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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좁은 불편을 편백나무 향으로 가름하는 별장이다.
▲ 오두막 내부 비좁은 불편을 편백나무 향으로 가름하는 별장이다.
ⓒ 정부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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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에서 근무하는 동안에도 틈틈이 주말부터 시작될 오두막 짓기 재도전을 위해 나름대로 계획성 있게 준비하고 점검했다. 남원 공구매장으로 전화해 대패를 신품으로 교환해 주기로 약속받고, 샌더는 서울로 주문해 택배로 받았다. ○○ 건설, 남원 산림조합, 구례 한전, 구례 건축사, 구례 지적공사 등과도 사전에 연락했다.

9월 29일 토요일, 아침 5시에 기상했으나 여러가지 준비 때문에 7시가 되어서야 지리산으로 출발했다. 출발 길에 매일 아침∙저녁으로 집 앞길을 행선하는 스님댁에 들러 당분간 도반이 못되어 드리겠다는 말을 전하고 지리산 농장에서 가져온 밤 한 되박을 드렸다. 이를 받은 스님은 조심해서 다녀오라는 말과 함께 송이버섯 몇 개를 쥐여주신다.

새벽을 가르는 맑은 공기가 더욱 청량하게 느껴진다. 대전에서 통영에 이르는 고속도로는 백두대간과 같이 달리기 때문에 주위에 펼쳐지는 경관이 매우 아름답다. 계절 또한 1년중 가장 아름다운 단풍철이다. 전에도 이 길로 많이 다녔지만 오늘처럼 뚜렷한 목적을 갖고 가기는 처음이다. 드라이브 맛이 사뭇 다르다.

9시경에 남원 공구매장에 들러 약속한 대패를 교환코자 하였으나 주인이 외출 중이고 부인은 비협조적이다. 말로 해결하기 힘들겠다는 생각에 인터넷에서 출력한 대패의 종류와 가격을 제시하며 당장 해결해주지 않으면 소비자가 취할 수 있는 모든 조치를 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그 때서야 부인은 공구를 공급하는 사람을 전화로 호출했다.

현장에 도착하니 굴착기를 수리기사가 기다리고 있다. 굴착기를 점검하고 나더니 과전류가 발생하여 유압장치 조절모터가 타버렸단다. 주행기능을 보완하는 모터를 대체하여 응급조치를 하였다. 시골이라 기사의 출장비도 대전의 2배 정도다. 꿈쩍도 않던 굴착기가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잘 움직인다. 오후에도 고쳐진 장비로 오두막 터 만들기를 계속했다.

9월 30일 일요일, 계획대로 일이 진행되는 것 같아 몸도 가볍고 기분도 상쾌하다. 공사 중인 오두막 터에 도착한 집사람은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아무래도 김씨(임야의 전 주인)에게 지금 터를 닦는 이 지점이 확실히 우리 땅인지 확인하는 것이 좋겠단다. 임야를 매입하면서 경계측량을 했지만 시기가 여름철이라 측량을 정확하게 하지 못했고 표간의 시계(視界)가 차단되어 측량 말목도 박지 못한 곳이 2점이나 되었다.

처음 굴착기를 들이댈 때에는 당연히 우리 땅이라고 생각했으나 안쪽으로 넓혀가면서 약간 의심이 생긴 터라 집사람 제안을 간과할 수 없었다. 다행히 김씨는 바로 방문해 동쪽 가장자리는 남의 땅일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정자터로 사용하기 위해 굴착기로 다듬었던 터. 분쟁의 소지가 있어 다른 곳으로 옮겼다.
 정자터로 사용하기 위해 굴착기로 다듬었던 터. 분쟁의 소지가 있어 다른 곳으로 옮겼다.
ⓒ 정부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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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사람은 우리 땅 중앙인 남쪽 밤나무 숲 속에 다시 터를 다듬어 오두막을 그곳에 짓자고 했다. 후환을 없애는 가장 확실한 일이다. 집사람이 가리키는 곳은 경사가 심해 내 초보 실력으로 집터를 만드는 것은 아무래도 무리일 것 같다. 앞뒤로 흔들리는 굴착기 차체에 머리를 몇 번 부딪치고 났더니 머리에는 혹이 몇 군데 나고 등에는 식은땀이 배인다.

그렇다고 뒤로 물러섰다간 집사람에게 뭐 하러 굴착기를 1800만 원이나 주고 샀느냐는 비난을 면치 못할 것이다. 집사람은 용을 쓰며 새로운 터로 길을 내는 굴착기 운전 실력을 한동안 주시하더니 수신호로 타임을 요청한다. 굴착기에서 내려 집사람에게 다가가는 내 모습은 강판을 앞둔 감독 앞의 패전 투수 꼴이다. 집사람은 우리의 계획을 처음부터 다시 점검해 보잔다.

나의 진짜 실력을 보여주겠다며 가미가제 특공대라도 된 심정으로 굴착기 안전벨트를 맸다. 굴착기 작동 레버 감각이 어디 마음먹는다고 되는 일인가? 굴착기는 제 몸보다 큰 먹이를 물고 늘어지는 개미 어금니 나가는 소리를 내면서 출렁거리더니 다시 먹통이 되어버렸다. 응급조치를 한 곳이 아주 고장 난 모양이다. 나를 쳐다보는 집사람 눈빛이 애처롭다.

굴착기 A/S기사에게 전화하고 있노라니 둘째 여동생 은의가 '서울 언니가 어제 내려왔으며 오빠를 보고 싶다'고 해서 지리산으로 오는 중이란다. 굴착기가 또 고장 났으니 할 일도 없다. 모처럼 첫째 여동생과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었다. 밤 줍는 재미를 안 은의는 언니에게 밤 줍기를 권한다. 집사람과 큰 여동생, 둘째 여동생은 밤을 주우러 가고 혼자 남게 되자 현실문제가 크게 부각된다.

이곳에 내려올 때는 굴착기로 집터를 다듬고, 석축은 집터를 다듬을 때 나온 돌들을 모아 한두 단 쌓고 그 위는 자연스럽게 동산을 만들 계획이었다. 그러나 지금 그러한 계획을 전면 수정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 됐다. 새 오두막 터에서도 역시 내 굴착기로 처리하기 곤란한 큰 돌들이 계속 나온다. 이런 식으로 터를 만들려면 굴착기를 몇 번이나 고장을 내야 하며 과연 가능한 일인지조차 모르겠다.

작년에 만났던 굴착기 기사 박○○ 씨와 오후에 만나기로 약속했다. 그는 자신이 30년 넘게 돌을 쌓는 사람이고 안전을 우선으로 하는 사람이라고 했다. 언제나 돈 주는 사람 입장에서 일하는 사람이란다. 대안이 없는 우리는 일단 그를 믿고 한번 맡겨보기로 했다. 식당에서 집사람 손등이 부어있는 것을 보고 놀라 물었더니 낮에 여동생들과 밤 주우러 가서 독충에 쏘인 모양이라고 대수롭지 않게 넘어간다. 나도 병원에 가보라고 하고 말았다.

10월 1일, 오늘부터는 취미나 여가를 이용하여 집터를 닦고 오두막을 짓는 사람이 아니다. 하루에 적어도 150만원 이상 경비가 나간다. 굴착기 43만원, 석축기사 17만원, 영운기 2대 X 30만원(돌을 운반하기 위해 특수 제작된 터미네이터 같은 덤프차량)은 기본이다. 석축돌을 확보하기 위해 1130만원을 지불하기로 석산과 계약했다. 어쩌면 2백만원이 넘어가는 돈을 매일 지불해야 할지도 모른다.

오두막은 임시라는 생각에 급히 터를 만들고 건축자재들을 올리기 시작했다.
 오두막은 임시라는 생각에 급히 터를 만들고 건축자재들을 올리기 시작했다.
ⓒ 정부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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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씨는 2일에 걸쳐 숲 속 오두막 집터를 서둘러 만들었다. 실제로 자신의 일을 하는듯한 자세로 열심히 했다. 나는 틈틈이 건축 자재를 도로에서 오두막 터로 옮겼다. 그러나 오두막 짓는 일은 뒷전이고 영운기가 젖은 길에 빠지지 않고 운행할 수 있도록 내 굴착기로 길을 보수하고 운반해온 돌을 한곳으로 차곡차곡 치우는 일에 매달렸다.

박 아무개씨가 급히 쌓은 오두막석축
▲ 오두막 석축 박 아무개씨가 급히 쌓은 오두막석축
ⓒ 김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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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3일, 아침에 일어나 집사람의 손을 보고 깜짝 놀랐다. 어제 산동면에 있는 의원에 다녀온 것까지 알고 있었는데 이 지경이 된 줄은 몰랐다. 손이 많이 부어올랐고 독침에 쏘인 듯한 부위는 피부 색마저 검게 변해 있었다. 한시가 급하다. 급히 남원 의료원으로 향했다. 다행히 우리 집터에서 의료원까지는 15 km정도이며 평소 20분, 비상시 15분 정도 걸린다. 공휴일이라 바로 응급실로 향했다.

의사는 상처부위를 보더니 독사일 가능성이 높단다. 해독제를 맞고 5일 정도 처방약을 복용하는 것이 안심할 수 있는 치료법이란다. 해독제는 30분 걸리는 반응검사 후 30분 정도 주사하는 혈관주사였다. 해독제는 독한 약인지 집사람이 많이 부대낀다.

80만원의 굴착기 수리비를 지불하고 나서야 비로소 내 굴착기 용량과 운전 실력으로는 한단 석축도 쌓기 어려우며 오두막 터도 만들기 어렵다는 사실을 알았다. 또한 집사람이 독사에 물려 손등이 심각할 정도로 부어올라 도저히 일을 할 수 없게 된 지금에야 보조 목수를 고용해야할 처지가 된 상황을 깨닫게 된 것이다. 모든 일을 나와 집사람 둘이서 하겠다는 약속이 무너진다.

그러나 이 시점에서 뒤로 물러설 수는 없다. 하도 일이 꼬여 악이 바치다 보니 25년 직장생활과 집사람의 10년 노동으로 근근이 저축한 비상금 일억이 다 없어진다 하더라도 끝을 보겠다는 각오가 인다. 집사람도 계속되는 어려움에 오기가 생기는 모양이다.

그러나 나나 집사람 모두 자신들이 용납하고 타협할 수 있는 여건이 나타나길 간절히 바라고 있다.


태그:#목수, #오두막, #목조주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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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덕연구단지에 30년 동안 근무 후 은퇴하여 지리산골로 귀농한 전직 연구원입니다. 귀촌을 위해 은퇴시기를 중심으로 10년 전부터 준비했고, 은퇴하고 귀촌하여 2020년까지 귀촌생활의 정착을 위해 산전수전과 같이 딩굴었습니다. 이제 앞으로 10년 동안은 귀촌생활의 의미를 객관적인 견지에서 바라보며 그 느낌을 공유해볼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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