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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점 할수록 힘이 난다."

 

첫 공식 선거운동이 시작되는 27일, 이회창 무소속 대통령 후보는 서울을 첫 유세지로 택했다.

 

오전 11시 30분 남대문 로터리에서 열린 출정식을 시작으로 남대문시장→가락동 농수산시장→잠실역→동서울 터미널→경동시장→동대문시장을 돌았다. 지지율 취약 층인 서울시민과 젊은 층을 공략하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이 후보는 남대문시장에서는 좌판에서 1만원짜리 점퍼를, 가락동 농수산시장에서는 생굴 1만원어치와 목포 참조기 2만원어치를 샀다. 점심은 시장에서 3500원짜리 칼국수로 때웠다.

 

강북·강남 아우르는 '서울투어'... "저 이회창 죽지 않았다"

 

이날 이 후보는 거리 연설만 6번을 했다. 강북과 강남을 아우르는 일정인데도 피곤한 기색이 없었다. 오히려 이 후보는 "갈수록 힘이 난다"며 "평소에 운동을 해서인지 추운지도 모르겠다"고 말했다.

 

유세하는 목소리에는 힘이 들어가고 연설도 점점 과감해졌다.

 

"저 이회창 죽지 않았다. 하지만 저 혼자는 안된다. 국민 여러분과 함께 미래를 열겠다." (오전, 남대문 ‘출정식’에서)
"한나라당 후보로는 정권교체를 할 수 없다. 경제는 CEO를 했다고 해서 살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오후 3시, 잠실역 연설)

 

시민들도 '삼수생' 이 후보를 반겼다. 남대문 시장에서는 한 40대 상인이 "딱 세 번만 찍겠다. 힘내시라"(남대문 시장 상인)며 이 후보 손을 움켜잡았고, 60대 여성은 "지난 대선에서 안돼서 3일 동안 잠도 못잤다"며 측은한 눈길로 이 후보를 바라봤다.

 

이 후보가 칼국수를 먹는 동안 식당 주변에는 시민 수십 명이 "손이라도 잡고 가겠다"며 그를 기다렸다.

 

강변역에서 이 후보의 연설을 듣던 주부 한아무개(51·상계동)씨는 "지금은 가진 게 없어도 사람이 더 단단해진 느낌"이라며 "더 푸근하게 느껴진다"고 말했다.

 

이 후보는 "시민들의 호응이 어떤 것 같느냐"는 질문에 "좋다. 지난번보다 더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호응이 느껴진다"고 답했다.

 

"지난번보다 더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호응이 느껴져"

 

하지만 이날 이 후보가 환호와 환영만 받았던 건 아니다. 남대문로 출정식에는 1천여 명이 모였지만 동서울터미널 근처 강변역 유세 때는 고작 70여 명이, 유동인구가 많은 잠실역에서도 150여 명 정도가 모였을 뿐이다.

 

잠실역 지하상가를 돌 때에는 한 상인이 "어서 가세요. 이게 뭐예요"라며 짜증 섞인 핀잔을 주기도 했다. 후보 일행 때문에 장사에 피해를 본다는 것이었다. 이 후보는 상인에게 멋쩍게 "미안해요"라고 말했다.

 

이 후보는 격세지감이라는 듯 연설에서 "5년 전이었다면, 당에서 동원한 청중이 저 끝까지 찼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지금은 그때의 12분의 1도 안 되지만, 여기 온 분들은 모두 마음에서 우러나 나온 것"이라며 "그래서 저에게 한없는 용기를 준다"고 목청을 높였다.

 

돈 없는 설움도 톡톡히 맛봤다. 이날 이 후보 캠프는 애초 오전 10시에 출정식을 치를 예정이었는데 돌연 기자들에게 1시간 30분 뒤로 행사를 미루겠다고 알려왔다. 유세차량이 제때 올 수 없어서였다.

 

사정인즉슨, 전날까지 선거 유세차량 100여 대 임차료로 업체에 10억여원을 줘야 했지만 비용을 치르지 못했다는 게 캠프의 설명이다. 업체에선 돈을 받지 못할 것을 걱정해 차량을 대지 못하겠다고 했고, 캠프는 다급히 업체를 설득해 계약금 일부만 주고 차량 몇 대만 우선 '공수'했다.

 

이번 선거에서 대통합민주신당과 한나라당의 정당 후보들은 110억원씩을 중앙선관위에서 선거보조금으로 받지만 무소속 후보는 한 푼도 받지 못해 사정이 넉넉지 못한 것이다.

 

'돈 없는' 무소속 설움... 유세차량 비용 대지 못해 출정식 늦어지기도

 

이 후보는 이날 연설 때마다 이런 자신의 처지를 호소했다.

 

"돈이 없어서 방송차량업체에 돈 내는 게 좀 늦었더니 차량이 늦게 왔다. 이것이 나의 현 주소다."
"저는 매우 고달프게 시작했다. 돈도 조직도 세력도 없다. 한나라당 총재를 할 때에는 돈과 조직이 있고, 세력도 거느리고 다녔다지만, 국민의 마음을 얻지 못해 두 번이나 떨어졌다. 자만에 빠졌기 때문이다."
"저는 지금 단출하게 시작하지만 소외된 국민을 섬기며 낮은 자세로 출발하고자 한다."

"국민과 함께 밑바닥에서 뒹구는 대통령이 되겠다."

 

하지만, 이 후보는 이날 만나는 시민들마다 두 손을 꼭 잡고 인사를 하면서도 노숙자의 손은 잡지 않았다.

 

이 후보가 잠실역 지하상가의 벤치에 앉은 시민들과 차례로 악수를 할 때, 한 노숙자가 벤치에 몸을 뉘인 채 몸을 떨고 있었다. 취재진은 이 후보가 과연 그에게 어떻게 할지 주시했다. 하지만 이 후보는 그에게 말도 건네지 않고 그냥 지나쳤다.

 

출사표대로 이 후보가 정말 소외된 서민을 받들고 보듬을 수 있을지는 지켜볼 일이다.

 

 

#이회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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