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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 보니 대선 후보들을 가까이서 본 적이 거의 없는 것 같습니다. 항상 TV 토론이다, 뉴스다 해서 굉장히 가깝게 느껴지는 인물들인데요. 술자리에서도 항상 친구인 거 마냥, “아무개가 말이야”라고 스스럼 없이 막말도 하니 더더욱 그런 것 같네요. 술자리에서는 나랏님 욕도 하는 법이니까요.

 

아, 2년 전인가 이명박 후보가 서울시장 재직 당시 시청 뒤편 프레스센터 옆에서 그와 마주친 적이 있네요. 그때는 제가 청계천의 졸속 행정 때문에 화가 좀 나 있던 상태라 계란이라도 던지고 싶던 심정이었지만 제가 무슨 투사도 아니고 그럴 수야 있었겠어요. 마주하고 난 뒤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담배 한 대 피는 걸로 청계천에 대한 분노를 쓸어내릴 수밖에요.

 

 

대선 후보를 만났습니다. 아주 가까이서, 그리고 악수도 나눴지요. 여의도 광장에서의 대규모 집회가 사라진 마당에 열혈지지자가 아니면 이제 가까이 보기보다 인터넷이나 TV 토론에서 얼굴을 마주하는 것이 대세인 시대. 지난 토요일 홍대 앞 ‘비보이 극장’에서 문국현 후보를 만났습니다. KYC(한국청년연합회)가 주최한 ‘대한민국 대통령 공개 채용 프로젝트’ 자리였습니다.

 

어쩌죠? 한 마디로 느낌을 정리하자면 그는 대선후보라기보다 친절한 옆집 아저씨로 느껴질 정도인데요. 그만큼 친근함과 편안함이 첫 느낌으로 다가오더군요. 같이 간 형수와 함께 “대선 후보 맞아?”를 연발할 정도였으니 할 말 다했죠.

 

KYC와 뉴스메이커가 공동으로 주최한 ‘대한민국 대통령 공개 채용 프로젝트’는 여타 블로거 토론회나 정책 토론회와 비교해 예의나 격식 면에서 훨씬 격의 없는 자리였어요. 질문 주제도 20, 30대의 현안인 청년 실업, 육아 문제, 집값 안정에 초점이 맞춰졌고요. 그래서 인지 지난주 화요일 이인제 후보가 참석했을 때는 젊은 세대와 코드가 맞지 않아 진땀을 뺐다는 후문도 들리더군요.

 

문 후보도 20, 30대 유권자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20, 30대가 정치를 포기하지 않는 한 이 길을 계속 가겠다”라고 힘을 주어 강조를 하는 모습이 믿음을 심어주더군요. 왜 요즘 삼성 문제 때문에 더더욱 부패 청산에 열을 올리고 있잖아요? “40대 이상은 부패의 희생양입니다. 그들이 들고 일어날 때까지 정치를 계속 하겠다”라며 항간에 일고 있는 ‘창조한국당’ 창당이 대선 출마용이라는 의혹을 일축하더군요.

 

영어 면접도 인상 깊었습니다. 1부 제목이 ‘채용 프로젝트’인지라 20, 30대 패널 3명이 나와 대선 후보를 면접하는 형식이었는데요. 5분 정도 영어로 정책의 큰 틀을 설명하는데 발음은 둘째치더라고 막힘없는 영어 실력으로 자신감 있게 정책을 설명하는 모습이 김대중 전 대통령 저리가라더군요. “미래 산업은 중소기업이 사회를 바꿀 것입니다. 직원과 소비자가 함께 하는 세상으로 바꿔나가겠다”는 모습에서 기존의 깨끗하고 참신한 정치, 경제관을 그대로 보여줬습니다.

 

 

사실 블로거토론회에도 패널로 초대된 적이 있으나 시간이 맞지 않아 참석하지 못했었는데 이번엔 그 놈의 피가 뭔지. 형이 간사로 있는 KYC(한국청년연합회)가 주최하는 자리라 관심반, 강요반으로 참석한 자리였거든요. 그래서 문 후보에 대한 개인적인 호기심도 있었고, 무언가 새로운 정치토론, 대선이벤트의 형식은 어떨까에 대한 궁금증이 반이었어요. 기존 방송사나 인터넷 언론이 마련한 자리와 어떤 차별성이 있을까가 최대 관심사였죠.

 

그 차이는 2부 자리에서 도드라졌습니다. 예쁘장하게 생긴, 문 후보의 딸 연배인 여성진행자가 나와 20대가 보내준 사연도 읽고, 즉석에서 미션을 수행하는 이색적인 자리가 이어졌거든요.

 

한 30대 초반 남성의 사연에 대한 문 후보의 대답이 흥미로웠습니다. 그 남성의 고민은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성”인 애인과 결혼을 하고 싶은데, 8000만원에 달하는 결혼자금을 당장 마련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었죠.

 

문 후보는 서슴없이 자기가 결혼했던 70년대 기억을 떠올렸습니다. “결혼 자금이 없어 부모님 손님만 모시고 조촐하게 하고 싶다”고 말했다는 거죠. 그 전에 결혼을 하게 된 와이프에게는 솔직하게 지금 결혼자금은 없지만 당신을 놓치고 싶지 않다고 과감하게 고백을 한 상태였고요.

 

“식사는 각자 집에서 드시면 안 되겠습니까?”라는 황당한 의견도 피력했다고 하지만 그건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결국은 조촐하게 서울 시내의 한 호텔에서 결혼을 했다더군요. 지금 옆에 있는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성”을 절대 놓치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하더군요.

 

더 재미있고 통통 튀는 질문은 그 다음에 나왔습니다. ‘갖고 싶은 초능력이 무엇인가?’라는 다소 황당한 질문에 문 후보는 “사랑을 주는 능력”이라는, 우문에 현답을 내놓은 거죠. 어느 것보다 가장 아름답고 소중한 능력이 아닌가라는 보충 설명과 함께요. 다른 정치인보다 온화한 이미지인 만큼 그런 대답에도 전혀 가식이 느껴지지 않더라고요. 옆에 앉은 형수와는 “혹시 파트리트 쥐스킨트의 <향수>를 읽은 것이 아닐까요?”라는 농담을 던지며 재미있어 했더랍니다. 그만큼 준비된 정치인스러운 대답이 나오지 않았거든요.

 

 

청중과 함께 디지털카메라로 ‘셀카’를 찍는 순서에도 “얼굴이 크게 나와 항상 고민”이라며 얼굴을 뒤로 빼는 신세대스러움을, 다시 짖궂은 순서인 개그콘서트 ‘키컸으면’에 맞춰 춤을 춰달라는 요청에도 빼지 않고 청중과 하나 되어 그 웃긴 몸짓을 소화해내더군요. 한 편으로 대선 후보가 사람을 바꾸어 놓는 건가란 생각도 들긴 했지만요.

 

어쩌면 문 후보는 자신이 원하는 대로 20, 30대가 가장 원하는 대통령이 되고 싶어하는 것 같았습니다. 중소기업 활성화로 청년 실업을 줄이고, 아버지, 선배 세대가 물려 준 부패라는 부끄러운 유산을 청산하고, 후대를 위해 환경에 힘쓰는 청렴한 경제 대통령. 바빠서인지 컨셉과 맞지 않아서인지 이명박 후보나 정동영 후보가 이 자리에 나서지 않았지만 그들이 새로운 자리에 선다면 어떻게 적응할지가 꽤 궁금해지는 대목이었습니다.

 

그리고 ‘달라진 분위기가 분명 대선판을 바꾸고 있는데 우리 20대는 다 어디 가 있나’라는 생각도 들더군요. 20, 30대를 위한 자리라고는 하지만 정작 실질적인 수효자이자 처음으로 투표권을 행사하는 20대 초반 친구들은 그리 많이 보이진 않았거든요. 분명 이런 격의 없는 자리는 그들을 위해 마련된 자리일테니까요.

 

행사를 마치고 형수와 홍대 커피숍을 찾았는데 그 곳엔 자리가 부족할 정도로 젊은 친구들로 가득 차 있더군요. 홍대 앞 거리도 젊은이들의 인파로 빼곡했고요. 비록 이번 대선이 생각지 못한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지만 분명 우리 정치는 새로워져야 하고, 새로워져야 한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젊은 홍대 거리에서 만난 새로운 정치인이 저를 더 젊게 해줬다고나 할까요?

 

“우리 공장 옆에 살던 김연아 선수처럼 새로운 시대에 새로운 인물이 필요하다”는 문국현 후보의 행보를 계속 지켜봐야겠습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블로그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문국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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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및 작업 의뢰는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취재기자, 현 영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서울 4.3 영화제' 총괄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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