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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이 우리를 돕는 것 같다."

 

기호 12번을 배정받은 이회창 무소속 대통령 후보 측은 들뜬 표정이다. 맨 마지막 번호라면 싫을 법도 한데 이 캠프는 의외의 반응을 보인다. 이혜연 대변인은 "하늘이 우리를 돕는 듯한 기분이다"고 까지 말했다.

 

바로 12번과 이 후보의 '인연' 때문이다.

 

출마설 나돌 때부터 "이순신처럼 12척 배로"

 

이미 알려졌다시피 이 후보의 출마설이 불거지기 시작 한 때는 지난 해 12월. 이 후보가 특강에서 "상유십이 순신불사(尙有十二 舜臣不死, 아직 12척의 배가 남아있고 신은 죽지 않았습니다)"라는 이순신 장군의 언급을 인용하면서부터다.

 

출마 선언 이후로도 이 후보는 '12척 배' 얘기를 즐겨 썼다. 지난 23일 1차로 발표한 정책도 12가지였다. 당시 회견에서 이 후보는 "이순신 장군은 임진왜란 당시 나라가 풍전등화에 처했을 때 단지 12척의 배로 거대한 해적과 맞섰다"며 "오늘 대한민국을 살리는 12가지 약속을 드리고자 한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이러다 보니 캠프에서도 기호가 12번이 되기를 바랐다고 한다. 조용남 부대변인은 "무소속으로 출마하니 애초부터 앞 번호는 기대하지 않았다"며 "그렇다면 '12번'이 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후보 등록이 마감된 26일 실제 기호가 12번이 됐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캠프에서도 웃음꽃이 피었다. 이혜연 대변인은 "12번, 그것도 뒤에 후보가 없는 12번이 됐으면 했는데 실제 그렇게 됐다"며 "이건 하늘이 돕고 있다는 징조"라고 함박웃음을 지었다.

 

이 대변인은 27일 논평까지 내서 "숫자 '12'는 이 후보는 물론 국민과 역사에도 매우 각별하고 중대한 의미를 갖는다"며 "임진왜란 당시 구국의 분수령이었던, 세계 해전사에 길이 빛나는 충무공 이순신의 명량대첩이 12척의 전함에서 비롯됐음이 이를 웅변한다"고 한껏 의미를 부여했다.

 

또 이 대변인은 "하늘이 12척의 이순신 장군을 버리지 않았듯이, 이번에는 민심이 기호 12번 이회창 후보를 버리지 않을 것임을 우리는 확신한다"고 자신했다.

 

지난 대선에서는 '1번', 삼수에서는 '꼴찌'

 

지난 97년과 2002년 대선에서 제1여당과 제1야당의 후보로서 모두 기호 '1번'을 배정 받았던 이 후보가 이번엔 '꼴찌' 번호를 달고 뛰게 된 것도 재미있는 점이다.

 

그래서인지 이 후보는 '꼴찌 된 심경'을 자주 얘기한다. 26일 지역 선거책임자 격인 연락소장들의 결의대회에서는 "꼴찌가 바로 나의 자리"라고 말했다.

 

이 후보는 최근 전국노동자대회, 전국약사대회 등에 참석했던 일을 거론하며, "(행사에) 각 정당 대선 후보들이 모두 왔는데 저는 무소속이라 가장 꼴찌 자리에 앉히더라"며 "연설도 앞 사람들이 다 하고 떠나면 맨 마지막에 남아서 했다"고 운을 뗐다.

 

이어 이 후보는 "한나라당 후보였을 때는 제일 앞자리에 앉고, 연설도 제일 먼저 하고 가장 먼저 떠났는데 지금은 꼴찌에 앉고 꼴찌로 떠난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이 후보는 자신의 '꼴찌' 자리가 싫지만은 않은 것 같다. 그는 "가장 낮은 자리, 꼴찌가 바로 나의 자리이다"며 "하지만 지금 내 곁에는 국민들이 있다"고 말했다. '꼴찌'로서 사회의 구석진 곳에서 소외받는 서민들의 고통을 끌어안고 대선에 임하겠다는 의지이다.

 

이 후보는 지난 두 번의 대선에서 '귀족 이미지' 때문에 곤욕을 치렀다. 어쩌면 가장 큰 패인 중의 하나였다. '삼수생' 이 후보가 평생 입어온 양복을 벗어던지고 점퍼를 입은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태그:#이회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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