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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22일 아침, 눈을 뜨자마자 창문을 열고 밖의 날씨를 살핀다. 아직 먼동이 트기 전이라 어둡지만 비는 오지 않는다. 오늘의 일기예보를 들어본다. 구름 조금 끼고 종일 맑다는 예보이다. 일단 안심이다.

어제 저녁엔 그 엉망인 모습으로 그동안 농장을 둘러보러 다니면서 묶었던 여관으로 찾아들었다. 다행히 여관 주인이 우리를 알아보고 반갑게 맞아주었다. 뜨거운 물에 샤워하고 새 옷으로 갈아입고 지리산 온천 관광단지 식당에 들러 흑돼지갈비에 소주 한 잔 하고 나니 한 시간 전 설움이 허공에 흩어진다.

내일부터는 추석 연휴가 시작되기 때문에 오늘 연휴 동안에 해야 할 일정을 좀 더 구체적으로 정하고 이에 필요한 건축자재를 확보해야 한다. 엉덩이 붙일 곳인 정자를 하루나 이틀에 걸쳐 짓기로 했으나 정자 기둥이 될 소나무는 대전집에서 가져올 수 없었다.

제재소에서 켠 목재를 사용하여 건축하고자 할때 목재를 다루는 절대적으로 필요한 장비
▲ 5인치 전동대패 제재소에서 켠 목재를 사용하여 건축하고자 할때 목재를 다루는 절대적으로 필요한 장비
ⓒ 정부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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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남원 컨테이너 제작소에 들렀다. 화장실과 샤워장까지 갖춘 집 모양의 컨테이너를 350만원이면 구입할 수 있다. 집사람은 영 내키지 않는 눈치이다. 할 수 없어 목재매장을 수소문하여 찾아갔다. 합판, 루바, 아스팔트 싱글, 플라스틱 관, 창문, 석고보드, 스티로폼 등 오두막 짓기에 필요한 건축자재를 주문하였다.
            
아울러 필요한 목재 량을 산출하여 주문하니 제재소에서 주문규격으로 켜야 한다는 것이다. 제재소에서 켠 한 트럭분 생목으로 한옥도 아니고 그렇다고 목조주택도 아닌 국적불명의 오두막을 지으려면 대형 대패와 샌더가 필수적이다.

남원의 공구상점을 몇 군데 가봤으나 내가 원하는 대형 대패와 사포질을 할 수 있는 대형샌더를 즉석에서 구입할 수 없다. 할 수없어 진열품인 5인치 전동대패 만 구입하여 산동으로 돌아왔다.

전동대패와 함께 거친 목재를 다루기 위한 공구.
▲ 벨트샌더 전동대패와 함께 거친 목재를 다루기 위한 공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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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동에 도착하니 시집간 딸이 추석날은 아빠를 보러오기 곤란하다고 오늘 와서 2시간째 기다리고 있다. 서둘러 점심을 먹이고 농장에서 사돈댁에 보낼 밤을 딸과 사위를 시켜 주워 모았다. 외손자는 집사람이 나와 교대로 안아주었다.

딸도 그렇지만 사위도 밤 농장에서 밤을 줍는 일이 처음이다. 딸과 사위는 환성을 지르며 매우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같이 있을 땐 몰라도, 딸을 보내는 뒷길은 뭔가 딱 집어 말하기 곤란하지만 언제나 슬픈 곡조이다.

23일 아침 3시 40분, 부슬부슬 내리는 빗소리에 눈을 떴다. 어제 2시간 간격으로  일기예보를 들었으나 비 온다는 얘기가 없었는데…. 다시 잠을 청해보나 올 리가 없다. 다른 것은 비에 젖는다고 해도 별 문제없는 물건들이나 습기와 상극인 석고보드와 천정루바가 걱정이다. 철물점 문 여는 시간까지 기다렸다가 천막을 사가지고 가서 우선 임시방편으로 조치하고 다시 여관으로 돌아왔다.

아침을 먹고 난 후에도 비가 그칠 것 같지 않다. 집사람은 장화 3켤레를 사가지고 와서 죽든 살던 우리집터로 가잔다. 집사람은 장화를 신고 밤을 주우러 밤나무 밭으로 갔고 나는 집터 한쪽 구석에 오두막 터를 만드는 작업을 시작하였다. 비는 계속 조금씩 내렸으나 집터 다듬는 공사에는 별지장이 없다.

가끔 급히 움직이는 구름 위로 보이는 지리산 능선의 모습은 탄성이 저절로 나는 비경이였다. 난생 처음 실전에 임하는 굴착기 작업이라 조잡하고 서툴지만 몰두해서 하다보니 조금씩 집터 모양이 갖춰진다.

독립군이 될 결심으로 아빠를 돕겠다고 아들이 온단다. 추석 연휴를 온통 아빠를 돕는 일에 할애하겠다는 아들이 너무도 기특하다. 아들은 밀어붙이는 내 성격과 너무도 다르다. 항상 다음에는 잘해줘야지 하고 매번 다짐을 하지만 만나고 나면 금방 부딪친다. 집사람 말로는 아들도 큰 피해자라는 것이다. 이번에는 특히 잘해 줘야겠다.

9월 24일인 오늘 아침에도 어제 새벽부터 내리기 시작한 비는 도무지 그칠 기미가 없다. 임시조치를 한다고 했지만 어제 종일토록 내린 비에 루바와 석고보드가 온전할지 의문이다. 집사람과 상의하여 창고가 딸린 민박집으로 거처를 옮기고 건축자재도 아들과 함께 창고로 일단 옮겼다.

중고 탓인지 내가 굴착기 특성을 잘못이해하고 있는지 
조금만 거칠게 다루면 고장난다.
▲ 말썽많은 내 굴착기 중고 탓인지 내가 굴착기 특성을 잘못이해하고 있는지 조금만 거칠게 다루면 고장난다.
ⓒ 정부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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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에는 비구름이 걷히고 햇빛이 든다. 어제 하던 오두막 터 다듬기를 계속한다. 어떤 때는 내 굴착기로 옮기기가 곤란한 큰 돌들이 나온다. 돌이 적다고 옮기고 크다고 그대로 방치할 수 없다. 너무 큰 돌을 들었는지 굴착기가 앞으로 코방아를 찧더니 유압장치가 고장 나고 말았다. 굴착기 손이 꿈쩍도 않는다. 추석 연휴 중이라 수리를 요청할 만한 곳도 없고 아는 수리점도 없다. 믿는 것이 대감이라고 했듯이 내가 믿는 것은 오직 굴착기였으나 고철덩어리가 되어버렸다.

지리산으로 내려온 지 4일이 지나가건만 가시적인 성과는 아무것도 없다. 날마다, 끼니마다 외식이고 2차, 3차 가공식품들을 먹지 않을 수 없다. 외식이나 조미료가 많이 들어간 음식들이 얼마나 몸에 해로운지 건강한 사람들은 잘 모르겠지만 우리같이 임계선상에서 줄타기하는 사람들은 금방 표가 난다.

전 주말에 내부공사를 마감하고, 따뜻한 차한잔 들면서 뒤쪽으로 설치한 
창문을 통해 편백숲을 바라보는 여유를 갖었다.
▲ 오두막 안에서 바라본 편백나무 숲 전 주말에 내부공사를 마감하고, 따뜻한 차한잔 들면서 뒤쪽으로 설치한 창문을 통해 편백숲을 바라보는 여유를 갖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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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격히 몸의 컨디션이 나빠지고 혈당수치도 불안정하다. 무엇을 얻기 위한 투쟁인가? 본말이 전도된 느낌에 매우 혼란스럽다. 집터 다듬기도 오두막 짓기도 그저 머릿속에서 맴돌 뿐이다. 편백나무로 둘러싸인 숲속에 오두막을 짓고 그곳에서 며칠 잔다고 다시 올 수밖에 없는 나의 중풍 재발을 막을 수 있다는 말인가?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야겠다.

덧붙이는 글 | 나의 오두막 짓기 경험담입니다.



태그:#목수, #오두막, #목조주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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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덕연구단지에 30년 동안 근무 후 은퇴하여 지리산골로 귀농한 전직 연구원입니다. 귀촌을 위해 은퇴시기를 중심으로 10년 전부터 준비했고, 은퇴하고 귀촌하여 2020년까지 귀촌생활의 정착을 위해 산전수전과 같이 딩굴었습니다. 이제 앞으로 10년 동안은 귀촌생활의 의미를 객관적인 견지에서 바라보며 그 느낌을 공유해볼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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