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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압록강 너머 갈 수 없는 나라 북녘 땅이 보인다.
 푸른 압록강 너머 갈 수 없는 나라 북녘 땅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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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서 읽어버린 물건을 찾다니!

11월 30일 금요일. 오후 8시 30분 연대항에서 출발하는 배를 타고 대련으로 향하였다. 이번 답사는 그동안 아들 덕원이와 단 둘이서만 하였던 것과는 달리 여러 분의 일행과 함께 하는 답사였다. 일언척구도 버릴 것이 없이 귀한 말씀을 전해 주시는 김 교수님, 넓고 깊은 인생의 안목을 키워주신 중국통 이 교수님, 마이웨이를 멋들어지게 부른다는 김 상무님, 언어의 달인이라 할 만한 이 교수님 그리고 노처녀 한 분이 함께 하였다.

12월 1일 새벽 2시 50분에 대련항에 도착. 오늘의 목적지인 단동까지 우리를 태워다 줄 기사와 전화통화를 하며 기다리고 있는 중에 느닷없이 이 교수님이 외쳤다.

"어, 내 전대를 놓고 왔어. 전대! 거기에 여권하고 지갑이 들었는데."

이 무슨 날벼락인가. 중국여행을 경험한 사람이라면 중국에서 여권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새삼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중국통인 이 교수님과 전대를 잃어버린 이 교수님 그리고 단동까지 태워다 줄 기사가 여권을 넣은 전대를 찾으러 우리가 타고 왔던 배로 향했다. 30분 뒤에 그들은 전대를 찾아 가지고 왔다.

휴우! 천만다행이었다. 이 나라에서 잃어버린 물건을 찾는다는 것 자체가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더군다나 여권을. 만약 중국 사람이 이 교수님의 여권을 주워서 팔아넘기면 인민폐로 팔백만 원은 족히 받을 것이라고 한다. 넉살 좋은 이 교수님은 "미모의 조 선생이 앞에서 자고 있어서 혼몽한 정신에 전대를 베개 밑에 두고 그냥 왔다"며 전대 잃어버린 실수를 내 미모 탓으로 돌린다.

여행에는 예상치 못한 사건이 있어야 두고두고 기억에 남는 법. 액땜했다 생각하고 놀란 가슴을 진정하며 아직도 어둠에 갇혀 있는 대련 시내를 벗어나 단동으로 향했다.

아침 7시에 단동에 도착하니 요녕기전 직업기술학원에서 한국어를 가르치시는 이 선생님이 우리를 맞이하였다. 노릇노릇하게 잘 구운 생선구이와 콩나물국으로 아침을 먹은 우리는 행복해 했다. 집을 떠나 돌아다니다 보면 기름이 자르르 흐르는 따끈한 밥 한 공기, 국 한 그릇 그리고 대접하는 이의 따뜻한 마음을 읽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는 단어가 절로 떠오르곤 한다. 그리고 중국에서 먹는 한식 아침상은 갑절의 포만감을 준다.

항미원조기념관에 있는 대형 전경화.
 항미원조기념관에 있는 대형 전경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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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도 동북공정의 영향이...

단동에서의 첫 번째 답사 코스는 항미원조기념관(抗美援朝紀念館)이다. 기념관 이름이 이색적이다. 항미원조라? 이 기념관은 한국전쟁 때 미국에 대항해 북한을 도와주기 위해 참전한 중국군의 활약상을 전시해 놓은 곳이다. 한국전쟁에 중국군이 참전하였다는 이유로 이러한 기념관을 건립하여 상품화하고 있는 나라가 바로 중국이다. 남한과 북한이 통일되고 나면 또 어떤 형태의 상품화된 기념관이 나올지 궁금하다.

이 기념관에서 볼 만한 것이 있다면, 청천강변에서 일어난 싸움을 배경으로 한 대형 전경화(全景畵)이다. 높이가 24m, 직경이 45m가 되는데, 화염 속에 휩싸인 전쟁터에서 폭탄 소리, 총에 맞은 군인의 신음소리가 들린다고 착각할 정도로 사실적으로 그려놓았다.

기념관을 나와서 단동 시가지에서 약 15km 너머에 있는 호산산성(虎山山城)으로 향했다. 거리에 단동 시민들이 보인다. 역시 중국의 동북쪽이라서 그런지 행색이 초라하고 가난해 보인다. 30분 정도 차를 타고 가는데, 차 안에는 예수를 찬양하는 기독교 음악이 한국어로 흘러나오고 있다. 귀로는 기독교 음악을 들으며, 눈으로는 강 건너 허허로운 북녘땅을 바라보며 우리는 중국 땅을 지나가고 있었다.

우리가 찾은 호산산성은 명 성화(成化) 5년인 1469년에 처음 건립되었으며, 명대 만리장성의 동쪽 끝이며 세계문화 유산의 하나라는 설명이 산성 입구에 붙어 있다. 그러나 호산산성에 대한 위의 설명을 곧이곧대로 믿어도 될까? 만리장성의 동쪽 끝은 산해관으로 알고 있는데 난데없이 호산산성이라니! 호산산성 입구에도 반은 사람의 몸이요, 반은 짐승의 몸을 한 동상 앞에 '만리장성동단기점호산'(萬里長城東端起點虎山)이라고 새겨 놓았다.

고구려의 박작성 옛 터를 복원하여 만리장성의 동단이라고 한 호산산성
 고구려의 박작성 옛 터를 복원하여 만리장성의 동단이라고 한 호산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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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리장성의 동쪽 끝을 호산산성이라고 하는 것 역시 동북공정의 결과다. 우리나라에서는  호산산성을 고구려의 박작성(泊灼城) 옛 성터를 중국에서 복원한 것으로 보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안정복의 <동사강목>에는 박작성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당나라의 설만철 등이 바다를 건너 압록수(鴨綠水)로 들어와 박작성(泊灼城) 남쪽 40리에 이르러 군영을 설치하니, 성주(城主) 소부손(所夫孫)이 보기(步騎) 1만여 명을 거느리고 그를 막았다. 박작성은 산을 의지하여 요새를 이루었고 압록수가 가로막아 견고하였으므로, 공격하였으나 함락하지 못하였다.

결국 호산산성은 잃어버린 고구려의 옛 성터가 아닌가? 그것이 지금은 중국 만리장성의 동쪽 끝인 호산산성으로 둔갑한 것이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진실은 결코 묻히지 않는 법이지만 이곳을 찾는 사람들이 왜곡된 사실을 진실인 양 받아들일까 염려스럽다.

한 발자국만 디디면 북한 땅이다.
 한 발자국만 디디면 북한 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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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룻배를 타고 가면 북한 땅을 가까이에서 볼 수 있다.
 나룻배를 타고 가면 북한 땅을 가까이에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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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발자국만 디디면 북한 땅인데...

잔설이 남아 있는 산성을 조심스레 내려와서 다시 찾은 곳은 '일보과'(一步跨), '지척'(咫尺)이다. 한 발자국만 디디면 북한 땅이라는 뜻에서 붙은 이름 같다. 작은 개울 너머에 철조망이 쳐져 있는데 거기서부터 바로 북한 땅이 된다. 북한 땅을 가까이에서 보고 싶은 관광객을 위해 나룻배 한 척이 기다리고 있다.

한 발자국만 디디면 북한 땅이라고 하니 실감이 나지 않는다. 나는 전쟁을 겪은 세대도 아니고, 이산가족이 있는 것도 아니라서 특별한 감회가 없었지만 북녘에 친지를 두고 온 사람들이라면 눈앞에 보이는 갈 수 없는 나라를 두고 얼마나 목이 메었을 것이며, 얼마나 억장이 무너졌을까 싶다.

여기에는 '북한 땅을 향해 물건을 던지지 말 것, 배 안에서 웃거나 떠들지 말 것, 북한 땅을 배경으로 사진 찍지 말 것, 사적으로 북한 사람과 접촉하지 말 것, 배 안에서 핸드폰이나 촬영을 하지 말 것' 등등의 규약이 적혀 있었지만 우리 일행은 갈 수 없는 북한 땅을 배경으로 사진을 여러 장 찍었다.

그러나 가까이에서도, 망원경으로도 북한 군인이나 주민을 볼 수는 없었다. 가까이 있었더라면 '호랑이', '철쭉', '동양' 등의 북한 담배를 사서 던져 주고도 싶었는데 말이다.

"신의주에 소싯적 애인을 두고 왔는데 잘 있는지 보고 올테니 날 붙잡지 마라"고 하는 이 교수님의 농담을 들으며 우리는 그곳을 떠났다. 조만간에 통일이 되면 '일보과' 이곳도 또 다른 모습으로 관광객을 맞이하리라 생각하면서.

푸른 압록강이 내려다 보이고 북한 땅이 눈앞에 있는 전망 좋은 곳에 자리잡은 한국인이 직접 운영한다는 식당에서 먹은 쏘가리매운탕과 빨간 게 튀김은 일품이었다. 푸른 강가에 떠 있는 배를 보니 '압록강 푸른 물에 노 젓는 뱃사공'으로 시작하는 노래가 생각난다. 그런데 압록강인지 두만강인지 헷갈린다. 여하튼 물빛은 참으로 푸르렀다.

한국 분단의 상징인 압록강 단교.
 한국 분단의 상징인 압록강 단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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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단의 상징 '단교'

단동 시내에 있는 골동품 가게를 순례하고 나서 우리는 압록강 단교로 갔다. 압록강 단교
는 일본 총독부에서 1909년에 착공하기 시작하여 1911년 10월에 준공한 것인데, 길이가 940m다. 한국 전쟁 당시 중국이 북한에 군수물자를 원조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미군이 다리를 파괴하여 지금은 다리가 끊어진 채 남아 있다. 그래서 '압록강 단교'라고 부른다. 20원 하는 표를 사면 끊어진 다리까지 걸어갈 수 있다. 우리에게 있어 단교는 분단의 상징이며 아픈 역사의 현장이다.

단교를 보고 내려와서 이제는 압록강을 한 바뀌 도는 유람선을 탔다. 성인 20원인데 흥정을 하니 5원이 되었다. 중국에서는 관람료도 흥정하면 얼마든지 가격을 조정할 수 있다. 재미있는 나라다.

유람선을 타고 가까이 가니 눈앞에 신의주가 보인다. '압록강각'이 보이고 정박해 놓은 배에서 하얀 푸댓자루를 실어 나르는 북한 주민들이 보인다. 그리고 '21세기의 태양 김정일 장군 만세'라는 붉은 색으로 쓴 대형 현수막이 보인다. 군복을 입은 나이 어린 군인이 총을 옆에 차고 순찰을 하는지 두 사람이 짝을 지어 걸어가는 모습도 보인다.

나는 어려서 반공교육을 받은 덕분에, 북한 사람들은 머리에 뿔이 나 있을 정도로 이상하게  생겼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여기 와서 북한 주민들을 보니 뿔은 없었다. 우리를 힐끔 쳐다보지만 너무 멀어서 소리치지 못하고 손만 흔들어 주었다. 이데올로기가 무엇인지 생각하기도 전에 '저들은 밥이나 제대로 먹고 사나'하는 생각이 먼저 스쳤다.

배에서 물건을 내리고 있는 북한 주민들.
 배에서 물건을 내리고 있는 북한 주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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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람선은 잠시 잠깐 북한 주민들을 가까이에서 보여 주고는 곧장 미련도 없이 고층아파트가 운집해 있고, 네온사인이 번쩍이는 단동 시내로 가까이 갔다. 압록강을 사이에 두고 화려한 단동 시내와 적막하고 쓸쓸하여 눈물이 나올 것 같은 신의주가 너무나 대조적이었다.

그래도 석양만은 중국 땅인 단동과 조선 땅인 신의주를 끼고 흐르는 푸른 압록강을 붉게 물들이며 지고 있었다. 오늘 석양이 지고 내일이면 어김없이 춥고 가난한 북한 땅에도 태양이 뜨리라는 생각을 하니 조금은 위안이 되었다.

압록강 유람을 마치고 강추위에 바싹 얼어버린 몸을 녹이기 위해 간단히 발맛사지를 받고 저녁을 먹었다. 그리고 다시 어둠을 뚫고 단동을 떠나 대련으로 향했다. 남한과 북한이 통일이 되면 어떤 색깔로 변해 있을지 생각하였다.

그런데, 아뿔싸! 출발할 때 여권을 넣은 전대를 배 안에 놓고 오는 불상사가 생기더니 이번에는 아들 덕원이의 잠바와 목도리를 단동 식당에 두고 오고 말았다. 내일 대련 답사에서는 어떤 예기치 못한 일이 생길지 우려가 된다.


태그:#단동, #압록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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