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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과 예수님의 아버지 직업은 왜 목수였을까?

요즈음 내가 헤어나질 못하는 망상화두이다. 난 정년 후 삶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고 있으며 지금도 계속 구상 중이다. 삶이 허락하는 한 자유롭게 살고 싶다. 그것도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처럼, 그물에 걸리지 않은 바람처럼, 흙탕물에 더러워지지 않은 연꽃같이,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가는 큰 자유를 누리며 살고 싶다.

금년 1월 1일 임사체험(臨死體驗, 죽음 너머 세계를 경험하는 것)에 가까운 병을 앓았다. 무서운 질병은 앓아서는 안 된다. 그러나 이미 앓고 나았다면 이를 통한 소중한 경험은 다음 삶을 위한 교훈으로 이용되어야 할 것이다. 더 이상 술도, 담배도 안 되고 외식도 삼가는 것이 좋으며 될 수 있으면 무리를 하지 말라는 의사의 권고를 받았다.

뇌졸중 발병 후 10개월 동안 이상적인 삶을 살면서 정상에 가까운 건강을 되찾았다. 그러나 오두막 짓는 일에 매달리면서 건강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퇴직 후 안정된 생활환경을 준비하기 위해 한 달 정도 집터 닦고 오두막 짓는 일에 매달렸고 미처 못 한 일은 주말을 이용하여 서너 차례 계속하였더니 정상에 가깝던 나의 혈당지수가 균형을 잃었다.

시골 오두막 생활에 관심을 가지게 된 가장 큰 이유는 후대를 위해서다.

우리 후손들에게 '꽃이 피고', '열매를 맺고', '수확을 하고' '긴 휴식'으로 순환하는 우주의 섭리에 그 근본을 두는 여유를 만들어주고 싶다. 언젠가 러시아가 가난한 상태에서도 사회주의 체제를 오랫동안 유지할 수 있었던 이유가 '다차가 있었기 때문'이라는 글을 읽었던 적이 있다. 다차는 러시아 도시 근교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가옥으로 주말농장과 별장이 합쳐진 형태다.

시골 생활을 위해 여생을 집사람과 같이 목수로 살려고 한다. 때로는 토수가 되고 때로는 석수가 되어 집터를 만들고 석축을 쌓겠지만 이는 나와 집사람이 살고 애들이 돌아와 쉴 집을 짓기 위한 과정이다.

나무를 알고 다루는 목수일은 하루아침에 배울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렇지만 내가 목수의 능력을 갖출 때까지 마냥 기다릴 수도 없다. 그래서 지리산 내 농장에 2평 반짜리 오두막을 짓는 일을 지난 추석 휴가 때부터 시작했다.

올해는 비가 많이 왔고 또 늦게까지 장마가 계속됬다. 집터를 닦고 오두막을 짓는 동안에도 구름이 많이껴 한순간도 정지됨이 없는 변화의 연속이었다.
▲ 오두막 짓다가 지리산을 바라보니 올해는 비가 많이 왔고 또 늦게까지 장마가 계속됬다. 집터를 닦고 오두막을 짓는 동안에도 구름이 많이껴 한순간도 정지됨이 없는 변화의 연속이었다.
ⓒ 정부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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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 아파트 5-7평 돈으로 시작한 시골 생활

막상 시작 했지만 처음부터 너무 많은 시행착오가 계속되었으며 지금 생각하면 웃지도 울지도 못할 일이라 혹시 나와 같은 무모한 계획을 실천하려는 사람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됐으면 하는 심정으로 내가 오두막을 지어가는 가는 일련의 과정을 소개하려고 한다.

요즈음 시골은 너무 황폐하여 재생이 거의 불가능한 지경에 놓여 있는 것 같다. 시골에서 농사를 지어 생활을 영위한다는 것이 매우 힘들 것 같아 보인다. 작년 가을 나는 집사람과 지리산 밤나무 농장에 밤을 수확하러 4~5차례 다녀왔다. 이 때마다 교통비, 여관비, 식사비를 따지면 삼십 여 만원이 들었지만 수매하여 통장에 입금된 돈은 18만원이었다. 인건비만 따지더라도 본전에 못 미친다.

밤나무 농장 주인이 없다는 소문이 나서 인근 많은 사람들이 주워가는 바람에 수확도 신통치 못했다. 한번은 나와 집사람이 남들이 수확해간 뒤 남은 작고 못난 밤을 줍고 있는데 아주머니 한분이 올라오면서 우리들에게 "어디서 왔느냐"고 물었다. 왜 이곳에서 밤을 줍고 있느냐며 호통을 칠 기세였다.

집사람이 우리는 대전에서 온 이 농장 주인이라고 하면서 이번 주말에는 우리가 밤을 주울 터이니 다음 주중에 와서 밤을 주어가시라고 말했다. 아주머니는 이 농장은 도로를 시공하는 00건설 농장이라고 들었다며 내키지 않은 발걸음을 돌린다. 아마 00건설 직원들에게 쓴 인심이 와전된 모양이다.

올해는 집터와 창고 그리고 진입로 문제 때문에 많은 밤나무를 벌목해야 했다. 또 개화기부터 결실기까지 방충등을 켜주고 초봄에 듬뿍 퇴비를 시비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너무 멀리 떨어져 사는 통에 농장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했다. 이런저런 사연으로 우리는 올해 밤 수확을 아예 포기하였다. 친척과 원하는 사람들에게 밤나무 단지를 공개하였다.

난 지금까지 교두보 확보를 위한 터를 장만하기 위해 임야구입비 1억5천, 포크레인과 덤프트럭 구입비 4천5백, 목수장비 구입비 5백만 원을 썼으며 지금까지 약 2억 정도의 인프라 구축을 위한 경비로 사용하였다. 이 돈 정도는 강남 콘크리트 아파트 5~7평에 해당할 것이다. 나는 이 5평을 일만 오천 평으로 늘려 이 땅위에 나와 집사람이 살고 애들이 돌아와 쉴 집을 둘이서 짓고 있다.

두 평반짜리 오두막이지만 나와 집사람에겐 그렇게도 어렵고 힘들 수 없다. 그러나 주춧돌을 놓고 벽체가 서고 천정이 만들어지는 과정 속에 나와 집사람은 그렇게 자랑스러울 수가 없다. 거친 나무를 대패로 특히 손대패로 결을 다듬고 있노라면, 나무 냄새를 맡고 있노라면 예수님과 예수님 아버지의 직업이 목수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알 것 같다.


태그:#목수, #오두막 , #목조주택 , #농촌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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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덕연구단지에 30년 동안 근무 후 은퇴하여 지리산골로 귀농한 전직 연구원입니다. 귀촌을 위해 은퇴시기를 중심으로 10년 전부터 준비했고, 은퇴하고 귀촌하여 2020년까지 귀촌생활의 정착을 위해 산전수전과 같이 딩굴었습니다. 이제 앞으로 10년 동안은 귀촌생활의 의미를 객관적인 견지에서 바라보며 그 느낌을 공유해볼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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