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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브라만교에서 구분하는 인생의 4단계 중 임서기(林捿期), '자식들이 다 큰 후에 집을 떠나 숲에서 살아도 된다는 허락이 주어지는 수행시기'를 뜻한다. 난 이 시기를 퇴직 때로 정하고 지리산으로 들어가 집을 짓고 살기로 결심했다. 스스로 농사를 지으며 서두르지 않으나 항상 깨어있는 삶을 살고싶다. 많은 준비를 한다고 해왔고, 정착하는 날까지 계속할 것이다.

그러나 터 닦는 일이나 오두막 짓는 일도 기대 만큼 진척되지 않아 몸도 마음도 지친다. 두 달 반 가까이 대충 한 것이 아니고 다름대로 최선을 다했다. 그 동안 한 일을 돌아보고 앞으로 해야 할 일을 헤아려보니 아직도 초기 단계를 벗어나지 못했다. 도중에 포기하지 않으려면 서두르지 말아야겠다.

죽을 때까지
내가 먹을 것
내손으로 농사지어 먹으며
사는 것이 곧 수행이 되는
그런 나날을 살아야지


벌래나 풀과 싸우지 않은 농사
오히려 그들로부터 배우는 나날을 살아야지
농사가 곧 공부로 이어지는
그런 나날을 살아야지


때로는 길손이 들으면
따뜻한 밥 지어 대접하고
가만히 들어야지
길손을 통해 하시는 한울님의 말씀


죽는 날까지
딱딱해지지 않도록
누구에게나
풀 한 포기, 벌래 한 마리에까지
늘 고개 숙이며 살아야지.


산에서 사는 사람 최성현씨가 지향하는 삶의 형태를 표현한 시다. 지금까지 그렇게 공감을 일으키고 의지를 불어넣어준 이 시마저 요즘 시들해졌다. '마음' 이 놈이 또 속에서 장난하는 모양이다. 이 놈은 아주 변덕스러워 하루에도 몇 번씩 옷을 갈아입는다. 이 놈에게 놀아나지 않도록 각오를 새롭게 해야겠다.

건설 중인 도로공사의 복토작업이 끝나 우리집 터의 진입로를 개설할 계획이니 공사에 방해되는 벌목한 나무들을 한곳으로 치워달라는 연락을 OO건설 김 과장으로부터 받았다.

작년 5월 집터를 구입하고 난 후부터 지금까지 마음 졸이던 진입로 공사가 드디어 시작되는가 보다. 마음과 달리 주중이라 현장에 내려갈 수 없다. 박OO씨에게 연락하여 OO건설 김 과장과 상의하여 진입로공사에 방해되지 않도록 나무둥치를 한곳으로 치워달라고 부탁하였다.

토요일 아침 일찍 부푼 기대를 안고 지리산농장으로 출발하였다. 현장에 도착하여보니 박OO씨는 이미 벌목하여 방치한 나무들을 한곳으로 치워놓았다. 설계된 63m 진입로 공사를 위해 김 과장이 보낸 대형 굴착기가 나를 기다리고 있다.

집터 구입 후 초미의 관심사 였던 진입로 공사
▲ 새로 공사할 진입로 기초공사 집터 구입 후 초미의 관심사 였던 진입로 공사
ⓒ 정부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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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설현장에서 도로의 경사 정도를 나타내는 단위는 %를 사용한다. 설계된 진입로 경사는 15%이다. 즉 100m 진행시 15m 상승하는 경사이다. 역삼각함수로 계산해보니 8.53도에 해당한다. 진입로를 설계했던 김부장이 겨울에도 충분히 승용차 통행이 가능하다고 하여 동의하였으나 실제로 도로의 기초공사를 끝내고 보니 경사가 너무 심하다.

김 과장과 타협하여 도로 위쪽으로 약 10m 이동시키고 보니 아쉽지만 그런대로 사용할 수 있는 경사가 될 것 같다. 김 과장의 마무리 공사에 관한 설명을 들어보니 우리가 바라는 내용의 대부분을 포함하고 있다. OO건설사에 고맙다는 생각과 그동안 내가 너무 조바심을 냈다는 느낌이 든다. 이제 도로 기반을 다지는 공사와 포장을 끝내면 집터로 드나드는 도로가 완성될 것이다.

내부 벽체 마무리 단계인 편백루바작업을 하다보니 루바가 부족하다. 집사람은 다시 남원 산림조합으로 편백루바와 선반을 만들 송판을 사러갔다. 그 동안 나는 출입문을 만들었다. 가운데 합판에다  바깥은 삼나무루바를, 안쪽은 편백나무 송판을 붙여 90x180cm 크기의 문을 만들었다.

상상했던 것과 달리 보기 좋다. 무엇보다 오두막과 잘 어울린다. 집사람이 사온 돌쩌귀도 투박하여 문과 일체감이 든다. 그러나 문짝이 너무 무겁다. 둘이서 들기조차 힘들다. 집사람과 둘이서 낑낑대며 간신히 맞춰보니 문틀 크기에도 잘 맞는다. 문제는 어떻게 돌쩌귀를 정확하게 다느냐이다. 원숭이의 안경이다. 이렇게 맞춰보고 저리 맞춰봐도 자신이 없다.

문틀과 문짝을 동시에 만들어 돌쩌귀를 달고 문틀을 새울때 같이 붙여야하나 나는 먼저 문틀을 세우고 나중에 무거운 문짝을 맞추느라 고생하였다. 결국 돌쩌귀를 일체형 경첩으로 바꾸고 성공하였다.
▲ 돌쩌귀가 맞지않는 문 문틀과 문짝을 동시에 만들어 돌쩌귀를 달고 문틀을 새울때 같이 붙여야하나 나는 먼저 문틀을 세우고 나중에 무거운 문짝을 맞추느라 고생하였다. 결국 돌쩌귀를 일체형 경첩으로 바꾸고 성공하였다.
ⓒ 정부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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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조주택 교육 때는 규격대로 만들어진 현관문을 사다 붙이면 된다고 하였는데 지금 나의처지는 그 때와 다르다. 지금은 목재가 젖어 무거우나 다음에 올 때는 건조하여 가벼울 테니 큰 어려움이 없이 달 수 있을 거라고 집사람을 안심시켰다. 무거운 출입문을 한쪽으로 치워놓았다.

장모님 생신 파티를 위해 출발해야할 시간이다. 광주 톨게이트에서 많이 정체되어 파티장소에 40여분이나 늦게 도착하였다. 머리 무거운 작업에서 벗어나 유쾌하고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다음날 작업 일정 때문에 늦은 시간이지만 지리산으로 돌아왔다.

다음날 아침 일찍부터 어제 중단한 편백나무 루바작업을 계속하여 점심시간 전에 끝냈다.  몰딩이 남았지만 내년 봄이나 다음으로 미루잔다. 상수도 문제는 공사가 너무 커 뒤로 미뤘지만 씽크대 설치와 배수 문제는 그렇게 복잡하지도 않고 우선순위로 봐도 뒤로 미룰 수 없는 일이란다. 집사람은 추운 날씨 때문에 많은 고생을 했다. 그동안 우리는 기온이 영하로 떨어지는 날씨에 밥 짓고 설거지를 해야하는 일과 더불어 몸씻는 일까지 밖에서 해야했다.

급수시설이 안된 싱크대 였지만 배수가 된다는 것만으로도 우리에겐 고마운 설비였다.
▲ 싱크대 설치 급수시설이 안된 싱크대 였지만 배수가 된다는 것만으로도 우리에겐 고마운 설비였다.
ⓒ 정부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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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세대의 대부분은 물동이와 요강을 기억할 것이다. 물동이는 우리 할머니나 어머님들께서 동내 공동 우물터에서 빨래한 바구니를 옆에 끼고 식구들이 마실 물을 옹기동이에 담아 머리위에 이고 고삿길을 다니시던 모습을 연상케 할 것이다. 요강은 냉수그릇과 같이 윗목을 차지하던 겨울철의 필수품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내년 봄의 완벽한 공사를 기다릴 수 없어   임시로 설치한 배소로 공사
▲ 배수로공사 내년 봄의 완벽한 공사를 기다릴 수 없어 임시로 설치한 배소로 공사
ⓒ 정부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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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크대가 방안으로 들어오면서 밖에서 해야 하는 밥짓기와 설거지 그리고 몸씻는 일까지 집 안에서 할 수 있다는 사실은 매우 큰 변화이다. 집사람은 얼마나 대견했느지 물이 빠져나가는 싸구려 싱크대를 보고 또 보면서 고맙고 감사하다는 감탄을 계속한다.

수세식 보다 푸세식 화장실을 선택한 우리는 출입문을 달지 못해 저녁에는 합판으로 입구를 막다보니 소변을 보러 밖으로 다녀 올 때마다 장도리로 못을 빼고 다시 박아야 했다. 이제 우리 방안에 요강이 등장하였다. 집사람은 요강을 사기 위해 꽤나 여러 곳을 뒤진 모양이다. 어찌됐던 우리는 요강이 있어 행복했고 방안에서 얼굴과 발을 씻을 수 있어 더욱 행복했다.

덧붙이는 글 | 규격에 맞는 경량목구조 주택을 짓고자 우선 현장 경험을 쌓는 얘기입니다.



태그:#목수, #오두막 , #목조주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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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덕연구단지에 30년 동안 근무 후 은퇴하여 지리산골로 귀농한 전직 연구원입니다. 귀촌을 위해 은퇴시기를 중심으로 10년 전부터 준비했고, 은퇴하고 귀촌하여 2020년까지 귀촌생활의 정착을 위해 산전수전과 같이 딩굴었습니다. 이제 앞으로 10년 동안은 귀촌생활의 의미를 객관적인 견지에서 바라보며 그 느낌을 공유해볼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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