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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철 변호사의 증언이 대한민국 역사에 틀림없이 영향을 줄 것이다. 그들만의 리그가 어떻게 굴러가는지 고백한 사람이 없었다. 한국이 솔직하고 투명한 사회로 가는데 정말 의미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지난 15일 오후 청주 금천동성당에서 만난 김인국 신부는 "우리 사회가 부패에 너무 관대하다"며 "그 실상을 직접 보는 게 가장 충격"이라고 말했다. 김용철 변호사의 양심고백으로 어마어마한 한국사회의 부패구조를 목격하게 됐다는 것이다.

 

그는 "재물에 영혼을 팔고 그 거래를 한 번도 후회하지 않고 괴로워하지도 않는 실상이 깜짝 놀랄만한 일이었다"며 "재물의 힘이 워낙 막강해서 한 번 영혼을 팔면 판단능력도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청렴 정치인 추미애, 정치자금 제의한 사람을 밝혀라"

 

특히 김 신부는 '회장 지시사항' 문건에서 '청렴 정치인'으로 평가된 추미애 의원을 거론하며 "추 의원에게 직접 거액의 정치자금을 제의한 사람이 누구냐고 물어보라"며 "아마 누구라고 직접 말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추 의원이 직접 본인에게 로비자금을 제의한 삼성 관련자를 공개한다면 그 자체로 뇌물과 비자금 의혹을 푸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판단이다.

 

그는 "절대 발설할 수 없는 고리로 엮는 게 삼성의 뇌물관리 능력"이라며 "추 의원이 누구에게 제의받았는지 말하지 못하겠다고 하면 그 자체로 기사가 되는 것 아니냐"고 역설했다.

 

김 신부는 향후 사제단의 역할과 관련 "김용철 변호사의 증언이 훼손당하지 않도록 보호하는 것이 우리들의 책무"라면서도 "87년 박종철 군의 죽음의 진실을 알린 것은 사제들이었지만 6월항쟁을 이뤄낸 것은 시민들이다, 사제들의 역할이 얼마나 가겠나"라며 웃었다.

 

다음은 김인국 신부와 나눈 인터뷰 내용의 두 번째 분량을 정리한 것이다.

 

- 김 변호사 양심고백문이 <추적60분>에서 일부 공개됐다. 읽어봤나.
"읽어봤다. 모두 검찰에 가서 할 얘기이지만, (한동안 침묵) 내 영혼이 감당 못할 정도다. 분량은 꽤 된다. A4용지 20~30장 더 된다. 김 변호사의 증언은 계속 살을 붙여나가고 있다. 거기에는 한국사회에서 책임 있는 위치에 있는 분들의 얘기가 다 나온다. 정말 괴롭다. 그래서 오늘 아침에는 일찍 봉쇄생활을 하는 수도원에 가서 미사를 하고 왔다.

 

견딜 수가 없다. 세상의 악과 만나서 나는 너무너무 큰 충격을 입었다. 높은 담장 아래서 봉쇄생활을 하는 수녀님들께 최근 내게 일어난 일을 말씀드리고 기도를 부탁했다. 수녀님께서 미카엘 천사 패를 주셨다. 앞부분은 미카엘 대천사가 꼬마 하나를 데리고 가는 모습이고, 뒷부분은 미카엘 천사가 발밑에 마귀를 누르면서 칼로 찌르기 직전의 상황이다. 수녀님은 봉쇄생활하면서 침묵기도를 하는 분들이기 때문에 사람을 보면 금세 안다.

 

수녀님들이 '상처 많이 입으셨네요, 울고 싶으시죠? 기도할테니 힘내시기 바랍니다' 하셨다. 우리는 세상 사람들이 그렇게 살고 있는지 몰랐다. 그저 다들 열심히 사는 줄로만 알았다. 부패의 실상을 구체적으로 보고나니까 머리가 어지럽고 눈이 멀 것 같다. 도대체 어디에서 어디까지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모를 정도로 엄청나다."

 

- 백서가 발간될 예정이라던데.
"그건 아니다. 김용철 변호사가 우리에게 준 최초의 진술, 나의 고백. 그동안 있었던 일을 낱낱이 밝히는 게 13쪽 분량이다. 거기에 더 정리해서 나온 게 훨씬 많은 분량으로 늘어났다. 앞으로는 좀 더 정리될 것이다."

 

- <추적60분>에도 진술서 일부가 공개됐던데.
"그건 처음에 쓴 육필원고다. 내가 갖고 있는 건 타이핑한 것이다. 김용철 변호사의 증언이 대한민국 역사에 틀림없이 영향을 줄 것이다. 단 한 번도 부자들의 세계를 고백한 사람이 없었다. 그들만의 리그가 어떻게 굴러가는지 한 번도 얘기한 분이 없었는데 이분이 처음 말한 것이다. 한국이 솔직하고 투명한 사회로 가는 데 정말 의미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 삼성에 있을 동안 보고 듣고 겪은 얘기를 정리한 것일텐데, 제일 충격적인 것은 뭔가.
"(머뭇거리다가) 우리 사회가 부패에 너무 관대하다. 그 실상을 보는 게 가장 충격이다. 작년 이맘 때 '인문학의 위기'로 한바탕 소란을 떨었는데 그걸 종교적으로 말하면 '하느님이냐, 재물이냐'이다. 재물에 영혼을 팔고 그런 거래를 한 번도 후회하지 않고 괴로워하지도 않는 실상이 깜짝 놀랄 만한 일이다. 재물의 힘이 워낙 막강해서 한번 영혼을 팔면 판단능력도 없는 것 같다."

 

- 진술서에도 그런 게 나와 있나.
"삼성은 관계의 고리를 맺어 삼중사중 보안장치를 해놓는데 그 실상이 나와 있다. 추미애 의원은 이번 회장 지시사항으로 상당한 액수의 돈을 삼성으로부터 제의받았다고 했는데, 그러지 마시라고 돌려보냈다고 말했다.

 

추 의원은 회장 지시사항 때문에 아주 청렴한 정치인이 됐다. 추 의원에게 그렇게 제의한 사람이 누구냐고 물어보시라. 아마 누구라고 말하지 못할 것이다. 만일 추 의원이 본인에게 거액을 제의한 삼성 관련자가 누구인지 공개한다면 그 자체로 삼성 뇌물과 비자금의 의혹을 푸는 실상이 드러날 것이다.

 

절대 발설할 수 없는 고리로 엮는 게 삼성의 뇌물관리 능력이다. 추 의원은 이번 기회에 청렴한 사람의 상징이 됐으니 사회적 책임을 다할 의무가 있다. 누가 제의했는지 말 못하겠다고 하면 그 자체로 기사를 쓰시라."

 

"지금까지 공개된 것, 10%나 왔을까?"

 

- 주변에서는 왜 자꾸 찔끔 공개를 하느냐는 비판이 있다. 
"김 변호사는 할 말이 너무 많다. 한꺼번에 쏟아놓으면 사람들이 소화를 못할 것이다. 천천히 문제제기를 하고싶어 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언론과 검찰은 '자료를 어서 내놔라!' 말하지만 그렇게 재촉하면 이 분의 공론화가 다 날아가 버릴 것 같다. 본인으로서는 차명계좌 비자금 내역을 공개했을 때 꽤 기대를 했다.

 

쌍용 김석원의 사과상자를 밝혀낸 검사다. 그 때는 차명도 아닌 가명계좌였다. 그런데 차명계좌의 번호까지 알려줘도 검찰이 곧바로 수사에 착수하지 않는다는 건 스스로 놀랄 일이었던 것이다. 회장 지시사항도 마찬가지다. 행간의 의미가 많은데 기자들이 해석을 안 한다. 의미 없는 것으로 문서를 갈아버리는 게 두렵다. 그래서 천천히 진도에 맞춰 하겠다는 인상을 받았다."

 

- 그렇다면 지금까지 얼마나 공개된 건가.
"10%나 왔을까. 발목에도 안 찬 거지."

 

- 어떤 면에서 10%인가.
"지금 풀어낸 것은 검찰 얘기뿐이다. 김 변호사의 말대로 검찰은 '떡값' 수준이다. 여기에 공 하나가 더 붙는 다른 기관이 있다. 그 기관들에 대해서는 단 한 마디도 안 나왔다."

 

- 재경부와 국세청이 남았다는 건가. 
"리스트는 그 분이 우리에게 맡긴 거지만 우리는 줘도 안 본다."
 
- 안기부 X파일에서 공개된 부분과 상당 부분 일치한다는 주장도 있다.
"처음 김 변호사의 말을 어떻게 믿냐고 물었을 때 우리는 상식과 일치하니까 맞다고 말했다. 삼성에서 굴러먹은 사람의 말을 어떻게 믿느냐는 것이었는데, 그의 주장이 상식에 맞는다. 그러니까 심상정 의원과도 얘기가 통하고, 경제개혁연대에서 활동하는 김상조 한성대 교수와도 얘기가 잘 통한다. 점점 퍼즐들이 맞아가니까 신뢰를 하는 거다."

 

- 일부 검사들은 김 변호사의 말을 듣고 '이 정도라면 대한민국 간판을 내려야 한다'고 말했다던데.
"상식대로 하면 차떼기를 용서할 수 있나. 용서 못한다. 그런데 사람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인다. 정치인들만 오염된 게 아니라 국민들도 오염된 거다. 나라 문 닫을 판인 거다."

 

"부자는 하느님 나라 들어갈 수 없다더니"

 

- 이번 사건을 통해 우리 사회가 어떤 교훈을 받아야 하나.
"우리 사회가 너무 돈 중심이다. 돈은 하느님에게 맞설 수 있는 유일한 우상이다. 그 만큼의 파괴력이 있다. 우리 사회를 보면 돈 없는 사람은 터무니없이 기죽어 살고, 돈 많은 사람은 너무 교만하다. 돈의 혜택을 누리려고 배운 사람들이 너무 비굴하다. 종교인들을 포함해서 대한민국을 다스리는 실질적 가치가 뭔가, 돈이다. 그런 게 사제들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 개인적으로는 김 변호사가 잘 사는 사람들의 얘기를 해줬는데 그걸 듣고 깜짝 놀랐다."

 

- 어떤 얘기인가.
"2만~3만원짜리 포도주만 있는 줄 알았더니 900만원짜리도 있고, 명품 핸드백·옷·음식 하여간 다양하다. 부자는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고 했다. 재물은 하늘에 쌓으라고 했다. 나는 이번에 삼성문제를 옆에서 보면서 성경에서 말한 취지가 가슴에 확 와 닿았다.

 

이학수 삼성그룹 부회장의 안경 하나도 엄청 비싼 거라고 했다. 이건희 회장은 하고 싶은 대로 다 하면서 산다. '분당 삼성플라자 매각해라' 그러면 매각하고, '돈을 1000배로 튀겨라' 그럼 튀겨놓는다. 그 안에는 신앙과 인간존중이 살 수 없는 거다.

 

불행한 거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하는 일은 이건희 일가를 망하게 하자는 게 아니라, 사람의 영혼을 살리자는 운동이다. 재능있는 지식인들이 국가 주요시스템에서 열심히 일하는데 그들의 뇌세포를 돈으로 모두 망쳐놓으면 우리나라가 무슨 경쟁력이 있겠나. 그거 하지 말자는데 왜 겁을 내는지."

 

- 사람들은 삼성이 이기고, 결국 김용철 변호사가 완패할 거라고 결론 내린다.
"상상력의 한계에 갇힌 사람들 얘기다. 그 이상의 가능성을 못 내다보는 거다. 나는 절대로 그렇게 끝날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혹시 그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그렇게 끝나기를 희망하는 마음이 있는 건 아닌가. 오동잎 한 장이 떨어진다고 해서 가을이 오는 게 아니듯이 김용철의 입을 통해 세상의 모순이 터진 것이다."


태그:#삼성 비자금, #김인국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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