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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로운 방식으로 돌아가면서 쓰는 코너입니다.  <편집자주>

이른바 범여권 단일화가 물 건너갔다. '막판 대타협' 가능성이 흘러 나오지만, 지난 2002년 대선 때의 막판 단일화 추억의 단순한 연상 아닌가 싶다. 

 

이른바 범여권 단일화는 '3인방'이 진행했다. 정동영과 문국현, 그리고 중재 또는 단일화를 촉구하는 시민·사회·종교·재야단체 등이다. 이 3인방의 행동을 보니 상당히 씁쓸했다. 

 

먼저 단일화를 절규하는 시민·사회·종교·재야 단체들이다. 지난 7일 '부패세력 집권 저지와 민주대연합을 위한 비상시국회의'는 "여전히 분열된 채로 민주대연합의 방해가 되는, 정치세력에 대해서는 거짓 민주평화세력으로 규정하고 강력히 규탄할 것"이라는 말까지 했다.

 

그런데 그 정도로 단일화에 목을 메는 분들이 민주당이 분당될 때 왜 말리기는 커녕 방관하거나 일부는 적극 지지했는지 의문이다. 분당을 반대하던 '난닝구'들이 내세우던 논리나 현재 "단일화 아니면 죽음을"이라고 외치는 사람들의 그것은, 결국 '민주 대연합론'이다.

 

1997년엔 '개혁+호남+JP+민정계', 2002년엔 '여론조사 단일화'

 

현재 상황까지 오게 된 근본 원인을 거슬러 올라가면 결국 제일 큰 것은 민주당 분당이다.

 

1997년 DJ는 '개혁 성향표+호남표' 가지고도 모자라, 5·16쿠데타 주범인 JP표에다 박태준의 민정계 TK표까지 합쳤다. 그리고 IMF 사태로 한나라당에 대한 민심 이반이 극심한 상황에서 이인제의 출마로 보수진영표가 갈리는 1000년에 한번 올까 말까한 조건에서도 겨우 1% 차이로 이겼다. 

 

2002년에 노무현 후보는 '호남이 밀어주는 영남후보'라는 신선함과 대박난 국민 경선, 거기에 2% 지지율에서 순식간에 집권당 대통령 후보가 되는 경천동지할 '감동'을 주었다. 그러나 그것으로도 부족해 재벌 정몽준 후보와 '여론조사를 통한 단일화'라는 극약처방까지 써서 겨우 2% 차이로 이겼다.

 

수구보수 진영은 항상 숫자가 많고 정치·경제·사회적인 권력을 쥐고 있어 강했고 개혁·진보진영은 약했다. 그래서 어떻게든 뭉쳐야 했고 자신의 자원을 최대한 모아야했고 이것도 모자라 자존심에 상처를 내며 일부 보수진영까지 끌어들여야 했다.

 

'민주대연합론'은 이런 역사적 경험에서 나온 것이다. 그런데 분당 반대론자들은 '난닝구'라는 비아냥을 받았고, '김대중 죽이기' '노무현과 대국민 사기극'으로 두번의 민주정권 창출의 이론적 통찰력을 제공했던 강준만 교수는 시대를 거스르는 수구세력으로 몰려 정신적 귀양을 가야했다. 

 

[시민사회단체] 민주당 분당 때 좀 말리지?

 

지난해 지방선거 때 열린우리당은 대패했다. 지금 단일화를 절규하는 시민사회 세력은 그 때 열린우리당의 문을 닫고 범민주진영 새판을 짜야한다고 요구해야 했다. 단일화를 중재하겠다고 나선 이 중에 이른바 '원로'라는 분들이 있다.

 

원로가 뭔가? 세상이 순간적인 흐름에 쏠려 기우뚱하더라도 많은 경험을 통해 축적한 지혜로 중심 잡아주고, 보통 사람들이 며칠 앞도 못 내다볼 때 적어도 몇년 앞을 통찰하면서 필요할 땐 쓴소리 하는 사람 아닌가?  "3년도 못갈 게 뻔한데 왜 100년 정당이라고 사기 쳐먹나"라고 준엄하게 꾸짖어야 했지 않았나?

 

단일화를 절규하는 사회세력 가운데는 분당 때 앞장서서 바람잡았던 사람들이 들어있다. 현재대로라면 올 대선은 범여권의 대패로 끝날 것이고, 어쩌다 이렇게 됐는지 평가가 활발할 것이다.

 

최고 비난의 대상은 노무현 대통령과 정동영 후보일 테지만, 의도했던 아니했든 결국 이런 사태를 부채질했던 시민·사회·종교·재야 단체들도 자기 비판을 해야 할 것이다. 한 마디 더 보탠다면 나는 강준만 교수나 최장집 교수같은 사람만이 단일화를 요구할 수 있는 '도덕적 자격'을 가졌다고 본다.

 

[정동영] 단일화도 못하고 표 결집도 못하고... 콘텐츠가 없잖아

 

다음은 단일화의 한 축인 정동영 후보다. 이번에 정 후보는 앵커 출신답게 말은 잘 하지만 정치적으로는 상당히 무능하다는 게 드러났다.

 

고건이나 정운찬 같은 외부 거물들의 지지를 이끌어내기는커녕 원래 한 식구였던 민주당과의 단일화에도 실패했다. 자기 쪽으로 사람을 모으는 구심력이 형편없다는 말이다. 이질적인 세력으로 구성된 당내 반발이 문제였지만, 이 사람들 하나 추스리지 못하면서 더 생각이 다른 사람들로 이뤄진 전체 국민들은 조화시킬 지 의문이다.

 

문국현 후보와의 단일화 협상도 실패했다. 아직 시간이 남아있다고는 하지만, 지지율이 문 후보보다 2배 이상 앞서면서 질질 끌려가는 모습은 분명한 한계다.

 

개혁 세력표를 결집한 뒤 중도 또는 일부 보수성향 표까지 끌어오기는커녕 호남표 가운데서도 겨우 전북표나 모아놓은 상태다.

 

이대로라면 정동영 후보는 건국이후 집권 여당 후보 가운데 가장 큰 표 차이로 지는 후보가 될 것이다. 이회창 후보에게도 져서 3위를 한다면 그는 총선도 노릴 수 없을 것이고 대통합민주신당은 공중분해될 가능성이 높다.

 

이런 사태까지 오게된 이유는 워낙 노 대통령에 대한 국민들의 반감이 극심한 탓이지만, 근본적으로는 겉만 화려할 뿐 콘텐츠는 빈약한 정동영 후보 자신에게 있다.

 

정 후보는 노 정권의 황태자로 지내다가 대선을 2주도 안남겨둔 지금에 와서야 BBK 검찰 수사와 관련해 청와대 해명을 요구한다. '노무현-이명박 연대설' 때문이다. 그러나 노무현과 선 긋기는 일찌감치 이뤄져야 했다. 반노도 아니고 친노도 아닌 어중간한 태도를 취했던 것은 인터넷 용어로 표현하면 '궁물 근성' 때문이었다. 

 

정동영은 자신의 잘못에 대한 진솔한 사과가 없었다. 실책이 많지만 앞에서 언급한 분당의 책임자를 꼽으라면 두 손가락 안에 들어갈 사람이 정동영이다. 그래놓고서는 이제와서 민주당과 합당하고 문국현과 단일화한다고 나서니 감동이 있을 리가 없다.  

 


[문국현] 지지율은 6% 안팎, 위세는 '이명박급'

 

마지막으로 단일화 협상의 한 축인 문국현 후보. 한마디로 지지율은 6% 안팎에 불과한데 언뜻 부리는 위세는 이명박과 비슷한 것 같다. '나 아니면 안 된다'는 식의 언사는 처음 그의 참신함에 감탄하면서도 마음 한켠에 자리잡고 있던 "혹시 제2의 노무현 아닐까"라는 의심을 좀 더 확실하게 만든다.

 

문 후보는 '가치'를 강조한다. 이게 처음에는 충격적이었는데 갈수록 똑같은 말 되풀이한다는 지적이 많다. 인지도가 높아진다고 해서 자연스럽게 지지율 정체가 해결될 문제가 아닐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다.

 

또한 인지도가 그리 중요했다면 최소한 지난해 지방자치단체 선거 때는 국민들에게 얼굴을 비치고 검증을 받았어야지, 대선을 불과 몇개월 앞두고 나와서 "언론이 나를 다뤄주지 않는다"고 투정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문 후보는" 왜 우리가 단일화 압박을 받아야 하느냐"고 불평한다. 그러나 이런 불평에 앞서 그는 자신이 범여권인지 아닌지부터 분명히 해야 한다. 필요할 때는 DJ의 노벨상 수상 기념식에 나타나 범여권 행세하고 어떤 때는 권영길 후보처럼 범여권과 상관없는 체 한다. 차라리 이인제 후보의 "나는 범여권이 아니다"라는 말이 더 진성성이 있다.

 

문 후보는 정책의 차이를 강조하는데, 아무리 봐도 민주노동당보다는 열린우리당과 비슷하다. 4조2교대의 신화를 전 사회에 적용하기 위해서는 사회적 대타협이 필수이고 문국현도 이를 강조하는데, DJ 정권 때 결국 실패로 끝난 노사정 대타협이 연상된다. 

 

정책 차이? 아무리 봐도 열린우리당과 비슷한데

 

문국현에게 단일화 압박이 가중되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그의 지지율이 정동영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만약 문국현의 지지율이 10%에만 안착했어도 단일화 압박은 정동영이 받았을 것이다. 노무현 정권의 실정에 직접 책임이 없는 문국현이 훨씬 유리했다. 그러나 시간은 없는데 정동영과의 지지율 격차가 너무 컸다.  

 

5~8%에 불과한 지지율로 12~18% 지지율을 기록하는 후보를 대신하겠다는 주장을 듣고 있노라면 노무현이 남긴 정치적 유산이 크기는 컸다는 생각이 든다. 지지율 2% 짜리가 여당 후보가 되고 결국 대통령 자리에 앉은 '노무현 신화' 때문인지 지지율이 한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만 되면 범여권 후보는 당연한 것으로 착각하는 것 같다.

 

'문빠'들은 정동영보다 문국현으로의 단일화가 훨씬 더 시너지 효과가 있다고 주장한다. 문국현으로 단일화되면 정동영 표는 모두 문 후보쪽으로 가지만 그 반대는 성립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논리는 호남표는 어짜피 절대 한나라당으로 안 가고, 영남 표를 분산시키기 위해서는 호남이 미는 영남 후보를 내세워야 한다는 노빠들의 논리와 비슷하다. 

 

실제 지난달 26일 문국현 캠프는 "<한겨레신문>과 <조선일보> 여론조사를 분석한 결과 호남권을 빼면 정동영과 문국현의 지지율은 오차 범위안에서 접전"이라는 보도 자료를 내기도 했다. 의도가 뻔하다. 

 

호남 유권자가 버튼만 누르면 표를 토해내는 자동 판매기로 인식되던 시절도 있었지만 "호남이 내가 좋아 나를 찍었나, 이회창이 싫어서지"라는 노 대통령의 발언 이후 예전같지 않다.

 

'문빠' 안에 '노빠' 있다

 

문국현 지지율이 6% 안팎에서 정체를 보인 것은 여러 이유가 있지만 결국 그의 한계 때문이다. 그는 자신에게 호감을 가진 것으로 알려졌던 원혜영·천정배·이계안 의원 등도 규합하지 못했다. 

 

경제 콘텐츠는 분명히 있지만 다른 분야는 영 미지수다. 외교·안보 분야를 보면 동북아와 국제 관계를 꿰뚫는 식견보다는 남북문제·대미관계 모든 것을 경제문제로만 환원해 보는 경향이 강하다. 미국에 대한 인식은 보수 진영과 별 차이 없다.

 

단일화 협상 과정에서 할 듯 하다가 안 하고 안할 듯 하다가 하고, 중앙선관위에 의해 6개 권역 'TV토론 불가' 판정이 났는데 난데없이 '씻김굿'을 들고 나온 것도 정치 신인 답지 않았다. 의도야 어쨌든 "처음부터 단일화 의지는 없었고 인지도 높이기 수단에 불과했던 것 아니냐"는 비난이 나올 만 하다. 

 

노무현 정권에 책임을 지고 정동영이 후보 사퇴해야 한다는 주장은 논리적으로 가능하다고 본다. 그런데 내가 의아스러운 것은, 그 논리에 환호하는 '문빠'들 속에 지금 이 순간도 노무현은 절대 잘못한 것이 없다고 강변하는 '노빠'들이 꽤나 많이 보인다는 점이다.


#단일화#문국현#정동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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