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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 초록 호박이네."


신기하다. 겨울의 문턱에서 호박들은 모두 다 누렇다. 자신의 무게를 주체하지 못하여 땅바닥에 펑퍼짐하게 앉아 있는 것이 보통이다. 그런데 초록 호박은 땅에 앉아 있는 것이 아니라 나무 위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다. 아직 열정이 남아 있어서 늙지 않고 젊음을 유지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나무에 걸려 있는 호박이 이채롭다.

 

파란 하늘을 바탕으로 걸려 있는 호박이 시선을 잡았다. 이제는 아련한 그리움으로 남아 있는 어머님이 배어난다. 호박은 어머니에게 있어서 아주 중요한 보물이었다. 그 때는 알지 못하였지만 이제는 안다. 호박이 얼마나 영양가가 높은지 안다. 그러나 그 때에는 참으로 지겨웠었다. 날이면 날마다 올라오는 호박이 그렇게 싫을 수가 없었다.

 

유년 시절을 보냈던 1960년대에는 모두가 가난하였었다. 부식비가 따로 설정되어 있지 않았다. 주식인 곡식을 확보하는 데에도 어려움이 컸던 시기였다. 그러니 반찬거리를 확보하는 데 사용할 돈이 있을 턱이 없었다. 반찬은 어머니 손수 마련하여야 하였다. 자투리땅에는 빠짐없이 심어졌다. 어머니의 땀이 반찬이 된 것이다.

 

어머니의 손은 마법의 손이었다. 어머니의 손이 닿는 곳마다 모두 다 보물로 바뀌었다. 참으로 신기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어머니는 만능인이었다. 세상의 어머니는 모두 다 그런 줄로만 알았었다. 그러나 그 것이 모두 다 어머니의 땀과 노력의 결과였다는 사실을 이제는 안다. 어머니의 피와 땀이었다는 사실을 이제는 안다.

 

호박에 대한 그리움이 있다. 어머니에게 있어선 호박마저도 그렇게 넉넉하지 못하였다. 가난한 살림에 무엇 하나 여유가 있을 턱이 없었다. 먹을 입은 많고 먹을거리는 부족하니, 난감한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가족을 위한 어머니의 지혜는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어린 마음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점도 있었다. 이제 내가 부모가 되니, 어머니의 절박하던 마음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다.

 

선반에는 어머니의 보물단지가 있었다. 하나는 부루 단지였다. 매월 초사흘에 하얀 쌀을 바꿔 채워놓은 어머니의 보물 1호였다. 먼지가 내려앉은 단지 속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얼마나 궁금하였는지 모른다. 나중에 그 속에 쌀이 들어 있다는 것을 알고는 얼마나 실망하였던지. 어머니는 새벽이면 어김없이 정화수를 떠놓고 기원했다.

 

부루 단지 옆에는 제법 큰 항아리가 하나 놓여 있었다. 그 속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정말로 궁금하였었다. 어머니는 그 항아리 속에 든 음식을 밤이면 몰래 꺼내서 아버지에게만 드리는 것이었다. 숨죽이며 이불 속에서 침을 꼴깍 삼키던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것인 세상에서 가장 맛이 있는 꿀일 것이라고 상상만 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중에 항아리에 든 것이 호박과 엿을 넣고 삶은 것이라는 것을 알고는 얼마나 실망하였는지 모른다. 맛없는 호박을 왜 그렇게 몰래 아버지에게만 주었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감히 여쭈어볼 수는 없었다. 알고 싶은 마음이 컸지만 안으로 삭일 수밖에 없었다. 결국 어머니에게 물어볼 수가 없었던 것이다.

 

 

이제는 안다. 호박이 기력을 회복하는 데는 최고의 식품이라는 것을. 어머니의 아버지 사랑이 얼마나 컸는지를 확인하게 된다. 가난하여 인삼이나 홍삼과 같은 비싼 약재는 살 수가 없어서 마음이 아프셨을 것이다. 그래서 영양 만점인 호박을 이용하여 아버지에게 드린 것이다. 호박이라도 넉넉하였더라면 온 식구가 다 먹을 수 있었을 것인데, 그렇지 못하니 선반 위에 올려놓으신 것이다.

 

호박을 바라보니,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 더욱 더 절실해진다. 가난하였지만 왜 그렇게 행복할 수 있었는지, 새삼 알 수 있다. 사랑하는 마음이 넘치고 있었기에 아무리 가난하여도 마음만큼은 넉넉할 수 있었던 것이다. 위하는 마음이 넘치고 있었으니, 가난하였지만 얼마든지 즐겁게 생활할 수 있었던 것이다.

 

물질적으로 풍요로워진 지금, 우리의 가슴 한 구석은 텅 비어 있다. 채워지지 않는 그 무엇이 마음을 무겁게 잡고 있다. 알 수 없었던 그 무엇이란 바로 어머니의 사랑이었던 것이다. 물질보다는 마음이 중요하다는 것을 어머니는 행동으로 보여주셨던 것이다. 어리석은 마음이 그것을 알아채지 못하였을 뿐이다.

 

초록빛 호박을 바라보면서 어머니를 생각한다. 어머니의 마음으로 산다면 얼마든지 행복해질 수 있는데, 왜 그렇게 하지 못하는 것일까? 그것은 바로 욕심 때문이다.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욕심을 채우기 위하여 몸부림을 치고 있으니, 마음이 허전한 것이다. 초록 호박처럼 넉넉하게 욕심을 버리고 사랑을 실천할 때다.

덧붙이는 글 | 사진으사진으


태그:#초록, #호박,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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