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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목 들어서는 입구에 산길 옆에 덩그러니 비석하나 서있다
▲ 비석골에 있는 비석 남목 들어서는 입구에 산길 옆에 덩그러니 비석하나 서있다
ⓒ 변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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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시 북구 성내에서 동구 남목으로 넘어가는 큰길 고개를 당고개라 한다. 그 당고개를 넘어 남목 입구에 조금 못 가서 '비석골'이 있다. 나는 그곳이 왜 '비석골'인지 몰랐다.

회사로 출퇴근하다 보면 남목을 벗어나는 길가에 사각의 작은 쇠 울타리가 있는데 그 안에 비석이 하나 서 있었다. 회사로 출퇴근하면서 오며 가며 그 비석을 보곤 하는데, 그 비석이 무엇인지 많이 궁금했었다.

오늘(12일)은 마음먹고 그 비석에 대해 알아보기로 하고 사진기를 준비하고 야간 출근을 했더랬다

한글 밖에 모르는 내겐 매우 생소한 글자들이다
▲ 비석에 쓰여진 글 한글 밖에 모르는 내겐 매우 생소한 글자들이다
ⓒ 변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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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8시 작업 마치고 퇴근하면서 비석골에 내려 비석이 서 있는 곳으로 가 보았다. 비석은 언뜻 보아도 세월이 오래도록 흘러 보였다.

'도대체 무슨 사연으로 이 비석이 여기에 서 있을까?'

비석은 내 키 높이만큼 컸다.

비석 뒤 쪽에도 많은 한자가 적혀 있었다. 그러나 한글 밖에 모르는 내겐 생소하다
▲ 비석 뒷 쪽 비석 뒤 쪽에도 많은 한자가 적혀 있었다. 그러나 한글 밖에 모르는 내겐 생소하다
ⓒ 변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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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과 뒤쪽엔 뭐라고 글자가 새겨져 있었지만 한글만 아는 내겐 생소한 글자였다. 한자의 뜻을 몰라 궁금하던 차에 조금 떨어진 길옆엔 그 해설판이 서 있었다. 그 해설판엔 이렇게 쓰여 있었다. 그대로 옮겨 본다.

비석 옆에 비석에 대한 안내 해설문이 서있었다
▲ 비석 해설판 안내문 비석 옆에 비석에 대한 안내 해설문이 서있었다
ⓒ 변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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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인 월성 이씨(1849~1929) 열행비]

정부인 월성 이씨는 헌종 15년(서기 1849년)에 울산군 동면 남목리에서 태어나서 김재환 이라는 청빈한 선비에게 시집 갔다.

김재환은 품성이 순후하고 효심이 지극하여 온 고을 사람들이 그의 인격을 흠모하여 왔으나 불행하게도 과거 공부를 하던중 원인 모를 병으로 자리에 눕게 되었고 이때부터 월성 이씨는 온갖 정성을 다하여 돌보아 왔지만 다시 깨어나지 못하고 향연 30세의 젊은 나이로 생을 마감하고 말았다.

장례를 치른후 3년상 치르기를 하루와 같이 하였다고 하며 칡뿌리 캐어 겨우 연명하면서도 삭망의 성묘, 소분등 모든 상례를 정성껏 치렀다고 한다. '참고 견디는 것' 그것 하나만을 좌우명으로 삼아 시련을 감내하고 죽은 남편에 대한 사모의 정과 예를 극진히 하였다.

한편, 가정이 극빈한 가운데서도 자녀 교욱을 게을리 하지 않고 법도 대로 가르쳤다. 마침내 이런 가상한 일들이 나라에 알려져 이씨는 고종 경자년(1900년)에 정부인(貞夫人)으로, 남편인 김재환은 이조참판(차관급)의 벼슬을 추서 받았다. 나라에서는 '부인의 정절'을 기리기 위하여 표창하는 특별한 은전을 내렸던 것이다. 그후 1929년에 많은 선비들이 뜻을 모아 이 비석을 세웠다.

사람들이 지나다니고 차들이 지나다니는 큰 길 옆에 있는 비석이지만 관심있게 쳐다 보는이가 없었다. 세월의 무상함일까. 스산한 가을 바람만 휭하니 부는것 같다
▲ 비석문 전경 사람들이 지나다니고 차들이 지나다니는 큰 길 옆에 있는 비석이지만 관심있게 쳐다 보는이가 없었다. 세월의 무상함일까. 스산한 가을 바람만 휭하니 부는것 같다
ⓒ 변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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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 비석문을 보고서 많은 생각을 해보았다. 그리고 그 고난과 역경 속에서도 자식을 반듯하게 키우고, 부모에 대한 효를 다하며 남편에 대한 예를 다한 그 여성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그 당시에도 참 보기 드문 여성임에는 틀림이 없는 거 같다.

요즘…. 개방화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귀감이 될만한 사연이었다. 핵가족 시대, 가정 해체 위기, 한 쌍 결혼하면 두 쌍이 이혼하는 시대를 사는 우리 세대. 지금도 과연 월성 이씨 같은 그런 여성이 있을까?
고결한 삶을 살다간 월성 이씨를 생각하며 나는 발길을 집으로 돌렸다.

덧붙이는 글 | 그 비석 옆에는 남목 1동 주민센터가 건립되어 있었다. 세월의 무상함일까. 그 곳이 방치되는거 같아 안타까웠다



태그:#여성, #훌륭한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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