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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치령을 걸어서 넘게 된 사연

소백산 고치령에 이르는 길 지도
 소백산 고치령에 이르는 길 지도
ⓒ 안용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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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치령(古峙嶺)은 영주시 단산면 좌석리와 마락리 사이에 있는 고개이다. 그러나 좀 더 크게 보면 단양군 영춘면과 영주시 단산면을 연결하는 고개이다. 고치령은 또한 한강 수계와 낙동강 수계를 나누는 중요한 고개이기도 하다. 백두대간 죽령을 지나 동북으로 흐르던 소백산 줄기가 동쪽으로 방향을 틀어 처음 만나는 큰 고개가 바로 고치령이다.

그러므로 고치령에는 역사적인 사연과 백성들의 애환이 많이도 서려 있다. 이번에 우리 도계탐사 팀은 이 고치령을 넘어 단산면 마락리 마을로 가 이곳 도계 주변에 사는 산골마을 사람들의 이야기를 취재하려고 했다. 또 겨울을 어떻게 나는지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려고 했다.

그런데 문제는 최근에 내린 눈이었다. 중앙고속도로 죽령터널을 지나 풍기 나들목으로 나온 다음 단산면 소재지(옥대리)에서 좌회전해 좌석리 마락리 방향으로 갈 때까지만 해도 별 문제가 없었다. 그런데 옥대저수지를 지나 좌석 삼거리쯤부터 눈이 얼어붙은 길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며칠 전 온 눈이 길을 미끄럽게 해 차가 속도를 낼 수 없었다. 해발 400m쯤 이르자 차가 길에서 밀리기 시작하는 것이다.

고치령 고개마루에 이르는 길: 눈이 하얗게 쌓였다.
 고치령 고개마루에 이르는 길: 눈이 하얗게 쌓였다.
ⓒ 이상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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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차를 한쪽으로 세우고 고치령을 걸어서 넘기로 결정한다. 겨울 산행 준비는 철저히 한 편이어서 크게 문제될 것이 없었다. 차는 오를 수 없지만 사람은 충분히 오를 만한 환경이었다. 길 일부는 눈이 얼어붙어 미끄럽지만 또 다른 곳은 햇볕에 눈이 녹아 걸을 만했다. 길 양쪽의 산야는 하얀 눈으로 뒤덮여 있다. 이런 길을 약 50분 정도 오르니 고치령 정상이 보인다.

고치령 산신각 들여다 보기

고치령 고개마루 언덕에 세워진 산신각
 고치령 고개마루 언덕에 세워진 산신각
ⓒ 이상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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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치령 정상(760m)에는 길 양쪽으로 장승이 세워져 있고, 길 오른쪽 언덕에 산신각이 모셔져 있다. 고치령 산신각은 옛날 이곳을 지나던 백성들이 무사히 산을 넘을 수 있도록 산신령에게 기도하던 장소다. 또 과거 순흥지역에서 영춘으로 말을 이용해 세곡을 옮길 때 사고 없이 무사히 넘어갈 수 있기를 기원하던 신당(神堂)이기도 하다.

고치령 넘어 있는 마락리(馬落里)라는 동네 이름도 우리 식으로 풀면 말이 떨어진 마을이 된다. 이 고개를 넘다 얼마나 많은 말이 굴러 떨어졌으면 그런 이름이 붙었을까 생각해 본다. 산신각은 전면과 측면이 한 칸으로 된 맞배지붕 건물이다. 산신각 좌우 기둥을 보면 위에서 아래로 내려 쓴 두 개의 주련이 눈에 들어온다.

고치령 산신각과 주련
 고치령 산신각과 주련
ⓒ 이상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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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에는 차산국내지령지성(此山局內至靈至聖)이라고 쓰여 있다. 이 산의 영역 안이 모두 지극하게 신령스럽고 성스러웠으면 좋겠다는 뜻이다. 오른쪽에는 만덕고승성개한적(萬德高勝性皆閒寂)이라고 쓰여 있다. 수만 가지 덕이 높고 번성해서 모든 사람의 본성이 여유로우면서도 고요하기를 바라고 있다.

한 겨울 기온도 낮고 사람의 흔적도 거의 없어서인지 이곳의 분위기가 정말 지극히 성스럽고 신령스럽다. 그리고 산에 오른 내 마음이 정말 고요하고 여유로워지는 것 같다. 그러나 저 아래 마락리까지 걸어갈 것을 생각하니 조금 부담스럽기도 하다.

산신각 안의 모습
 산신각 안의 모습
ⓒ 이상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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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우리는 산신각 문을 열고 안을 들여다본다. 지난 여름에 왔을 때는 인연이 닿지 않아 안을 보지 못했는데 이번에는 안을 들여다볼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있었다. 왼쪽과 오른쪽 문을 여니 한 가운데 호랑이를 거느린 산신령이 보인다. 산신령 앞에는 세 개의 뫼 그릇과 세 개의 술잔이 놓여 있다. 어째서 세 개일까?

단종 복위 운동을 하던 사람들의 얼과 한이 서린 곳

영월문화원에서 기증한 단종대왕 영정
 영월문화원에서 기증한 단종대왕 영정
ⓒ 이상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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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저기 문헌을 살펴보니 이곳에는 산신령 말고 단종대왕과 금성대군이 함께 모셔져 있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산신령의 오른쪽으로 말을 타고 있는 미소년이 보인다. 그림 아래에 보니 영월문화원에서 기증한 단종대왕 영정이라고 쓰여 있다.  그리고 그 옆에 쓴 글을 통해 우리는 이 그림이 우천(愚川) 추익한(秋益漢)이 백마를 탄 단종에게 산에서 나는 과일을 진상(進上)하는 장면임을 알게 되었다.

이곳 고치령이 바로 단종 복위운동을 벌이던 사람들이 뜻을 세우고 수시로 넘나들던 대표적인 장소다. 이곳이 단종과 인연을 맺은 것은 수양대군의 동생이자 단종의 숙부인 금성대군을 통해서다. 1455년 6월 금성대군은 형인 세조의 왕위찬탈에 반대하다 이곳 순흥에 유배당한다. 그는 이곳에서 순흥도호부사인 이보흠의 도움을 받아 단종 복위를 계획한다.

고치령에 세워진 이정표
 고치령에 세워진 이정표
ⓒ 이상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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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57년 6월에는 단종이 노산군으로 강봉되어 영월로 유배된다. 그러자 금성대군은 이보흠으로 하여금 고치령을 넘어 영월로 단종을 찾아가 자신들의 뜻을 알리도록 한다. 이들 일행은 이 고개를 넘을 때마다 의로움을 다시 세울 것을 다짐하면서 결의를 다졌다고 한다. 그래서 한때 의로움을 세운 고개라는 뜻의 건의령(建義嶺)으로 불렸다고도 한다. 그러나 그러한 역모사실이 밝혀져 이들은 모두 죽음을 당하고, 순흥도호부도 쇠락의 길을 걷게 된다.

술잔의 양쪽으로는 촛대가 있고 그 왼쪽으로는 이곳을 지키는 호위장군이 서 있다. 이들 앞 한단 아래에는 향로가 있고, 그 왼쪽에는 술 주전자가 있다. 최근에 누가 다녀갔는지 A4용지에 쓴 글이 보인다. ‘환인이 단군의 할아버지이며 우리 민족의 시조이며 하느님'이라는 내용이다. 민족종교를 믿는 사람의 글임을 알 수 있다.

백두대간 고치령을 지키는 장승들
 백두대간 고치령을 지키는 장승들
ⓒ 이상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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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을 닫으면서 여러 가지 생각을 했다. 산신각이 산신령을 모시는 장소로 만들어졌지만 사람들이 이곳을 주관적으로 해석하고 또 이용한다는 사실을. 또 그러한 사람들을 부정적으로만 생각할 필요는 없다는 것도. 사람들이 산을 넘으면서 이곳에서 잠시 쉬기도 하고 마음을 정리하기도 한다면 산신각은 가치가 있는 게 아닌가 하고. 전통과 문화유산이 가지는 효용성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다면 역시 산신각은 유지하고 볼 일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충북 도계탐사 18차 구간 단양군 영춘면 의풍리 섶밭에서 영주시 단산면 마락리 고치령까지 탐사하고 쓴 글이다. 우리는 문화팀으로 단산면 마락리 지역 사람들이 영위하고 있는 삶과 문화유산을 주로 조사하고 탐사했다. 두 꼭지의 글 중 첫번째이다.



태그:#고치령, #산신각, #단종대왕, #영춘, #순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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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분야는 문화입니다. 유럽의 문화와 예술, 국내외 여행기, 우리의 전통문화 등 기사를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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