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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는 ‘인민의 권력’ 내지는 ‘인민의 지배’를 의미한다. 그러나 ‘인민의 지배’가 모두의 지배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누가 인민인지 자체가 역사적으로 달라졌기 때문이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노예와 여성 그리고 아이들은 인민이 아니었다. 성인 남성 중에 시민권을 획득한 사람만이 인민의 지위를 획득할 수 있었다. 사회 구성원 중 소수만 인민이었던 것이다.

노예제에서 노예는 인간이 아니라 가축으로 취급됐다. 대규모 농장에서 혹독하게 노동했으며, 노예주의 쾌락 충족을 위해 성적으로 혹사당하기도 했다. 그리고 노예주의 재산 증식의 수단이기도 했다. 보다 값비싼 노예를 생산하기 위해 교배됐다. 인간으로 섹스를 즐긴 것이 아니라 가축으로 교배됐다.

인민의 지위는 투쟁의 산물이다

노예제가 폐지됐다고 모두가 인민이 된 것은 아니다. 봉건제의 신분 질서가 폐지됐다고 모두가 인민의 지위를 획득한 것은 아니다. 1789년 인간 존엄성의 기치 아래 자유와 평등의 이념으로 프랑스 시민혁명이 일어났다. 1790년 구즈는 여성의 정치적 권리를 주장했으나 국민의회에서 거부됐다. 구즈는 ‘여성이 단두대에 오를 권리가 있다면 의정단상에 오를 권리도 있다’는 말을 남기고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졌다.

여성에게 선거권이 부여된 것은 100년이 채 되지 않았다. 100년 전에는 여성을 인민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단지 남성이 소유한 재산의 일부였을 뿐이다. 결혼을 통해 아버지에게서 남편에게로 소유 이전되는 존재였을 뿐이다. 아니면 모두의 공동 소유 재산이었을 뿐이다.

프랑스는 1946년이 되어서야 여성을 인민으로 인정했으며, 영국은 1928년, 미국은 1920년에 여성도 인민이라고 인정했다. 대부분의 국가들은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에야, 수많은 여성의 투쟁을 통해서 여성을 인민으로 인정하게 되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은 1959년 흑인의 국적을 박탈했고, 1960년 흑인 시위대 2만 여명을 학살했다. 1990년에 들어서야 흑백분리법이 폐지됐으며, 1991년에 인종차별정책의 근간법인 인구등록법이 폐지됐다. 그리고 1994년에 처음으로 다인종 자유선거가 실시됐다. 그러니까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흑인은 1994년까지 인민이 아니었다.

아직까지 아이들과 정신지체 장애인에게는 투표권이 없다.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 이주노동자에게도 투표권은 없다. ‘인민의 지배’가 실현된 사회가 민주주의며 대한민국이 민주주의 사회라고 했을 때, 대한민국은 아직까지 아이들과 정신지체 장애인들을 인민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이주노동자도 아직까지 인민의 범위에서 배제되어 있다. 노예를, 여성을, 흑인을 인민의 범위에서 배제한 바로 그 이유를 내세워 인민의 범위에서 배제하고 있다.

민주주의의 딜레마

민주주의는 하나의 이념으로 고안된 것이 아니다. 민주주의는 수많은 인민들이 피 흘리며 투쟁한 결과로 발전해 왔다. 조금씩 인민의 주인된 권리를 쟁취해왔다. 여기서 지배하는 인민이 누구인지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지배하는지도 중요하다.

현대 사회는 인구가 백만 명을 넘어, 천만 명을 넘어, 억 명을 넘어가고 있다. 조그만 땅 한반도에도 7천만이 옹기종기 모여살고 있다. 분단 상황을 감안하여 남쪽만 계산해도 4천 9백만이 모여 살고 있다. 이런 사회에서 토론과 다수결을 통한 결정이 민주주의의 방법으로 채택되고 있다.

그러나 다수결은 민주주의에 대한 새로운 고민을 안겨준다. 나는 다수결로 표현되는 민주주의를 신념으로 가지고 있다. 민주적 절차에 의해 결정된 사항은 내 의견과 다르더라도 따르는 것이 민주주의라고 생각한다. 또한 나는 침략전쟁을 반대한다. 어떤 이유로도 침략전쟁은 정당화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여기서 딜레마가 발생할 수 있다.

이라크 주둔 한국군 부대의 철수를 요구하는 시위대
 이라크 주둔 한국군 부대의 철수를 요구하는 시위대
ⓒ 오마이뉴스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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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침략전쟁을 반대하지만 누구는 침략전쟁을 찬성할 수 있다. 노무현처럼 침략전쟁을 강행하자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양자의 토론 속에서 국민투표에 의해 파병 여부를 결정할 수 있다. 불행히도 침략전쟁 강행이라는 결정이 나온다면 나같이 침략전쟁을 반대하는 신념을 가진 사람은 신념의 충돌을 겪게 된다. 다수결로 표현되는 민주주의의 신념을 지키기 위해 침략전쟁을 따라야 할지, 침략전쟁 반대의 신념을 지키기 위해 다수결의 결정을 승복하지 말아야 할지 고민하게 된다.

다수결의 결정에는 신념의 충돌만 있는 것이 아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소수자에게 비합리적인 폭력이 될 수도 있다. 88서울올림픽이 개최됐을 때였다. 손님맞이 준비를 위해 도시 미관을 정리했다. 그 과정에서 노점상 단속이 진행됐다. 누구에게는 노점상이 도시미관을 해치고 보행권을 침해하는 것일 수 있다. 그런 사람들에게 노점상 단속은 합리적인 행위일 수 있다.

그러나 노점상에게 노점상 단속은 생존의 박탈을 의미한다. 누구에게는 단순한 도시 미관의 문제지만 누구에게는 절실한 생존의 문제일 수 있다. 문제가 누구에게나 동일할 수는 없다. 절심함이 다른 문제에 대해 동일한 권리가 부여되는 것 자체가 비합리적일 수 있다.

민주주의, 약자에 대한 배려

다수결은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하나의 방법이지만 보완이 필요한 방법이기도 하다. 그러나 어떤 제도적 보완보다도 중요한 것은 합리적 토론이다. 단순히 합리적으로 토론만 하는 것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합리적 토론을 통한 설득과 합의가 필요하다. 민주주의는 팽팽한 서로의 의견을 확인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의견을 하나로 합의해가는 과정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설득과 합의를 하려면 토론 참가자들이 반드시 인정해야 할 것이 있다. 자신의 의견이 틀릴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자신의 주장이 옳다고 믿고, 그 주장으로 다른 사람들을 설득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지만, 그럼에도 만의 하나 자신의 주장이 틀릴 수도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모든 구성원이 자신이 틀릴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합리적인 이유가 있다면 자신의 주장을 포기할 줄 알아야 한다. 자신의 주장보다 합리적인 주장에 수긍할 줄 알아야한다. 그랬을 때만이 설득과 합의가 가능하다.

설득과 합의를 하기 위해서는 모두에게 보편타당한 합리성은 없다는 사실도 인정해야 한다. 사람은 저마다 처지와 조건이 다르다. 처지와 조건에 따라 다르게 생각한다. 자신은 보편타당하게 객관적으로 생각한다고 믿을 수는 있지만, 어떤 식으로든 처지와 조건에 영향을 받게 된다.

의식적으로 자신의 처지와 조건을 고려하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무의식적으로라도 자신의 처지와 조건에 영향을 받게 된다. 생각과 판단은 그 자신이 살아온 삶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는 평등하다고 믿지만, 실제로 우리는 평등하지 않다. 처지와 조건에 따라 수입이 다르고, 학력이 다르고, 사회적 지위가 다르다. 사회적 강자가 있고, 사회적 약자가 있다. 사회적으로 평등하지 않은 사람들 사이의 합리적 토론은 사회적 강자에게 유리할 수밖에 없다. 사회적 약자에게 불리할 수밖에 없다. 설득과 합의를 통한 민주주의의 실현을 위해서는 이런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이런 사실을 인정한다면 평등하지 않은 사회를 평등하게 만들기 위해서 노력해야 한다. 토론을 통해 설득과 합의를 하는 과정에서 사회적 약자의 권리를 보장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민의 지배를 실현하는 데 있어서, 사회적 약자가 민에서 배제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

덧붙이는 글 | * 본 기사는 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의 대안정책 사이트 이스트플랫폼(http://epl.or.kr)에 공동 게재됩니다.

** 2008년 초에 민연사에서 출판 예정인 책의 내용을 연재 기사로 묶어 올립니다.



태그:#민주주의, #딜레마, #사회적약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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