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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을 며칠 앞둔 요즈음 나는 애써 대선에 관심을 가지지 않으려 한다. 민주진영의 승리가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에서이다. 민주진영의 대선 승리가 점차 멀어지고 있는데도 자기만을 내세우는 민주진영 후보들이 보기 싫은 것도 또 다른 이유이다. 민주진영 지지자들의 마음도 그다지 다르지 않을 것 같다. 대선 승리의 가능성이 적어지고 민주진영 후보들조차 분열된 상항에서 대선 패배를 기정사실로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는 것이 그들의 가슴 아픈 마음일 것이기 때문이다.   

 

패배주의를 수용한 후보들
 

사실 민주진영에 불리했던 이번 대선 상황에서 민주진영의 패배주의를 극복하고 그래도 한번 싸워볼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민주진영 후보들이 단일화를 하고 그 연장선상에서 민주연합정부를 수립하는 것이었다. 물론 후보단일화에 정치공학적인 측면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그것은 긍정적 정치공학이자, 분화되고 분열해가는 민주진영이 그래도 우리 민주주의를 지켜나갈 현실적 방안이었다. 뿐만 아니라 그것은 다당화의 정치환경 속에서 민주진영간 협조와 연대의 새로운 정치실험이 될 수 있었다. 

 

그러나 후보단일화와 민주연합정부 시도는 이제 실패한 것으로 보인다. 실패의 원인은 다양할 것이다. 그렇지만 그 실패의 가장 중요한 원인은 민주진영의 후보 자신들이었다. 그들은 자신만이 후보단일화의 유일한 대안이라 주장했다. 양보와 타협의 여지도 거의 없었다. 여론의 압박 때문에 일시 후보단일화의 모습을 보이기는 했지만 별로 진정성이 있어 보이지는 않았다.   

 

후보단일화조차 무산된 마당에서 결국 민주진영의 승리는 요원해졌다. 물론 대선 승리의 가능성은 없지만 그들은 끝까지 최선을 다할 것이다. 그러나 대선 승리가 불가능한 상황에서 그들의 내면 생각은 과연 무엇일까? 그것은 아마도 곧 다가올 총선을 감안, 이번 대선 과정에서 자신과 자당을 선전하는 것이 아닐까. 그런 점에서 이번 대선에서 민주후보들은 그 자신들조차 이미 패배주의를 받아들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면서 표를 달라는 것이다. 다음 총선을 위해. 이번 대선에서 막바지까지 민주진영 후보들에게 감동이 없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예상되는 패배의 후유증과 회의주의   
 

민주진영이 대선에서 패배할 경우 그 후유증은 매우 클 것이다. 대선 패배 때문에 그렇기도 하겠지만, 더욱 뼈저린 것은 민주진영이 대오를 갖춰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했기 때문이다.

 

대통합민주신당은 신당을 만들 때부터 삐걱거렸고 일처리 하나 제대로 한 것이 없었다. 창조한국당은 대선 몇 달 전에서야 나와 민주진영의 분열에 크게 일조했다. 민주당의 민주적 정체성은 사라진지 오래고 그들의 관심은 생존과 지분뿐이다. 민주노동당 역시 그들을 넘어 전체를 보는 안목이 없다. 한 마디로, 이번 대선에 임하는 민주진영의 태도는 지리멸렬한 것이었고 거의 최악의 상태가 아닐 수 없었다.

 

또한 이번 대선 과정에서 우리 민주진영, 특히 진보진영의 고질적인 문제는 여지없이 드러났다. 그것은 그들이 항상 현실에 만족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그러다보니 그들은 항상 자기 청산과 비약의 논리로 나아간다. 그 결과 그들은 자신이 어렵사리 이루어놓은 민주주의의 성과마저 너무 쉽게 버리고, 더욱 진보적인 것만을 주장하기에 이른다. 결국 그것은 스스로 이룩한 결과를 보수세력에게 넘기는 의도하지 않은 결과로 이어진다. 

 

사태를 더욱 나쁘게 만드는 것은 향후 민주진영의 전망이 매우 불투명하다는 점이다. 이번 대선을 통해 민주진영의 기반이 급속히 와해된 상황에서 향후 민주진영 내부의 논란은 더욱 커질 것이다. 책임논쟁과 더불어 향후 대안에 대한 백가쟁명식 논쟁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아무리 활발하게 전개된들, 대선 패배를 통해 민주진영의 붕괴가 다시 한 번 확인된 속에서 그것이 과연 민주주의의 새로운 동력으로 이어질지 의문이다. 오히려 그것은 민주진영 분열의 더욱 깊은 심연으로 이끌 수도 있다. 

 

민주 유권자들의 선택을 기다린다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의 10년 동안 그들이 우리 민주주의를 위해 제대로 한 것이 그리 크지 않을지도 모른다. 또한 그 잘못에 대한 비판이 컸고, 또 커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번 대선에서 보듯, 민주진영 스스로 민주정부 10년에 대한 과도한 비판에 나섰을 때 그 결과는 보수세력에게 그 지지를 넘겨주는 것으로 나타났다. 현재 민주진영의 후보들이 하고 있는 것은 바로 그러한 행동들이다. 민주주의 강화를 의도한 주장은 결국 민주주의 약화의 결과로 이어지고 있다. 대안있고 책임있는 비판이 필요한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대안도 만들어내지 못하고 결과적으로는 자신의 기반마저 붕괴시키고 있는 상황, 그것이 지금 민주진영이 처한 적나라한 현실이다. 물론 민주진영의 잘못이 크면 정권을 다른 정치세력에게 넘겨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 정권을 인수할 당이 한나라당일 경우 그것은 무책임한 말이다. 그들이 정권을 맡을 경우 한국 민주주의는 후퇴할 가능성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부패의 수준은 더욱 높아질 것이고, 사회적 격차는 심화될 것이다. 그 결과 우리 사회의 기득권 구조는 더욱 강화될 것이다.  

 

결국 이번 대선과정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민주진영의 후보조차 우리 민주주의를 지킬 분명한 의지가 없다는 점이다. 물론 그들은 우리 민주주의를 구할 미래의 구세주가 자신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러한 주장은 그 실현 여부를 확인할 수 없는 미래에 대한 약속일 뿐, 현재에 대한 책임있는 말이 아니다. 우리 민주주의를 지킬 주체가 분명하지 않은 지금의 상황에서, 그럼에도 나는 믿고 싶다.

 

우리 민주주의의 발전에 지금껏 지원해왔고 참여해온 다수의 말없는 민주주의자들이 그것을 지키고자 한다고. 나아가 그들의 그러한 최선의 노력 속에서 우리 미래의 민주주의 희망들이 만들어질 수 있다는 것을. 이번 대선에서 마지막 희망으로 그들의 선택을 기다려보자.

덧붙이는 글 | 정해구 교수는 성공회대학교 정치학과에 재직중입니다..


태그:#후보 단일화, #패배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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