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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윤 시인의 티베트 로드에세이 <부처가 있어도 부처가 오지 않는 나라>의 표지.
 강제윤 시인의 티베트 로드에세이 <부처가 있어도 부처가 오지 않는 나라>의 표지.
ⓒ 조화로운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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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에 다녀온 이들은 왜 하나같이 경외와 찬탄만을 늘어놓는 것일까. 인도나 네팔, 티베트를 여행하고 돌아온 이들이 토해내는 신비한 영성(靈性)의 세례들. 지나침은 모자람만 못하다. 지나친 신비화는 경외감보다는 깨달음마저 도식화돼가는 현대 여행의 룰을 보여주는 것 같아 되레 짜증이 나던 터였다.

사람은 사라지고 오로지 신들만 난무하는 여행기들. 스스로의 감흥과 깨우침보다는 가이드의 친절한 소개말만이 그대로 전해지고 있는 책들. 그래서 어느 때부턴가 '안 다녀오면 나만 이상해질 것 같아 다녀온 트래킹 코스 일정기'같은 글들이 '순례'라는 성(聖)스러운 가면을 쓰고 유행하고 있었다.

그래서였다. 그가 새롭게 낸 책이 반가웠던 까닭은. 그래서였다. 250쪽이 넘는 책을 단숨에 읽어버렸던 까닭은.

그는 "불교 왕국 티베트에서 나는 기쁨의 부처님을 만나지 못했다. 오로지 슬픔의 부처님을 친견했다"고 고백한다. 대체 시인 강제윤이 티베트에서 만난 것은 무엇일까.

"순례자들이 법당을 돌며 복을 비는 동안, 라마승들은 2층 방에 앉아 뒤섞인 지폐들을 분류한다. 돈다발을 묶느라 경황이 없는 라마승들은 통통하게 살이 올라 기름지다. 깡마르고 거친 얼굴의 순례자들은 기도에 심취해 있다. 저 돈들이 예전에는 달라이 라마의 여름궁전을 짓거나, 불상을 조성하거나, 사원을 건설하거나, 종교의식을 집전하거나 살찐 라마승들의 안정된 생활을 위해 사용됐었다. 지금 저 많은 돈들은 다 어디로 흘러 들어가는 것일까?"

시인은 순례자와 라마승, 민초와 불교사원을 자주 대비하며 '불교성지 티베트'의 오늘을 보여준다. '통통하게 살이 오른' 라마승보다는 '깡마르고 거친 얼굴'을 한 티베트의 민중을 사랑스럽게 보듬으려는 시인의 속 깊은 의도가 드러나는 대목이다.

해서 시인은 "야크야말로 티베트의 진정한 부처고 보살"이라고 말한다. "달라이 라마를 비롯한 수많은 라마승들이 티베트로부터, 티베트 민중으로부터 떠나갔지만 끝끝내 남아 티베트 민중들의 삶을 지켜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강제윤 시인의 <부처가 있어도 부처가 오지 않는 나라>는 '티베트 로드에세이'다. 시인은 라싸, 남쵸(하늘호수), 초모랑마 등지를 순례하며 사색의 둥지를 채워간다.

그는 "모두가 여행자로 살 수는 없으나 누구나 떠날 자유는 있다"고 했다. 하지만 시인도 알고 있을 터. '생활의 무게'로 인해 떠나고 싶어도 떠나지 못하고 있는 이들이 많다는 것을. 떠나지 못한 이들은 시인의 둥지에서 시인이 전해주는 티베트의 양식을 맛있게 받아먹는다.

"생사는 구름 같지만 생사의 무게는 구름 같지 않다. 구름이 생겨나고 사라지는 것처럼 삶은 실체가 없으나 삶의 고통은 실체가 있다. 사람들은 대체로 삶의 진실을 알고 싶어 하지 않는다. 고통은 거기서 비롯된다. 사람들이 삶에서 원하는 것은 삶의 진실이 아니다. 위로다. 사람들은 삶의 진실과 대면하는 것을 두려워한다. 진실은 끔찍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위로의 방식으로 삶의 고통은 치유되지 않는다. 위로란 잠시 고통에 눈멀게 해주는 마약에 불과하다."

"어떠한 인간도 죽음 앞에서는 평등하다. '기다 죽은 밭갈 소나 놀다 죽은 한량'이나 죽음은 매한가지다. 그래서 죽음을 담보로 한 사업은 밑지거나 망하는 법이 없다. 죽음을 담보로 한 최고의 사업은 종교다. 사후세계의 땅 한 평은 아무리 비싸도 팔리지 않는 경우란 없다. 전 재산을 다 주고라도 사게 마련이다. 티베트는 마치 죽음의 도매시장과 같다. 티베트뿐이겠는가. 종교란 어디서나 죽음의 도매상인인 동시에 구원을 파는 쇼핑몰이다."

시인은 "사람은 누구나 태생적 여행자이며, 길의 자녀들"이라고 말한다. 그는 지금 이 순간에도 길 위에 있다. 티베트를 순례하듯 시인은 한국의 섬을 순례하고 있다. 끝없는 유랑…. 어쩌면 시인의 운명인지도 모르겠다. 섬에 들어가는 배를 기다리며 시인이 짧은 전자메일을 보내왔다.

"어제는 완도에서 하룻밤 유숙했다. 오늘 여서도에 들어갈 생각이다. 바람이 좀 부니 두 시간 반 뱃길이 순탄치 않을 듯하다."

시인은 왜 그렇게 순탄치 않은 길을 계속 걷는 것일까? 그의 티베트 로드에세이에서 답을 찾았다.

"어제의 나는 오늘의 나와 같지 않다. 내일의 나 또한 오늘의 나와는 다를 것이다. 어느 한순간도 같은 나는 없다. 그러므로 어제의 나는 오늘 나의 전생이다. 내일의 나는 오늘 나의 후생이다."

덧붙이는 글 | 시인 강제윤은 ‘보길도 시인’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1988년 <문학과 비평>을 통해 시인의 길로 들어섰으며, 문화일보의 ‘평화인물 100인’으로 선정된 바 있다. 인권 활동가로 살아가 고향인 보길도로 귀향해 8년 동안 ‘보길도 시인’으로 살았다. 보길도의 자연하천을 시멘트 구조물로 바꾸려는 시도를 막아 내는 등 고향의 자연을 지키는 일에 헌신했으며 33일간의 단식으로 보길도의 문화유산 파괴를 막아 내기도 했다.

2005년 홀연히 보길도를 떠나 청도 한옥학교 한옥 목수 과정을 졸업한 뒤 지금껏 거처 없는 유랑자로 살고 있다. 2006년 가을, 완도군 덕우도를 시작으로 섬 순례에 나선 시인은 10년 계획으로 사람 사는 한국의 모든 섬 5백여 개를 걸어서 순례할 예정이다. 자동차와 손전화를 갖지 않고 육식을 하지 않는 ‘3무’의 삶을 살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보길도에서 온 편지>, <숨어사는 즐거움> 등이 있다.



부처가 있어도 부처가 오지 않는 나라 - 강제윤 티베트 로드에세이

강제윤 글.사진, 조화로운삶(위즈덤하우스)(2007)


태그:#티베트, #강제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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