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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악기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 공룡을 만나러 간다. 땅끝에서 77번 국도는 해남의 서쪽을 책임지고 있는 등뼈 역할을 하는 길. 77번 국도 끝까지 가다 보면 우항리 공룡화석지 가는 좁은 길과 만난다.

 

 

40분쯤 달리자 방조제가 곧고 길게 뻗어 있다. 고천암 방조제다. 서쪽 바다 근처를 달리다 보면 방조제는 꼭 있다. 한쪽은 바다요, 한 쪽은 갈대숲이 무성한 철새 도래지. 이것도 비슷하다. 이른 아침이어선지 철새는 보이지 않고 곳곳에 포진해 있는 갈대와 억새가 우리를 맞는다. 들풀에서 깊어가는 가을을 느끼며 전망대를 향해 걷는다. 철새도 구경꾼도 없는 전망대가 쓸쓸해 보인다. 이미 혼자 사는 법을 익혔는지 저 혼자 먼 곳을 응시하며 의연하게 서서 철새를 기다린다.

 

 

방조제를 건너니 황산면 시골 풍경이 이어지다 느닷없이 염전이 나타난다. 규모가 꽤 큰 염전이다. 우리는 차를 세우고 염전을 구경한다. 요즘 금추라고 떠들어대는 초록색 배추밭과 어우러진 염전이 그림 같다. 염전을 보면 나는 무조건 향수에 젖는다. 소래염전 곁에서 성장한 나의 어린시절 이야기에는 늘 염전이 등장한다. 짠물을 퍼올리는 수차와 소금창고와 소금차, 그리고 낡은 손수건에 싼 도시락을 옆에 끼고 다니던 염부꾼들…. 나는 언제나 그 언저리를 서성이는 시간이 많았다.

 

77번 국도가 끝나고 샛길로 빠져 마을로 들어간다. 들판이 나오니 아직 멀었나 싶은데 거의 다 와 간단다. 내 눈치학상 공룡화석지는 거의 바닷가에 있었다. 그러니 최소한 바다 냄새는 나야 가까이 왔다고 할 수 있는데 계속 농촌 풍경만 이어진다. 이런 곳에도 공룡화석이 있을까나, 궁금해진다.

 

드디어 바다 냄새가 나고 꽤 넓은 공원이 눈앞에 펼쳐진다. 새로 조성한 듯 어린 나무들이 보이고, 흙도 이제 막 다듬어 놓았는지 붉은색이다. 전남 해남군 황산면 우항리, 천연기념물 제394호 공룡 익룡 새발자국 화석지.

 

일단 규모를 보고 놀랐다. 고성 공룡나라와 비교하는 건 좀 뭣하지만 이곳 화석지도 고성 못지 않게 광활하다. 세계 최초(익룡, 공룡, 새발자국 화석이 한 지역에서 발견된 유일한 지역) 세계 최대(익룡 발자국 크기(20~35m) 및 규모) 세계 최고(지금으로부터 약 8300만 년 전에 생성된 물갈퀴새 발자국 화석) 등 '최'로 시작되는 단어들이 많이 나열돼 있는 굉장한 화석지인 것이다.

 

 

우항리 일대의 공룡 발자국은 익룡과 물새로 추정되는 발자국과 절지동물의 흔적이 퇴적암 위에 뚜렷하게 남아 있어 공룡연구에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고 한다. 특히 익룡, 공룡, 새발자국이 함께 발견되기는 이곳이 처음, 그 시대 이 일대는 많은 종류의 공룡이 호수를 누비면서 생활한 것으로 추정한다고. 이와 함께 발견된 퇴적층은 무려 400m에 이르는 국제적인 퇴적명소라 하니 정말 대단한 곳이다.

 

 

중생대 백악기(1억4400만년 전으로 추정)에는 한반도에서 대마도까지 상당히 큰 호수가 형성돼 있었던 것으로 추정한다. 당시 한반도 일대는 공룡의 지상낙원으로 공룡시대를 주도하였을 것라고 보고 있단다.

 

우항리 화석지는 그동안 호수에 잠겨 있었고, 화원반도 부근의 바닷물을 막고 대불공단이 들어서면서 북쪽 해안일대 퇴적층에서 화석이 처음 발견되었다. 발견된 퇴적층 화석 중에는 물갈퀴 모양의 발자국이 있는데, 이는 오리류로 새의 진화과정을 말하는 중요한 단서이기도 하면서 살아 있는 오리류가 공룡의 후예일지도 모른다는 조심스런 추측도 나오고 있다고.

 

우항리에서 발견된 발자국은 용각류를 비롯하여 수각류, 조각류 등 공룡화석 514점과 익룡발자국 443점, 그리고 새발자국 1000여 점이며 절지동물 흔적도 다수 포함돼 있다. 그동안 남해안 일대에서 발견된 발자국은 크기가 작았지만 우항리 공룡발자국은 크기부터가 다르다.

 

세계 최대로 불리는 대형급인 테로닥틸로이드 종류의 익룡 발자국이 있고, 또 물갈퀴새발자국 화석은 세계에서 제일 오래된 것으로 보고 되었으며, 절지동물 보행흔적, 규화목, 탄화목, 최대 보행렬은 아시아에서 유일하게 발견된 화석이다.

 

 

박물관을 둘러보고 화석지를 보러 나섰다. 이곳 화석지는 해안과 단배로 돌출돼 쌓여 있던 퇴적암 층리를 캐내어 공룡발자국을 자세하게 관찰할 수 있도록 하였고 자연 그대로의 지형을 이용해 전시실 형태의 보호각을 마련하였다.

 

모두 세 개의 전시실이 있는데, 이동하기 좋게 통로에는 데크를 놓아 연결했다. 무엇보다 실내에서 자연적인 이끼와 화석을 본다는 게 신기했는데, 그렇기 때문에 약간의 노파심도 생겼다. 혹시 실내에 들어와 있는 자연이 조건이 맞지 않아 괴사해 버리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었다.

 

 

우항리는 지난 1992년 한국자원연구소의 지질학 연구조사 중 공룡발자국이 발견되었고, 그후에도 계속해서 발굴, 기초조사와 종합학술조사를 거쳐 현재의 모습을 갖추었다고 한다. 또 학술조사 내용을 토대로 세계적인 공룡발자국 권위자들과 많은 학자들을 초빙, 공룡발자국과 익룡발자국에 대한 인증도 받았단다. 이러한 자료로 2차에 걸친 국제학술 심포지움을 개최하면서 이 지역 화석지의 중요성도 드높였다고 한다.

 

 

전시실을 나오니 바로 갈대밭이었고 갈대밭 너머로 강 같은 바다가 보였다. 가을의 정취를 풍기는 갈대밭에 서니 저만치 철새가 바다 위에 둥둥 떠 있다. 평화롭기도 하고 신비하기도 한 아름다운 가을 풍경이다.

 

그들 공룡 나라에도 이렇게 평화로운 공존이 있었을지 문득 궁금해졌다. 갈대숲에 싸인 오솔길을 걸었다. 호젓한 갈대숲길을 걷다보니 기분이 저절로 좋아지면서 내 마음에도 고요가 찾아왔다. 뒤를 돌아오던 길을 바라보니 갈대밭 너머 언덕에 공룡박물관이 이쪽을 무심히 내려다 보고 있었다.

 

지금은 현대식 건물이 우리를 보고 있지만 1억년 저 너머에는 무시무시한 공룡이 우리를 향해 포효하고 있지는 않았을까? 헤아리기조차 쉽지 않은 먼 과거를 생각하면 나나 우리는 참으로 짧은 순간을 이땅에서 호흡하며 살다가는 것 같다. 우리의 짧은 인생과 앞으로도 억겁을 지켜나갈 이 땅…. 그런 의미에서 우항리 공룡화석지는 이 땅의 소중함을 더 깊이 깨닫게 해주었다.

덧붙이는 글 | 우항리 공룡화석지에는 11월 11일 다녀왔습니다.


태그:#공룡화석지, #해남 우항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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