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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무원 생활을 30년 넘게 하면서 별의별 소리를 다 들어봤다. 자동차세를 체납한 차량의 번호판을 새벽 찬이슬 맞으면서 떼고 있을 때 자동차 주인이 내 뒤통수에 대고 '전두환이 추징금은 받아내지도 못하는 놈들이 그까짓 거 세금 몇 푼 안냈다고 생계 수단인 자동차의 번호판을 떼어 가느냐?'며 소리를 지를 땐 쇠파이프나 망치가 날아들 것 같아 뒷덜미가 서늘하기도 했다"

 

"주변의 친구들이나 민원인들과 얘기를 나누다보면 벌써부터 우스갯소리처럼 이런 얘기가 나온다. 대통령 당선자가 위장전입하고 세금 안냈다가 들통 나자 '내면될 것 아니냐?'고 말한 것에 빗대 '대통령 당선자도 탈세했다가 들켜서 냈는데 우리 쥐어짜지 마라. 들키면 낼 테니'라고 한다. 이것이 현실이 되면 모든 공무원들 업무 전폐하고 세금 추징하는 데 매달려야 할지도 모른다. 성실하게 납세의 의무를 다하는 국민들이 있기에 나라가 운영되는데 공직을 어찌 수행해야 할지..."

 

'차기정부에 바란다'는 입장을 듣기 위해 몇몇 지방공무원들을 만난 자리에서 나온 반응이다. 나라를 몸에 비유하면 지방 공무원들은 실핏줄과 같은 역할을 하는 존재다. 시군 읍면동은 물론 마을 단위까지 행정의 손길이 미쳐 민심과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기 때문이다.  

 

농촌 지역에선 지방 공무원들이 여론을 주도하는 오피니언 리더의 역할을 하고 있다. 이 때문에 마음을 정하지 못한 유권자들은 안면이 있는 공무원에게 "누굴 찍어야 하느냐"고 묻기도 한다. 과거 정권에선 공무원들을 대선이나 총선에 동원해 관권선거를 자행하기도 했다. 또 정권을 유지 시키는 데 하수인으로 부리기도 했지만 지금은 사뭇 다른 모습으로 변해 있다.

 

진정한 지방분권, 대화와 타협 통해 공감하는 정책 펴야

 

 

"우선 그동안의 사이비 민주평화세력, 사이비 좌파정권에서 벗어나게 됨을 다행으로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그보다 더한 보수 세력이 준동하지 않을까 걱정이 된다."

 

차기정부에 바라는 입장을 묻자 지방공무원인 이기성(52·가명·행정6급)씨 입에서 나온 첫마디다. 이씨는 지난 정권을 향해 "참여정권은 말로는 참여를 외쳤지 국가를 이끌어 가는 데 한 축을 담당하는 공무원들과 전혀 대화 없이 밀어붙이기로 일관했다"며 포문을 열었다.

 

이씨는 "현 정부에서 시행한 총액인건비제가 대표적인 사례라고 볼 수 있다"며 "이 제도의 겉모습은 지방정부의 단체장에게 권한을 대폭 위임한 것처럼 포장돼 있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중앙집권을 더욱 강화하는 제도로 전락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총액인건비제는 예산 당국은 각 행정기관별 인건비 예산의 총액만을 관리하고, 각 행정기관이 인건비 한도에서 인력의 규모와 종류를 결정한다. 기구의 설치 및 인건비 배분의 자율성을 보유하며 그 결과에 책임을 지는 제도이다.
 
표면적으론 자치단체에 자율권을 대폭 이양한 것처럼 보이지만 속내는 전혀 다르다는 것이 공무원들의 항변이다. 인건비의 총액을 현실에 맞게 책정했어야 함에도 턱없이 모자란 인건비가 내려오다 보니 자치단체에선 고위공무원들의 입맛에 맞는 공무원들만 남기는 방식으로 퇴출제도를 시행해 인건비 총액에 공무원 수를 맞추고 있다는 것이다.

 

더욱이 비정규직 보호법과 맞물려 재료비로 분류되던 일용직 공무원들의 인건비가 총액인건비에 포함되면서 더 큰 문제점이 불거졌다. 인건비가 모자라 정규직 공무원도 옷을 벗어야 하는 현실에 비정규직 공무원들까지 포함시키다 보니 결국 일용직 공무원들은 2008년 5월 말까지 근무하고 대부분이 일손을 놔야하는 상황에 놓였다.

 

이는 총액인건비제도 이행여부에 따라 패널티를 주겠다는 중앙정부의 방침 때문이다. 성실하게 잘 따른 자치단체는 행·재정적으로 지원하고 이행치 못했을 때는 지방교부금 등을 주지 않는 방법으로 불이익을 주겠다는 것. 이 때문에 재정자립도가 열악한 지방정부 대부분은 따를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며 이는 무늬만 지방분권이지 중앙집권을 강화하는 것이라는 것이 공무원들의 시각이다.    

 

이씨는 "총액인건비를 폐지하든지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데 소요되는 인건비만큼 인건비총액의 범위를 상향조정해야 한다"며 "차기 정부에서는 언행이 일치되는 정직한 정책을 펼쳐주기를 바라고 밀어붙이기식보다는 대화와 타협을 통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진정한 지방분권정책을 펼쳐 주기를 바란다"고 주문했다.

 

이어 이씨는 "중앙정부에선 작은 정부론을 강조하지만 선진국으로 갈수록 정부의 규모는 커지게 된다"며 "서유럽의 국가규모를 축소를 빗대 우리나라와 비교하는데 그들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공무원 수와 복지예산이 적기 때문에 비교해선 안된다"고 잘라 말했다.

 

또 이씨는 "이번 당선자는 교원 1인당 학생 수를 대폭 줄이겠다고 공약했고 복지예산도 증액한다고 했는데 이것만 보아도 공무원 수는 늘어나야 정상"이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은 정부 론에 갇혀 공무원 퇴출제 등 인기에 영합해 기준도 없이 축소하는 우를 범하지 않기를 바란다"고 당부했다.

 

인터뷰 마지막에 이씨는 "참여정부 들어서 공무원의 숫자가 엄청나게 늘었다고 주장하나 실상을 보면 대부분이 교원과 경찰공무원, 중앙부처 고위 공무원이고 일반직공무원의 경우 IMF 이전인 97년 수준 보다 오히려 적은 실정"이라고 덧붙였다.

 

공무원들 처우는 민간의 마지노선?

 

차기정부에 바라는 공무원들의 입장을 듣기위해 찾은 관공서 선거상황실은 투표율 집계와 투표소 안내로 분주한 모습이다. 이곳에서 만난 김상협(45·가명·행정7급)씨는 "공무원들의 처우를 개선하지 않는 근거로 민간부문이 너무 어렵다는 논리를 내세우고 있는데 공무원들의 처우는 민간부문의 마지노선으로 인식되고 있는 것이 사실"라며 "공무원에 대한 처우의 개선에 힘쓰는 것은 민간부문 전체의 처우개선에 기준점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씨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 들어 오히려 공무원에 대한 처우는 후퇴해 정년단축 등 민간부문의 구조조정이 당연시 되는 분위기가 됐다"며 "차기 정부에선 이런 문제점을 잘 파악하여 공무원에 대한 처우 개선에 노력해 주기 바란다"고 말했다.

 

또한 김씨는 "연금은 사회복지제도의 근간"이라고 전제하고 "국민연금이나 공무원연금의 경우 젊어서 열심히 일한만큼 노후보장이 될 수 있도록 하여야 한다"며 "연금제도는 성숙기에 접어들면 당연히 수급자는 많아지고 납부자는 줄어들어 정부의 보조가 필수적"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김씨는 "세금이란 분배정의를 실현하는 핵심이므로 세금으로 국민연금의 적자를 보전한다고 해서 문제가 될 것은 없다고 본다"며 "연금 문제는 사회복지 정책적 차원에서 접근해야 하고 공무원들의 경우 일반 회사원과 달리 퇴직금이 없기 때문에 보장받아 마땅하다"고 역설했다. 

 

김씨는 "정부에서는 국민연금에 비해 지나치게 혜택을 받고 있다는 논리만 내세워 공무원과 국민들 사이를 이간질 시키고 있다"며 "일방통행식 개악보다는 공무원연금에 문제점이 있다면 당사자인 공무원들과 열린 토론을 통해 개선하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명박#살맛 안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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