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촘롱(Chhomrong 2170)에서 톨카(Tolka 1700)까지


[경로] 촘롱(Chhomrong 2170)-지누단다(Jinudanda 1780)-뉴브릿지(New Bridge 1340)-란드룩(Landruk 1565)-톨카(Tolka 1700)

 

나야풀에서 트레킹 8일째, 10월 27일.


어제 너무 오래 걸었다. 다리가 뻣뻣하다. 롯지 마당 빨랫줄에 걸어둔 운행복(운행복이라고 해서 특별한 건 아니다. 나는 9일 간의 트레킹 내내 한 벌의 바지와 두 벌의 티셔츠만으로 걸었다)은 아직 축축하다. 땀이 완전히 마르지 않았다. 그래도 상관없다. 어차피 걷다 보면 마른다. 먼저 일어난 옆방의 케리가 예의 밝은 목소리로 아침인사를 날린다.


“굿모닝~!”
“굿모닝, 케리. 오늘 기분 어때?”
“난 아주 좋아. 근데…. 조용! 아직 엘런이 자고 있어. 어제 많이 힘들었나 봐.”

 

 

엘런의 포터가 란드룩에 혼자 왔다

 

나는 카스타드 푸딩으로 아침을 간단하게 해결한다. 미국인 아가씨들의 준비가 늦어진다. 내가 먼저 출발한다. 언제나 그랬듯 오늘 아침도 날씨는 무척 좋다. 희한한 건 여기 안나푸르나 산군 주변 날씨는 오전부터 오후 1~2시까지는 아주 맑다가 오후 3~4시가 넘으면 잔뜩 흐려지거나 안개가 몰려온다. 이번 트레킹 내내 그랬다. 계속 내리막길이다. 아주 쉬운 길이다. 주변 경치도 좋고, 바람도 상쾌하다.

 

“저게 뉴브릿지(New Bridge 1340)야.”


먼이 가리키는 손가락 끝이 계곡 저 아래 제법 긴 출렁다리 하나와 닿아 있다. 말 그대로 놓인 지 얼마 되지 않은 다리인 듯. 길이는 한 60~70m 정도. 여기 안나푸르나에서 지금까지 본 다리 중에서 가장 깨끗하고 길다. 다리 끝에 표석이 하나 있다. 이 다리를 만들 때 돈을 낸 기부자의 이름과 기부금액이 거기에 빼곡히 적혀 있다.


다리를 건너 얼마나 걸었을까. 란드룩(Landruk 1565) 닿기 직전 나는 엘런과 케리의 포터를 만났다. 두 미국인 아가씨의 짐을 지고 있는 그는…, 혼자였다.

 

 

“엘런과 케리는?”


엘런의 포터는 내 질문에 우물쭈물 대답을 하지 못한다. 네팔말로 다시 물어본 먼이 내게 대신 대답한다.

 

“모르겠데. 그 두 사람을 어디선가 잃어버렸데.”
“뭐?”


하! 이거 무슨 개 풀 뜯어 먹는 소린가. 물론 포터는 트레커들과 함께 보조를 맞출 필요는 없다. 그저 짐만 나르면 된다. 그러나…, 그렇다 하더라도 이 경우는 좀 어이가 없다. 이 포터는 지금 두 사람, 여성 트레커의 행방을 모르고 있다. 지금 어디쯤 있을 거라는 추측도 없다.

 

“엘런과 케리는 어디 갔지?”

 

나는 먼에게 영어로 묻고 먼은 내 말을 엘런의 포터에게 네팔말로 전한다. 그렇게 징검다리 통역을 한다.


“먼, 어떻게 된 거야?”
“이 친구가 촘롱에서 먼저 출발했나 봐. 이 친구 말로는 아마 엘런과 케리는 온천(hot spring)에 들렀을 거라고 하네.”

 

 

뉴브릿지와 란드룩 사이에 온천이 있다는 건 나도 들어서 알고 있다. 여기 오기 전에 먼이 나에게도 온천에 갈 거냐고 물었다. 어쨌든 엘런의 포터는 촘롱의 롯지를 나서면서 한 번도 엘런과 케리를 보지 못했다는 말이다. 이건 말이 안 된다. 나는 엘런 일행이 설사 온천에 들렀다가 여기 란드룩에 온다고 하더라도 포터는 우선 이들의 행방을 파악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글쎄…. 내 생각에 이 친구는 왔던 길을 다시 되돌아가서 엘런과 케리를 찾아야 해. 먼, 네 생각은 어때?”


먼도 내 말에 동의한다.

 

“나도 그렇게 생각해. 하지만 지금은 점심시간이니까 여기 란드룩에서 점심을 먹게 하고 엘런 일행을 찾아보라고 말할게.”

 

 

란드룩의 한 롯지에서 점심을 먹은 후 엘런의 포터는 남겨지고, 나는 다시 톨카(Tolka 1700)를 향해 걷는다. 그는 이제 엘런과 케리를 만나서 톨카까지 가야 한다.


내가 톨카에 도착한 시각은 오후 2시. 여기 롯지는 따뜻한 물 샤워는 당연히 기대할 수 없다. 다행히 아직은 한낮이다. 게다가 막 땀을 흘린 뒤라 찬물 샤워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샤워를 끝낸 후 나는 젖은 수건과 함께 운행복을 모두 벗어 마당 빨랫줄에 걸어둔다.

 

마당 테이블에 앉아 따끈한 생강차를 마신다. 나는 트레킹을 하면서 샤워를 마친 후 따뜻한 차 한 잔 할 때를 즐겨왔다. 이때만큼은 나에게 아주 여유로운 시간이다. 롯지 마당에서 차를 마시며 산책을 하거나 책을 읽는 시간. 저녁 먹기 전까지 이어지는 이 시간이 나에게 그 어떤 때보다 소중하다.

 

 

“프리티, 네가 가서 엘런의 포터를 데려와야겠다”

 

그런데 이때, 거짓말처럼 그녀들이 도착했다. 엘런과 케리가. 그들 역시 그들의 포터를 잃고 터덜터덜 걸어오고 있었다. 달랑 소형 배낭 하나씩 짊어지고. 그러나 이들은 역시 천성이 밝은 듯하다. 나를 보더니 반가운 호들갑을 떤다.


“동욱, 이제 우린 아무것도 없어. 침낭도 없고, 옷도 없어.”

 

엘런의 말은 절망적이지만 얼굴은 웃고 있다. 엘런의 말을 받은 케리는 한 술 더 뜬다.


“그래도 괜찮아. 우린 행복해. 여기 스카프가 있고 또…, 이렇게 성경책도 있어.”

 

흐흐흐. 감동적인 긍정 마인드다. 이들은 자신들의 포터가 포카라까지 갔을 거라 생각하고 있다. 물론 이들은 여기 오는 도중에 온천에는 들르지 않았다. 일단 자신들도 포카라까지 가야겠지만 지금 주어진 현실에서 최선을 찾고 있는 거다.


“샤워해야겠다. 동욱, 이 수건 네 거니? 나 좀 써도 돼?”

 

케리가 마당 빨랫줄에 걸어둔 내 수건을 빌려달란다.

 

“물론, 써도 되지만 젖어 있을 텐데….”
“상관없어. 고마워!”

 


재미있는 아가씨들이다. 나는 먼을 불렀다.

 

“먼, 엘런의 포터는 란드룩에 있을까?”
“아마 그럴 거야. 그는 거기서 엘런과 케리를 기다리고 있을 걸.”
“그럼, 프리티를 그리 보내서 그를 데리고 오게 하자.”

 

오후 3시 30분. 나는 좀 전에 우리가 점심을 먹었던 란드룩으로 내 포터 ‘프리티’를 보냈다. 프리티 역시 엘런과 케리의 처지가 딱하던 차였다. 밝고 긍정적인 프리티는 활짝 웃으며 계곡을 내려간다.


“엘런, 케리. 먼의 얘기로는 너희들 포터는 아직 란드룩에 있을 거래. 너무 걱정 마. 프리티가 곧 너희들 포터를 데려올 거야.”
“글쎄…. 만날 수 있을까?”

 

그렇게 우리는 차를 마시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데…. 오후 4시가 좀 지났을까. 저 멀리 돌계단 아래에서 프리티의 휘파람 소리가 들린다. 이윽고 프리티의 모습이 보인다. 프리티는 란드룩까지 그야말로 나는 듯이 뛰어갔다 온 모양이다. 프리티 뒤에 엘런과 케리의 포터가 쭐래쭐래 따라오고 있다.


“우와! 프리티. 고마워. 고마워 프리티!”

 

정말 감격한 듯, 엘런과 케리는 마치 지옥에서 구세주를 만난 표정이다. 상당히 과장된 몸짓으로 프리티에게 고맙다는 말을 연발한다.


‘이거 참…. 정작 고맙다는 말은 내가 들어야 되는 거 아닌가?’

내일 나는 페디까지 내려간 후 거기서 택시를 타고 다시 포카라로 들어간다. 그러면 나의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 트레킹은 끝이 난다. 저녁을 먹은 후 침낭으로 들어간 나는 달라이라마의 <용서>를 마저 읽었다. 오늘은 잠이 잘 올 것 같다.

 

여행 메모


1) 뉴브릿지(New Bridge 1340)에서 란드룩(Landruk 1565) 가기 전 온천이 있다. 나와 같은 코스의 트레킹을 한 트레커들은 여기서 온천욕을 즐기기도 한다.

 

2) 거듭 말하지만 포터는 트레커들과 보조를 맞추지 않는다. 포터는 말 그대로 짐꾼이므로 트레커의 짐을 다음 목적지까지 옮기기만 하면 된다. 여기서도 엄밀히 따지면 엘런과 케리의 포터가 잘못한 건 없다. 다만, 나는 엘런과 케리는 여성 트레커이므로 이들의 포터가 이 두 사람을 좀 더 배려해주기를 바랐다.

 

3) 트레킹은 보통 오전 8시 전에 길을 나서고, 늦어도 오후 3시 전에 숙소에 도착한다. 해가 있을 때 도착해야 오후 시간이 넉넉하고, 다음 날 트레킹 계획을 세울 여유가 있다.

 

4) 길을 걷다 보면 꽃 목걸이 등을 만들어 든 3~4명의 네팔 어린이들이 길을 막고 춤을 추거나 노래를 부르는 걸 볼 수 있다. 트레커들에게 약간의 돈을 요구하는 것. 트레커들 중에는 도망치듯 그곳을 빠져나가거나 화는 내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내 생각에는 그냥 웃으며 10루피 정도 주는 게 어떨지.


태그:#네팔, #안나푸르나, #트레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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