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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몽대의 늦가을 오후
 선몽대의 늦가을 오후
ⓒ 이상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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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몽대에 걸린 시들을 통해 과거로 돌아가다

선몽대는 퇴계 이황의 종손(從孫)인 우암(遇巖) 이열도(李閱道, 1538∼1591)공이 1563년 창건한 정자다. 퇴계 선생이 선몽대란 이름 세 글자를 쓰고 시를 보내주었다. 이 시를 차운하여 우암 선생이 시를 썼으며, 이후로도 당대의 석학인 약포 정탁, 서애 류성룡, 청음 김상헌, 한음 이덕형, 학봉 김성일 등이 퇴계의 시를 차운하여 시를 남겼다.

이들 시는 목판에 새겨져 지금까지 전해져 오고 있다. 이곳은 조선 중기 퇴계와 학맥이 닿는 모든 사람들이 다녀가면서 그 흔적을 남기고 있다. 그러므로 선몽대는 명승고적으로서의 의미뿐 아니라 유교의 전통을 간직한 역사적인 장소로도 의미가 크다.

선몽대를 제대로 보기 위해서는 우암선생의 후손인 이창노씨에게 연락(054-652-3366)해야 한다. 이창노씨는 백송리에 살면서 선몽대를 관리하고 있다. 선몽대는 주사(廚舍: 부엌 겸 재실로 이루어진 10칸짜리 집)을 통해 들어가도록 되어 있다.

주사 가운데 문을 지나 계단을 오르면 12칸의 선몽대가 바위 위에 2층으로 자리 잡고 있다. 1967년 주사와 함께 중수하였는데 1층은 온돌 겸 지하실 형태를 이루고 있다. 그러므로 실제 시용할 수 있는 공간은 정면 4칸, 측면 3칸의 2층 12칸이다.

퇴계 선생이 쓴 선몽대 현판
 퇴계 선생이 쓴 선몽대 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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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에 들어가면 동쪽으로 퇴계 선생이 직접 쓴 선몽대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그리고 그 건너편에는 퇴계선생이 선몽대란 이름을 짓게 된 연유를 쓴 현판이 걸려 있다. 끝에 가정(嘉靖) 계해(癸亥) 도산(陶山)이라는 글자가 있어 1563년 도산(퇴계) 선생이 썼음을 알수 있다.

선몽대란 제목을 지어 부치다.                     寄題仙夢臺

노송과 높은 누대 푸른 하늘에 솟아있고        松老高臺揷翠虛
흰모래 푸른 절벽은 그리기도 어렵구나.        白沙靑壁畵難如
내가 이제 밤마다 선몽대에 기대서니            吾今夜夜凭仙夢
예전에 가서 기리지 못함을 한탄하지 않노라. 莫恨前時趁賞疏


그리고 한쪽으로는 종조부인 퇴계의 시에서 차운한 우암선생의 칠언절구 세 편이 걸려 있다. 퇴계의 시에서 허(虛)와 여(如)그리고 소(疎)를 차운했다. 그 중 두 번째 시가 이곳의 풍경을 가장 잘 표현하고 있다.

우암 선생의 시
 우암 선생의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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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렁처럼 높이 솟은 작은 정자가 물에 비쳐 한가로운데 小亭高架鏡中虛
멀리 갯가와 긴 내를 바라보니 속이 탁 트이는구나.      遠浦長川望豁如
외로운 두루미 노을 진 저녁에 여러 형상 드러나니       孤鶖落霞呈百態
늦바람에 흩날리는 비가 쓸쓸하게 내리는구나.            晩風飛雨又疎疎


다산 정약용이 본 선몽대

그리고 아버지인 예천군수 정재원을 따라 선몽대에 왔던 다산 정약용은 이곳에 있는 7대조인 감사공(監司公) 정사우(丁士優)의 시를 본다. 이것 역시 퇴계의 시를 차운하여 쓴 시이다.

물속에 드리운 아름다운 누대 보배로운 거울을 무색케 하고   一水瑤臺寶鑑虛
주인이 품은 마음씨 또한 담백하기 이를 데 없네.                 主人襟抱淡相如
이틀간을 오르내리면서 선몽대와 함께 하니                        登臨兩日同仙夢
천길 위에서 세상 티끌이 내 생각으로부터 멀어지는구나.      千尺紅塵念己疏


이 시를 보고 난 정재원은 다산에게 시를 한 수 짓도록 하고 다산은 다음과 같은 시로 화답한다. 이것은 퇴계의 시에서 차운하지 않았다. 선몽대의 모습을 보면서 느낀 감정을 표현한 서정적 칠언율시이다. 풍우(風雨)와 수운(水雲)의 절묘한 조화가 기막히고 사신과 승상의 놀던 흔적이 선연하게 드러난다. 이 시는 퇴계나 우암의 시보다 훨씬 더 사실적이고 또 현실적이다.

소나무 줄기가 마치 코끼리 다리처럼 보인다.
 소나무 줄기가 마치 코끼리 다리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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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친을 모시고 선몽대에 올라   陪家君登仙夢臺

높은 언덕 자리 잡아 허공에 솟은 누각            中天樓閣枕高丘
술잔 들고 올라가니 객의 시름 사라지네.         杯酒登臨散客愁
산중의 비 붉은 꽃에 방울져 떨어지고             山雨著花紅滴瀝
푸른 소나무 사이로 강바람이 불어온다.          溪風入檜碧颼飅
사신의 의관은 지나간 흔적을 슬퍼하도록 하고 使臣冠蓋悲陳跡
승상의 의건은 예전에 놀던 일을 기억케 하네.  丞相衣巾憶舊游
붉은 부엌 연기 없어 신선의 꿈 싸늘한데         丹竈無煙仙夢冷
강물과 구름은 예나 지금이나 참 한가하구나.   水雲今古自悠悠


선몽대 나오는 길

선몽대에서 바라 본 내성천 풍경
 선몽대에서 바라 본 내성천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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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가을 오후의 햇살이 서쪽으로 기울어간다. 이창노씨와 선몽대 바깥 마루에 나와 선조들이 보았던 풍경을 관찰한다. 동에서 서로 내성천이 휘감아 흐르고 하얀 백사장이 길게 펼쳐진다. 평사낙안 기러기는 찾을 수 없고, 강 건너편에는 작업을 하는 포크레인 소리만이 요란하다. 선몽대가 명승으로 지정되기 전에는 이곳에서 골재를 채취하기도 했다고 한다.
  
오른쪽으로는 오천교가 보이고, 왼쪽 가까이로는 소나무 숲이 보인다. 선몽대 바로 아래는 절벽인지라 물이 깊어 약간의 소용돌이도 보인다. 선몽대는 물에 가깝고 절벽에 지어져 있고, 건물의 방향이 북동을 향하고 있어 오후에는 그림자가 많이 지는 편이다. 그래서 누가 이곳에 상주할 수는 없고 일이 있을 때만 사용하다 보니 관리가 쉽지는 않다고 한다.
선몽대 주사 지붕의 잡초들
 선몽대 주사 지붕의 잡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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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오면서 보니 주사 대문 옆에 큰 솥이 걸려 있다. 이 솥은 묘제(廟祭)가 있어 음식을 준비할 때만 가끔 사용할 뿐이다. 지붕의 기와에도 잡초들이 무성하다. 이런 것들이 건물의 수명을 단축시킨다는 사실을 알지만 손을 대지 못한다고 한다. 관리비도 부족하고 젊은이도 없고, 요즘 고가나 사당, 누정들이 겪는 공통의 어려움이다.

선몽대를 구경하고 밖으로 나와 선몽대 숲을 거닐며, 이창노씨로부터 이곳을 찾는 사람들에게 하는 부탁의 말씀도 듣는다. 한마디로 요약하면 숲이나 시설을 훼손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즐겨달라는 것이다.

봉서농원의 하얀 연꽃
 봉서농원의 하얀 연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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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를 타고 나오면서 보니 단풍나무 가로수의 아름다움이 눈에 들어온다. 잎의 대부분이 땅에 떨어져 길 가장자리가 빨갛게 변해 있다. 선몽대는 아마 계절에 따라 우리에게 다른 모습을 보여줄 것이다. 봄이면 신록으로 부드러운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여름이면 수목이 어우러져 울창한 아름다움을 보여줄 것이다.

여름에는 또한 가까운 봉서농원에 하얀 연꽃이 만발하여 그 아름다움이 두 배가 될 것이다. 그리고 가을에는 단풍이, 겨울에는 흰 눈이 또한 우리의 눈을 즐겁게 할 것이다.

이처럼 다양한 아름다움이 어우러진 선몽대 숲은 지난 10월 담양에서 열린 제8회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에서 어울림 상을 받았다. 선몽대 숲은 누정과 어울려 아름다움을 만들어내고, 그곳을 찾는 사람과 어울려 역사를 만들어내고 있다. 과거 퇴계와 우암, 다산이 이곳을 찾아 역사를 만들었다면, 현재는 우리 시대의 시민들이 이곳을 찾아 또 다른 역사를 만들어 가고 있다.

선몽대 숲을 나오면서 만난 단풍나무 가로수길
 선몽대 숲을 나오면서 만난 단풍나무 가로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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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선몽대 안의 문짝 일부는 도난을 당해 새 것으로 갈았고, 이곳에 걸려 있던 편액들도 도난을 우려해 안동에 있는 국학진흥원으로 옮겨졌다. 현재 선몽대에 걸려 있는 편액들은 모두 국학진흥원에 있는 원본의 복제본이다.



태그:#퇴계 이황, #우암 이열도, #정사우, #다산 정약용, #이창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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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분야는 문화입니다. 유럽의 문화와 예술, 국내외 여행기, 우리의 전통문화 등 기사를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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