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3일 낮 12시 50분께, 동대구행 KTX 안에서 <오마이TV>가 이회창 무소속 대통령 후보를 '기습'했을 때, 그는 달콤한 낮잠을 즐기고 있었다. 막 점심을 마친 뒤였다.

 

소지품을 놓을 수 있는 간이 책상엔 대구 지방공약이 빼곡하게 적힌 자료가 놓여 있었다. 옆에서 측근인 이채관 수행담당 행정특보가 "어제 잠을 별로 못 주무셨어요"라고 나지막이 속삭인다.

 

한참 자료를 읽다 잠들었는지, 눈을 감고도 그의 시선은 책상을 향하고 있었다. 멀리서 보면 마치 자료를 보고 있는 듯했다.

 

10여 분쯤 기다렸을까. 이 후보가 눈을 떴다. 카메라를 보고 빙긋이 미소를 짓고는 이리 와 앉으라며 손바닥으로 옆자리를 탁탁 친다. 막 잠에서 깬 뒤라 피곤할 법한데도, 그는 흔쾌히 카메라 앞에 섰다.

 

"일반석? 돈 없으니 당연하죠"

 

그의 자리는 16호차 12A석. 그는 으레 국회의원이나 정치인들이 타는 특실이 아닌 일반석에 앉았다. 주위에도 일반 시민들이 탔다.

 

"일반석에 앉아서 놀랐다"고 말을 건네니, 그는 되레 "왜요?"라고 되묻는다. "돈이 없으니까 당연하지요." 점심도 열차 안에서 도시락으로 때웠다. "배가 고프니 다 맛있"더란다.

 

요즘 그는 거리 유세에서도 이런 '돈 없는' 자신의 처지를 널리 홍보한다. '무소속 후보'라서 느끼는 '설움'이라면 설움이지만, 그는 자책하기보다 "돈이나 세력이 없이 낮은 데서 출발해 국민의 마음을 알 수 있게 됐다"고 다행스럽게 여긴다.

 

웃음도 많아졌다. 이날 인터뷰에서도 그는 툭하면 '껄껄'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 지난 주에 곽성문·김병호 의원이 지지선언을 했다. 이번 주에도 좋은 소식을 기대해도 되나?
"그건 모르겠네요. 껄껄."

 

- 언론에서 이번 주를 '운명의 한주'라고 한다.
"그래요? 하하. 그거 말이 그럴싸하네. 말 되네."

 

- 오늘 대구에서 어떤 메시지로 유세를 하실 건가?
"그거는 미리 밝히면 안 되지. 하하."

 

아직은 지지율 2위인데도, 그는 이렇게 여유를 부렸다. 조급하거나 초조한 기색을 찾아보기 어렵다.

 

"주위에서 후보가 많이 바뀌셨다는 얘기를 한다"고 말을 건네니, "(내가) 많이 컸다는 얘긴가?"라며 또 한 번 웃는다. 그러곤 힘을 주어 또박또박 말을 잇는다.

 

"이번에 선거에 나온 마음가짐이 남다르죠. 이번에 잘 되면 당선되고 안 되면 할 수 없고 이런 기분이 아닙니다. 반드시 정권교체를 이뤄서 국민들이 '왜 이회창이가 나와서 그토록 욕을 먹고 고생하면서 이것을 했던가. 결국 우리나라의 하나의 새벽의 문을 열려 그토록 몸을 던져 일한 것이었구나' 생각하시게끔 하려고 합니다."

 

"이제는 점퍼가 더 편해"

 

약 1시간 전 심대평 국민중심당 후보와 단일화 선언 기자회견을 했을 때만 해도 감색 양복에 하늘색 넥타이의 말쑥한 정장 차림이었는데 어느새 면바지에 셔츠로 갈아입었다. 옆엔 요즘 항상 입는 '야전복'인 남색 모직 점퍼가 걸려있다.

 

5년 전만해도 이 후보는 넥타이를 맨 정장을 주로 입었다. 당시 측근으로 그를 보좌했던 한 정치권 인사는 "2002년에는 그렇게 점퍼를 입으시라고 해도 양복을 고수하시고 어쩌다 입어도 금방 벗으셔서 많이 애를 태웠다"며 "이번에 이렇게 줄기차게 점퍼만 입고 다니시는 걸 보고 놀랐다"고도 한다.

 

그러나 이 후보는 이제는 "점퍼가 더 편하"단다. 이날 동성로 유세에선 대학생들이 대구의 특산품인 사과 12개를 바구니에 담아 선물하자, 그 자리에서 사과 하나를 꺼내 점퍼에 쓱쓱 문질러 우걱우걱 베어 먹기도 했다. 이렇듯 불필요한 격식 없이 서민의 눈높이에서 서민을 만나기에 편한 복장이란 뜻일 게다.

 

이날 이 후보가 네티즌에게 남긴 인사도 대법관에 국무총리까지 지낸 '대쪽' 정치인이라기 보다는 맘씨 좋은 할아버지의 냄새가 묻어났다.

 

"여러분, 저 이회창입니다. 기호는 12번! 허허허. 꼴찌 12번입니다. 참 선거운동 막상 다니니까 힘도 들고요. 이번에는 특히 과거와는 달리 절대 져서는 안 될 선거거든요. 그런 만큼 각오도 남다르고 더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네티즌 여러분께서도 많이 저를 기억해주시고 도와주시기 바랍니다. 12월 19일에 꼭 제일 투표용지 끝에 맨 꼴찌 12번에 탁 찍어주시면 저를 확실하게 도와주시는 겁니다. 감사합니다."

 

10여 분 남짓 카메라 앞에 앉았던 이 후보는 인터뷰를 끝내면서도 취재진에게 유쾌한 웃음을 선사했다.

 

"이거 인터뷰 하면 출연료는 안 주나? 허허."


태그:#이회창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