단체의 반발을 받고 ‘마산 음악관’으로 바뀐 적이 있다. 해당 기관들이 사업시행에만 급급해 예산안을 처리하고 기념사업을 연다면, 유치환도 조두남과 같은 일이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

 

그는 “지역에서 유치환을 신격화 해 나가는 것은 지역의 패권적 풍토가 결합된 것으로 유감이다”면서 “더군다나 예산을 통과시켜 놓고 나서 토론회를 하는 것에 대해 우려가 된다”고 말했다.

 

통영시의회 "시의회 절차상 처리하지 않을 수 없어 ... 일부 삭감"

 

이에 대해 김용우 의장은 “시민단체와 그런 약속을 했던 것은 맞다. 하지만 토론회를 추진하다가 여러 사정으로 미루어졌고, 시일도 촉박했다. 예산은 통영예총의 요구도 있고 해서 해당 상임위원회에서 안해 줄 수도 없는 입장이었다. 시의회 절차상 예산안을 처리하지 않을 수도 없었다. 논의 끝에 일부 삭감했다”고 말했다.

 

김 의장은 “청마가 친일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 청마는 친일인명사전 수록 대상자 3000명의 명단 속에 아직 들어가지 않았다”면서 “기념사업 예산을 승인해 준 것에 대해, 친일이라고 주장하는 쪽에서 반발할 것이라고 예상은 했었다”고 말했다.

 

통영시청 관계자는 “토론회를 한다고 해서, 친일이라고 주장하는 측은 친일이 아니라는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고 그 반대측 역시 마찬가지로 보인다"면서 "학술토론회가 판결처럼 결론이 나는 것이 아니기에 어차피 평행선을 달릴 수밖에 없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덧붙여 그는 "학술토론회와 관계없이 기념사업을 하겠다는 것"이라며 "친일 논란은 평행선을 달릴 것인데 언제까지 기다릴 수 없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내년 초에 추진위원회를 구성해 구체적인 기념행사를 확정짓고 추진할 것 같다"고 밝혔다.

 

문광부, '유치환 추념 편지쓰기대회' 예산 지원 중단

 

유치환과 관련된 친일 혐의 논란은 2004년에도 불거졌다. 통영문협에서 통영 출신인 유치환이 시조시인 이영도 앞으로 5000여 통의 편지를 보내면서 이용했던 통영우체국(현 통영중앙우체국)을 '청마우체국'으로 바꾸어야 한다면서 이때부터 '편지쓰기대회'를 열었던 것.

 

당시 편지쓰기대회에는 문화관광부에서 예산을 지원했었는데, 경남지역 시민단체들이 문제제기를 해 다음해부터 중단되었다. 당시에도 학술토론회를 열자는 제안이 있었지만 시민단체와 통영시가 합의하지 못해 열리지 못했다.

 

박태일 교수는 지난 10월 말 유치환이 1942년 2월 <만선일보>에 발표한 ‘대동아 전쟁과 문필가의 각오’라는 제목의 산문을 찾아내 공개해 관심을 끌었다. 유치환은 이 글에서 “오늘 대동아전(大東亞戰)의 의의와 제국(帝國)의 지위는 일즉 역사의 어느 시대나 어느 나라의 그것보다 비류 없이 위대한 것”이라고 해놓았다.


태그:#유치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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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부산경남 취재를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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