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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유형문화재 제29호 안동권씨 유회당 종가.
 대전 유형문화재 제29호 안동권씨 유회당 종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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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무수동은 보문산 남쪽 기슭에 자리 잡은 마을이다. 원래는 물과 무쇠가 많이 나는 마을이라 하여 '무쇠골' 또는 '수철리'라 불렀다 한다. 무수리라 한 것은 조선 숙종 때 대사간 권기가 이곳에 정착하면서부터다. 마을 이름은 그의 호인 무수옹(無愁翁)을 따서 부른 것이다.

가을은 사계절 가운데 가장 근심이 많은 계절이다. 오늘(5일)은 마음속 근심을 털어버리려고 근심 없는 마을을 찾아간다. 무수동 마을의 가을은 온갖 근심을 털어버리고도 남을 만큼 아름답다.

자신의 몸에 붙은 군더더기 아닌 군더더기를 덜어내느라 부산한 은행나무, 부포놀이를 하는 농악대의 상쇠처럼 가지 꼭대기에 대롱대롱 까치밥을 매달고 재주를 피우는 감나무들. 세상의 근심 없는 것들이 벌이는 유희가 내 마음 속에 있는 일만 근심을 사라지게 하는 것이다.

무수동 첫 번째 마을인 아랫말로 들어선다. 영조 때 호조판서를 지낸 유회당 권이진(1668~1734) 선생이 처음 터를 잡았던 마을이다. 이곳엔 유회당 종가가 있다. 유회당 종가의 건물들은 모두 코딱지만 하다. 안채도 사당도. 건물과 건물 사이로 비어 있는 공간이 많아 바라보는 눈도 한가하다. 옳거니. 툭하면 뜯어고치지 않고 진득하게 지붕을 두고 보니, 수북이 올라온 와송이 안채에 멋을 더하고 있다.

이곳저곳을 거닐어 보니, 공간이 널찍해 마음도 한가해진다. 마당 앞에는 초가지붕을 인 정자가 있다. 이 정자는 마을의 일을 의논하고 서로 친목을 다지기도 하는 구심적 역할을 했을 것이다.

광영정과 연못인 배회담.
 광영정과 연못인 배회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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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에게 주어진 한살이를 마치고 물 위에 떨어진 은행잎이 무척 곱다.
 자신에게 주어진 한살이를 마치고 물 위에 떨어진 은행잎이 무척 곱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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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이진의 큰아들인 권형징이 지었다는 이 정자의 이름은 광영정이다. 광영정이라, 세상사엔 빛이 있으면 그림자가 있게 마련이려니. 정자 앞에는 배회담이란 아담한 연못이 있다. 배회담이란 '천광운영공배회(天光雲影共徘徊)'라는 말에서 따온 것이다. 구름의 그림자가 쓸데없이 왔다 갔다 하는 연못이란 뜻이다. 아마도 이 연못에 왔다 갔다 하는 구름은 비정규직 구름이거나 실업자가 된 구름이었던가 보다.

정자 옆에는 커다란 은행나무 두 그루가 있다. 이 은행나무들이 떨어뜨리는 잎들이 연못 위로 떨어져 연못을 가득 메우고 있다. 오늘은 이 연못이 배회담이 아니라 잎들에 앞뒤가 꽉 막혀 오도 가도 못하는 '정체담'이 돼 버린 셈이다. 참으로 눈부신 정체다. 나도 이 연못 속 경치에 빠져 온종일 이곳에 머무르면서 정체를 즐기고 싶구나.

사람들은 더 떠나고 나무들만이 남아 마을을 지키는 배나무골의 은행나무.
 사람들은 더 떠나고 나무들만이 남아 마을을 지키는 배나무골의 은행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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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나무골을 지키는 감나무와 고용나무들.
 배나무골을 지키는 감나무와 고용나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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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회당 종가를 나와 보문산 깊은 골짜기에 있는 마을인 배나무골로 간다. 산길치고는 널찍하지만 한가하다. 산새가 지저귄다. 산길에선 저런 미물도 배려를 안다. 길손이 외로울까 봐 울어주는 거다.

30여 분가량 걸어가면 배나무골에 도착한다, 배나무가 많아 배나무골이라 했을 테지만, 지금 이곳엔 배나무가 없다. 배나무뿐 아니라 마을 사람도 없다. 사람이 살지 않아 폐촌 된 지 오래다.

옛 마을 입구에는 당산나무였을 느티나무가 잎을 노랗게 물들인 채 길손을 맞는다. 마을 빈터 곳곳에는 감나무와 고욤나무, 뽕나무들이 지키고 서서 돌아오지 않는 집주인들을 기다리며 "돌아오라, 소렌토로"를 부르고 있다.

뽕나무들이 많은 걸 보면 예전 이 마을 사람들이 누에를 쳤다는 걸 알 수 있다. 이런 좋은 마을을 두고 떠난 것은 먹고살기가 옹색해서였으리라.

대전광역시 기념물 제4호 보문사지.  한 여인이 뭔가를 따고 있다.
 대전광역시 기념물 제4호 보문사지. 한 여인이 뭔가를 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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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쪽 계곡 쪽에 외로이 서 있는 당간지주.
 남쪽 계곡 쪽에 외로이 서 있는 당간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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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산한 마음을 안고 배나무골을 지나 오른쪽 산자락을 탄다. 산길은 아까와 달리 오롯한 느낌이 드는 오솔길이다.

다시 말하지만, 가을은 근심이 많은 계절이다. 그래서 오솔길을 걷고 싶은 계절이기도 하다.

이윽고 보문사지에 도착한다. 보문사지는 언뜻 보면 계단식 논처럼 보인다.

조선시대 후기에 지은 대전 탄방동의 도산서원 <연혁지>에 따르면 이곳을 지을 때 보문사 승군 800명이 출역 나왔다고 한다. 보문사가 매우 큰 절이었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러나 3단의 축대 위에 5채의 건물이 있었던 흔적만을 놓고 볼 때 이곳에 승군 800명이 머무르고 있었다는 것은 믿기 어려운 일이다.

남쪽 계곡 가까이 내려간다. 이곳에는 옛 보문사 당간지주가 서 있다.

절에 법회나 큰 행사가 있음을 알리는 당을 거는 장치를 당간이라고 한다. 당간지주는 당간을 지탱할 수 있도록 받쳐주는 돌기둥이다. 당간지주는 한쪽은 깨지고 한쪽만 남았다. 한쪽에 '석수영찬'이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다. 아마도 공치사를 좋아했던 석공인 모양이다.

대웅전 자리 아래 서 있는 괘불지주.
 대웅전 자리 아래 서 있는 괘불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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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문사지 석조.
 보문사지 석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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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터로 올라간다.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축대 아래엔 괘불지주 한 쌍이 우두커니 서 있다. 축대 위에는 대웅전이 있었을 것이다. 괘불지주에는 '강 삼십팔년 기묘 화주 옥순 석수 이외동'이라는 명문이 새겨져 있다. 이곳의 석수들은 자부심이 많은 건가, 공치사가 많은 건가. 별것도 아닌 것에다 제 이름을 새겨 넣었다.

보문사지에선 조선시대 유물이 많이 출토되었다고 한다. 그로 보아 절이 조선시대 후기까지 존속하였던 게 틀림없다. 그렇다면 보문사는 언제 폐사된 걸까. 유회당 권이진의 후손인 권구(1769~1847)는 그의 문집인 <三守遺稿(삼수유고)>에 "보문사 칩용루는 심히 크고 넓었으나, 지금은 없어지고 농민들의 밭이 되었으며 밭 가운데 철불이 서 있다"라고 쓰고 있다. 적어도 19세기 중반까지는 보문사가 존속했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그 밭 가운데 서 있었다는 철불은 어디로 사라진 걸까. 다른 절로 옮겨간 것일까, 아니면 계속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가 일제 강점기 때 무기 만드는 데 쓰려고 공출이라도 당한 것일까. 사라진 보문사도 아쉽지만, 없어진 철불의 존재도 아쉽기만 하다.

유회당 권이진 선생은 고향을 무척 사랑했던 사람이 분명하다. 말년에는 궁궐의 도화서 화공을 불러 병풍을 그렸는데 그 속에 보문산도(普文山圖)도 있다고 한다. 그 속에 보문사도 있다는데 아직 보지 못했다. 호주머니에서 도종환의 시 '폐사지'를 꺼내 소리 내어 읽어본다.

열정이 식으면서 노을도
하늘 한쪽을 폐허로 만들고 있었다
마음이 잿더미인 사람들은
떠도는 동안 자주 폐허와 만나곤 했다
사원들은 수백 년을 걸어서
마침내 폐허의 완성에 이르렀지만
우리가 쌓은 성채가 무너지는 데는
채 몇 해가 걸리지 않았다
기울어진 내 성벽의 전돌이 허리를
땅에 대는 순간 폐허의 벌레들이 달려들어
내 생애를 분해해서는 땅속 깊이 내려갔다


- 도종환 시 '폐사지' 일부

오늘 나는 멀리 가지 않은 채 대전 근교에서 가을 속을 거닐었다. 조락의 풍경을 호흡하면서 조락하는 것은 낙엽만이 아니라는 걸 알았다. 눈에 보이지 않게 흘러가는 세월도 조락한다.

이곳 폐사지에서 내가 만난 것은 조락한 세월이었다. 눈으로 볼 수 없고 손으로 만질 수 없는 시간의 영혼이었다. 나이 들면 쓸쓸함도 위안이 될 때가 있다. 마음이 잿더미일 때는 더욱 그렇다. 쓸쓸함을 즐긴다는 것은 정말이지 몹쓸 병이다. 천천히 보문사지를 떠난다. 이곳까지 오는 동안 만났던 모든 쓸쓸함에 작별을 고하면서.


태그:#보문사지 , #유회당 종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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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곳을 지향하는 눈(眼)과 한사코 사물을 분석하려는 머리, 나는 이 2개의 바퀴를 타고 60년 넘게 세상을 여행하고 있다. 나는 실용주의자들을 미워하지만 그렇게 되고 싶은 게 내 미래의 꿈이기도 하다. 부패 직전의 모순덩어리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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