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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여보, 집에 들어올 때 귤 좀 사오세요!"
"그래, 알았네, 우리 쌍둥이 딸내미들처럼 예쁜 놈으로 한 보따리 골라 사 가지고 갈게!"


밖에서 일을 보고 있던 도중 아내로부터 핸드폰으로 전화가 걸려 왔습니다. 입맛도 별로 없고, 웬일인지 오늘따라 새콤한 귤이 입에서 당긴다며, '한 봉지 사오라'는 그녀의 지엄한 분부를 받들기로 했습니다.


제가 일과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가에는 군데군데 자리를 잡고 물건을 팔고 계신 노점상들이 꽤 많이 계십니다. 리어카에, 소형 트럭에, 그도 아니면 맨바닥에 좌판을 펼치고서 과일이며, 토스트와 군고구마, 생선까지 이것저것 팔고 계신 모습을 어렵지 않게 여럿 볼 수 있습니다.
 

터벅터벅 걸어가는 길가에서 한 아주머니의 낭랑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제주도에서 오늘 금방 가져온 반짝반짝 윤기나는 싱싱한 감귤입니다."
"한 번 잡숴보시고 한 상자씩 들여가세요∼!"


아주머니의 목소리와 표정이 씩씩하고 밝았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지나가는 사람들이 살까 말까, 망설이는 듯 머뭇거리기도 기웃거리기도 했습니다.


저는 그 씩씩한 아주머니에게서 1만원어치의 귤을 샀습니다. 아주머니는 덤이라며 몇 개의 귤을 봉지에 함께 듬뿍 담아 주셨습니다.


만원의 행복이랄까요?


아마도 가난한 자들의 행복은 이렇듯 소박하고 작은 것에서 피어나는 것이 아닐까, 혼자 제멋대로 생각하며 룰루랄라∼ 아내와 딸들이 기다리는 집으로 걸었습니다.

 

집으로 돌아와 아내가 차려준 저녁밥을 가족들과 식탁에 둘러앉아 맛있게 먹었습니다. 밥을 먹으며 쌍둥이 딸들은 오늘 학교에서 있었던 일, 친구들과 있었던 일에 대해 묻지도 않았는데, 술술∼ 아빠에게 풀어놓았습니다. 아내도 이때다 싶었는지 덩달아 이런저런 이야깃거리들을 쉴 새 없이 풀어놓으며 세 여자끼리 '좋아라'하고 신나게 수다 파티를 열었습니다. 그래서 저도 별 수 없이 그녀들이 주도하는 온 가족 수다 파티에 동참하기로 했습니다.

 

저는 마침 집으로 들어올 때 사 가지고 온 귤 봉지를 쟁반 위에 꺼내 놓았습니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아빠가 귤 한 봉지를 사들고 오며 문득 들었던 엄마와의 학창시절 이야기가 있노라며 말을 꺼냈습니다.


오래 전, 당시 저와 아내 사이에 있었던 잊을 수 없는 추억의 이야기 한 토막을 더듬거리며 아이들에게 말해 주었습니다.

 

그 이야기인즉슨 이렇습니다.


어느 날 저는 하루일과를 마치고 늦은 새벽에야 잠이 들었던 것 같습니다. 그때는 한창 겨울이라 몹시 추웠습니다. 썰렁한 학생회실 스티로폼 바닥에 누워 얇은 이불로 몸을 덮고서 쪼그려 잠이 들다, 문득 아침에 깨어 일어나 보니 머리맡에 노란 귤 한 봉지가 놓여 있었습니다. 누가 가져다 놓았는지 아무런 흔적도 기척도 없이 말입니다.


그 며칠 후엔 또 T셔츠 상의 한 벌이 종이 백에 얌전히 담겨 역시 머리맡에 놓여 있었습니다. 누군가 제가 곤히 잠든 새벽에 들러, 먹을 것과 입을 것을 몰래 가져다 놓고서 새벽을 스치는 바람처럼, 안개처럼 사라져 갔던 모양입니다. 마치 이름 없는 산타처럼 소리 없이 은밀하게 말입니다.


"누가 이런 걸 갖다놓고 가는 걸까?"
"선배가 하도 찔찔해 보여서 후배 녀석들이 이런 짓을 하는 걸까?"


아무튼 저는 궁금하기도 하고, 호기심도 제법 생기고 그랬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드디어 이름 없는 산타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 산타는 바로 저보다 2년 아래인 '유아무개'(지금의 제 아내) 여자 후배였던 것이었지요.


피곤함에 지쳐 잠든 어느 날 새벽, 목이 말라 잠시 일어나 물 한 모금을 마시려는데, 또 머리맡에 편지와 공중전화 카드 한 장이 예쁘게 놓여 있었습니다. 솔직하고 애잔한 마음으로 써 내려간 단문의 편지 한 장은 순간 저를 동요하게 만들었고, 한 줄 한 줄 반듯하고 가지런한 글씨는 선배인 저를 번민(?)하게 만들었습니다.


게다가 “꼭 필요할 때 쓰시라”며 함께 봉투 안에 넣어준 공중전화 카드 한 장은 마침내 제게 뭉클한 감동으로 멍하니 밀려들어 왔었음을 얘기했습니다.


저는 아이들에게 그렇게 아빠와 엄마와의 사랑이 소설처럼 쓰이고, 한 편의 아름다운 영화처럼 쉴 새 없이 필름으로 돌아간 것처럼 조금은 과장하여 드라마틱하게 말해 주었습니다. 아빠와 엄마에게도 이런 시절이 있었음을 은근히 자랑하며 말이지요. 귀를 쫑긋하여 듣고 있던 딸 아이들의 눈빛이 오늘따라 유난히 초롱초롱 반짝거렸습니다.


남편인 저와 제 아내가 만난 건 80년대 학창시절이었습니다. 돌이켜 보면 같은 단과대의 선후배로 만나 소설 속에 나오는 운명 같은 사랑을 했던 것 같습니다.


“불의와 모순을 보고도 피가 끓어오르지 않는다면, 어찌 이 땅의 청년학생이라 말할 수 있는가!”라는 시대와 상황의 요구 앞에 저와 아내는 온전히 순수하게 그 시절을 가슴으로 받아들였던 것 같습니다.


연일 계속되는 집회와 시위, 그리고 늦은 밤부터 새벽녘까지 이어지는 장시간의 회의와 치열했던 격론의 시간을 아무런(?) 주저함 없이 그저 당당하게 맞이하며 보냈던 청춘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때 학창시절에, 저는 고참 선배랍시고 후배들 앞에서 언제나 선배로서의 모범을 각성하기 위해 스스로 자신에게 더욱 단호하고 엄격히 하려 하지 않았던가 생각해 봅니다.


선배로서 깊이 사색하고 고민하는 모습.
후배들을 따뜻이 품어 감싸는 자상한 모습.
투쟁 앞에 부끄럼과 두려움 없는 강인한 모습.


그런 모습들을 자신에게 강박으로 다그치며 그 시절을 보냈던, 미숙했지만 값진 한 자락의 추억이 오늘 한 봉지의 귤을 통해 오버랩 되어 진하게 떠오릅니다.

 

이제 결혼한 지 만 13년. 아내는 저에게 보석 같은 쌍둥이 딸을 선물해 주었습니다. 아내는 동네 아줌마들에게도 싱싱한 입담과 수다로 행복을 전파하는 씩씩한 행복전도사가 되었습니다. 그녀는 공부방 선생님으로, 독서지도 교사로, 자상한 아이들의 엄마로, 착한 며느리로, 그리고 무엇보다 부족한 남편의 빈 곳을 채우는 우리 가족의 지킴이로 '유다르크' 아줌마가 기꺼이 되어 주었습니다.


오늘도 숨 가쁘게 일과를 무사히 마치고서, 이웃한 그녀의 열렬한 팬들에게서 쉴 틈 없이 걸려오는 전화기에 매달려 웃음으로, 수다로 깔깔 호호거리며 하루를 마감하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남편인 저도 덩달아 기분이 좋습니다.


그녀의 몹시도 밝고 긍정적인 표정.
그녀의 맛깔스럽고 재미난 입담.
그녀의 유머러스한 애교를 비타민처럼 매일 공짜로 얻어먹고 사는 저는 아마도 복 터지게 행복한 남편인가 봅니다.


귤 한 봉지, 반짝반짝 윤기나는 노란 알맹이들. 한 알 한 알의 껍데기를 벗겨 까먹으며 아내와 아이들이 새콤한 맛을 즐기고 있습니다.


저는 오늘 아내의 분부를 받잡아 1만원을 주고 산 한 봉지의 귤을 통해 새콤한 맛도 즐기고, 오순도순 가족들과 나눠 먹으며 오래 전 아내와의 옛사랑을 달콤하게(?) 떠올릴 수 있으니 그야말로 팔불출 남편의 '만원의 행복 이야기'가 된 듯합니다.


#귤#아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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