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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와 바다 그가 바라보는 바다는 그의 뒷모습을 보는 사람만이 본다.
소녀와 바다그가 바라보는 바다는 그의 뒷모습을 보는 사람만이 본다. ⓒ 김민수

뒷모습이 어여쁜
사람이 참으로
아름다운 사람이다

자기의 눈으로는 결코
확인이 되지 않는 뒷모습
오로지 타인에게로만 열린
또 하나의 표정

뒷모습은
고칠 수 없다
거짓말을 할 줄 모른다 (하략)


- 나태주 '뒷모습'

김녕에서 쓸쓸한 듯 보이는 백발 노인의 뒷모습
김녕에서쓸쓸한 듯 보이는 백발 노인의 뒷모습 ⓒ 김민수

언젠가 나태주님의 '뒷모습'이라는 시를 읽은 밤, 타인에게로만 열린 또 하나의 표정인 나의 뒷모습은 어떨까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한 적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의 뒷모습, 그것을 지켜보는 사람이야말로 진실한 사랑을 하는 것이라는 말이 '뒷모습'이라는 시와 겹쳐지면서 그동안 만났던 뒷모습에 대한 잔상들이 떠올랐습니다.

때로는 아무 말 없음이 더 많은 말을 하는 것처럼, 뒷모습은 더 많은 이야기를 두런두런 나누며 다가옵니다. 마치 라디오를 들으며 수많은 이미지들을 그려내는 것처럼 말이죠.

성산항에서 멸치를 올리는 어부들의 손길이 분주하다.
성산항에서멸치를 올리는 어부들의 손길이 분주하다. ⓒ 김민수

우리는 앞모습을 치장하는 데만 급급하며 살아가는 것 같습니다. 내가 보는 것이 전부가 아닌데, 내가 보지 못하는 것은 아예 없는 것처럼 애써 무시하고 살아가려고 합니다.

우리가 삶을 마감할 때 흔히 '흙으로 돌아간다'고 합니다. 온 곳으로 돌아감, 그 길은 홀로 가는 길이기에 뒷모습밖에 보여줄 것이 없습니다.

오는 모습, 그것은 누구나 아름답습니다. 막 태어난 아기가 그렇고, 새봄에 싹을 틔우는 새싹도 그렇고, 막 꽃을 피우려는 꽃몽우리도 아름답습니다.

그러나 뒷모습은 그렇지 않습니다. 뒷모습은 아름다운 사람도 있고 추한 사람도 있습니다.

밭으로 가는 길 뒷모습은 자기가 보는 것이 아니라 남이 본다.
밭으로 가는 길뒷모습은 자기가 보는 것이 아니라 남이 본다. ⓒ 김민수

나에게 열린 표정이 아니라 타인에게만 열린 표정, 그것은 나에게 열려 있지 않음으로 치장을 할 수 없습니다. 뒷모습 실존의 표정인 것입니다. 그래서 뒷모습이 아름다운 사람이 진정 아름다운 사람일 것입니다.

그래서 앞모습에만 혹해서 사람을 좋아할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뒷모습까지 보아야 그 사람의 진면목을 보았다고 말할 수 있겠지요. 그러나 사람들은 뒷모습을 보는 법을 잃어버린 것 같습니다. 뒷모습은 타인에게는 열려 있지만 자신에게는 닫혀 있는 모습입니다. 그래서 누군가의 뒷모습을 제대로 보기 위해서는 조금은 떨어져서 바라봐야 합니다. 그래서 뒷모습은 쓸쓸해 보이기도 하는 것입니다.

종달리 감자밭 수없이 많은 이야기가 뒷모습에는 담겨있다.
종달리 감자밭수없이 많은 이야기가 뒷모습에는 담겨있다. ⓒ 김민수

앞모습을 본다고 실체를 보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뒷모습도 그렇지요. 그러나 뒷모습은 거짓말을 하지 못합니다.

살아온 날이 쌓이면 쌓일수록 뒷모습을 더 많이 보여주고 살아가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뒷모습을 바라봐줄 사람이 하나둘 적어지는 삶을 살아가는 것 같습니다. 마지막 뒷모습은 사랑하는 사람이 지켜주겠지요.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나의 뒷모습을 보고 웃어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지금 살아가는 동안에 내 앞에서 웃음 짓는 사람들과 환호하는 사람들에 취해 뒤에서 손가락질하는 사람들의 이유를 외면하지 않는 지혜를 가지고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앞에서는 칭찬을 하다가도 돌아서면 비난을 하는 것이 우리네 사람이라고 하던가요? 그러나 아무리 그것이 인지상정이라고 할지라도 뒷모습이 아름다운 사람, 쓸쓸한 사람에게 손가락질하고 야유를 할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퇴장하는 사람들에 대한 연민 같은 것들도 인지상정인 것이지요.

우리는 지금 앞모습에 취해서 살아가는 것은 아닌지, 당장 보이는 것만 보고 뒤에 감춰진 비수를 보지 못하는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 합니다. 고칠 수 없고, 거짓말할 수 없고, 치장할 수 없는 뒷모습을 보는 지혜가 절실한 때를 우리는 살아가고 있습니다.


#뒷모습#나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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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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