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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지러운 세상이다. 지리산 화엄사로 현산(玄山) 스님을 찾았다. 정치 이야기를 나눌 뜻은 전혀 없었다. 현산은 반세기 남짓 참선에 정진해온 대표적 선승이다. 거짓이 진실을, 돈이 사람을 압도하는 세상과 조금은 거리를 두고 싶었다.


화엄사 대웅전 옆으로 난 108계단을 올라갔다. 스님의 거처는 700년 된 소나무 옆에 자리하고 있다. 100안거를 마친 고승, 겸손하고 부드럽다. 하지만 깊은 산에 선승의 걱정은 이명박이었다. 어쩌면 이 글은 현산 스님에게 결례일 수 있다. 시사칼럼을 쓰려고 뵌 것도 아니고, 또 쓰겠다고 밝히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선승의 혜안을 지금 이 순간에 동시대인들과 나누는 게 더 절실한 것은 분명하다.  스님이 이명박 후보를 걱정한 까닭은 무엇일까.

 

거짓이 진실을, 돈이 사람을 압도하는 세상


"이명박 후보의 얼굴을 보면 언제나 뭔가 감추는 게 있습니다. 자기 속마음을 드러내고 있지 않아요. 거짓, 위장이지요. 언제나 얼굴 뒤에 한 자락이 깔려 있습니다. 걱정됩니다." 


참선을 오래하면 사람을 꿰뚫어 보는 눈이 열린다고 한다. 제3의 눈, 혜안이다. 오해 없기 바란다. 불교를 이야기하는 게 아니다. 스님이 본 이명박의 '얼굴'을 말하는 것도 아니다. 다만 스님이 이명박을 걱정하는 이유를 나누고 싶을 따름이다.


"거짓을 말한다고 해서 이명박씨를 미워해서는 안 됩니다. 그도 가난하게 크지 않았습니까? 그러니 돈을 많이 벌고 싶고 욕심이 클 수 있지요. 우리 사회가 이명박 같은 사람을 만든 겁니다. 그 주변을 보세요. 그 똑똑하다는 홍준표 검사 같은 사람이 이명박의 앞잡이가 되어 있지 않습니까? 사회 구조가 그런 사람들이 잘 되게 만들어져있어요. 나눠먹을 이권을 서로 도와 키우자는 생각이지요."

 

우리 사회가 이명박 같은 사람을 만들었다

 

스님의 표정은 연민으로 가득했다. 자비(慈悲)에 '슬픈 비'(悲)가 쓰인 까닭은 불쌍하게 여긴다는 뜻이라고 잔잔하게 말했다. 많은 국민이 지지하며 당선 가능성이 높다는 말에 스님은 미소를 지었다.


"이명박이 부자로 성공했으니, 자신들에게도 부자는 아니지만 뭔가를 줄 수 있을 것 같은 막연한 기대가 있을 겁니다. 그러니 위장 전입이나 위장 취업 같은 게 터져도 지지율이 높지요. 세상이 힘들수록, 경제가 어려울수록, 경제를 바르게 펼 사람이 필요한 데요. 국민들이 그걸 몰라요. 돈으로 모든 게 다 된다는 생각은 참으로 어리석은 짓이지요. 이명박이 당선되기 쉽지 않을 겁니다. 설령 이명박이 당선된다고 하더라도 오히려 문제는 더 커질 수 있어요. 그런 점에서 난 이명박은 걱정하지만, 우리 사회의 미래에 대해서는 걱정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이명박에게 지금 들려주고 싶은 말은 무엇일까. 여쭸다.


"없어요. 지금 이명박에게 내가 어떤 말을 해도 귀에 들어오지 않을 겁니다. 인연이 있으면 들려줄 때가 있겠지요."


결국 현산 스님의 결론은 명쾌했다. "국민이 정신 차릴 때"란다. 더는 정치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소나무 스쳐가는 바람 소리 들으며 차를 마셨다.


다시 서울로 올라왔을 때다. 이명박 자신이 비비케이(BBK)를 설립했다고 말하는 동영상이 공개됐다. 새삼 고승의 혜안을 실감했다. 이명박은 그동안 비비케이와 아무 관련이 없다고 도끼눈 홉뜨지 않았던가. 심지어 이명박과 인터뷰한 기자들의 보도를 서슴없이 '오보'라고 언구럭 부리지 않았던가. 그렇다면 스스로 '설립자'라고 밝힌 강연은 어떻게 들어야 할까.

 

경제가 어려울수록, 경제를 바르게 펼 사람이 필요

 

한나라당은 이명박 후보의 말이 "동업자(김경준씨)를 홍보하는 과정에서 나온 부정확한 표현"이라 해명했다. 과연 그것이 '해명'인가. 지나가던 소가 웃을 일이다. "그 똑똑하다는 검사 출신인 홍준표같은 사람이 이명박의 앞잡이"로 전락했다는 선승의 개탄이 실감난다.


그랬다. 감춰졌던 진실이 드러나고 있다. 비단 홍준표 만이 아니다. 대한민국 검찰이 얼마나 윤똑똑이 무리인지, 얼마나 생게망게한 집단인가도 확연하게 드러났다. 특검법을 수용하는 걸로 땜질하듯 넘길 일이 아니다. 문제의 핵심은 끝없는 위장, 거짓이다.


그래서다. 더는 한 낱말도 보태거나 뺄 게 없다. 저 지리산 화엄사 선승의 말을 다시 꾹꾹 눌러 쓰는 까닭이다.


국/민/이/정/신/차/릴/때/다.


#이명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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