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차이나 프리 운동이 확산되고 있습니다." 예전에 뉴스에서 '차이나 프리 운동'이 확산되고 있다는 보도가 나왔습니다. 식품을 중심으로 공산품까지 중국산을 되도록 쓰지 말자는 운동인 모양이었습니다. 그 뉴스를 보면서 나도 모르게 '너희들은 차이나 프리, 난 어쨌든 차이나 유즈' 이런 말이 떠올랐습니다. 중국에 살고 있는 나로서 중국산을 쓰지 않는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이었습니다.그래서 남들은 '차이나 프리'할 때 어차피 중국에 살고 있으니 '차이나 유즈' 일기를 써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기록도 되고 남들에게 좋은 참고도 될 수 있으니 말이다. 그래서 시작한 '차이나 유즈' 일기, 네 번째는 바로 먹는 거, 그중에서도 한국에서 흔히 천하장사 소시지 또는 키스틱 이라 불리는 봉 소시지(기사에서는 봉 소시지로 통일하겠습니다)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기자 주>"야! 야! 이거 개고기로 만든 소시지잖아!"얼마 전 친구에게 전화해 다짜고짜 짜증을 낸 적이 있습니다. 친구가 권해준 소시지가 개고기로 만든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어 진짜, 그럴 리가?”
“진짜지. 내가 꼬우(중국어로 개를 뜻함)도 못 읽을까봐! 이거 ‘개’라는 소리잖아!”
“그래? 그거 뭐라고 써져 있는데?”
“꼬우, 르어 꼬우! 르어(중국말로 뜨겁다는 뜻) 꼬우가 뭐지. 뜨거운 개 아냐. 뭐 이거 가열했다는 소리인가.”어려서 개를 여러 마리를 기른 경험이 있어 개고기를 먹지 않는 제 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제 얘기를 다 들은 친구는 대뜸 웃기 시작합니다.
“르어꼬우? 하하. 야 그거 핫도그라는 뜻이잖아. 핫도그!”
“핫도그? 뜨거운 개? 르어 꼬우? 아 그러고 보니 그렇게 배운 것 같긴 한데.”그렇습니다. 르어꼬우라는 것은 뜨거운 개, 즉 중국말로 핫도그를 뜻하는 것이었습니다. ‘개’를 뜻하는 중국 글자를 보고 흥분한 나머지 깊이 생각도 안 하고 예전에 ‘이 소시지가 맛있다’고 권해준 친구에게 화를 냈던 것입니다. 사실 이 친구에게 몇 번이고 고마워해도 모자랄 텐데 말입니다. 아 왜 고마워해야 하냐고요?
르어꼬우! 뜨거운 개? 핫도그!이제 곧 30을 바라보는 나이지만 저는 500원짜리 봉 형태의 소시지, 일명 봉소시지를 무척 좋아합니다. 어려서 천하장사나 키스틱 같은 소시지를 먹어보신 분이라면 이 묘한 중독성을 잘 아실 것입니다. 그래서 중국에 왔을 때도 마트에 가서 이런 봉소시지를 찾아 헤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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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긴 것이 한국 봉소시지, 아래 것이 중국 소시지 두툼해서 그런지 중국 소시지가 씹어 먹는 맛이 있다. |
ⓒ 양중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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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히도 중국 마트도 한국에서는 파는 모양과 비슷한 소시지를 팔고 있었습니다. 기쁜 마음도 들었고, 한국보다 싼 가격이었기에 욕심을 부려 마트에서 발견한 중국 봉소시지를 많이 샀습니다. 적은 돈이 드는데 비해 많은 양을 보니 행복한 미소가 절로 나왔습니다.
그러나 이 행복한 미소는 그 소시지를 한 입 뱉어 무는 순간 단번에 허공으로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제 몸은 그 소시지를 무는 순간 미소가 아닌 구토를 요구하고 있었습니다.
“우웩!”어지간한 음식은 별 거리낌 없이 잘 먹는 식성 좋은 저였지만, 처음 그 소시지를 먹는 순간 도저히 먹을 수가 없었습니다. 역하고 불쾌한 느낌 때문인지 머리가 내린 ‘먹으라’는 명령에 입이 ‘싫어’라고 매우 강력하게 반항을 했기 때문입니다. 중국 생활이 나보다 오래된 한 친구에게 그 이야기를 하니 대수롭지 않게 한마디 하는 것이었습니다.
“야, 그거 저질 원료로 만든 저질 소시지야. 그런 걸 먹냐.”친구가 ‘저질이라며 먹지 말라’고 말렸으나 저는 오기가 발동해 이번에는 지난번보다 저 좋아 보이는 소시지를 골랐습니다. 물론 지난번보다는 적게 샀습니다. 결과요? 이번에는 머리가 입을 힘으로 찍어 누르는 데 성공해 목으로 소시지가 넘어가기는 했으나 그게 다였습니다. 이번에는 입이 아닌 배 속이 강력한 거부 반응을 일으켰기 때문입니다. 어쩌겠습니까? 결국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물론 포기하기로 한 이유가 정말 그 소시지가 ‘저질 소시지’라고 믿었기 때문은 아닙니다. 아마도 그런 소시지 맛이 중국인들 입맛에 맞는 것이라 여겨졌기 때문에 포기한 것이었습니다. 다른 나라 사람은 잘 이해하지 못하지만 그 나라 사람만큼은 즐겨 먹는 그런 음식들이 있지 않습니까.
예를 들어 이곳 중국에서 중국인들이 음식을 만들 때 자주 쓰는 씨앙차이, 우리나라에서는 ‘고수’라 불리는 한약방에나 가야 찾을 수 있는 것입니다. 씨앙차이를 대부분의 한국인들이 싫어하지만 중국인은 좋아하는 것처럼 이 중국 봉소시지도 같은 이치라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결국 제게 남은 선택은 중국 봉소시지 먹기를 포기하는 것뿐 아니겠습니까.
왕만두 2개에 맞먹는 소시지여!아, 그냥 한국 봉소시지 사 먹으면 되지 않느냐고요? 뭐 틀린 말은 아닙니다. 한국인이 밀집해 사는 곳은 어디나 한국 음식을 팔고, 제가 살고 있는 곳도 그런 곳이니 분명 한국 봉 소시지를 파는 곳이 있을 것입니다. 아니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 파는 곳을 찾아도 쉽사리 지갑에 손이 가지 않습니다. 하나에 중국 돈으로 3~4원까지 받기 때문입니다. 한국 돈으로 400~600원에 불과하지만 그래도 중국에 사는 저로서는 아깝다는 생각이 자꾸만 듭니다.
생각해보십시오. 중국에서 그 돈이면 마트에서 왕만두 2개를 사 먹을 수 있는 돈입니다. 왕만두 2개를 먹으면 한 끼 식사가 해결될 정도입니다. 그런데 그런 돈을 맛있긴 하지만 한 개를 먹어도 먹었는지 느낌조차 잘 안 드는 그런 한국 봉소시지에 쓴다는 것이 쉽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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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왕만두 중국에서 한국 봉소시지(천하장사,키스틱등)을 한 개 사 먹는 돈으로 이 큰 만두를 2개나 사 먹을 수 있다. |
ⓒ 양중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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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어느 날 바로 앞에서 나왔던 그 문제의 친구에게 이런 사정을 얘기했습니다. 그때 그 친구가 권해준 소시지가 바로 그 문제의 뜨거운 개소시지, 핫도그 소시지입니다. 사실 처음 그 소시지를 찾아 나섰을 때는 두려웠습니다.
그러다 그 소시지가 1개에 1원밖에 안 한다는 사실을 알고 절로 입가에 미소가 걸렸고, 긴장된 마음으로 포장지를 뜯고 맛을 보는 순간에는 함박웃음이 지어졌습니다.
오히려 한국 봉소시지보다 맛도 있고, 포만감도 많이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정신없이 사 먹다가 사 먹은 지 꽤 되어서야 그 소시지 이름을 자세히 보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그 소시지를 추천해준 친구에게 급기야 전화까지 했던 것입니다.
어쨌든 다행히 진짜 개고기를 이용해 만든 소시지가 아니라 제 오해로 비롯된 일이어서 그 후에도 마음 놓고 먹을 수 있었습니다.
소시지 하나에 좀 좀스러워 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른바 88만원 세대라 불리는 저로서는 중국인의 눈높이로 내려가서 봤을 때 그제야 중국 물가가 한국보다 싸다는 것이 느껴집니다. 아, 한국인의 눈높이로 보면 어떻게 되냐고요? 그거, 다음번 이야기에서 들려드리겠습니다.
-5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