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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대선은 '무능 정권'에 대한 심판

 

우리는 이미 대선에 패배한 것일까? 아니면 이길 수 있는데도 패배하는 중일까?

 

2007년 대선은 유례없이 싱거운 대선으로 끝날지도 모른다. 현 정권에 대한 민심이반, 극심한 양극화로 인한 민생불안, 집권여당의 괴상한 당 깨고 합치기, 지금도 진행형인 이명박 후보의 도덕성 시비, 그리고 개혁진보 진영의 분열 등이 역사에 기록될 이번 대선의 주된 내용일 수 있다.

 

그러나 지금 이 시점에서 이번 대선을 관통하는 단 하나의 시대정신이 바로 민생을 외면한 ‘무능에 대한 심판’이었다는 것을 부정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이명박 후보의 도덕적 문제가 아무리 불거져도, 또 10년 전의 외환위기가 바로 한나라당의 잘못이라고 아무리 외쳐도 대선 판에 도무지 변화는 없었다.

 

보수진영 내부에서조차 타락한 지도자를 용서할 수 없다며 ‘이회창’이라는 날선 카드를 내놓아도 민심은 요지부동이었다. 부연해 설명하자면 이회창 후보의 출마로 상징되는 보수분열조차 없었다면 이번 대선은 일찌감치 판이 정리되었을 수도 있다.

 

자타가 공인하는 참여정부의 정치개혁 업적, 국가경쟁력 순위 상승 등 거시경제지표의 호조, 대전환점에 성큼 다가선 새로운 남북관계는 이번 대선의 변수가 전혀 되지 못했다. 보수언론의 집권여당 죽이기가 상황을 이렇게 만들었다는 지적도 설득력은 있다.

 

그러나 그들의 힘이 아무리 가공할 만 했다고 해도 지난 두 번의 개혁세력 집권에서 볼 수 있듯이 국민들은 알아서 판단할 것은 알아서 판단했다. 그렇다면 도대체 국민들이 분노하고 있는 무능이란 것이 대체 무엇일까? 단지 달콤한 독과도 같은 경기부양책을 쓰지 않아서였을까?

 

결코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 있다. 하염없이 치솟는 살인적 부동산 가격,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한숨, 피시방을 전전하거나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거리를 서성이는 수많은 청년 실업자들, 쉴 새 없이 브라운관에서 등장하는 무섭기까지 한 고금리 사채광고, 별로 놀랍지 않은 꽤 가까운 지인들의 신용불량자 신분, 빚을 갚지 못해 일가족과 함께 목숨을 끊는 젊은 가장들의 자살 등 이제 양극화는 악몽이 아니고 비참한 대한민국의 현실임에 분명하다.

 

반면, 휠체어를 타고 휑하니 법망을 빠져나가 버리거나, 입법 사법 행정 언론 등 이른바 권력 4부를 무릎 꿀리는 무소불위의 재벌금권의 존재는 하루를 넘기기가 괴로운 서민 중산층의 삶과는 묘한 대비를 이루고 있다.

 

과연 그 동안 정통 민주화 세력이며 개혁진보 세력임을 자처하는 현 정권과 집권여당은 도대체 그 동안 어디에 있었던 것일까? 무슨 주장을 하고 있었던 것일까?

 

국민들이 외환위기 때보다 살기 힘들다며 눈물 콧물이 범벅이 되어 고달픔을 하소연할 때도, 빛나는 민주화 정신을 계승했다는 집권세력은 거시경제의 호조를 얘기했다. 또 시장주의의 본질은 경쟁력이며, 시장주의 원칙을 벗어나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게다가 한 술 더 떠 세계화와 신자유주의를 방패막이 삼아 민생고통의 책임마저 전가하지 않았던가?

 

5년 전 자신들을 지지했던 국민들은 이미 수차례 선거 때마다 집권세력에 참혹한 패배를 안겨주며 경고의 메시지를 전달했다. 집권여당의 대책은 한심했다. 호남이 분열되어 선거에 졌다며 해괴한 정계개편에 몰입했다. 과반 의석을 가지고도 여전히 세력이 부족하다며 자신들이 만든 당을 별다른 이유도 원칙도 없이 깨부수고 나서는 다시 옹기종기 모였다. 양극화에 따른 민심이반에 대해 집권여당이 가진 유일한 논리와 대책은 허깨비와 같은 ‘세력통합’만을 외치는 것이었다.

 

더 기가 막혔던 것이 바로 내부의 이전투구였다. 친노와 반노, 호남과 비호남, 개혁과 실용으로 나뉘어 싸우면서 4년 내내 정쟁만큼은 돋보였다. ‘중도’가 대세라며, ‘세계화 흐름 속에서 아직도 개혁이니 진보니 노선을 지껄이는 놈이 누구냐’며 허연 이를 드러내던 의원들이 다수를 차지했던 것이 지금의 집권여당이다.

 

그런데도 대선 때가 되니 겸연쩍게 히죽거리며 우리는 원래 ‘개혁진보’라고 주장하고 나섰다. 혹시 국민들을 바보로 아는 것이 아닐까? 지난 4년 동안 틈만 나면 ‘노무현은 좌파’라며 공격하던 꽤 많은 국회의원들이 집권여당 내부에 있었다. 한 때 실용의 대명사였던 정동영 후보가 갑자기 ‘개혁진보’ 후보를 자처하고 나선 지금 그들은 과연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지도 자못 궁금하다. 중요한 것은 이번 대선이 끝난 후에 그 볼썽사나운 싸움이 다시 재연될 것은 분명하다는 것이며, 국민들도 대통합신당의 의원들 자신들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다는 것이다.

 

정작 가장 무서운 일은 지난 5년을 무능과 혼란으로 일관하면서 민생을 방치한 현 집권세력이 개혁진보 세력임을 자처하는 일이다. 향후 우리 정치에서 ‘개혁진보’라는 말 자체가 바로 무책임하고 무능한 정치의 상징적 아이콘이 되어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힘겨운 대중의 삶을 내팽개쳐두는 것이 민주화 세력이고, 개혁진보 세력이라면 대중으로서는 그들을 적으로 간주하지 않을 방도가 없다. 민초들에게는 그 이름이 무엇이건 간에 자신들의 고통을 외면한 ‘원수’인 것이다.

 

문국현 후보가 대안인 까닭

 

이 대목에서 문국현 후보의 얘기를 꺼내지 않을 수 없다. 그를 피눈물 맺힌 민주화의 투쟁의 과정에서 보지 못했다며 곁눈으로 흘겨 볼 수도 있다. 또 사민주의이든, 제3의 길이든 좀더 심오해 보이는 중도주의나 공화주의이든지 간에 도도한 진보학맥의 기라성 같은 거학들과 말을 섞기에는 그의 정치학적 지식이 부족할지도 모른다.

 

한국 정치사의 잊을 수 없는 명장면 속에 얼굴 한번 내비쳐 보지 못하고, 의사당 자리에 등을 붙이고 앉아 고함 한번 제대로 쳐보지 못한 굴러온 돌 같은 ‘장사꾼 문국현’이 도무지 미덥지 않을 수도 있다.

 

그렇다. 그는 도대체 모든 면에서 서투른 정치신인이다. 현실 정치의 셈법에 능한 국회의원들을 다룰 줄 모른다. 자발적으로 불출마를 선언한 한 명의 의원을 제외하면, 자신의 능력으로는 애초 호언장담하던 50명은커녕 다섯 명도 못 데려왔다.

 

어쨌든 그런 그가 모두가 내팽개치고 거들떠보지도 않았던 ‘사람’이란 화두를 난데없이 들고 나왔다. 어쩌면 사람과 경제를 이어붙인 최초의 정치인일 수도 있다. 사람에 투자해야 하며, 중소기업을 살리고, 비정규직을 없애야 한다며 ‘사람이 불행한 경제는 가짜'라며 '진짜 경제’를 외쳤다. 재벌일가의 휠체어 탈출이 잘못되었다며 200년이라도 선고해야 한다며 일갈했다. 아무도 건드리지 않는 건설비리를 척결해야 한다고 감히 주장하며 나섰다.

 

무엇보다 그는 자신이 살아온 ‘책임감’ 있는 삶을 통해 대중과 소통했다. 그리고 자력으로 대통령에 당선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지만 결코 적다고 볼 수 없는 10%에 달하는 열성적 지지자를 확보했다.

 

대선을 4개월 여 앞두고 출마한 문국현 후보의 시도가 비록 무모할지라도 그는 자신이 내놓은 새로운 시대의 화두에 대해 확신에 차 있었고, 자기가 만든 작은 세력을 항상 자랑스러워하며 진군을 멈추지 않았다. 그러나 정작 출마선언 이후 문국현에게 내내 가장 무거웠던 짐은 바로 ‘범여’라는 굴레였다. 지금 이 시대에 무능과 실패의 상징이 된 ‘범여’ 말이다. 게다가 대선을 코앞에 둔 지금 시점에도 그에게 분열의 책임과 함께 가짜 민주화 세력이라는 낙인까지 찍으려는 이들이 있다.

 

문국현 후보에게 분열의 책임을 있다는 것은 궤변이다. 지난 5년 간 중도를 분열시키고, 진보를 분열시키고, 충청과 호남마저 잃어버린 것이 누구인지 벌써 잊어버렸다면 치매나 다를 바 없다. 이미 두 해 전부터 15%대로 떨어진 집권여당의 지지도는 대선이 한창인 지금도 변함이 없다. 원내 제1당이라는 신당이 대선을 앞두고 재적 국회의원의 절반 가량을 가지고도, 400억 선거예산을 투입하고도 수년간 민심이반의 증거인 그 한심한 지지도를 못 벗어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자당의 대선후보 지지도는 여전히 똑같이 15% 수준이다. 어쩌면 선거운동을 해도 안해도 그만이었다는 얘기일 수 있다. 경선 직후에 정동영 후보가 15%대 지지도였고 지금도 15%였다면 결국 문국현 후보는 단 1%도 정통 민주정당 대통합신당에서 가져온 적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지금 문국현 후보를 지지하는 층은 지난 4년 간 집권여당 열린우리당의 무능에 이를 갈며 기대를 접어버린 사람들이다. 그들의 무능을 심판하고 싶어 하는 지지층들인 것이다.

 

가짜 민주화 세력이라는 말이 참으로 가슴 아프다. 문국현 후보의 이미지에 상처를 줄 것 같아서가 아니다. 민주화 세력과 개혁진보 세력이 반민중의 대명사가 된 이 현실에서 그런 말 자체가 시대착오적이라는 것을 모르는 것이 가슴 아프다. 시민사회 원로들의 가슴 속 깊이 소중히 여기고 있을 그 ‘민주개혁’이라는 말이 이미 대중들에게 희생과 헌신을 상징하는 훈장이 아닌, 무능과 태만을 상징하는 죄수복의 명찰이 된 것을 알고나 있는지 모르겠다.

 

좀 더 부연해서 설명하자면 문국현 후보는 그들과 실제로 뿌리가 다르다. 문국현 후보는 우리 정치에는 뿌리를 찾기 힘든 급진적, 진보적 자유주의자에 가깝다. 이런 식의 분류 자체가 별로 의미가 없지만 굳이 문국현의 정체성을 분석하자면 미국의 민주당이나 유럽의 제3의 길이 혼합된 정도의 좌표를 가지고 있다. 또 사민주의적 특성이 강하지 않다는 점에서 ‘진보’나 ‘좌파’라고 보기도 어려우며, 실제 기존의 분석틀에서는 노무현 정부보다도 오른 쪽에 두는 것이 맞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진보적일 수 있는 것은 실천과 경험으로 무장된 확고한 자기신념과 우리 사회에 만연된 관습화 된 사회악과 타협하지 않는 자세 때문일 것이다.

 

그런 점에서 문국현 후보와 대통합신당의 노선이 별반 다르지 않다는 소리는 가당치 않다. ‘문국현 노선’은 현실타협적, 지역주의 회귀적 잡탕 특성이 도드라진 대통합신당과 전혀 유사하지 않다. 둘 사이에 가장 큰 차이는 바로 대통합신당이 빛나는 정통성 외에는 아무 것도 가진 게 없는 기득권 정치인데 반해, 문국현 패러다임은 신념과 비전으로 정치를 하려한다는 점일 것이다.

 

학술서에 나와 있는 진보니 보수니 하는 분류에는 맞지 않아도 문국현 후보는 ‘사람밖에 없는 대한민국이 사람을 가지고 장난치면 안된다’는 확고한 신념을 내세운다. 우리 사회를 위협하는 가장 큰 부패가 바로 재벌일가와 건설비리에 있다는 명백한 진실을 혼자서 외치는 진정성이 있다.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경제를 재구성하면 더 높은 성장이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자신의 경험으로부터 비롯된 확신을 가지고 있다. 과연 대통합신당은 문국현 패러다임과 비교할 수 있는 집단적 신념 자체를 가지고 있기나 할까?

 

대통합신당, 무슨 염치로 재집권하려 하나

 

대통합신당이 뱉어내는 알아듣기 힘든 또 다른 괴성은 바로 경선을 거쳐 후보를 뽑았다는 ‘절차적 정당성론’이다. 국민들의 인심을 잃다가 못해 사실 상 무관심 속에 경선이 치러지면서, 결국 동원된 조직만을 가지고 진흙탕 싸움이 되버린 경선은 대통합신당의 자랑거리가 될 수 없다.

 

대통령의 주민등록번호가 도용되어 경찰이 압수수색까지 나선 그 해괴한 장면을 당사자들은 애써 머릿속에서 지웠을지 몰라도 국민들도 과연 잊어버렸을까? 대통합신당의 지난 경선은 부끄럽게 여겨야 할 일그러진 치부이지, 자기존립의 정당성을 주는 근거로는 옹색하다. 그런 절차라도 거친 것이 민주주의라고 주장한다면 국민들의 비웃음을 면하기 어렵다.

 

대선후보는 정동영 후보로, 솔루션은 문국현 후보의 것으로 하면 된다는 엉뚱한 주장도 등장했다. 이번 대선과정에서 여러 차례의 정책평가에서 140석의 위용을 자랑하는 신당의 정동영 후보보다 오히려 문국현 후보의 정책이 높게 평가되었다. 원내 제1당의 후보의 정책기획 능력이 정말 허접해서였을까?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대통합신당은 앞서도 말했지만 아예 시대에 대한 비전을 제시할만한 혼을 가지고 있지 않은 정당이다. 가치관 자체의 한계 때문에 어떤 경우도 제대로 된 정책을 내놓을 수 없음이 증명된 것으로 보아야 한다.

 

이것은 매우 중대한 문제이다. 과거의 실패는 그렇다 치고 과연 대통합신당이 집권하면 제대로 된 정책을 내놓을 수 있을까? 새로운 가치를 제시할 ‘혼’도 없고, ‘신념’도 없는 정동영 후보가 국민들의 한이 서릿발과 같은 지금 이 현실에서 제대로 된 국정운영을 할 수 있을까? 의심할 여지도 없이 불가능한 일이다. 자신의 경험과 신념에서 우러나오지 않는 정책운영은 아무런 의미도 없으며 참여정부가 그랬던 것처럼 박정희 이후 수십년 간의 성장지상주의 정책의 달인들인 관료들에게 휘둘릴 것은 너무나 자명하다.

 

그리고 그 동안 자신의 정체성을 선거전략에 맞게 바꿔왔듯이 또 다시 시장주의 원리 타령이나 할 것은 너무나 뻔하다. 사실 세계화가 어떻고, 신자유주의가 대세라는 소리를 해대려면 국민들 입장에서는 이미 개발독재 시절의 실물경제의 달인이라고 자처하는 이명박이 더 낫다고 판단하는 것이 당연한 것 아닐까?

 

같은 당 내에서 금산분리를 철폐하고 순환출자를 완화해야 한다고 싸워대는 그 정당으로 어떻게 지금까지와 다른 경제를 보일 수 있을지 의문이다. 분양원가 공개가 사회주의라는 사람들, 노동자는 다 좌파라는 인식을 가진 의원들로 가득 찬 정당이 내놓을 새로운 경제가 과연 가능할지 의문이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자신들이 집권여당이 되어 문국현의 솔루션만 갖다 쓴다는 말 자체가 더 무능하게 들린다.

 

대통합신당이 현명하고 진정성이 있다면 민주화 세력이나 개혁진보 세력을 자처하지 않는 것이 좋다. 또 집권할 수도 없지만 집권연장을 탐내서도 안 된다는 점도 알아야 한다. 지금 대통합신당의 의원들이 국회에서 대통합신당 이명박 특검을 놓고 치열한 전투를 벌이는 노력 자체를 폄하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그 모습이 비록 비장하기는 하나, 그런다고 집권연장의 정당성이 만들어 지는 것은 아니다. 지금 국민들이 심판하고자 하는 것은 바로 무능의 대명사인 대통합신당이기 때문이다. 분석적으로 볼 때 이명박 후보가 대통령이 되었다 치고, 사법처리를 통해 당선무효가 되면 과연 대통합신당이 집권할까? 지금으로서는 오히려 박근혜 대표가 다시 출마해 당선된다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할 것 같다. 이명박 후보의 죄가 드러나도 그것은 그 때 가서의 일일 뿐이다. 지금은 바로 무능세력 척결의 시간이다.

 

사실 지난 5년의 실패에 대해서는 국민들이 용서할 수도 있을지도 모른다. 또 애타게 단일화의 대상으로 지목하고 있는 문국현 후보 역시 신당의 실패를 용서할 수 있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금 대중들이 결코 용서할 수가 없는 것은 대통합신당이 여전히 눈앞에 닥친 ‘민생재앙’을 해결할 지혜도 능력도 상상력도 없다는 것이 아닌지 심각하게 생각해보기를 바란다.

 

대통합신당이 그 내용이야 어찌되었든 간에 지지도를 문국현 후보보다 더 얻었으니 다시 한번 자기 간판으로 집권을 해보겠다고 나서면 안 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신당이 또 다시 개혁진보 세력으로 위장해서 집권하는 것 자체가 민생을 더 망쳐 개혁진보의 뿌리마저 파헤쳐 놓을 것이 너무나 뻔하기 때문이다. 대통합신당은 단지 집권할 수 없는 정당만이 아니다. 집권해서도 안 되며, 사라짐으로서 더 많은 정치적 기여를 할 수 있는 정당이기도 하다.

 

정동영 후보, 더 늦기 전에 결단하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대선에서의 마지막 논의는 결국 단일화로 귀착될 수밖에 없는 것도 현실이다. 집권세력이었던 대통합신당이 아무리 잘못했을지언정 문국현 후보 본인 역시 ‘부패한 과거세력의 집권을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면 그래도 결국 힘을 합쳐야 한다’는 논리이다. 그렇다. 맞는 말이다. 그래서 문국현 후보가 출마 선언 직후부터 끊임없이 단일화를 얘기했던 것 아닌가?

 

사실 문국현 후보는 출마 선언 이후부터 지금까지 단 한번도 단일화를 부정한 적이 없었다. 이유는 단 한가지이다. 문국현으로서는 대통합신당이 적어도 상식적 판단력을 가지고 있다면 역사의 큰 죄를 짓고도 도 다시 정권을 가지겠다고 나설 줄을 상상하지 못했던 것이다. 이번 대선을 통해 대통합신당이 진정 참회하고 스스로 역사의 심판을 받기를 자처할 것으로 믿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정동영 후보의 사퇴를 쉬지 않고 얘기했던 것이다. 문국현 후보는 세력이 없다는 얘기를 할 필요도 없다. 문국현 후보가 당선된다면 정계개편이 이뤄질 것은 뻔하고, 무늬만 개혁진보 세력이지 이미 뇌는 돌처럼 굳어버린 신당의원들에게 새로운 생명력을 불어 넣어 함께 공생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대통합신당이 국민에게 새로운 시대에 대한 희망을 불어 넣기는 어렵다. 그러나 비록 새로운 시대를 준비할 혼은 없어도 국민의 분노를 달래줄 속죄에 필요한 몸뚱이 정도는 가지고 있지 않은가? 그런 점에서 무능한 집권, 어이없는 정쟁, 그리고 부끄러운 경선과정을 고백하면서 정동영 후보가 결단하거나, 소속 의원 전체가 자신의 정치적 생명을 포기하면서 국민에게 속죄하는 번제를 지내야 한다.

 

정통 민주세력이든지 아니든지 간에, 140명의 국회의원이 모두 다 문제이든 부분만 문제이든 간에, 또 껍데기만 남은 경선을 치렀던 안 치렀던 간에 적어도 이번 대선의 시대정신이 당신들에 대한 심판인 것만은 인정할 수밖에 없는 것 아닌가?

 

민초들의 서러움이 산처럼 쌓이고, 분노가 강물처럼 몰아쳐 역사의 시계가 거꾸로 가게끔 만든 그 책임만큼은 누군가 지고 가야 한다. 지금 이 순간 껍데기만 남은 자신의 큰 몸뚱이를 바쳐 속죄를 하는 것만큼 절실한 것이 또 어디 있는가? 그래야 국민들이 그나마 민주화 세력의 초심을 인정하고, ‘대통합신당’이라는 개혁진보를 자처하는 세력이 한때 무능하긴 했지만 적어도 파렴치한 세력은 아니었다고 인정할 수가 있는 것이다.

 

또 그래야만 다음 총선에서 마지막으로 국민들에게 용서를 간청할 수 있는 자격이라도 주어지는 것이며, 그것은 국민들로부터 신뢰를 잃어버린 정치집단이 택할 수 있는 가장 큰 승부수이자 전략이 된다는 것을 깨달았으면 한다.

 

사실 이번 대선의 처음부터 끝까지를 관통하는 ‘무능에 대한 심판’ 구조에서 문국현 후보가 별달리 끼어들 필요는 없다. 그것은 당신들의 일이다. 그런 점에서 지금 문국현 후보가 대통합신당의 결단을 요구하면서 자신으로의 단일화 기회를 주는 것은 수천만 서민과 중산층의 삶에 고통을 안겨준 이른바 민주개혁 세력의 원죄를 대신 안고 가려 하는 또 하나의 자기희생일 수밖에 없다.

 

지금 대중이 원하는 것은 바로 대통합신당 스스로 잘못을 인정하고 속죄하라는 것임을 마지막 순간에서라도 깨닫길 바란다. 문국현 후보가 성공할지 안할지의 여부는 불확실하지만 적어도 대통합신당이 실패했고 또 다시 실패할 것을 모르는 국민은 없다. 제발 늦지 않게 결단하기 바란다. ‘문국현’을 통해 이번 대선에서 이긴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일이며, ‘문국현’이 진다해도 개혁진보 세력 전체가 살아남는 길이다.

덧붙이는 글 | 김헌태 기자는 창조한국당 정무특보입니다.


태그:#후보단일화, #문국현, #정동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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