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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BK 주가조작 및 횡령 의혹 사건'을 수사해 온 서울중앙지검 김홍일 3차장 검사가 5일 오전 서초동 서울중앙지검 6층 브리핑실에서 중간수사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BBK 주가조작 및 횡령 의혹 사건'을 수사해 온 서울중앙지검 김홍일 3차장 검사가 5일 오전 서초동 서울중앙지검 6층 브리핑실에서 중간수사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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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대선일은 12월 19일이 아니라 12월 5일이 될지 모른다고들 했다. 검찰의 BBK 중간 수사결과 발표 이후 상황은 실제로 그렇게 전개되고 있다.

검찰은 이명박 후보의 BBK 관련 의혹들을 한꺼번에, 그것도 '무혐의'라는 분명한 표현으로 털어주었다. 박근혜 전 대표는 "검찰 발표에서 그렇게 나왔으니 그것으로 끝난 것 아니겠느냐"며 이명박 후보 지원유세에 나섰다.

검찰 발표로 대선은 끝나버렸나

검찰 발표 이후 이명박 후보 지지선언이 봇물을 이루고 있고, 이로 인해 한나라당 당사가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다는 소식도 들려온다. 이명박 후보의 지지율이 다시 상승세를 타기 시작했다는 여론조사 결과들도 속속 나오고 있다.

"검찰의 수사가 잘못되었음을 입증할 것"이라고 공언했던 에리카 김은, 예정되었던 기자회견을 갑자기 취소하고 연락을 끊었다. 김경준씨 가족 측에서 검찰의 발표를 뒤집을만한 증거들을 더 이상 제시하지 못한다면, 논란의 불씨는 조만간 꺼질 것으로 보인다.

대통합민주신당측의 촛불집회도, 'BBK 특검법'도 이 흐름을 반전시키기에는 역부족인 듯하다. 정치권에서의 공방이야 투표일까지 계속되겠지만, 결국 'BBK 의혹'은 이번 대선의 변수에서 사실상 퇴장하게 될 것이 예상된다.

17대 대선 종반을 소용돌이치게 했던 BBK 논란은 이렇게 가닥이 잡혀가고 있다. 그런데 BBK 의혹이 결말을 내리는 것과 동시에 이번 대선도 사실상 끝나가는 분위기이다. 한나라당은 이미 다 이겼다는 분위기이다. 정동영-문국현 두 후보 사이의 단일화 논의도 검찰 발표 이후 동력이 떨어져가는 모습이다.

'BBK 올인'이 오히려 '이명박 검증' 막아

BBK 수사결과 발표가 이번 대선의 최대 고비라고 했으니까 당연한 현상인지 모른다. 이명박 대세론의 앞길에 이제 거칠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그러나 되묻게 된다. 이것이 과연 당연한 일인가. 이명박 후보의 'BBK 의혹'에 대한 검찰의 무혐의 결론이 어째서 17대 대선의 결과를 좌우하는 결정적 변수가 되어야 했는가.

이명박 후보가 주가조작에 가담하지 않았고 다스·BBK의 실소유주가 아니라는 결론이, 그가 '좋은 대통령'이 될 것이라는 결론을 의미하지 않음은 물론이다. 당연히 두 가지 문제는 서로 연관은 될 수 있지만, 동일한 문제는 아니다.

이명박 후보의 대통령으로서의 자격과 능력을 제대로 평가하기 위해서는 종합적인 검증과정이 필요했다. 후보로서의 도덕성과 관련해서 위장전입, 위장채용, 탈세의혹 등등에 대한 검증과 추궁이 더 있어야 했다. 그러나 BBK 문제는 이들 문제에 대한 관심조차도 덮어버렸다.

이명박 후보 검증에 있어서 정작 중요하고 본질적인 문제는 이명박 정부가 들어섰을 경우 한국사회의 앞길이 어떻게 될 것인가 하는 점이었다. '이명박식 신성장주의'는 과연 '성장'과 양극화 해소'를 위한 동반성장을 가능하게 할 수 있을 것인가.

'대운하' 건설은 기회인가 재앙인가. '747 공약'은 과연 현실적이고 바람직한 내용인가. 우리는 지지율 1위 후보에게 이런 문제들을 묻고 또 물어야 했다. 그 과정에서 어떠한 대안적 발전노선이 우리 사회에 필요한 것인지, 그러한 견지에서 이명박 후보는 어떻게 평가되어야 하는지를 국민과 함께 묻고 답했어야 했다.

그러나 모든 것이 BBK 하나로 모아지는 사이에, 이러한 문제들에 대한 관심은 사라져버렸다. 한때 달아오르던 대운하 공약 검증조차도 어느 날부터인가 사라져버렸다. 그리고 BBK 문제 하나에 모든 시간을 소비하고 난 지금, 더 이상 다른 문제들을 다룰 시간도 여력도 없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이명박 후보의 입장에서는 BBK라는 고비 하나를 무사히 넘어섬으로써, 다른 문제들에 대해서는 덩달아 면죄부를 부여받는 상황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명박 후보가 이러한 상황을 제대로 인식한다면 국민 앞에 몸을 낮추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그에 대한 검증은 역설적이지만,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했다. 자신의 다른 도덕적·정책적 흠결들이 BBK 논란 덕분에 그대로 지나쳤음을 감안한다면, 이명박 후보는 아직 당당한 승자라 하기 어렵다.

정동영 대통합민주신당 대선후보와 당지도부 및 지지자들이 5일 광화문에서 열린 한나라당 이명박 대선후보의 무혐의 검찰수사 발표에 대한 규탄집회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정동영 대통합민주신당 대선후보와 당지도부 및 지지자들이 5일 광화문에서 열린 한나라당 이명박 대선후보의 무혐의 검찰수사 발표에 대한 규탄집회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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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 총선도 BBK로 치를 셈인가

'BBK 올인'의 결과가 범여권세력에게 주는 교훈은 더욱 엄중하다.

대통합민주신당을 중심으로 한 범여권세력은 이번 대선에서 BBK 하나에 승부를 걸었다. 물론 이명박 후보 지지율을 쫒아가지 못하는 상황에서 판세반전을 위한 극약처방이기는 했지만, 그 시도는 애당초 위험한 일이었다.

이명박 후보를 향한 '한방'이 한나라당 표현대로 '헛방'이 되어버리고 말 경우, 그 때는 어떤 대책이 있을 것인가. 나는 <범여권, '이명박 한방론'을 버려라> (오마이뉴스, 8월 21일), <김경준의 웃음, 한국정치의 굴욕> (오마이뉴스, 11월 19일) 등을 통해 이러한 우려를 전한 바 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원내 제1당'인 신당은 아무런 대책이 없었다. '한방' 이외에는 이명박 후보와의 경쟁에서 이길만한 상품을 개발하지도, 준비하지도 못하였다. 신당측의 '네거티브 신문광고'는 그들의 현주소를 그대로 보여준 장면이었다.

"세금 고통과 장사 부진으로 수입이 줄어든데 따른 고통 앞에서 평화, 민주주의, 인권, 투명성이 얼마나 동떨어진 얘기인지 피부로 절감했다. 소득, 수출, 주가 상승을 자축할 때 민생은 말라가고 있다는데 책임감을 느꼈다"는 정동영 후보의 고백은 얼마 전에야 비로소 나왔다.

국민을 진정으로 함께 잘 살 수 있게 해줄 수 있는 것은 이명박 후보가 아니라 범여권세력이라는 점을 그들은 전혀 보여주지 못하였다. 아무런 준비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제 어떻게 할 것인가. 촛불집회를 한다고, '이명박 특검법'을 밀어붙인다고 해서 달라질 상황은 아니다. 그래도 도리가 없다. 달리던 자전거가 일단 멈추면 쓰러지게 됨을 알기에, 신당측은 남은 대선기간을 BBK 불씨로 버틸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정치공학적으로 보면 그러하다.

이번 대선은 그렇다고 치자. 문제는 내년까지 이어지게 돼 있다.

신당측은 내년 총선도 BBK로 치를 태세다. 국회에 제출된 '이명박 특검법'은 대선용인 동시에 총선용으로 해석되고 있다. 특검을 통해 BBK 의혹을 내년 총선까지 이어감으로써, 예상되는 '이명박 정부'의 집권 초기 프리미엄에 맞서려는 의도로 풀이되고 있다.

검찰수사 결과가 아직 많은 의혹들을 남겨놓고 있다면, 그리고 신당측이 검찰수사 결과에 문제가 있다는 구체적인 근거들을 제시하며 국민들을 납득시킬 수 있다는 전제가 충족된다면, 진상을 더 철저히 밝히자는 것 자체에 반대할 생각은 없다.

그러나 신당측의 발상이 이번 대선에 이어 내년 총선도 'BBK 선거'로 치르자는 차원의 것이라면, 동의하기 어렵다.

가족들은 집에 먹을 것이 없다고 아우성치고 있는데, 가장이라는 사람이 열심히 일해서 돈 벌 생각은 안하고 로또복권만 사고 있다면, 가장으로서의 믿음을 얻을 수 없다.

마찬가지다. 이번 대선에서는 실패했지만, 다시 '한방'을 성공시켜 내년 총선을 치르겠다는 발상이 계속되는 한, 현재의 범여권세력에게 미래는 없다. 이번 대선은 그렇다 치고, 대선이 끝난 뒤 새로운 정치세력으로 다시 태어나고 분골쇄신하여, 국민들 앞에 자신들의 '신노선'을 내놓는 것이 우선이다.

자기의 실력을 갖추지 않는 한, '한방'으로 국민의 지지를 얻을 수는 없다. 범여권세력이 이런 식으로 대선을 치르는 것은 이번이 마지막이어야 한다.

진보와 개혁을 말해왔던 정치세력이 BBK 말고는 국민에게 내놓을 것이 없다면 어떻게 대안세력으로서 자신들의 능력을 인정받을 수 있겠는가. 대선을 거쳐 범여권세력이 와신상담(臥薪嘗膽) 속에 내놓을 답이 고작 'BBK 올인'의 재현이 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비전과 프로그램 없는 '투기적 승부'는 한번으로 족하다.


태그:#BBK, #17대 대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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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종양 수술 이후 방송은 은퇴하고 글쓰고 동네 걷기하며 지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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