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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여름, 지인이 조그만 밭을 빌려줘서 고구마 모종 2천원 어치를 심었다. 모종을 심으려면 둑을 만들어야 한다고 해서 삽으로 땅을 서너 번 파봤는데 너무 힘들었다. 산에서 운동하고 내려온 남편이 둑 만드느라 끙끙대는 내 꼬락서니가 답답해보였는지 삽을 빼앗아들더니 둑을 후딱 만들기 시작했다.
 

20분 정도 지나자 약속 있다며 먼저 가버린 남편을 원망(?)하며 다시 삽을 들고 설쳤지만 힘에 부쳤다. 개미무덤처럼 작은 둑을 만들어 모종 3포기를 심은 뒤 나머지 모종은 에라 모르겠다 포기한 채 한 구덩이에 몽땅 묻어놓고 집으로 도망 와 버렸다.

 

다음날 다시 밭에 간 남편은 “니 밭일 안 하고 컸제?” 한다. “아따 공주가 일하는 것 봤능가?”라며 씩 웃어보였다. 남편은 내가 만들었던 둑을 허물고 새로 고구마 모종을 심었다.

 

고구마 모종을 심은 뒷날부터 난 수확할 생각부터 했다. 고마운 밭주인과 이웃에 조금 나눠주고 부모님과 오마이블로그 친구들에게도 조금 보내야겠다며 휴대폰에 주소를 입력해 놨다. 그리곤 가을이 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렸다.

 

얼마 전이었다. 이웃 아주머니가 자꾸만 우리 고구마가 궁금하다고 했다. 남들보다 늦게 심어서 수확도 천천히 해야 한다고 말하니 서리가 내리기 전에 캐야한다고 일러주었다. 그 말을 듣자마자 갑자기 고구마가 몇 개나 열렸을지 무척 궁금해 얼른 자전거에 마대를 싣고 밭을 향해 달렸다.

 

고구마를 캐려고 호미로 흙을 파니 잔뿌리만 가득하고 고구마는 없다. ‘엥? 왜 고구마가 없지?’ 혹시 모종 심은 자리 말고 밭고랑에 고구마가 숨어있나 궁금해서 고랑을 열심히 파봤지만 거기에도 없었다. 이상해서 다섯 포기를 다 파봤지만 고구마라곤 가느다란 고구마가 달랑 다섯 개뿐이다.

 

할 수 없이 고구마줄기만 가득 잘라 작은 고구마 다섯 개와 마대에 담아 자전거에 싣고 귀가했다. 집에 와서 옆집 아주머니에게 내가 캔 고구마를 보여줬더니 “하하하 미경이 니 고구마는 포기 해야겠다”며 배꼽 빠지게 웃는다. 분명 다섯 개를 담아왔는데 자전거타고 오다가 길에 흘렸는지 고구마 세 개는 없다. 남편도 어이없어 한다.


며칠 후, 밭에 가서 땅 속을 샅샅이 뒤져 고구마를 모두 캐왔다. 예상보다 훨씬 적은 양이다.  남들보다 늦게 심은 바람에 뿌리는 먹을 만한 게 별로 없지만 줄기를 뜯어 먹었으니 본전은 찾은 셈이다.

 

그나저나 여기저기에 고구마 심었다고 자랑을 많이 했는데 실속이 없으니 이 일을 어쩌나. 비록 고구마는 보잘 것 없지만 수확할 때까지 여러 곳에 보내려고 기대에 부풀어 지냈으니 그동안 마음은 조금 행복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꿈만 너무 야무졌나보다. 도라지 같은 고구마를 보고 있으니 자꾸만 피식 웃음이 나온다.

 

  도라지처럼 가느다란 고구마
도라지처럼 가느다란 고구마 ⓒ 박미경
 

#고구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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