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거리마다 오고 가는 많은 사람들
웃으면서 기다리던 크리스마스
아이들도 노인들도 은종을 만들어
거리마다 크게 울리네
실버벨(실버벨)~ 실버벨(실버벨)~
종소리 들려 오네
실버벨(실버벨)~ 실버벨(실버벨)~
크리스마스 다가오네

 

사람마다 다 다르겠지만 크리스마스하면 왜 유독 이 캐롤이 생각나는지 모르겠습니다. 삭막(?)했던 방에 트리 하나 갖다 놨을 뿐인데 분위기가 달라졌고, 달콤하게 흐르는 캐롤로 인해 방안에도 생기가 도는 듯합니다.

 

크리스마스 D-35, 트리 점등식을 갖다

 

아직 이르긴 하지만 앞으로 한 달여 앞으로 다가온 크리스마스를 손꼽아 기다리는 심정으로 한쪽 구석에 놓여있던 트리를 조립해 조촐한 점등식을 가졌습니다. “온 누리에 평화와 축복을...”이라고 마음속으로 기도하며 말이죠.

 

지난해 구입한 트리였지만 아직도 맑은 캐롤 음악을 들려주며 반짝반짝 아름다운 조명을 밝혀줍니다. 마음 속에는 어느덧 크리스마스가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저는 특별히 믿고 있는 종교가 없습니다.
하지만, 석가탄신일이 되면 절을 찾아 연등도 달고 가족의 건강을 빌고, 크리스마스가 되면 이렇게 트리에 점등을 한 뒤 마찬가지로 가족의 건강과 나의 앞날에 대해 조심스레 기도를 하곤 합니다.

 

너무 이기주의인가요?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저는 석가탄신일과 크리스마스 모두를 즐길 수 있어 만족하고 있습니다. 기독교를 믿으면 석가탄신일이 무의미해 질 것이고, 불교를 믿으면 크리스마스가 또 아무 의미 없이 지나갈 수 있기 때문이죠.

 

어머니를 따라 교회에 가다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트리에 점등을 하고 나니 어릴 적 추억이 새록새록 생각납니다. 지금은 하늘나라에 계신 어머니와 함께 했던 추억입니다.

 

제가 초등학교를 다니던 철없던 시절 건강이 좋지 않으셨던 어머니께서 어느 날 갑자기 교회를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교회에 다니던 이웃사촌으로부터 전도를 받고 난 후부터 어머니께서는 새벽기도부터 시작해 농사일을 마치고 집에 들어와 가족들의 저녁상을 차려주신 후에도 교회를 찾아 열심히 기도를 했습니다. 믿음의 힘이 작용했던 것인지 어머니께서는 점차 마음의 안정을 찾으셨고 병도 조금씩 치유되는 듯 보였습니다.

 

저 또한 저녁에는 숙제한다는 핑계로 어머니와 같이 하지는 못했지만 새벽에는 4시에 일어나서 마을에 울려 퍼지던 교회종소리를 들으며 어머니와 함께 열심히 기도를 했던 기억이 납니다.

 

한 번은 교회를 몰라 철없던 짓을 저질렀던 일이 있었습니다.


마을 교회에 유명한 목사님이 와서 일명 ‘심령대부흥회’를 연다는 현수막이 내걸려 평소보다 많은 사람들이 교회를 찾아와 목사님의 설교를 듣고 있을 때의 일입니다.

 

설교를 마친 목사님이 단상을 내려와 사람들 앞으로 가서는 한 사람 한 사람의 머리에 손을 얹으며 기도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린아이의 눈높이로 볼 때 이상했던 점은 목사님이 머리에 손을 얹고 기도를 하자 그 기도를 받은 사람이 갑자기 울기 시작하는 게 아니겠습니까?

 

‘왜 울지? 목사님이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거지?’

 

하고 생각하고 있을 때 어느 덧 어머니의 순서가 되었습니다. 목사님은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어머니의 머리 위에 손을 얹고 기도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어머니께서도 다른 사람과 마찬가지로 눈물을 흘리기 시작하는 게 아니겠습니까?

 

“목사님 우리 엄마는 하지 마요. 엄마! 왜 그래? 왜 울어?”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 그렇단다.”
“은혜? 저 목사님이 어떻게 한 거 아냐?”
“아냐. 너두 나중에 크면 알게 돼.”

 

제가 얼마나 철이 없었는지 아시겠죠? 하나님의 은혜를 준다던 목사님에게 왜 어머니를 울리냐고 따졌으니 말이죠. ‘나중에 크면 도대체 뭘 알게 된다는 거지’ 혼자 의아해 하며 울컥했던 가슴을 쓸어내렸던 기억이 납니다.

 

어머니와 함께 했던 크리스마스의 추억

 

그 이후에도 어머니와 저는 열심히 교회를 다녔고 어머니는 어느새 교회에서 ‘집사’라는 직위(?)도 받으셨죠. 그리하여 교회에서 행해지는 행사에는 빠짐없이 참석해 일을 도와주곤 하셨습니다.

 

그러던 중 그 해도 어김없이 크리스마스가 다가왔고, 어머니께서는 12월 25일 크리스마스 새벽에 교회선교단(?)이 복음성가를 부르며 마을 집집을 돌 때 나누어 주신다고 사탕과 먹을거리를 준비해 두셨습니다.

 

“고요한 밤~ 거룩한 밤~ 어둠에 묻힌 밤 ♬”

 

새벽 5시쯤 되었을까? 우리 집 문 앞에서 찬송가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어머니와 저는 이내 잠자리에서 일어나 준비해 둔 먹을거리를 선교단에게 나누어 주고는 “메리 크리스마스” 하며 인사를 건넸습니다.


드디어 크리스마스 날이 밝으면 시골 마을에 하나 밖에 없었던 교회에서는 이내 마을잔치가 열립니다. 종교를 떠나 마을의 어른이나 애 할 것 없이 모두가 교회를 찾아 정성껏 준비한 떡국을 먹으며 크리스마스를 즐겼습니다.

 

저도 물론 교회를 찾아가서 어머니의 일손을 같이 도우며 행복한 크리스마스를 보내기도 했습니다. 지금은 비록 제 곁에 계시지는 않지만 크리스마스만 되면 어머니와 함께 했던 철없던 시절의 추억이 생각나곤 합니다.

 

어느새 한 달여 앞으로 크리스마스! 올해 크리스마스에는 흔히 하는 말처럼 온누리에 평화와 축복을, 몸과 마음이 추운 사람들과 따뜻한 사랑과 정을 듬뿍 나누는 축복의 날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태그:#크리스마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태안의 지역신문인 태안신문 기자입니다. 소외된 이웃들을 위한 밝은 빛이 되고자 펜을 들었습니다. 행동하는 양심이 되겠습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